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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에서 즐기는 아프터눈 티] 권여사님 댁 ⑤ 본문

차나 한 잔

[남의 집에서 즐기는 아프터눈 티] 권여사님 댁 ⑤

단 단 2011. 3. 13. 09:57

 

 

 

 


권여사님 댁에서 즐기는 마지막 아프터눈 티입니다.
여러분, 집에서 갖는 아프터눈 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몸은 좀 힘들고 귀찮아도 이것저것 만들어 (또는 사다가) 느긋하게 즐기기. 좋아하는 찻잔에 좋아하는 차 우려 단것과 함께 먹기. 이건 고독하게 앉아 진지하게 책 읽는 것 못지 않게 행복한 일이라고 봅니다.

 

사실 제가 집에서 차리는 찻상은 저 스스로 봐도 보잘것없다는 걸 잘 압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줄기차게 찻상을 소개하는 이유는요, 영국식 찻상 차리는 일이 결코 어렵지 않다는 것을 보여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보세요, 홍차의 'ㅎ'자도 모르시던 권여사님도 이렇게 근사하게 한 상 차려 내시잖아요.

 

커피 한 잔 놓고 맛난 케이크 한 조각 곁들여 즐기는 건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죠. 그런데 작은 3단 트레이와 꽃 한 송이와 티 라이트만 더 놓으면 식탁이 순식간에 흥미진진, 영국이나 특별한 호텔의 티룸도 아닌 한국의 여염집 식탁에 3단 트레이가 올라와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이런 상 받아 보시는 손님들은 그냥 '뻑' 가는 겁니다.

 

이렇게 해보세요.
일단 밖에서 사 먹는 커피나 군것질을 몇 번 참으셨다가 작은 3단 트레이를 하나 장만하시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은제 트레이를 구하기 어렵고 값도 비싸니 튼튼하고 실용적인 스테인레스 스틸이나 도자기 제품으로 구해 보세요. 샌드위치를 예쁜 접시에 따로 담고 2단 트레이를 쓰셔도 좋고요. (저는 3단 트레이보다는 2단 트레이를 선호합니다.)

 

티 라이트 홀더는 1만원 안 되면서도 예쁜 것들이 남대문 시장이나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지하 상가에 널렸으니 바람 쐴 겸 한 번 다녀오시든지요.


찻잔은, 아무리 형편 어려운 분이라도 집에 마음에 들어서 산 찻잔 하나쯤은 있을 거 아닙니까? 꽃은 권여사님처럼 베란다에 키우고 있는 놈들 중 한 녀석 꺾어다 꽂아도 되고 꽃집에서 한 송이만 사 오셔도 되지요. 돈 없으면 단단처럼 동네 길을 정처 없이 헤매다가 바닥에 떨어진 남의 집 꽃 주워 오셔도 되고요.

 

우리 한국인들은 영국인들처럼 대식가가 아니니 간식으로 이것들을 죄다 먹기는 부담스럽죠. 한 끼 식사를 아예 아프터눈 티로 때우시는 겁니다. 집에 먹다 남은 식빵이 있으면 참치 캔 하나 따서 마요네즈와 호스래디쉬를 섞어 버무려 샌드위치를 뚝딱 하나 만들어 보세요. 귀찮으면 그냥 제과점에서 사 오시든가요. 제과점에 스콘이 없다면 잼과 버터를 발라 먹으면 맛있을 것 같은 빵 아무거나 사서 함께 놓으세요.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단것 두어 개 정도 윗단에 올려 줍니다. 마땅한 차가 없으면 마트표 티백 녹차라도 우려 자리에 앉으세요. 훌륭한 티타임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매일 이렇게 할 수는 없죠. 영국인들도 이런 티타임을 매일 갖지는 않거든요. 다만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해보세요. 삶의 질이 달라질 겁니다.

 

 

 

 

 

 

 

 


보세요, 이렇게 사서 쓰셔도 된다니까요. 밖에서 사 왔다고 아무도 흉보지 않아요. 저기 저 뒤에 슬쩍 보이는 와플은 벨기에 사람이 구워 판다는 유명한 와플입니다. 스콘이 지겨워져 대신 내본 거라고 합니다. 권여사님이 직접 만드신 것은 없지만 여기저기 발품 팔아 맛난 것들을 신경 써 골라 사 오셨으니 이것도 만드는 정성 못지 않은 겁니다. 아이고, 와플과 샌드위치를 먹고 나니 배가 벌써 꽉 찼어요.

 

 

 

 

 

 

 

 


여기저기서 그러모은 단것들. 인간 암컷들은 디저트 배를 따로 갖고 있다고 네이처 지에서 그럽니다. 믿거나 말거나. 정말 신비하고 놀랍고 고맙기 짝이 없는 조물주의 섭리가 아닐 수 없죠. 

 

 

 

 

 

 

 



헛, 이거 집에서 만들기 어렵지 않겠어요. 달걀이 안 들어가니 비린내도 안 나고 좀 더 안전하기도 하고요.

 

 

 

 

 

 

 

 


맛은 좋으나 너무 기름져 절대 혼자 다 먹을 수 없는 <패이야드>의 쵸콜렛 무스 '루브르'. 이거 끝까지 혼자 다 드시는 분 있으면 제가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바나나맛 크림의 타트tart.
크림 속에 보이는 후춧가루 같은 것이 바로 바닐라 알갱이입니다. 진짜 바닐라 포드를 썼거나 최소한 바닐라 페이스트까지는 써줬다는 거죠. 달걀이 분명 들어갔을 텐데 다행히도 달걀 비린내가 안 났습니다. 신세계 백화점 지하에서 파는 슈, 어느 뚜레주르 매장의 슈, 63 베이커리에서 파는 시트러스 타트에서는 왜 이리 비린내가 나는지, 웬만하면 돈 아까워서라도 그냥 먹을 텐데 역겨워 죄다 버렸지요. 흑. 도대체 어떤 달걀을 쓰면 그렇게 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얼그레이 홍차로 맛을 낸 라즈베리 무스 케이크.

 

 

 

 

 

 

 

 

 

홍차라는 이름에 걸맞는 주홍빛 찻물.
<해로즈>의 발렌타인 데이용 차입니다. 권여사님이 찻잎에 섞여 있는 분홍색 하트 모양 설탕에 열광하십니다.

 

 

 

 

 

 

 

 


꽃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 공예품이라도 대신 올려 놓았다는 권여사님의 해명이 있었습니다. 멋진걸요. 로얄 덜튼사 제품이라고 합니다. 크아, 카네이션 좀 보세요.


이것으로 한국에서의 아프터눈 티는 끝. 저는 영국으로 돌아갑니다. (실은 돌아온 지 벌써 한참 됐습니다.) 여러 차례 정성 어린 찻상 차려주신 권여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동했답니다. 단단이 유심히 살펴보니 권여사님 댁은 티 라이트 홀더가 다른 것들에 비해 조금 부실해 보입니다. 영국 가면 근사한 것으로 사서 보내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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