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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성가] 부활의 희생 제물을 찬양하라 (Victimae paschali laudes 빅티메 파스칼리 라우데스) (11세기) 그레고리오 성가 (Gregorian Chant) 부속가 (Sequentia) 본문

음악

[부활절 성가] 부활의 희생 제물을 찬양하라 (Victimae paschali laudes 빅티메 파스칼리 라우데스) (11세기) 그레고리오 성가 (Gregorian Chant) 부속가 (Sequentia)

단 단 2024. 3. 30. 01:00

 

 

 

 

부활절 당일에는 바쁠 것 같으니 하루 전인 오늘 제가 좋아하는 부활절 성가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무려 천년 전에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요즘은 부활절에 교회 성가대들이 '승리', '환희'를 한껏 표현한 복잡하고 화려한 다성부 성가들을 선보이지만, 오늘 소개해드릴 부활절 성가는 특별한 리듬도, 화음도, 악기 반주도, 강약도 없이 제창unison으로 무심하게 부르니 소박하기 이를 데 없어 오히려 참신합니다. 번잡하고 시끄러웠던 속이 차분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류의 음악을 '단성성가monodic chant', '평성가plainchant'라고 합니다.

 

가장 큰 줄기의 평성가 콜렉션은 8세기 후반 프랑크 왕국 카롤링거 왕조 때 집대성된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로, 유럽 여러 지역에서 불리던 것들이 동화, 흡수되어 형성되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의 뿌리와 같은 음악이라서 서양음악 전공자들은 음악사 수업 시간에 필수로 공부하게 되어 있고, 독특한 매력이 있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일부러 찾아 듣는 음악 애호가들도 있습니다. 저도 일부러 찾아 듣는 애호가 중 한 명입니다.

 

이 그레고리오 성가들은 조성tonality, key이 아직 확립되지 않은 시절에 만들어져 '화음' 개념이 없고, 지금과 같은 정교한 기보법이 있지 않았던 때라서 현재로선 정확한 리듬도 알 수 없습니다. 얼핏 원시적으로 들리지만 천년을 살아남아 지금까지 불리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선율이어서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레고리오 성가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레고리오 성가가 아니라 그레고리오 성가 파생곡이지만 편의상 그레고리오 성가로 편입시켜 설명하는 관행이 있으니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부활절 성가는 개신교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들어본 성가 중 가장 오래된 것에 속할 것 같습니다. 11세기경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며, 가톨릭교 전례典禮 시 ‘알렐루야’ 성가 다음에 부속附屬돼 따라나오는 노래라고 해서 ‘부속가(sequence, 라틴어로는 sequentia)’로 분류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 이후 지침이 바뀌어 지금은 알렐루야 성가 전에 부른다고 하네요.)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을 제외하고는 같은 선율이 두 번씩 반복되는 특이한 구조에(abbccd), 선율 끝부분이 동일한 음악적 각운rhyme도 보입니다.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곡이어서 교과서에도 거의 예외 없이 다루곤 합니다. 가톨릭교에서는 지금도 부활절 전례 시 반드시 부르거나 낭송하게 돼 있다고 하지요. 잔잔한 음악 같지만 평성가치고는 대화체를 삽입한 나름 드라마틱한 구성에 선율의 음역 폭도 제법 넓고 군데군데 격앙된 느낌도 듭니다.  

 

 

 

 

 

 

 

 

 

오선이 아니라 사선 악보인 것을 눈여겨보십시오. 평성가들은 대체로 음역이 좁아 오선까지 쓸 필요가 없어서 이렇게 하는데, 이 곡은 음역이 넓어 오선을 써도 되겠습니다. 줄이 모자라 아래쪽에 덧줄leger line을 쓴 곳이 보이죠. 보표 앞머리에 있는 "C"자처럼 생긴 기호가 음자리표clef입니다. 가운데 쏙 들어간 부분을 '가온 다middle C, 261.625565Hz, C4'로 여기고 악보를 읽으면 됩니다. 그러니까, 이 곡은 남성용 악보인 거지요. 아래에 요즘 쓰는 악보 형태로 다시 그려 붙여봅니다. 다쓰베이더가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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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는 성경 속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여인들의 증언을 바탕 삼아 라틴어로 쓰였습니다. 언제 읽어도 가슴 벅찬 대목입니다. 각 구절 앞에 알파벳을 붙여보았는데, 같은 알파벳을 가지면 선율이 같다는 뜻입니다. 'abbccd', 위 악보에서는 로마숫자인 'I-II-II-III-III-IV'로 표기했습니다.

