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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영가 '거기 너 있었는가' (Were You There) (1899) 본문

음악

흑인영가 '거기 너 있었는가' (Were You There) (1899)

단 단 2023. 4. 6. 20:00

 

 

4월 3일 월요일부터 토요일인 8일까지가 개신교에서는 올해의 고난주간입니다. 금요일인 7일이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던 '성금요일'이 되죠. 이를 기념해 이달에는 잘 알려진 흑인영가spiritual를 같이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 곡의 첫 출판은 1899년에 되었으나[W. E. Barton, Old Plantation Hymns, Boston] 남북전쟁(The Civil War, 1861-65) 이전부터 불렸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1907년의 민요집[F. J. Work, Folk Song of the American Negro]에 현재의 찬송가 형태로 수록돼 미국 테네시 주에서 오랫동안 불리다가, 1940년 미국 개신교 찬송가집에 흑인영가로는 최초로 포함되었고, 한국에서는 <새찬송가>에 처음으로 올랐습니다. 현 번역은 <개편찬송가>에서 왔습니다. 참고로, 해방 후 한국의 찬송가집은 <합동찬송가 1949>, <새찬송가 1962>, <개편찬송가 1967>, <통일찬송가 1983>, <21세기찬송가 2006>로 개편돼 내려왔습니다. 

 

현재 한국 개신교 찬송가집에는 제가 아는 한 흑인영가가 모두 네 곡 담겨 있습니다. (더 있으면 덧글로 알려주세요.)

 

 147장 '거기 너 있었는가Were You There'

 231장 ‘우리 다 같이 무릎 꿇고서Let Us Break Bread Together'

 372장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Nobody Knows the Trouble I've Seen

 463장 ‘신자 되기 원합니다Lord, I Want to Be a Christian

 

흑인영가는 대개 아래와 같은 문장들로 설명되곤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이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눈물과 탄식 없는 내세를 염원하며 불렀던 노래."

"안식과 승리를 담은 노래."

 

이 때문에 흑인영가의 가사에는 구약성경의 내용이 자주 인용되지요.

 

잘 알려진 곡으로는 위의 찬송가들 외에 'Deep River'(요단강을 뜻함), 'Battle of Jericho', 'Swing Low, Sweet Chariot', 'Go Down Moses' 등을 더 꼽을 수 있겠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장음계 바탕의 5음음계, 당김음syncopation의 사용이 자주 관찰됩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곡도 음계의 4음은 단 한 번, 7음은 전혀 쓰지 않고 있어 5음음계의 느낌이 납니다. 

마음에 드는 연주를 찾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연주는 한 번씩 다 들어본 것 같아요. 이 곡만큼은 왠지 '잘 훈련된' '엘리트 음악인'의 '때깔 좋은' 목소리로 듣고 싶지가 않고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의 소박한 목소리에 감정을 실어 부르는 연주로 듣고 싶었거든요. 이 연주를 들으면서 저는 해리 벨라폰테가 마치 당시의 흑인 노예가 되어 북받쳐 울면서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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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에서는 연주시간을 고려해 "주님 그 십자가에 달릴 때", "그 창에 옆구리 찔릴 때", "그 무덤 속에 뉘일 때"의 3개 절로 된 판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우리말 찬송가에서는 다섯 절에 걸쳐 “주님 그 십자가에 달릴 때", "그 나무tree 위에 달릴 때", "해가 그 밝은 빛을 잃을 때", "주님 그 무덤 속에 뉘일 때", "그 무덤에서 나올 때" 거기 너 있었는가를 묻고 2천 년 전 십자가 사건을 마치 직접 목격한 사람인 양 현재 시점에서 생생하게 고백합니다. 렘브란트를 포함한 여러 화가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묘사할 때 자신을 목격자 중 한 사람으로 그려 넣었던 것과 같은 의도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렘브란트, ‘십자가에 올려지는 그리스도.’ 1633년경. 독일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미술관.

 

 

 

 

 

 

 

 

작자 미상의 16세기 목판 제단화.
일꾼들의 의복이 당대의 것임에 주목.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먼 옛날의 유대인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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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가사의 원곡에서는 “거기 너 있었는가, 주님 십자가에 달릴 때Were you there, when they crucified my Lord”와 “떨려tremble”를 하필 세 번씩 반복하게 하니 묘합니다. 예수를 모른다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셨던 주님이 떠올라 찬송 부르는 이로 하여금 한층 더 떨리는 마음을 갖게 하지요. 후렴부[흑인영가의 ‘매기고 받는 형식call and response’에서 ‘받는 부분’]의 높고 긴 음 감탄사 “오Oh”와 낮은 음역대의 한숨처럼 끊기는 리듬 “떨려tremble”의 대비가 인상적입니다. 

 

저는 우리말 가사와 영어 가사의 2절에서 "나무tree"라는 단어를 발견하고는 놀랐었습니다. 우리 모두 흑인과 연관 지어 이 단어를 보면 즉시 떠올리는 ☞ 사진과 ☞ 노래가 있잖아요. “십자가에 달릴 때”(1절), “나무에 달릴 때”(2절) 대목을 부를 때면 미국의 노예 후손 흑인들은 우리가 느끼지 못 할 한 겹의 감정을 더 느낄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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