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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 스머프

음식의 향(香)

단 단 2018. 5. 13. 04:44

 

 


어느 중식당의 '4품냉채' 1인분.

오향우육의 오향과 해파리 냉채의 겨자향이 일품이라 단단이 좋아한다.

중식은 종업원이 일일이 음식을 나눠 주고 가서 좋다.

고급 식당은 아예 서양처럼 주방에서부터 예쁘게 1인분씩 담아 내겠지.

 

 

동북아 3국 음식 중에서는 중식을 가장 좋아한다. 그 다음은 일식. 나고 자란 조국의 음식보다 이웃나라 음식들이 입에 더 잘 맞는다니 딱한 일이긴 하다. 일단, 한식에는 내가 못 먹거나 안 먹는 음식이 너무 많다. 맛은 나쁘지 않으나 먹는 방식이 번거로워 안 먹게 된 음식도 있고, 내는 품이 못마땅해 안 먹는 음식도 있다. 

맛을 놓고 논하자면, 재료가 가진 깊은 속맛보다는 강한 겉맛으로 먹는 '험한' 양념의 음식이 많(아졌)다는 것, 기름기가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중식이나 동남아 음식에 비해 향이 부족하다는 점을 한식의 단점으로 꼽고 싶다. 어느 이름난 중식 요리사는 한국의 식당들이 선보이는 한식이 너무 달고 양념이 단조롭다는 평을 한다. (☞ 한식은 달고 맵고 짜요) 섭섭하긴 하나 맞는 말이라서 반박하기가 힘들다. 나도 몇 차례나 이야기한 바 있다. 

많은 요소들 중에서 오늘은 향에 대해서만 논하기로 하자. 


중식은 팔각, 회향, 오향 같은, 내가 좋아하는 아니씨드aniseed 계열 향신료 활용이 돋보이는 데다 생강향도 잘 살리고 장맛에 식초맛에 '불향'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향미香味'를 한껏 즐길 수가 있다. 향이 독특한 음식을 먹을 때면 비강이 다 행복하다. 고수도 좋아한다.  

동남아 음식은 쿰쿰한 새우 페이스트와 피쉬 소스, 꿈같은 코코넛 밀크, 향기로운 레몬그라스, 카피르 라임잎, 판단잎, 라임 향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집에서 블렌더 써서 타이 그린 커리 페이스트 만들고 나면 온 집안이 향기로 가득 찬다.

 

인도·파키스탄 같은 서아시아 음식 향은 더 강렬해 과연 향신료 사용의 '끝판왕'이라 부를 만하다. 인도 향신료들을 담은 합인 '마쌀라 다바masala dabba'는 알록달록 화려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식욕이 돋고 흥분된다. 

☞ 인도 우표 - 인도 향신료

☞ 말레이시아 우표 - 말레이시아 향신료

☞ 싱가포르 우표 - 싱가포르 향신료

☞ 영국식 커리 파우더 집에서 조제하기

 

 

 

 

단단이 지금까지 맛본 인스탄트 라면 중 최고로 꼽는 것.

 

 

얼마 전 다음Daum 대문에 전세계 인스탄트 라면 시식으로 유명한 미국인 블로거의 ☞ 선호 라면 순위가 올라 왔다. 그런데 우리 라면 성적이 썩 좋지 않아 한껏 기대하고 있던 한국인들이 단단히 삐쳤다. 거기 댓글 란을 보라. '동남아 라면을 특별히 좋아하는 일개 미국인의 개인 취향일 뿐'이라며 히스테리 부리고 있는 한국인 천지다. 

허나, 이건 미국인 한 명의 '개취'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서양에서 발간된 요리책이나 음식 잡지, 영업중인 아시아 음식점들을 대충만 봐도 서양인들이 얼마나 동남아 음식의 풍미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저 라면 블로거의 'Top 10' 목록을 보고 아무 저항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라면을 저 라면 블로거도 가장 맛있어한다니 이런 반가운 일이 있나. 나도 한국 라면들보다는 동남아 라면들 맛을 훨씬 좋아하는데, 일단 향의 복잡함에 있어 한국 라면은 이들 라면에 상대가 안 된다. 국물이나 소스 맛도 다층적인 동남아 라면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신라면'을 다쓰 부처는 한 번도 맛있다고 느껴 본 적이 없다. 매워서 자극적이기만 하고 맛이 일차원적이다. 한마디로, 단조롭다. 신라면뿐 아니라 우리 라면이 전반적으로 그렇다. 

