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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터눈 티]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호텔 '스윗 서머 애프터눈 티 세트' 본문
아니?
신도림동이 언제 이렇게 근사한 신도시로 탈바꿈했습니까? 이런 근사한 5성 호텔은 또 언제 들어섰고요? 아프터눈 티 즐기러 쉐라톤 디큐브시티 호텔 찾아 갔다가 천지개벽한 환경에 깜짝 놀랐네요.
영국은 이번 주[8.13-19]가 아프터눈 티 주간Afternoon Tea Week입니다. 몸뚱이는 비록 한국에 있지만 영국인들 노는 건 한국에서도 다 찾아서 따라 놀아야죠. ㅋ 권여사님 모시고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호텔이 내는 '여름' 아프터눈 티를 즐기고 왔습니다. 먼저 다녀오셨던 ☞ 보름달 님 블로그 글 보고 하도 신기해서 이 호텔로 정했는데, 여러분, 사진에 있는 저 가짓수 많은 한상이 글쎄 22,000원이랍니다. 호텔이 지금 자선사업중이에요. 더 놀라운 사실은, 권여사님과 다쓰 부처, 이렇게 셋이 가서는 저 푸짐한 세트를 각자 하나씩 주문했다는 겁니다. ㅋ 양 많아서 절대 다 못 드실 거라며, 두 개만 시켜도 충분하니 한 분은 그냥 음료만 추가 주문하시라고 직원분이 극구 말렸는데도 세 개를 시켰습니다. 메뉴를 보니 음료만 추가하는 데 16,500원이 듭니다. 이런 상황이면 누구든 아프터눈 티 세트를 하나 더 시키죠. 5,500원만 더 내면 저 많은 차음식들을 다 받아 볼 수 있는데요.
해외 여행 다니며 홍차 좀 즐겨 보신 우리 차동무들은 잘 아시겠지만, 원래 호텔 아프터눈 티라는 건 예약을 하고 가서 인원수대로 시키는 게 기본 에티켓이죠. 호텔로서는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으니 준비하기 수월하고 음식 낭비가 적어집니다. 그래서 식사 시간 사이를 활용해 호텔은 부가 수입을 얻을 수 있어 좋고, 수요를 예측해 시간 맞춰 준비한 음식이니 손님은 '신선한' 차음식을 받을 수 있어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형국이 되죠. 그런데 이 호텔 티룸은 예약을 받지 않습니다. 빙수도 팔고, 커피도 팔고, 술도 파는 바를 겸해서 그런 것 같은데, 예약하려 전화를 했더니 오후 2시부터 그냥 아무 때나 와 입장하면 된다고 안내를 합니다. 이렇게 되면 호텔로서는 수요를 예측할 수 없게 되죠. 아프터눈 티를 위해 시간 딱 맞춰 준비한 음식이 아닌, 미리 준비해 두었던 묵은 음식이나 호텔 내 다른 파트에서 쓰고 남은 음식을 낼 확률이 커집니다. 사진 보면 아시겠지만, 그러니 바로바로 만들어 내야 하면서 손이 많이 가는 다채로운 종류의 촉촉한 영국식 티 샌드위치는 존재할 수가 없는 거죠.
짭짤한savoury 것부터 즐깁니다. 초밥과 '핫'도그가 올라와 재미있었습니다. 핫도그는 따뜻하면서 맛있었습니다. 티 샌드위치를 낼 여건이 어차피 안 된다면 질긴 껍질crust의 높이 쌓은 클럽 샌드위치나 알록달록 예쁘기만 한 오픈 샌드위치보다는 차라리 동심을 자극할 수 있는 핫도그가 먹기도 더 편하고 재미도 있고 훨씬 낫네요. 판단 잘했습니다.