 

 

부활의 희생 제물을 찬양하라

Victimae paschali laudes (빅티메 파스칼리 라우데스)

 

Wipo of Burgundy (부르고뉴의 위포) (11세기)

 


    오리지날 라틴어 가사


    Victimae paschali laudes
    immolent Christiani.

    Agnus redemit oves:
    Christus innocens Patri
    reconciliavit peccatores.

    Mors et vita duello
    conflixere mirando:
    dux vitae mortuus,
    regnat vivus.

    Dic nobis Maria,
    quid vidisti in via?

    Sepulcrum Christi viventis,
    et gloriam vidi resurgentis

    Angelicos testes,
    sudarium, et vestes.

    Surrexit Christus spes mea:
    praecedet suos [vos] in Galilaeam.

    [Credendum est magis soli
    Mariae veraci
    Quam Judaeorum Turbae fallaci.]

    Scimus Christum surrexisse a mortuis vere:
    tu nobis, victor Rex, miserere.
    [Amen.] [Alleluia.]

   영어 번역

   Let Christians offer sacrificial
   praises to the passover victim.

   The lamb has redeemed the sheep:
   The Innocent Christ has reconciled
   the sinners to the Father.

   Death and life contended
   in a spectacular battle:
   the dead leader of life
   reigns alive.

   Tell us, Mary, what did
   you see on the way?

   "I saw the tomb of the living Christ
   and the glory of his rising,

   The angelic witnesses, the
   shroud, and the clothes."

   "Christ my hope is arisen;
   he will go before his own [you] into Galilee."

   [More to be believed is
   truthful Mary by herself
   than the deceitful crowd of the Jews.]

   We know Christ is truly risen from the dead!
   On us, you conqueror, King, have mercy!
   Amen. [Alleluia.]

 

 

 

단단의 우리말 (발)번역

 

a 유월逾越의 희생 제물 되신 분께 성도여 감사 찬송 드릴지어다

b 어린 양은 양떼를 구속救贖하시고 죄 없는 그리스도는 죄인을 성부와 화목케 하셨네

b 죽음과 삶의 접전 후 생명의 주는 죽음에서 살아나 통치하시네

c 막달라 마리아여 그대 길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우리에게 말하여라 “나는 그가 나간 무덤의 입구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노라

c 그 증거로서 천사들과 수의와 옷을 보았노라” “나의 소망이신 그리스도는 부활하사 그대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셨도다”

d 우리는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음을 승리의 왕이시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 알렐루야

 

 

 

 

 

 

 

 

 

수도사들이 이번에는 옛 시절과 유사한 환경에서 부릅니다. 《스타워즈》의 제다이 기사들 복장이 여기서 온 거였어요. 이 연주는 가사의 운율에 맞춰 좀 더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대개 남성 수도사들의 연주로 듣는 경우가 많죠. 이번에는 미국 플로리다 주에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 수녀원>의 연주로 들어봅니다. 여성 목소리로 들으니 색다르고 또 다른 감동이 있습니다. 목소리도, 복장도, 교회도, 아름답습니다.

 

 

 

 

 

 

 

 

 

루터가 신교 예배를 위해 개작한 선율을 토대로 동료 요한 발터가 편·작곡한 다성부 합창(1524년) 연주로도 들어봅니다. 시작 부분에 원곡의 선율이 잠깐 들립니다. 이 곡도 잘 지은 곡임에는 틀림없으나, 복잡한 음악이 단순한 음악에 비해 반드시 더 나은 음악, 더 훌륭한 음악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 오늘 들려드리는 음악들의 예에서도 드러납니다.

 

독자 여러분,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어쨌거나 복된 부활절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누군가 나를 살리기 위해 대신 죽은 뒤 부활했다니, 뭔가 SF적이면서 기운 나지 않습니까? (→ Sci-fi film 애호가) (단단이 지금까지 본 SF 영화들) 기념으로 이날 맛있는 것 챙겨 드십시오.

 

 

 

 

 

 

 

 

"승리의 왕이시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 알렐루야Tu nobis, victor Rex, miserere. Amen. Allelu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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