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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분식) 만찬 본문
도예가의 딸이라서 그런지 제가 〈코렐Corelle〉 사 그릇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여러 장점이 있기는 한데 형태와 재질이 제 취향에는 맞지 않더라고요. 나이 팔십이 넘어 팔에 힘이 없어지면 그때는 그릇을 '경박한' 코렐로 전부 바꾸게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아직 기운이 있을 때는 무겁더라도 멋스러운 도자기 그릇을 쓰고 싶어요.
그런데 〈코렐〉 그릇 중 이 그릇만은 제가 아낍니다. 딱 한 장 가지고 있는 〈코렐〉 그릇인데, 보기만 해도 행복해요. (실제로 감상용으로만 쓰고 있습니다.) 그릇 칸 나눠 놓은 게 마치 창틀 같아서 더 재미있어요. 눈 오는 순간을 만끽하며 감상에 젖은 비글이라니요. >_< 마침 어제 서울에 눈이 저렇게 예쁘게 내렸더랬죠.
새 마음, 신선한 음식으로 새해를 맞고 싶어 제가 12월 한달 동안 부지런히 냉장고와 판트리pantry에 있는 묵은 식재료들을 소진하는 중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어제도 통조림과 병조림을 따서 데워 먹었어요. (흑흑) 아무리 전쟁 안 끝난 휴전국에 살고 있다지만 미련하게 뭘 그리 많이 쟁였을까요.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골백번 다짐했습니다. 글쎄, 그 저장 기간 긴 깡통 식품들 중에도 상미기한 지난 것들이 다 있는 겁니다. 먹는데 깡통향이 풀풀.
오늘은 그래도 크리스마스라고 영감이 추위를 뚫고 밖에 나가 먹을 것을 구해 왔습니다.
뭔고 하니,
김말이튀김. ㅋㅋㅋㅋㅋㅋ
누가 김말이튀김 따위를 이렇게 팬시한 그릇에 담아 먹느냐,
제가 영감을 마구 비웃었더니
집에 후진(?) 그릇이 없어 보여서 하는 수 없이 이렇게 담았다고 항변합니다. (꽈당)
잘 보면 바닥에 떡볶이 소스도 깔았어요.
제가 김말이튀김을 꼭 떡볶이 소스에 찍어 먹거든요. 기특합니다.
미어캣meerkat들처럼 보이게 꼿꼿이 세우느라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김말이튀김을 곰곰 따져보면 파인 다이닝으로 승화시킬 만한 요소가 충만하단 말이죠.
얇게 가공한 김을 서양인들은 'fine'하다고 여깁니다.
(잘 튀긴) 튀김은 원래 파인 다이닝 필수 요소이고,
'glass noodle'도 매끄럽고 쫄깃한 질감과 투명하고 영롱한 성상을 'fine'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미슐랑 스타 레스토랑에서 김말이튀김을 보게 될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 믿습니다.
메인으로는 떡볶이.
어, 새하얀 그릇에 빠알간 떡볶이가 이토록 'festive'해 보일 줄은 몰랐네요.
떡볶이, 이거 크리스마스 음식이었구나.
☞ 여인과 떡볶이
후식(?) 혹은 입가심으로는 동네 마트에서 집어온 어묵탕 밀 키트.
봉지 뜯어 액상 수프 물에 풀고 어묵 쏟아부어 한 번 끓여주기만 하면 됩니다.
e편한 세상.
가만, 이거 코스요?
응.
양이 많아 다 먹지도 못했습니다.;;
저녁 늦게 코스트코에서 한참 전에 사다 놓은 파네토네 먹고 하루를 마치려고요.
중년분들,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내고 계세요?
솔로, 딩크뿐 아니라 애들 다 키우고 부부만 남은 집들도 저처럼 평범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는 거죠?
그렇다고 해주세요.
설마 이 성수기에 가족 전부 데리고 유럽 여행을 떠난 능력자 부모가 있을까요?
배 아파라, 눈 펑펑 쏟아져 발 묶이기를.
다들
Happ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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