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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12음 회중 찬송가 '십자가의 길' (Du som gick före oss 뒤 솜 긱 퍼레 오스) (스웨덴 찬송가집 74장) (Psalm 74) 본문
스웨덴의 12음 회중 찬송가 '십자가의 길' (Du som gick före oss 뒤 솜 긱 퍼레 오스) (스웨덴 찬송가집 74장) (Psalm 74)
단 단 2024. 2. 27. 15:44
사순절*이 시작되었으므로 이달에는 '십자가의 길', '제자도'의 내용을 담은 독특한 선율의 스웨덴 찬송가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사순절Lent: 부활주일 전 40일 동안 금식하며 속죄하는 기간. 예수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고 시험받은 일을 기리기 위해 금식하며 속죄한다.]
작곡(1959): 스벤-에릭 백 (Sven-Erik Bäck, 1919–1994)
작시(1968): 올로프 하트만 (Olov Hartman, 1906-1982)
20세기 후반에 지어진 이 현대적인 선율이 놀랍게도 스웨덴 찬송가집에 다 실렸습니다. 가사 첫 줄이자 곡 제목인 “십자가의 길(을 먼저 걸으신 주님)”은 예수께서 붙잡히기 직전 베드로와 나누셨던 대화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는 요한복음 13장 36-38절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어 가사
Du som gick före oss
längst in i ångesten,
hjälp oss att finna dig,
Herre, i mörkret.
Du som bar all vår skuld
in i förlåtelsen,
du är vårt hjärtas fred,
Jesus, för evigt.
Du som med livets bröd
går genom tid och rum,
giv oss för varje dag,
Kristus, det brödet.
Du som går före oss
ut i en trasig värld,
sänd oss med fred och bröd,
Herre, i världen.
영어 번역
You who went before us
deep in anxiety,
help us find you,
Lord, in the dark.
You who bore all our guilt
into forgiveness,
you are the peace of our hearts,
Jesus, forever.
You as with the bread of life
goes through time and space,
give us for every day,
Christ, that bread.
You who go before us
out into a broken world,
send us with peace and bread,
Lord, in the world.
단단의 한국어 발번역
1
불안과 고뇌 속 깊이
우리보다 먼저 가신 주님
어둠 속에서도 당신을 찾게 하소서
2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로 짊어지신 주님
당신은 영원토록 우리 마음의 평화이시니
3
생명의 빵이 되어
시공간을 초월하신 주님
날마다 우리에게 그 빵을 주옵소서
4
깨어진 이 세상을 향해
우리보다 앞서 가신 주님
평화와 빵을 들고 우리를 세상 가운데로 보내소서
시의 구조를 분석해보니
1절에서 전체 틀structure을 제공하고 주제를 제시,
2절과 3절에서 부연,
4절에서 종합,
이렇게 보입니다.
독실한 믿음과 의지가 담긴 가사이지만 선율은 아마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접한 회중 찬송가 중 따라 부르기 가장 힘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쓰베이더가 새로 그린 혼성 4부 합창 악보입니다. 난해하면 짧기라도 해야 하는데 다행히 그런 미덕은 갖췄어요. ㅋ
1920년대 서양의 예술음악계에서는 3백년 넘게 지속되었던 ‘조성tonality, key'이라는 거대한 틀이 깨지고 각 음들 사이에 존재했던 위계位階와 인력引力관계가 무너졌던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 twelve-tone technique) 이 찬송가도 그 영향을 받아 조성 없이 한 옥타브 안에 있는 열두 개의 반음을 모두 사용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악보에 조표가 없습니다. 다장조C-major나 가단조a-minor라서 없는 게 아니라요. 악보에서 최상성부soprano 선율 안에 열두 개의 반음이 모두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음은 저 음보다 중요하다'는 위계와 '이 음 다음에는 저 음이 와야 한다'는 인력이 사라졌으므로 어떤 음이든 자유롭게 뒤따를 수 있으나, 더 나은 선율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전히 작곡가의 감각이 필요합니다. 3-4, 5-6마디를 1-2마디와 유사한 디자인으로 반복시킨 뒤 3/4 지점에서 정점climax을 이루게 한 것, 홀수와 짝수 마디마다 같은 리듬을 배치해 악곡에 통일성을 준 것, 순차진행과 도약진행을 적절히 안배하고 알맞은 때에 선율의 방향을 바꾼 것 등 좋은 선율을 만들기 위해 애쓴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선율의 음소재만 새로울 뿐 리듬과 구조는 매우 고전적이고 교과서적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를 외치는 급진적인radical 작곡가들은 고작 음소재만 현대적으로 바꾼 것을 못마땅해할지 모릅니다.
듣고 단번에 따라 부르기는 쉽지 않지만 다행히 리듬과 화음은 단순해 심지어 기타로 코드 반주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선율은 무조성atonal으로 지어 놓고 화음은 조성tonal음악에서 쓰이는 것들로 갖다붙였으니 모순되지만, 작곡가가 이거라도 양보하지 않았다면 회중 찬송으로는 너무 생소해 채택되지 않았을 겁니다.
영국 <보체스에이트Voces8>의 벨벳처럼 부드럽고 깊은 무반주 중창으로도 들어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반복해 자꾸 들으니 따라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지요? 음악에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요?
7화음 하나 없이 인과 관계 없는 3화음만 연속 사용해 고딕 판타지 영화의 신비로운 장면 음악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번에는 음반 <Sånger & Psalmer>(2009)에 수록된 것으로 들어봅니다. 오르간 주자가 12음으로 된 선율에 걸맞게 12음으로 된 대선율counter-melody을 지어 연주합니다.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 스웨덴 재즈 트리오의 연주로도 소개해봅니다. 찬송가를 재해석한 음반인 <Anders Widmark Trio: Psalmer>(1997) 수록곡입니다. 반복할 때마다 박beat이 분할되고 리듬이 복잡해져 마치 음형 변주곡을 듣는 듯합니다. 짧은 선율이 변화를 수반해 여러 차례 반복되니 미니멀리즘 음악 같기도 하고요. 또, 3박자의 8마디 짧은 베이스 대선율을 솔로로 먼저 제시한 뒤 합주로 된 변주를 펼치므로 파싸칼리아passacaglia로 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치열하지 않은 느슨한 연주 덕에 북유럽의 '쿨'함이 한층 더 쿨하게 느껴집니다.
“새 노래로” 찬양하라는 시편(96)의 명령을 스웨덴 교계가 열린 마음으로 따른 것에 찬사를 보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