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온 천하 만물 우러러 All Creatures of Our God and King 본문
새해를 맞아 "금빛 나는" 가사와 곡조의 찬송가를 걸어봅니다. 개신교 찬송가 69장입니다.
가사는 미 서부 '샌 프란시스코' 지명의 유래가 되는 가톨릭교 성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영]Francis of Assisi, [이]Francesco d'Assisi, 1181–1226)가 죽기 1년 전에 썼습니다. 가톨릭 쪽에 같은 이름의 성인이 여럿 있어서 꼭 '아시시'라는 지명을 붙여 구분하는 것 같습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창시자이자, 자연을 예찬하며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았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지요.
허리띠로 착용한 밧줄의 세 매듭은 프란치스코회의 세 가지 서약인 '청빈poverty', '정결chastity', '순명obedience'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양 손바닥과 발등에 못 자국이 있고 옆구리에 창 자국이 있는데, 저는 이게 '예수의 삶을 따르겠다'는 의지의 회화적 상상인 줄 알고 있었다가 가톨릭 쪽에서는 이 '성흔'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이 글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거 갖다 붙이지 않아도 훌륭한 분인걸요.
☞ [기사] 현대 가톨릭에서 인정하는 '성인'(聖人)의 기준은
[Wikimedia Commons ☞ Mike Peel]
상파울로 동물원에 있는 프란치스코 상입니다. 동물을 사랑해 동물들 앞에서 설교까지 다 했다고 전해져 동물과 자연의 수호성인이 되었고 현재 많은 동물원에 기념상이 세워졌습니다.
클래식한 편곡의 연주부터 걸어봅니다. 음반 <O Praise the Lord of Heaven>(2013) 수록곡으로, 영국의 성가 전문 작곡가 존 러터John Rutter가 편곡했습니다. 캐임브리지 싱어즈The Cambridge Singers와 런던시 신포니아City of London Sinfonia 오케스트라가 연주합니다.
프란치스코가 1225년에 시편 148편을 바탕으로 쓴 이태리어 가사를 1919년에 영국인W. H. Draper, 1855–1933이 가져다가 운율을 다듬고 각운rhyme을 붙여 영어로 번역한 것이 지금까지 쓰입니다. 위 연주에서는 연주 시간상 5개 절로 추려서 부르는데, 영국 성공회 찬송가집에는 7개 절을, 한국 개신교 찬송가집은 6개 절을 담고 있습니다.
All creatures of our God and King,
Lift up your voice and with us sing,
Alleluia, alleluia!
Thou burning sun with golden beam,
Thou silver moon with softer gleam:
O praise him, O praise him,
Alleluia, alleluia, alleluia!
Thou rushing wind that art so strong,
Ye clouds that sail in heaven along,
O praise him, alleluia!
Thou rising morn, in praise rejoice;
Ye lights of evening, find a voice:
O praise him, O praise him,
Alleluia, alleluia, alleluia!
Thou flowing water, pure and clear,
Make music for thy Lord to hear,
Alleluia, alleluia!
Thou fire, so masterful and bright,
That givest man both warmth and light:
O praise him, O praise him,
Alleluia, alleluia, alleluia!
Dear mother earth, who day by day
Unfoldest blessings on our way,
O praise him, alleluia!
The flowers and fruits that in thee grow,
Let them his glory also show:
O praise him, O praise him,
Alleluia, alleluia, alleluia!
Let all things their Creator bless,
And worship him in humbleness;
O praise him, alleluia!
Praise, praise the Father, praise the Son,
And praise the Spirit, Three in One:
O praise him, O praise him.
Alleluia, alleluia, alleluia!
프란치스코는 죽기 전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건강이 많이 악화된 상태에서 어떻게 이런 아름답고 희망찬 가사를 쓸 수 있었을까요.
한편, 음악은 프란치스코의 가사와는 상관없이 독일 가톨릭교에서 부활절 찬송가로 쓰고 있던 작자 미상의 것'Geistliche Kirchengesang'(1623/25)을 영국 성공회 쪽에서 가져다가 레이프 본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 1872-1958가 지금 우리가 아는 것과 같은 3박자로 바꾸고, 마지막 알렐루야를 길게 늘린 뒤, 근사하게 4성부로 화음을 입혔습니다(1906).