영국에 있을 때는 위에서 언급한 싱가포르 <프리마 테이스트> 사의 락사 라면, ☞ 영국 <타이거 타이거> 사의 타이 커리맛 컵라면, 인도네시아 <인도미> 사의 른당맛 라면을 사 먹곤 했는데, 확실히 음식 자체가 향기로운 나라 들이다 보니 인스탄트 라면들도 한국 라면들보다 맛과 향이 다채롭다. 영국인들도 동남아 라면들을 좋아한다. 라면뿐 아니라 그냥 동남아 음식들을 좋아한다. 수퍼마켓 간펵식 매대에도, 심지어 짭짤한 스낵이나 과자 선반에도 동남아 음식맛 제품들은 꼭 있고, 어떤 동네를 가도 동남아 음식점, 서남아 음식점은 몇 개씩 꼭 있다. 식당 앞을 지날 때 나는 그 환상적인 향. 

☞ 단단이 좋아하는 싱가포르 인스탄트 라면 

☞ 단단이 좋아하는 인도네시아 인스탄트 라면

☞ 단단이 좋아하는 태국 타이 커리맛 컵라면

☞ 베트남 인스탄트 라면도 향 훌륭하다는 보름달 님 증언

 

 

 

 

 

 


영국 디저트를 만들기 위해 준비중.

영국 디저트의 특징을 꼽자면,

감귤류, 생강, 향신료, 엘더플라워, 술 등

향 나는 재료들을 적극 활용해 향을 생생히 표현한다는 것.

 

 

귀국 후 살림이 정리될 때까지 요리할 여건이 안 돼 외식을 많이 했었는데, 영국에서 사 먹던 음식들과 가장 큰 격차를 보이는 점을 꼽으라면 바로 '향'. 다쓰 부처 둘 다 외식할 때마다 '왜 이렇게 음식들의 향이 죽어 있지?' 의아했다. 음식에 눈에 보이지 않는 막이 한 겹 씌워져 있는 것 같달까.

 

한식당뿐 아니라 외국음식을 내는 식당들도 마찬가지. 어느 식당을 가든 향 내는 데 소극적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일본 카레집들 카레도 끈끈하기만 하고 향이 한풀 꺾여 있다. 외국에서 수련하고 온 유학파 요리사가 많아졌어도, 식당 개업한 이주 노동자들이 많아졌어도, 손님 입맛이 보수적이면 어렵게 공수한 재료로 '본고장 맛'을 내보겠다는 요리사의 의지는 부질없어진다. 안 믿으려 들겠지만 영국의 식당들이 한국에 있는 식당들보다 향을 훨씬 과감하게 낸다. 이태리 음식도, 동남아 음식도, 중식도, 인도음식도, 중동음식도, 한국의 식당들과 식품업체들보다 영국의 식당들과 식품업체들이 더 본고장 향에 가깝게 표현한다. 사실 영국 전통 음식들에도 향신료가 많이 쓰이는 편이고. (피쉬 앤드 칩스를 한낱 튀긴 음식으로만 여기는가? 나는 생선향과 기름향과 몰트 비니거향이 어우러져 뜨거운 김과 함께 훅 올라오는 향음식으로 기억한다.)

여러 나라 음식들 레서피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우리 한식이 향신료 사용에 가장 인색하다. 맛을 위한 재료들은 이것저것 (안 넣어도 될 재료들까지) 열심히 넣는데 향 내는 재료들은 맛 재료들만큼 신경을 쓰지 않는다. 기껏해야 생파와 참기름 향 정도. 맛의 70% 이상이 후각에서 온다는 연구도 있는데 그저 강한 양념으로 뒤덮고는 향을 즐기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먹는다. 한국인들은 입버릇처럼 영국인들 입맛이 보수적이라고 하는데 내가 볼 땐 한국인들 입맛이 훨씬 보수적이다. 동남아 음식 향을 가장 못 견뎌하는 나라가 우리 한국 아닐까 싶다. 서양인들보다도 못 견뎌한다. 여행기들 보면 당장 중국 본토 음식 향과 홍콩음식 향도 못 견뎌하는 사람 천지다. 같은 아시아계이면서도 어째서 이토록 타 아시아 국가들 음식 향을 꺼려하는지 의문이다. 


☞ 향신료 쓰는 영국 명절 나물 - 브레이즈드 레드 캐비지

☞ 카리스마 넘치는 영국식 안초비 버터

☞ 영국식 커리 파우더를 쓴 성깔 있는 맥주 안주 - 커리 땅콩

☞ 소스 향미가 기가 막혀 - 영국 전통 소스 '브레드 소스'