저 초밥은 뷔페나 일식당에서 점심 시간에 팔던 걸 얻어 와 올렸을지 모르겠습니다. '열대' 색에 맞추느라 연어 초밥으로 올렸을 텐데, 다쓰베이더에 따르면 연어에서 약품 냄새 같은 게 살짝 나고 (연어 산지에서 곰처럼 연어 먹다 온 사람이라 연어 맛에 예민함.) 냉장고에 있다 나왔는지 밥알은 굳었다고 하네요. 가만. 지금 22,000원짜리 아프터눈 티에 대고 불평질이여? 닥치고 감사의 눈물 흘리며 먹기나 해.
스콘.
제과 팀이 한 3일 전쯤 만든 걸 그냥 방치했다가 가져왔나 봅니다. 박스 종이cardboard 스무 겹을 모아 씹는 듯 질기고 퍽퍽합니다. 영국 티룸들 사진 보고 뽀오얀 스프레드(마스카포네? 프로마쥬 블랑?), 빠알간 잼을 곁들이기는 했는데, 영국식 스콘이 아니라 미국식 달고 단단한 스콘입니다. 게다가 스콘에 말린 크랜베리는 왜 저렇게 많이 넣었을까요. 건과일 잔뜩 넣고 달게 만든 미국식 스콘에는 딸기잼이 필요치 않아요. 또또. 22,000원!
스콘 옆의 빨간 롤케이크는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스콘에 크림치즈를 곁들여 내고는 이 빨간 롤케이크 안팎에 또 같은 맛의 크림치즈를 바르고 붙였습니다. 롤케이크 안에 바른 크림치즈에는 '여름'과 '열대'라는 주제에 맞춰 패션 프룻을 잘게 다져 넣어 변주를 주긴 했으나 어쨌거나 맛이 겹칩니다. 겉에는 코코넛 가루를 묻혀 열대 느낌을 더했습니다.
공들여 만든 티가 팍팍 나는 커피맛 갸또tart.
속에는 쵸콜렛 가나슈 같은 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냉장고에 오래 있었는지 과자가 <배스킨 로빈스>의 아이스크림 샌드위치처럼 눅눅합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잘 만들어서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맛의 크림치즈가 또 얹혀 있어요.
초록 코트를 입은 당근 케이크.
당근 케이크에 초록 옷이라니, 이런 엉뚱하고 재미있는 사람들 같으니. 이것도 잘 만들어서 맛있었어요. 당근 케이크 좋아하는 다쓰베이더는 향신료 아끼지 않고 만든 이 당근 케이크를 가장 맛있어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제과 솜씨가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전 단것들에서 실컷 먹었던 크림치즈가 초록 색소를 머금고 또 올라왔습니다. 당근 케이크에는 원래 생크림이나 마스카포네 같은 크림치즈를 얹기는 하는데, 아아, 같은 재료는 이제 그만.
쵸콜렛과 크림치즈, 또 보이네;;
열대과일, 딸기 맛도 계속해서 겹칩니다. 망고나 패션 프룻 같은 열대과일 맛이 겹치는 건 이 아프터눈 티의 주제가 '여름'과 '열대'이니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겠죠.
쵸콜렛 또.
크림 또.
빨간 베리류 또.
맛이 겹치는 것도 문제이지만 질감texture이 겹치는 것도 문제입니다. 무스나 크림, 젤리류를 계속 먹어야 하니 힘들어요. 굳힌 쵸콜렛 장식도 벌써 몇 번째 먹는지 모르겠습니다. 까만 쵸콜렛에서는 그래도 씁쓸한 쵸콜렛 맛이 나는데, 색 내느라 쓴 화이트 쵸콜렛들에서는 촛농 맛이 납니다. 게다가 저 빨간 라즈베리색 화이트 쵸콜렛 공은 속을 비운 'chocolate shell'도 아닌 꽉 찬 공이어서 먹는 게 고역이었습니다.
으악,
베리 또,
크림치즈(프로마쥬 블랑) 또,
무스류 또.
살려 주세요.
크림치즈 또,
무스 또,
열대과일 맛 또.
재료와 질감이 겹쳐서 그렇지, 단품만 놓고 보면 스콘 빼고 다들 맛있었습니다.
이제 음료 이야기를 해볼게요.
