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토마스 탈리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Thomas Tallis 'If Ye Love Me') (1565) 본문

음악

토마스 탈리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Thomas Tallis 'If Ye Love Me') (1565)

단 단 2023. 5. 1. 09:00

 

 

아끼는 제자의 결혼식에. 2022년.

 

 

결혼식의 달 5월이 되었습니다. '가정의 달'이기도 하지요. 인구 자체도 줄고 결혼하고자 하는 이도 줄어 제자들한테 '어쩌다가' 결혼 청첩장을 받으면 반갑고 제 마음이 다 들뜹니다. 분위기에 맞춰 오늘은 영국인들이 결혼식에 많이 연주하는 성가를 올려봅니다. 

 

영국에서는 회중이 부르는 비교적 쉬운 가락의 찬송가는 '힘hymn', 훈련된 성가대원들이 부르는 보다 난이도 높은 찬송가는 '앤썸anthem'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국가國歌'나 축구 경기 응원가라고 알고 있는 그 '앤썸'과 같은 단어를 쓰죠. 종교개혁으로 신교가 갈라져 나오기 전에는 같은 형태의 음악을 '모테트motet'라고 불렀습니다. 지금도 이해를 돕기 위해 앤썸을 모테트라고 쓰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곡은 영국 음악사상 손꼽히는 대작곡가인 토마스 탈리스(Thomas Tallis, c. 1505-1585)의 앤썸으로, 엘리자베쓰 1세 때 첫 출판이 이루어졌습니다(1565). 애초 결혼식용으로 지어진 곡은 아니지만 들으면 대번 경건한 결혼식용 노래라는 느낌이 들고, 축복을 약속하는 가사도 새로 가정을 이루는 부부에게 더없이 적합합니다. 

 

 

If ye love me, keep my commandments.
And I will pray the Father,
and he shall give you another comforter,
that he may 'bide with you forever;
E'en the sp'rit of truth.

— John 14:15–17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신자를 보호하여 돕는다는 뜻으로, 성령(성신)을 일컫는 말]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  요한복음 14장 15-17절

 

 

토마스 탈리스의 곡은 제가 오래 전에도 한 번 소개해드린 적이 있지요.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 레이프 본 윌리엄스의 '탈리스 환상곡'

 

탈리스가 활동하던 시기는 잉글랜드의 종교 대변혁기로

 

(1) 헨리 8세 (1509-47 재위. 영국 성공회의 시작.)

 

(2) 그의 아들 에드워드 6세 (세 번째 부인 제인 시모어와의 사이에서 낳음. 1547–53년 재위. 강경 성공회교도.) 

 

(3) 에드워드 6세의 배 다른 큰누나 메리 1세 (일명 'bloody Mary'. 첫 번째 부인 캐써린 오브 아라곤과의 사이에서 낳음. 1553-58년 재위. 강경 가톨릭교도.)

 

(4) 배 또 다른 작은누나 엘리자베쓰 1세 (두 번째 부인 '천일의 앤' 앤 불린과의 사이에서 낳음. 1558-1603년 재위. 온건 성공회교도.)

 

군주를 넷이나 섬기게 돼 교회음악도 군주의 신앙에 맞춰 바꾸어 가며 써야 했습니다. 그 옛날에 80세를 살다 갔으니 당시로선 장수에 따른 부작용(?)이기도 한데, 토마스 탈리스의 작품 목록을 보면 그가 얼마나 부침이 많은 시대를 살았는지 대번 알 수 있습니다. 성공회에서 쓰는 음악 용어가 따로 있고 가톨릭에서 쓰는 용어가 따로 있거든요. 실력이 출중하니 어떤 종파의 음악을 쓰든 훌륭했지만요. 

 




 

 

 

 

영국 우표. 튜더 왕조의 군주들.

(클릭하면 큰 사진이 뜹니다.)