☞ 향신료 듬뿍 영국 전통 과자 - 코니쉬 페어링

☞ 향신료 듬뿍 영국 전통 과자 - 진저브레드(맨) 비스킷

☞ 향신료 듬뿍 영국 전통 과자 - 크리스마스 트리 비스킷

☞ 향신료 듬뿍 영국 전통 푸딩 - 크리스마스 푸딩

☞ 향신료 듬뿍 영국 전통 과자 - 민스 파이

☞ 향기로운 조제 크리스마스 음료 - 멀드 와인

☞ 영국 디저트의 끝판왕 - 트라이플

☞ 엘더플라워로 꿈같은 향을 낸 영국 디저트 - 구즈베리 풀

향기로운 당근 케이크

너무 많아 연결문서 붙이기는 여기까지만. 전통식품 중에 훈제한 것들이 많아 영국인들은 훈향도 매우 즐긴다. 특히 훈제 해산물과 훈제 치즈. 진짜 연기 쏘여 낸 훈향은 액체로 낸 훈향과는 뉘앙스가 많이 다르다. 질감texture부터가 다르다. 영국에서는 진짜 연기를 씌운 식품을 찾기가 더 쉬웠는데 한국에서는 반대. 성질 급한 '빨리빨리' 나라가 시설 투자하고 시간 들여 만만디 만만디 연기를 쏘일 턱이 없지. 국제전화번호도 하필 '+82'.

 

 

 

 

 

 

 

체다를 썼다길래 반가워서 사 왔으나.

 

그런데 또 가공식품들은 왜 그렇게 인공향을 과하게 입히는지, 촌스러워 차마 두 눈 뜨고는 못 먹어 줄 지경이다. 향 내는 진짜 재료들은 돈 아끼느라 개미 눈물 만큼 넣고 부족한 향은 합성착향료로 때운 것들이 수두룩.   

버터링 보라. 진짜 버터pure butter 안 들어간다. 인공버터향 씌워서 소비자 속인다. ☞ 허니버터칩 보라. 감자칩에 인공향으로 옥수수 비슷한 향 과하게 입혀 놓고는 그게 '허니'와 '버터'맛이라고 우긴다. 성분표에서 허니와 버터가 얼마나 들었는지 한번 확인해 보라. 감자칩이라는데 옥수수풍 향이 하도 과해 나는 무슨 콘칩 같은 옥수수칩 먹는 줄 알았다. '국민 크래커'라는 ☞ 참크래커에는 '크래커향'이라는 게 들어간다. 뭣? 크래커라서 크래커향이 나는 게 아니고? 

바나나맛, 치즈맛 가공식품들 향이 특히 한심천만한데, 아무리 치즈가 우리 전통식품이 아니라 해도 그렇지, 경제력이 이렇게 높은 나라가 여태 치즈맛도 몰라 그런 아세톤 같은 맵고 기괴한 인공향 씌워 놓고는 치즈맛 냈다고 우기고 있나. 포장 좀 보라. 체다로 맛냈다고 써 놓고는 체다 '분말' 고작 0.4%에 엉뚱하게도 구멍 숭숭 뚫린 에멘탈 계열 알파인 치즈를 샛노랗게 칠해 인쇄해 놓았고, 진짜 생크림 썼다고 큼직하게 문구 박아 놓고는 유크림은 고작 0.1% 넣었다. 그리고는 부족한 맛과 향은 '크림치즈향', '캬라멜향', '밀크향'으로 때운다. 자연치즈들 중에도 아세톤 기운이 도는 치즈들이 간혹 있지만 어디까지나 복잡한 수많은 맛과 향 중 하나일 뿐, 이렇게 치즈 실체 맛은 하나도 안 나면서 아세톤 향만 나고 있으면 안 된다. 바나나맛 가공식품들에서도 과숙해서 버려야 할 바나나에서나 나는 아세톤 매운 향이 난다. 남성 독자분들을 위해 부연하자면, 여성들 손톱에 칠한 에나멜 지울 때 쓰는 눈코 시리게 매운 무색의 액체가 바로 아세톤이다. 어떻게 식품 맛을 이렇게 낼 수가 있나? 개발자들, 이런 제품 내놓고 부끄러워서 잠이 오나?  

 

 

 

 

 

 

 

 

인공향료 일절 없이 진짜 체다와 진짜 생크림 듬뿍 넣고도

한국 과자들보다 값이 싼 영국의 아티잔 비스킷들.

고급 팜하우스 체다 37%에, 크림은 심지어 체다보다 더 많이 들었는데도

값은 £2.59. 영국인들 체감 물가로는 2,600원 정도.

한국 과자 값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비비고 새우 왕교자는 새우만 넣고 끝내도 될 것을 쓸데없이 새우 듬뿍 넣은 체하려고 '새우엑기스분말' 넣어 역하기 짝이 없고, 매운 해물맛 인스탄트 라면들은 짬뽕 흉내 내느라 불맛 시즈닝을 분별 없이 써재껴 느끼하기 짝이 없다. 국물 세 숟가락만에 먹기가 지겨워진다. 


하여간 한국 마트에서 보는 가공식품이란 게 거의 다 이런 식이다. 한식 최고라며 '엄지 척' 하지만 음식 향 내는 데 있어서는 후진국 중 후진국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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