이렇게 가사와 곡조가 따로 전승되다가 1919년에 영국에서 합쳐진 것이지요. 복잡하지요? 영국 찬송가집에 1919년에 수록된 것이 지금까지 통용되고 한국 개신교에서도 이를 채택해 쓰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E♭장조로 부르고 한국 교회에서는 반음 낮춰 D장조로 부릅니다. 기타로 코드 짚기에는 D장조가 수월합니다. 이번에는 제가 기타 코드도 넣어보았습니다.
이 찬송가는 음악적으로 특이하고 흥미로운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알렐루야’ 후렴구(R, r)와 그 외의 부분들(V, v)을 두 번씩 반복해 부르는데, 개신교 쪽에서는 ‘vRvR VrVr RRr’(1623)과 ‘vvRR VVrr RRr’(1625)의 두 가지 판 중 영국이 채택한 후자를 주로 씁니다. 지금도 레고 블록 조립하듯 구성을 자유롭게 바꿔서 부르는 찬양팀들이 있습니다.
영국인들은 이 찬송가를 부를 때면 《미스터 빈Mr Bean》 '예배 시간에 사탕 몰래 먹기Sneaking Sweets in Church' [3분 30초 소요]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빙그레 웃기도 합니다. 로완 앳킨슨이 옥스포드 대학 석사 과정 학생일 때 떠올려 발전시킨 캐릭터라고 하죠. ㅋ 예배 시간에 사탕 빠는 게 왜 안 돼요, 얼마든지 되지요. 우리 권여사님은 목 아픈 사람들과 기침하는 노인들을 위해 가방에 사탕을 늘 한 움큼 갖고 다니시다가 예배 시간이든 음악회든 기침하는 분들을 보면 조용히 건네십니다. 여러분도 강의 들으러 갈 때나 음악회 갈 때 사탕 챙겨 가세요. 껍질 깔 때 바스락 소리 적게 나는 것으로요. 센스 있는 사탕 회사들은 소리 안(덜) 나는 재질로 사탕을 감쌉니다.
클래식한 편곡뿐 아니라 묵직한 사운드의 찬양집회 연주도 같이 소개해봅니다.
워십 밴드 <섀인 앤드 섀인>의 집회 실황입니다.
고전 찬송가의 편곡이라서 그런지 힘이 느껴집니다. 오래도록 사랑받아 살아남은 찬송가의 저력이지요.
제가 찬양집회에 가서도 여간해서는 감동하지 않는 까칠한 신자인데, 웬일인지 이 찬양을 듣고는 마음에 감동이 일어 악보를 그려드리고 싶어졌습니다. 전반부만 제가 땄고 바빠서 후반부는 영감한테 넘겼습니다. (→ 일 벌리기 선수 단단 수습 전문) 교회 찬양 시간에 쓰실 분들은 후반부가 굉장히 높이 올라가니 옥타브 아래로 부르거나, 주선율은 여성들에게 넘기고 주선율 아래 쪽으로 화음을 붙여 부르시면 됩니다. 밝은 느낌의 장3화음major chord이 어두운 느낌의 단3화음minor chord으로 대체된 부분이 많아 반짝이는 선율에 비장미와 숭고함이 더해졌고, 1전위 화음들D/F#, G/B을 적절히 써서 음악에 감칠맛이 돌게 되었습니다. 4박자로 변환돼 씩씩해진 곡의 마지막에서는 셋잇단음표로 박을 분할하고 무게감 있는 악기 사운드까지 더해 힘을 더욱 보강했습니다.
정리해봅니다.
1225년에 이태리 사람이 쓴 찬송시를 1919년에 영국인이 가져다가 영어로 옮겨 지금과 같은 가사로 다듬고, 1623/25년에 독일에서 위 가사와는 상관없이 불리던 부활절 찬송가 선율을 1905년에 또 다른 영국인이 가져다가 3박자로 바꾸고 마지막 '알렐루야' 부분을 길게 늘린 뒤 4성부 화음을 붙여 편곡.
1919년에 드디어 가사와 음악을 합쳐 영국 찬송가집에 수록한 것을 미국이 가져다가 미국 찬송가집에 싣고, 21세기의 미국 청년들이 이를 가져다 찬양집회용으로 한 번 더 매만져 음미하고 있는 겁니다. 그걸 지금 한국인이 음악 듣고 악보 따서 소개하는 중이고요. (블친 더가까이 님께서 우리말 가사 없이 영어 가사만 적혀 있는 악보를 보고는 안타까워하시며 악보에 우리말 가사를 적어 보내주셨습니다. 한글 가사가 추가된 새 악보로 다시 걸었습니다.)
시공을 초월해 인류를 엮는 노랫말과 음악의 힘이란 실로 놀랍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