 

 

 

 

 

 

 

 

 

영국 <테너브리Tenebrae> 합창단의 연주로 걸어봅니다. 확실히 남자 소프라노countertenor보다는 우리 여자들 목소리가 더 가늘고 윤기 나면서 예쁘죠. 으쓱으쓱. (자기는 여자 베이스이면서.)

 

곡이 경건하고 아정하면서도 고운 느낌이 들어 과연 결혼식에 애창될 만합니다. 연주 장소는 런던 킬번Kilburn에 있는 성공회 교회인 성 어거스틴 교회St Augustine Church입니다. 

 

 

 

 

 

 

 

[Wikipedia]

 

이렇게 생겼습니다. 근사하죠?

 

 

 

 

 

 

 

 

 

<킹스 싱어즈King's Singers>의 연주도 걸어봅니다. 캐임브리지 대학의 킹스 컬리지 채플입니다. 영국식 저 수직 고딕 양식perpendicular gothic style 교회를 제가 참 좋아합니다. 기도하는 손 모양을 닮아 마음을 더 차분하게 하고 더 정화시키는 듯합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녹음한 모양입니다. 위의 연주보다는 천천히 또박또박 불러주니 독보 가능한 분들은 따라 불러보세요. 악보상에는 네 개의 성부가 그려져 있는데 부르는 이는 여섯 명이니 어떤 성부는 두 명이 같이 부르기도 하고, 작게 불러야 할 때는 한 명이 쉬기도 합니다. 네 명이서 부를 때는 그냥 한 성부씩 맡아서 하면 됩니다. 

 

시작하는 첫 단만 네 성부가 같은 리듬으로 되어 있고, 그 다음부터는 각 성부가 독자적인 리듬을 쓰며 독립적으로 움직입니다. 토마스 탈리스가 활동하던 시기를 서양음악사에서는 '르네상스 시대'라고 부르는데, 이 시대에는 이런 얽히고설킨 성부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중창이 유행했었습니다. 독립적인 성부들로 이루어진 이 같은 짜임새texture를 '폴리포니polyphony'라 부르고, 전 성부 모두 같은 리듬으로 되어 있는 첫 단과 같은 짜임새는 '호모포니homophony'라고 부릅니다.

 

신교로 전환한 많은 유럽 국가들에서

 

(1) 찬송은, 마음에 와 닿지도 않는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로 드릴 수 있어야 한다,

 

(2) 훈련된 성가대원뿐 아니라 회중들도 찬송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3) 그러므로 회중이 따라 부를 수 있거나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회중 찬송가는 가급적 음표 하나당 음절 하나씩 배치하는 단순한 가락으로 짓는 것을 권장한다. 

 

를 찬송 규범으로 삼았었습니다. 이 곡이 영어로 되어 있다는 점, 호모포니뿐 아니라 폴리포니도 사용하고는 있지만 짜임새가 지나치게 복잡하지 않다는 점은 큰 의미를 지닙니다.

 

평신도가 자국어로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른다는 것이 오늘날에는 너무나 당연해 자각도 못할 정도이지만, 당연하지 않던 일이 당연한 일이 되기까지 투쟁하고 희생하신 신앙의 선배들을 생각하면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입니다. 가톨릭 교회가 무소불능 권세를 떨치던 시절 영국에서 라틴어 성경을 자국어인 영어로 번역했던 사람들은 붙잡혀 화형을 당했습니다.

 

 

 

 

 

 

 

 

 

해리 왕자와 매건 마클 양의 결혼식에도 연주되었고요. 

 

주변에 결혼하는 이가 있을 때 이 음악을 들려주시거나 연주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 소개해보았습니다. 악보도 첨부해봅니다. 위의 킹스 싱어즈가 사용한 악보와 내용은 같습니다. 누리터에 예쁘게 그려진 무료 악보가 없어 다쓰베이더가 새로 그렸습니다.

 

 

 

 

 

 

 

tallis_if_ye_love_me_dd.pdf
8.11MB

 

 

 

 

 

 

여어~ >_<

신의 은총이 이 어린 부부에게 함께 하기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