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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볶음 ② 데리야키(照り焼き) 소스의 일식풍 본문

한식과 세계 음식

멸치볶음 ② 데리야키(照り焼き) 소스의 일식풍

단 단 2023. 12. 11. 23:00

 

 

 

 

하................................

(땅이 꺼져라 한숨)

 

일년 중 하필 제일 바쁠 때에 멸치 선물이 들어오다니요.

(선물 주신 분께는 감사합니다. 좋아하는 식재료예요. 오해 없으시기를.)

 

귀국해서는 제가 영국에서 하던 것처럼 자주 장봐 신선한 재료로 요리하겠다며 냉장고를 양문형 대형이 아닌 단문형 452리터짜리로 들였습니다. 바보 아닙니까? 장마철과 고온다습한 여름이라는 무시무시한 시공간이 있는 한국에서, 남들은 양문형 냉장고 외에 김치냉장고와 냉동고도 따로 두는 마당에 전업 주부도 아닌 사람이 작은 냉장고를 들이다니요. 냉장고가 작아 인생이 얼마나 피곤한지 모르겠습니다. 

 

냉장고가 작으니 딸린 냉동고도 작아 건어물이 생기면 바로 손질해서 반찬을 해야 합니다. 잠잘 시간도 모자란데 무려 세 시간을 앉아서 멸치를 다듬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게 다가 아녜요.

 

기웃이: 멸치를 왜 다듬어요? 그냥 볶으면 안 됩니까?

 

그냥 볶아도 돼요. 성격 좋은 분들은 다듬지 않고 그냥 볶아서들 드시죠. 제가 멸치 대가리와 내장 먹는 걸 꺼려하는 '까타리나'라서 그럽니다. 밖에 나가서는 그래서 멸치 반찬을 먹지 않아요. 내 손으로 깔끔하게 다듬어 볶은 것만 먹죠. (떼어낸 내장은 버리고, 대가리로는 향미유를 만듭니다. 떡볶이나 국수, 국 등에 뿌리면 맛있습니다. 별도의 글에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2년 전에 저희 집 멸치볶음 네 가지 방식 중 한국식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멸치볶음 ① 마늘과 꽈리고추 듬뿍 넣은 한국식

 

오늘은 데리야키 소스를 입힌 일식풍으로 소개하겠습니다. '마성의 단짠 소스'라는 데리야키의 그 기똥찬 맛은 다들 잘 아실 겁니다. 중멸치를 내장 떼어 구운 뒤 데리야키 소스를 입히면 우아하게 바삭거리면서 쥐포맛이 납니다. 얼마나 맛있는데요.

[일본측 설명] 데리야키 소스의 비밀과 초간단 레시피! 간장과 설탕으로 만드는 마성의 단짠 소스!

 

한국에서 쓰는 것 같은 소금물에 삶아 말린 멸치를 일본에서는 '이리코'(いりこ, 오사카쪽에서 쓰는 명칭), 혹은, '니보시'(煮干し, 같은 멸치를 도쿄쪽에서 일컫는 말. '삶아 말린 것'이라는 뜻. 라멘집에서 많이 들어봤습니다.)라고 부르고, 새해 음식인 오세치료리(おせち料理)에 쓰는 생멸치 말린 것은 '다즈쿠리'(田作り)라고 부릅니다. 색이 좀 더 노랗고 몸체가 곧게 뻗었으며 간기가 없죠. '밭(田)' 자가 들어가는 이유는, 일본에서는 옛시절에 멸치를 잡아 농사 짓는 데 비료로 썼기 때문이랍니다. (뭣?)

[기사] 이 작은 물고기에 깃든 역사

 

다즈쿠리 멸치는 아무 때나 볼 수 없고 새해 준비가 시작되는 12월에나 볼 수 있다는데, 제가 아래에 소개한 레서피와 비슷한 방식으로 조리해 오세치료리로 씁니다. '다즈쿠리'가 생멸치 말린 것을 뜻하기도 하고, 이 생멸치 말린 것을 써서 완성한 오세치료리를 뜻하기도 합니다. 비료로 쓰던 관습이 있어 한 해 농사가 잘 되기를 염원하는 의미에서 새해 음식으로 먹는다고 하지요. 반짝반짝 윤이 나면서 바삭해 서양인들에게는 'candied anchovies'라고 소개하곤 합니다. 깔끔한 맛 내겠다며 저처럼 몸통살만 남게 다듬으면 안 되고, 머리부터 꼬리까지, 내장도 그대로 든 온전한 형태의 것만 골라 양념을 입힌다고 합니다. 맛보다 ☞ '프리젠테이션'이 더 중요한 모양입니다.

