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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Wer nur den lieben Gott läßt walten) (1657) - 독일 찬송가에 만연한 '바르 형식'에 대하여 (bar form, Der Bar) 본문

음악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Wer nur den lieben Gott läßt walten) (1657) - 독일 찬송가에 만연한 '바르 형식'에 대하여 (bar form, Der Bar)

단 단 2023. 3. 3. 09:30

 

 

독일 뤼벤Lübben에 있는 파울-게르하르트 교회Paul-Gerhardt Kirche의 스테인드 글라스 창.

오늘 소개할 찬송가의 작시·작곡가인 게오르크 노이마르크Georg Neumark를 담고 있다.

 

 

오늘은 오래된 독일 찬송가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독일의 시인이자 작곡가인 게오르크 노이마르크(1621-1681)가 작시·작곡한 곡으로, 찬송가 중에서도 고전에 속해 J. S. 바흐나 멘델스존을 포함한 많은 작곡가들의 작품에 활용되었습니다.

 

개신교 찬송가집은 노이마르크의 원곡을 수록해 ‘신뢰와 확신’(통일찬송가 341장), ‘소명과 충성’(새찬송가 312장) 찬송으로 분류했으나, 한국 가톨릭 성가집은 J. S. 바흐의 편곡판을 쓰면서 제목을 ‘[127번] 십자가 바라보며’로 붙여 사순절용 찬송가로 분류했습니다. (마침 이 달에 사순절이 시작되지요.) 독일에서도, 한국에서도,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가 부르는 찬송가입니다. 찬송가집에 이런 찬송가가 꽤 많은데, 기독교 종파가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로 나뉘고, 개신교 안에서도 또 교리 차이와 성경 해석에 따라 수많은 교파가 갈라져 나온 것을 생각하면 이런 찬송가들은 저에게 경이로움을 안깁니다. 그렇죠, 좋은 음악은 누구든 향유할 수 있어야 하는 소중한 유산이지요. 나뉘고 반목하는 것들을 통합하는 음악의 힘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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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기 전에 악보를 먼저 보도록 하죠. 

(다쓰베이더가 새로 그렸습니다.)

 

세 단으로 되어 있는데, 첫째 단과 둘째 단이 같은 가락(선율)을 하고 있어 처음 듣는 누구라도 반복되는 두 번째 단은 금세 따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새로운 선율을 제시해 악곡에 신선함을 부여하고, 첫째 단의 맨끝부분을 다시 갖다 붙여 마무리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느낌, 안정감을 주면서 곡을 마치는 거지요. 시에서 흔히 보는 각운(脚韻, 꼬리운, rhyme)으로 생각하면 되는데, 부르는 이를 배려한, 참으로 고마운 구조입니다. 

 

독일 찬송가에 만연한 이런 aab 구조를 ‘바르 형식bar form, der Bar'이라고 부릅니다. 독일의 옛 음유시인(시인작곡가)들인 민네징거Minnesinger와 마이스터징거Meistersinger들의 유행가에서 가져온 익숙한 형식이라서 종교 개혁기에 회중 찬송이 처음 도입될 때 악보를 읽을 줄 모르는 신자 누구라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어 적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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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가 작시·작곡한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1529년)도 같은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a에 비해 b가 많이 길기는 하지만 악곡 끝에는 어쨌든 a의 끝부분을 다시 갖다 붙여 동물의 귀소 본능을 충족시킵니다. 이 찬송가는 제가 독일 찬송가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니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채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 대자보를 붙였던 날인 10월 31일에 따로 소개하겠습니다. 선율·가사 다 좋고, 종교개혁 당시의 상황과 다혈질이었던 루터의 기개가 생생히 느껴져 부를 때마다 가슴이 벅찹니다. 

