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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에서 즐기는 아프터눈 티] 권여사님 댁 ③ 본문
단단이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닌데 권여사님께서 눈만 뜨면 지극 정성을 다해 찻상을 차려주십니다. 밖에 볼일 보러 나갔다 돌아오기만 하면 찻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시집 간 딸과 이렇게 단 둘이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일은 다신 없을 테니 소중한 순간이라 여기시는 것이겠지요. 장농 속에 잠자고 있던 예쁜 식탁보도 꺼내 열심히 다림질까지 하셨습니다.
캬~ 간단 버전이라 해도 갖출 건 다 갖추셨군요. 샌드위치, 스콘, 단것들에 꽃까지! 3단 트레이가 작아 차음식들이 막 비져나옵니다. ㅋㅋ 3단 트레이의 구성은 다들 너무도 잘 아실 테니 오늘은 차음식 설명을 자세히 달지 않을게요.
전체 샷.
훈제연어와 참치 샌드위치.
크랜베리 스콘.
하트 모양의 팔미에와 마카롱. 윗단에는 요런 간질간질 간드러지는 것들이 올라와 줘야 한다 이거죠.
"에에? 영국식 아프터눈 티에 프랑스 과자들이 왜 올라오나요?"
전통적으로 윗단에는 이태리나 프랑스 과자 등 외국 과자들이 올라오곤 합니다. 영국 과자들은 다들 묵직한 구석이 좀 있지요. 파인fine 다이닝의 세계에선 마지막 코스인 디저트에 여간해서는 케이크를 내지 않습니다. 케이크도 무겁다고 보는 거죠. 그런데 영국이 또 이 케이크의 나라 아닙니까. 그러니 3단 트레이도 마치 3-코스 식사처럼 생각해 마지막에 먹는 맨 윗단에는 가벼운 프랑스 과자들을 올린다는 거지요. 프렌치들이 또 한'경박' 하니까요. 부드럽고 가벼운 무스나 푸딩 류도 그래서 단골로 올라옵니다. 영국의 전통 케이크들은 3단 트레이가 아닌 별도의 접시에 따로 내게 돼있습니다. 중국 차, 인도 차, 스리랑카 차, 아프리카 차, 영국 샌드위치와 스콘과 케이크들, 외국 과자들...
여러분, 아프터눈 티란 건 잘 보면 꽤 '글로벌'한 겁니다.
권여사님이 아끼는 로얄 알버트 빈티지 찻잔입니다. 70년대에 첫선을 보였던 패턴입니다. 섬세하기 짝이 없는 권여사님은 저 찻잔 안쪽에 심긴 꽃에 짜릿한 전율을 느끼시곤 한다네요. 찻잔 안쪽의 꽃은 찻잔을 (오른손으로) 들고 홀짝이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거지요. 위치도 절묘합니다. 물가에 심긴 꽃처럼 찻물이 찰랑일 때마다 숨었다 찾았다 숨바꼭질 놀이를 해댑니다. 하여간 영국인들의 꽃사랑은 못 말리겠습니다.
에, 이 꽃으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권여사님이 사고 쳐서 생긴 뜻밖의 꽃이라고나 할까요. 꽃망울 틔운 난 화분에 가까이 가셨다가 그만 육중한 몸으로 툭 건드려 가지가 '뚝' 하고 부러졌다네요. 아까우니 찻상에나 올리자, 뭐 이런 건가 봅니다. 시들 때까지 앞으로 몇 번 더 찻상에 선보이게 될 것 같습니다.
"아이고, 내가 왜 그랬지, 내가 왜 그랬지..."
하루 종일 자책하고 계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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