 

일본 쌀과자 모듬에도 단짠의 바삭한 멸치가 들어있을 때가 있는데, 먹을 때마다 '참 맛있는 조리법이네' 감탄하며 먹습니다. 술안주나 간식으로 먹을 때는 아래의 레서피에서 간장과 설탕 양을 좀 줄이셔야 합니다. 저는 간이 조금 있는 밥반찬으로 소개하겠습니다. 간장맛을 입혀야 하므로 멸치는 짜지 않은 것으로 고르셔야 하는데, 고급 멸치일수록 덜 짠 경향이 있습니다.

 

 

 

 

 

 

 

 

 

데리야키 소스 멸치볶음

 

준비물

 

주방저울

계량 스푼 - 15ml짜리 큰술

볶은 멸치 덜어 놓을 그릇 한 개

평평하면서 지름 큰 지짐판frying pan 

볶음 스푼

 

 

재료

 

내장과 머리를 뗀 중멸치 100g. 배쪽말고 등쪽을 쪼개야 깔끔하게 떨어진다. 칼슘 섭취해야 하니 가시는 남겨 둔다. 냉동실이나 상온에 오래 두어 지나치게 건조돼 바스라지는 멸치는 다듬기도 힘들고 조리가 완성되었을 때 딱딱하고 질기니, 맛 빠져 나가지 않도록 물에 한 번 푹 담갔다 재빨리 건져 부드럽게 만들어 쓰도록 한다. 수분을 머금어 촉촉해진 멸치는 다듬을 때 가루도 덜 생기고 손가락도 덜 따가우며 조리했을 때도 좀 더 부드럽게 씹힌다. 

 

조미술 2큰술. '미정'이나 '미향' 같은 '미림풍 맛술'말고 알콜 14%의 진짜 조미술 '미림'으로.

 

올리브유 1큰술

 

데리야키 소스 재료 (멸치 총량이 같아도 멸치 크기가 크면 소스 양을 약간 늘려야 하고 작으면 소스 양을 줄여야 한다. 중멸치보다 큰 멸치를 썼을 때는 아래의 소스 양으로는 부족해 맛이 충분히 나지 않았다.)

간장 1큰술

조미술 1큰술

탕 1큰술

 

볶은 통참깨 

 

 

만들기

 

1. 기름 없는 마른 지짐판에 멸치만 먼저 넣고 중불에 타지 않도록 따닥따닥 구워 맛을 돋운다. 마구 휘저으면 꼬리 부분이 부서져 타서 쓴맛이 날 수 있으니 조심조심. 

 

2. 멸치에서 구수한 향이 올라오면 멸치에 조미술을 흩뿌려 물기가 사라질 때까지 볶는다. 그릇에 옮겨 담는다. 

 

3. 빈 지짐판에 이번에는 식용유를 넣어 데운다.

 

4. 데운 식용유에 데리야키 소스 재료를 전부 넣고 전체가 한 번 우르르 끓을 때까지 둔다. 이 과정을 잘해야 간장 날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또 너무 오래 끓이면 소스 양이 줄고 찐득해져 멸치가 잘 버무려지지 않으니 주의한다.

 

5. 불을 끄고 조미술에 볶아 둔 멸치를 4에 넣어 양념이 골고루 묻도록 잘 뒤적인다.

 

6. 볶은 통참깨를 넉넉히 뿌린다.

 

7. 완전히 식혀 밀폐용기에 담는다. 장마철과 한여름에만 냉장고에 넣고 나머지 계절에는 상온에 두고 먹는다. 냉장고에 넣으면 맛도 떨어지거니와 데리야키 소스 때문에 끈적하고 딱딱해져 반찬 그릇에 덜 때 멸치가 부러지기 일쑤다. 끝.

 

 

 

☞ 안초비 먹고 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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