권여사님은 무알콜 콕테일로 주문하셨습니다.
열대과일맛이 나는 단 음료였는데, 차음식이 달기 때문에 쌉쌀한 홍차를 시켜야 한다고 적극 권해드렸으나 "너 블로그에 사진 올리려면 엄마가 예쁜 음료 시키는 게 낫지 않아?" 하시며 이걸 주문하셨습니다. 딸은 푸드 블로거, 손녀는 인스타그래머이다 보니 칠십 노인도 이렇게 센스가 있어요. ㅋㅋㅋㅋㅋㅋ 음식 사진 잘 나오게 식탁 위 부스러기도 치워주시고, 꽃병도 재배치해주시고. ㅋㅋㅋㅋㅋㅋ
저는 손님 떨어질까봐 블로그에 제 얼굴을 잘 안 올립니다. 음식 사진만 열심히 올리죠. 그런데 요즘 젊은 처자들은 자기 얼굴 참 많이도 찍어 올리데요. 저희 뒤에 앉았던 처자 한 무리도 음식과 얼굴 같이 나오게 찍느라 자리 옮기고 야단법석입니다. ㅋ 생각해 보면, 아프터눈 티만큼 '인스타그래머블'한 음식도 또 없는 것 같습니다. 아프터눈 티 많이들 즐기세요. 요령만 알면 집에서도 돈 많이 안 들이고 '뽀대' 나게 즐길 수 있어요.
다쓰 부처는 홍차.
아프터눈 티 즐기러 가실 분들께 단단은 다질링을 권해드립니다. 쌉쌀하면서도 적당히 향기로워 차음식의 기름진 맛을 잘 끊어주고 과일로 맛낸 음식들과도 잘 섞이거든요. 브렉퍼스트 티는 우유를 넣어야 해서 차음식 속 유제품과 겹치고 '아프터눈'이라는 시간 대에도 맞지 않죠. 얼 그레이는 차 자체의 향이 강해서 차음식들 맛과 충돌합니다. 발렌타인스 데이나 로맨틱한 날을 위해 장미로 맛낸 차음식들이 올라온다면 이때는 고급 아쌈이 잘 어울립니다. 실론은 어느 차음식에든 두루두루 잘 어울리고 무난하나 레몬 맛과 특히 궁합이 좋습니다. 짭짤한 음식 비중이 높을 때는 찻잎에 연기 씌워 훈향을 낸 랍상 수숑도 괜찮은데, 아마 우리나라 티룸에서 잘 만든 은은한 훈향의 랍상 수숑 만나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호불호가 강한 차라서 랍상 수숑은 선뜻 권해드리기가 망설여지네요.
그런데.
홍차 내온 꼴 좀 보세요.
홍차를 받고는 셋 다 '어이구 두야' 이마를 짚었습니다.
저 양 많은 <로네펠트>의 찻주전자용 티백을 누가 저렇게 용량 적은 찻잔에 풍덩 담가 격 없이 냅니까? 이 호텔이 '차알못'이면서 아프터눈 티를 팔고 있다는 게 여기서 드러나죠. "왜 찻주전자에 안 내세요?" 물었더니 뜨거운 물 리필top-up용 몇 개말고는 찻주전자가 없어서 그렇답니다. 여러분은 지금 경제력 세계 12위인 대한민국의 5성 호텔 티룸 현장을 보고 계십니다. 저렇게 적은 물에 찻주전자용 큰 티백을 담갔으니 차 맛이 얼마나 진하고 썼을지 짐작이 가시죠. 탕수 담은 물주전자를 찻잔 옆에 두고 가는 것도 아니고요.
그리하여 권여사님과 다쓰 부처는 이 거추장스럽고 흉물스러운 큰 종이 티백뭉치가 차음식 접시 위에서 찻물을 줄줄 흘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음식을 먹게 되었습니다. 내 눈.
