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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후 일년 - 한국 식문화 단상 본문
▲ 달다.
▲ 달다.
▲ 안 달다.
오늘로 귀국한 지 만 일년이 되었다. 식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맞닥뜨린다. 영국 가서 뚝 그쳤던 뾰루지도 다시 나고 있다. (☞ 여드름 미스테리) 입맛이 완전히 한국화하기 전 (과연?) 낯선 감정이 아직 생생할 때 또 정리해 두기로 한다.
매운 음식은 통념과는 달리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 음식점 가서 안 시키면 그만이니까. 한국 와서 떡볶이 맵다고 투덜거린 적이 있는데 (☞ 음식이 이렇게까지 매워야 할 필요가 있나?) 사실 매운 음식을 파는 집에는 아예 가질 않거나, 안 매운 다른 음식을 주문하거나, 고추가 보이면 건져 내면 되므로 이 문제는 의외로 어렵지 않게 해결된다.
짠 음식은 여전히 문제고 이에 대해서도 투덜거린 적 있으나 (☞ 한식, 건강식이라 우기지 말고 그냥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어) 그래도 정부가 열심히 계도를 한 덕인지 식품들 중에는 내가 영국 가기 전보다 간이 좀 준 것들이 더러 보인다. 인스탄트 라면과 조미김, 건멸치 등이 그 예다.
진짜 문제는 음식이 달다는 데 있다. 주식으로 먹는 음식들이 너무 달다. 반찬도 다 달고, 특히 양념 고기들이 그렇게 달 수가 없다. 불고기, 갈비, 제육, 양념통닭 등. (☞ 한식은 달고 맵고 짜요)
김치도 달아졌다. 외식 안 하시고 손수 차린 집밥만 드셔서 옛맛을 그대로 간직하신 내 시어머니의 달지 않은 김치는 이제 박물관 유물 취급 받게 생겼다. 한국에서는 양식도 달게 낸다. 어제 도미노 피짜를 누가 사 줘서 먹는데 피짜가 너무 달아 다쓰 부처 둘 다 한참을 어리둥절. 짠 음식만 갈증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단 음식도 갈증을 일으키는데 지금 한국에는 '단짠' 끼니 음식이 너무 많다.
영국인들은 디저트나 티푸드에는 설탕을 삽으로 퍼 넣어도 주식은 절대 달게 먹지 않는다. 심지어 식사에 곁들이는 피클도 우리가 먹는 치킨집 무나 피짜집 오이처럼 달게 만들지 않고 짜릿한 신맛에 집중한다. 한국인은 달게 먹어야 할 음식은 "덜 달아서 좋네." 하며 먹고, 달지 않아야 할 음식에는 아무데나 설탕을 넣는다. 그러면서 식후에 디저트 먹고 티타임에 케이크 먹고 있는 영국인에게 쯧쯧, 저 봐라, 손가락질이다. 영국인이 쓴 한식 요리책 보고 음식 해봤더니 설탕이 죄 빠져 있어 한국에서 먹던 맛이 안 난다. 주식이 그토록 단 게 이들한테는 적응하기가 힘든 것이다. (☞ 헤어리 바이커스의 비빔 막국수) 후식과 간식은 개인의 몸 상태에 따라 안 먹고도 살 수 있지만 주식은 안 먹고는 살 수 없으니 주식이 달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쌀밥에, 국수에, 가뜩이나 탄수화물 의존도가 높은데 반찬과 고기, 심지어 찌개에까지 설탕을 넣는다. (☞ 한국인과 설탕, 민스 파이 이야기)
▲ 국제당뇨연맹이 집계한 2017년 국가별 당뇨 환자 비율(%). ☞ Diabetes Prevalence 블로그 이웃들과 친지가 계신 나라들만 골라 비교해 보았다. 식후에 디저트도 먹고 티타임에 티푸드도 먹는 영국이 웬일로 당뇨 발병률은 낮다.
신선한 생채소 먹기가 의외로 힘들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고기 먹을 때나 쌈채를 좀 볼 수 있을 뿐. 한식은 반찬을 통한 채소 섭취량이 많아서 일견 좋아 보이나, 문제는 신선한 채소가 아니라 대부분 간을 한 숙채나 김치, 장아찌류에, 생엽채라 해도 비빔장이나 쌈장과 함께 먹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거기다 한식 백반에는 늘 국물까지 따라 나오니 지난 일년 동안 내내 목이 탔던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늘 갈증을 느낀다. 우리 집 영감도 같은 소리를 한다. 오늘도 저녁에 먹은 김치 몇 조각 때문에 아직까지 목이 탄다. 밖에서 겉절이 곁들여 칼국수 한 그릇 먹으면 갈증 때문에 이틀을 고생한다. (일본 라멘들도 무지 짜. 어휴.) 평소 서양식 샐러드를 자주 해먹는데, 서양 사람들은 우리처럼 소스에 집착하지 않아 샐러드를 먹어도 기름과 식초 바탕의 드레싱을 소량만 쳐서 먹는다. 그래서 채소를 먹고 나도 갈증이 나는 일은 드물다.
야식도 문제다. 가뜩이나 식당도 많은데다 24시간 영업집도 수두룩, 구에서 허가한 포장마차뿐 아니라 불법 포장마차와 푸드 트럭과 좌판에, 편의점도 도처에 널렸다. 집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편의점이 무려 열 두 개나 있다. 믿을 수 있나, 이거? 설상가상 음식 배달업도 고도로 발달돼 있으니 한국의 비만 인구가 느는 이유는, 내 생각엔 '서구화된 식습관' 때문이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먹어 대는 습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음식 접근성이 지나치게 높다. 자주 타는 지하철 역에는 아예 열차가 서는 승강장에 편의점과 즉석 빵집이 있다. 설탕 단내가 대용 버터, 가짜 바닐라 향과 어우러져 승강장을 가득 메운다. 그 냄새를 맡으며 스크린 도어에 붙은 '지하철 시'를 읽다 보면 속이 금세 울렁거린다. 교통 카드를 대고 나오면 역한 어묵탕 비린내가 역사 전체에 진동을 한다. 식사 때 내 앞에 놓인 어묵탕이나 맛있게 느껴지지, 원치 않은 장소에서 원치 않은 시간에 맡는 비린 어묵탕 냄새는 고문이나 다름없다.
식사량도 이제는 서양인들 뺨치는 것 같다. 대개의 식당이 선보이고 있는 '세트 메뉴'를 다쓰 부처는 양이 많아 못 먹는다. 한정식 집에 가도 대여섯 가지 요리를 낸 후 백반 한 상을 또 낸다. 냉면집이나 국숫집에서도 면만 달랑 먹는 사람이 드물다. 꼭 무언가를 더 시켜 상 가운데에 놓고 먹는다. 야식 먹고 소화도 안 시키고 자면서, 많이 먹으면서, 맵고 짜고 달고 뜨겁게 먹으면서, 환기도 잘 안 되는 실내에서 비계 태워 가며 고기 구워 먹으면서, 병 나면 서양 탓한다. 티타임용 비스킷도 영국인들은 홍차 머그 옆에 딱 한 개만 꺼내 놓고 먹는데 한국에서는 양껏 먹으면서 서양 과자 열량 높다고 볼멘소리다.
대형 마트와 식품업계의 행태, 가공식품의 한심함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으므로 글을 따로 쓰기로 한다. ■
☞ 한국 가공식품의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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