 

 

 

 

 

 

 

 

 

다시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로 돌아와서, 노이마르크의 독일어 가사 원문과 영어 번역입니다. 우리말 찬송가는 총 일곱 개의 절 중 1, 3, 7절만 채택해 쓰고 있는데, 한 음에 한 음절만 붙이게 돼 있어 영어나 원어 가사의 뜻을 충분히 살리지 못 하는 한글 노랫말 번역의 한계를 생각하면 이 찬송가의 번역은 매우 훌륭합니다. 원문의 뜻이 거의 다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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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 바흐가 자기 칸타타 작품에 넣기 위해 편곡한 것도 참고하시라고 올려 봅니다. 가톨릭에서 부르는 게 이 바흐의 편곡판입니다. 바흐 작품에는 남의 선율이 수두룩 들어가 있는데, 당대 누구나 알던 선율이어서 바흐가 지은 게 아니라는 것을 다들 알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선율을 넣어 창작하는 것은 '인용'이라고 하지 '표절'이라고 하지 않지요.   

 

 

 

 

 

 

 

 

 

이 찬송가는 독일의 코미디 영화 《신과 함께 가라Vaya con Dios》(2002)를 통해 영화음악으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위 영상은 영화의 클라이막스이자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입니다. 코미디 영화라서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곳곳에 있으면서도 감동과 아름다운 음악을 동시에 선사해 여러분께도 관람을 추천 드리고 싶어요.

 

세 남성 수사들의 임무를 완수시키기 위해 기자가 미인계를 써서 오르가니스트로 하여금 찬송가를 바꿔 연주해 줄 것을 간청하는 대목입니다. "당신의 오르간 연주를 좋아하는 팬인데, 이따 부를 회중 찬송가를 혹시 제가 좋아하는 곡으로 바꿔서 연주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제발요."

 

그 뒤 세 주인공이 내는 천상의 하모니가 교회 안에 울려 퍼지게 되고, 베이스 성부를 맡아 불렀던 수사가 본분을 깨달아 다시금 길을 떠나게 되지요. 다시 한 번, 음악의 힘이란. 

 

 

 

 

 

 

 

 

 

오르간 간주interlude가 잘리지 않고 끝까지 다 담긴 OST 음원으로 다시 걸어 봅니다. 매주 고만고만한 소리를 내는 회중 찬송을 반주하던 오르가니스트가 '프로페셔날' 방문자들이 내는 환상적인 소리에 흥분해 악기의 음색 조절 막대stop knob들을 뽑아 당겨 큰 소리 나는 음색으로 바꾸고는 잠자고 있던 자신의 기량을 한껏 발휘합니다. 이 장면 보면서 저도 어찌나 흥분되고 흐뭇하던지요. 영화에 쓰인 찬송가와 오르간 간주의 편곡을 모두 영화 속에서 오르가니스트 역을 맡았던 진짜 오르가니스트가 했다고 하지요. 

 

영국에서는 '어떤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다'를 '(음색 조절 막대인) 오르간 스톱을 모두 당겨 내어 ~하다pull out all the stops to'라는 숙어를 써서 표현합니다. [예문: The hospital staff pulled out all the stops to make sure the children had a wonderful day.] 앞으로 뽑아 낸 스톱 수가 많을수록 크고 웅장한 소리가 나게 됩니다. 파이프 오르간이 흔한 나라라서 들으면 누구나 대번 아는 표현입니다.  

 

이 오래된 독일 찬송가는 선율에 결의와 비장미가 느껴지면서 화음이 자주 바뀌어(기타 반주에 비유하자면, 코드를 자주 바꿔 짚어야 해서) 길이는 짧지만 밀도가 높고 음악적으로 아주 근사합니다. 앞으로 독일 찬송가를 부르게 될 때는 구조를 한번 유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독일 찬송가의 영향을 받아 독일 밖의 후대 찬송가들에도 바르 형식을 한 곡들이 제법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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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squin des Prez (c.1450-1521) - Motet: Tu solus qui facis mirabilia (1503)

조스캥 데 프레의 모테트 '주님만이 홀로 기적을 행하시며'

 

기찻길 

Igor Stravinsky (1882-1971) - Pater noster (Our Father) (1926)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주기도'

 

채석장

☞ Gregorian Chant (중세) - Genealogia Chri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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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서유럽 기독교의 성가들을 집대성한 〈그레고리오 성가〉 중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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