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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사 먹는 일이 참으로 힘든 까닭 본문
▲ 경향신문이 깜찍한 일을 꾸몄으니
가서 잠깐 놀다 오자.
일과 더위에 지쳐 집에서 밥 해먹기를 포기하고 외식하거나 매식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데 내 힘 아끼려고 남이 만든 음식을 사 먹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닌 거라. 왜 이렇게 힘이 들까 곰곰 생각해 보았는데,
음식 설계design
같은 음식을 파는 집이 여럿 있다고 치자. 그 여러 집 모두 조리를 제대로 해서 냈다고 쳤을 때 나타나는 각 집의 음식 설계 상의 차이를 사람들은 '개성'이라 하고, 이 개성을 보고 어느 한 집을 선택하는 소비자의 행위를 '취향'이라고 부른다. 경향신문의 저 냉면집 찾기 인터랙티브 화면에서도 육수 종류, 염도, 당도, 면 식감, 꾸미 등을 고르게 하는데, 이같은 요소들이 각 냉면집의 개성과 식객diner의 취향을 가르는 것이다. 꾸미로 예를 들자면, 나는 짭짤한 음식 먹는 중에 단 물을 갑자기 왈칵 쏟아내는 생배, 성의 없는 생오이가 올라오는 것은 꺼리는 한편, 심심한 물냉면에는 풀어서 소금 간을 한 지단이, 비빔냉면에는 간 안 된 매끄러운 삶은 달걀이 올라오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니까, 배달을 시켜 먹든 나가서 먹든 일단 음식을 사 먹기 위해서는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고 음식점을 골라야 하는데, 여기에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요된다는 것이다. '혼밥'이 아닐 경우 같이 먹을 사람과 별도의 합의 과정도 거쳐야 하고.
조리 솜씨execution
취향에 따라 음식점을 겨우 골랐다 해도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으니, 바로 주방의 조리 솜씨. 위에서 언급한 '음식 설계'는 사실 음식점에 직접 가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요즘은 친절하고 꼼꼼하기 짝이 없는 맛집 블로거들의 큼직한 사진과 설명을 보면 되므로. (음식 접사는 물론이요, 간판과 인테리어와 차림표에, 심지어 지도까지 올려 주시는 홍익인간 맛집 블로거 분들, 늘 감사합니다. 복 받으세요.) 식당 선정 시 내 집에 편히 앉아 예선을 치를 수 있게 되었으니 이분들 덕에 아낀 시간과 정력과 돈을 생각하면 큰절을 올려도 부족하다. 그래도 조리 솜씨는 직접 맛보기 전에는 알 수 없으므로 내 취향에 맞을 것 같은 집도 한 번쯤은 돈 버릴 생각하고 가 보아야 한다. 예선에 올라온 많은 집들이 이 조리 솜씨의 부족으로 우수수 탈락한다.
가성비 혹은 가심비appropriateness of price
단단은 돈이 많지 않은 사람이므로 (여윳돈이 뭐요?) 취향에 맞는 집 찾아 잘 만든 음식을 사 먹어도 '과연 들인 시간과 비용에 걸맞는 만족감을 얻었는가'를 한 번 더 따져 보지 않을 수 없다. (돈 걱정 안 하고 먹고 싶은 음식 마음껏 사 먹을 수 있었으면...) 집 근처 국숫집의 멀건 멸치국수는 떡볶이 1인분 정도의 값이면 다시 사 먹을 생각이 있지만 현재 값인 6천원을 주고 또 먹을 생각은 없다. 맛이 없지는 않으나 음식 맛과 환경이 6천원을 낼 만큼의 만족감은 주지 못 하기 때문이다. 고로, 이 집은 한 번의 경험으로 족하다. 반면, 집 근처 라멘집의 9,900원짜리 돈코츠 라멘은 언제든 또 사 먹을 용의가 있다. 싸고 푸짐한 걸 원하는 게 아니다. 만족감을 말하는 것이다. 이 가성비 혹은 가심비 항목에서도 많은 집들이 떨어져 나간다. 음식점 평가에서 "맛있다", "맛없다"와 더불어 가장 자주 보는 문구 중 하나가 "나쁘진 않은데 이 돈 주고 또 사 먹고 싶진 않다"다.