마시고 있는 찻잔에 충분히 뜨겁지 않은 물을 두 번 채워주고 갔으니 마지막에는 차가 아니라 맹물을 마시게 되었고요. '차알못'도 이런 차알못이 없어요. 커피 애호가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부연하자면, 이 상황이 지금, 커피 하우스에서 취향에 맞는 커피 주문해 마시고 있는데 직원이 와서 아직 다 마시지 않은 커피에 대고 맹물을 계속 부어주고 가는 것과 같은 겁니다. 왜 티포트를 쓰지 않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명색이 차 생산국이고 도자기의 나라인데, 이건 국격과도 상관있다고 봅니다. 호텔 관계자님, 이 글 보시면 얼른 시정해 주세요. 외국인들이 이 호텔에 묵었다가 아프터눈 티 서비스 이용하고는 놀랄까 봐 걱정됩니다. 품질만 좋다면 티백 쓰는 건 그리 큰 문제가 안 됩니다. 허나, 사무실도 아닌 호텔에서 어떻게 찻잔에 티백을 덜렁 담가 손님한테 그냥 냅니까. 참, 22,000원이었죠.
권여사님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아프터눈 티를 즐기고는 곧바로 호텔 지하 백화점 식품관으로 내려가 단무지 곁들여 내는 만두를 사 먹었습니다. ㅋㅋㅋㅋ 연세에 비해 달고 기름진 차음식 잘 드시는 편인데도 많이 힘드셨나 봅니다.
요약:
1.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의 아프터눈 티는 같은 재료를 지나치게 중복해서 차음식을 만든다.
2. 바삭한 요소가 부족하고 크림과 무스만 이어지니 금세 물린다. 아프터눈 티 테이블에 마카롱, 머랭, 머랭 비스킷 등이 괜히 올라오는 게 아니다.
3. 단 차음식에 비해 짭짤한 차음식의 비중이 낮다. 아니 그보다는, 단 차음식의 가짓수와 양이 너무 많다. 반으로 줄여 너댓 개만 내도 충분하다. 자선사업 접고 적지만 재료 중복되지 않는 알찬 구성이 되도록 신경 써야 한다.
4. 스콘을 그렇게 낼 거면 내지 않는 게 좋다. 영국한테 사과하라. 클로티드 크림은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드니 대체품으로 내도 문제 되지 않으나 스콘은 좀 더 연구해서 제대로 내야 한다.
5. 티포트 빨리 장만하라. 당신들은 지금 당신네 호텔 격 다 떨어뜨리고 국격도 떨어뜨리고 있다. 원래는 티포트 옆에 차 농도를 조절할 뜨거운 물 담은 주전자도 같이 놓아야 한다. 연수를 다녀오기에 영국이 너무 멀다면 가까운 홍콩이라도 좀 다녀오라. 차라리 3만원으로 값을 올려 받고 차를 제대로 된 티포트에 내주면 좋겠다.
6. 직원분들은 5성 호텔답게 매우 친절하다. 권여사님이 포크를 바닥에 아이구머니 떨어뜨렸는데 멀리서도 커틀러리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는 번개같이 달려와 새 걸로 교체해 주었다.
글이 불평 일색인 것 같지만 실은 이날 즐거웠습니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설탕 아끼지 않고 단맛도 제대로 냈고, 음식 디자인도 재미있고, 만듦새도 좋고, 제과 팀 실력은 신라 호텔보다 나아 보여요. '푸짐해야 한다', '재료 겹쳐서라도 많이 차려 내야 한다'는 한국적 고질만 버리면 금세 좋은 티룸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 쉬다 왔습니다. 41층에서 바라보는 구름과 인간 세상은 특별했습니다. '나 왜 아등바등 애끓이며 살았지?' 의아해 했습니다. ☞ 구름감상협회 회원들은 여기서 차를 즐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구름이 멋진 날은 다들 이곳으로 오세요.
이런 곳이 있다는 귀한 정보를 나누어주신 보름달 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분이 세련된 분이면서 '무심한 미식가'여서 다쓰 부처가 귀국 후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보름달 님 댁 식도락 보따리 또 뒤지러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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