한결같은 맛 내기consistency
가끔 가는 중식당의 쇠고기 탕수육이 기가 막히다. 얇은 튀김옷으로 겉은 경쾌하게 바삭거리면서 고기는 부드럽게 씹혀 다쓰 부처 둘 다 고기를 썩 즐기지 않지만 그 특별한 식감 때문에 주문한다. 평범한 날의 한 끼 식사로 삼만원이 넘는 돈을 쓴다는 건 조금 부담스러우나 맛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다.
문제는,
이 집 'execution'이 일정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다섯 번을 사 먹으면 세 번은 감탄과 신음을 내뱉게 할 정도로 조리가 잘 돼서 나오는데 두 번은 그렇지가 못하다. 사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복불복이라 '오늘 맛있게 조리된 탕수육 먹게 해 주소서' 기도하며 가게 되는데, 이런 일을 자꾸 겪으면 또 가고픈 의욕이 사그라진다. 비싼 음식은 확실하게, 늘, 맛있었으면 좋겠다.
냉면집은 또 육수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가 힘든 모양인지, 남들 다 맛있다고 극찬하는 냉면집들 갔다가 무미무취 맹탕 냉면을 받고는 어리둥절한 적이 몇 번 있다. ☞ 냉면집 사장님이 들려주는 냉면 만들기 과정과 비법 글을 읽고 육수가 맹탕이 되는 원인을 알게 되었는데, 식당 입장에서는 어쩌다 한 번씩 발생하는 일일지 몰라도 무더운 날 일부러 시간 들여 찾아가 돈 쓴 손님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재수 없는 일이 또 없다. 음식 가짓수도 많지 않은 특정 음식 전문점이 그 음식 하나도 제대로 못 낸다니, 대체 무슨 마음가짐으로 장사를 하는 걸까?
미슐랑 가이드에 실린 냉면집뿐 아니라 미슐랑 가이드에 실린 백반집에 가서도 이런 일을 겪는다. 점심 중 가장 바쁜 시간을 지나 1시 반쯤 가면 금속 그릇에 미리 담아 놓은 밥이 떡이 돼 상에 오르기 일쑤다. 젓가락으로 쿡 찔러 들어올리면 밥 전체가 한 덩어리가 돼 밥그릇에서 빠져 나온다. '밥심'으로 사는 민족이라는데 미슐랑 가이드 추천 집 밥이 이 꼴이라니?
한결같은 맛 내기는 분점을 거느린 유명 맛집들이나 프랜차이즈 음식점들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난제일 텐데, 이게 잘 안 되고 있으니 손님들 입에서 불평이 끊이질 않고 지점 비교하는 글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늘 맛없는 집이 오늘도 맛없게 내는 건 어차피 안 가는 집이니 상관이 없다. 맛있게 잘 내던 집 맛이 들죽날죽해지면 안 갈 수도 없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것도 같고, "여기 맛있는 집이야" 하고 지인이나 친구들 데리고 갔다가 낭패 보면 어쩌나 걱정해야 해서 난감하다. 자기 취향에 맞는 맛있는 집을 가성비 따지고 시행착오 거쳐 기껏 찾아도 'consistency' 문제로 또 염려를 해야 하니, 음식을 사 먹는 행위가 이토록 힘든 것이다.
덧and...
맛없는 음식을 비싼 값 치르고 먹었을 때 우리 인간은 특히 히스테리를 부리기 마련인데, 힘들게 번 '피 같은 내 돈'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음식을 사 먹었다는, 바보 같은 선택을 한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며, 내 속에 집어넣은 그 돈값 못한 맛없는 음식이 곧 내 피가 되고 살이 될 거라는 끔찍한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특히 살.
윽, 기분 나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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