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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터눈 티] 삼성동 페코 티룸 본문

차나 한 잔

[아프터눈 티] 삼성동 페코 티룸

단 단 2011. 2. 28. 15:33

 

 

 

 

  
얼마 전 단단은 가필드 님, 옛 오르간 선생님과 함께 셋이서 아프터눈 티를 즐겼습니다. 저녁 7시 30분에 말이죠. 이번에도 가필드 님이 사 주셨습니다. 벼룩도 갖고 있다는 낯짝을 단단은 갖고 있지 않은 모양입니다.

 

가필드 님께서 누리터를 뒤져 찾아 내신 티룸인데 티룸 양쪽으로는 기라성 같은 커피 하우스들이 있었습니다. 커피 하우스에는 항상 사람이 버글버글합니다. 가만 보니 공부를 커피 하우스 와서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단단은 소싯적에 하염없이 뺑뺑 도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시험 공부를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분들 흠잡을 생각이 없습니다. 커피가 국민음료가 된 한국에서는 (솜씨가 있든 없든) 티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개무량합니다. 자매 두 분이서 운영하는 티룸인데 한 분은 영국에서 공부를 하셨더군요. 반가웠습니다. 들어가 보죠.

 

 

 

 

 

 

 



실내가 어둡습니다. 피부가 삼베결 같은 단단은 이런 암실을 선호합니다.

 

 

 

 

 

 

 



셋이서 아프터눈 티 2인분과 홍차 한 잔을 추가로 시켜 지출을 다소 줄여 보았습니다. 아프터눈 티 1인분은


 티 샌드위치 두 쪽
잼과 생크림을 곁들인 스콘 한 개 반 (으응?)
파운드 케이크 한 조각
다쿠아즈 한 개, 동전만 한 미니 비스킷 두 개, 미니 쵸콜렛 트러플 한 개
큼직한 조각 케이크 한 조각 (쇼케이스에서 선택 가능)
리필이 가능한 홍차 한 주전자

 

로 구성돼 있습니다. 사진 보고 헷갈려 하시면 안 돼요. 풍성하게 보이려고 두 곳에 나뉘어 담긴 차음식들을 합쳤거든요. 일단 종류만 놓고 보면 푸짐합니다. 제가 돈을 내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가격은 1인분에 25,000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값은 적당한 것 같습니다.


참고로, 한국과 영국의 물가를 비교할 때는 환율 따라 곧이곧대로 하시면 안 됩니다. 영국 돈 1파운드를 우리 돈 1천원쯤에 비교해야 체감 물가가 얼추 맞지 않나 싶어요. 한국인이 한국 돈 환전해 갖고 가서 영국에서 쓰자니 뭐든 눈물 나게 비싼 것 같지만 영국인들은 그만큼 급여도 높기 때문에 영국에서는 1파운드가 1천원 정도로 느껴집니다. 그러니 35파운드짜리 호텔 아프터눈 티는 7만원이 아니라 3만5천원 정도라 생각하면 된다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시면서 두 나라의 물가를 한번 비교해 보세요.

 

 

 

 

 

 

 


 
샌드위치입니다. 사실 샌드위치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가격을 맞추다 보니 할 수 없이 이렇게 된 거라면 차라리 미니 비스킷, 파운드 케이크, 쵸콜렛 중 무언가를 빼거나 가짓수를 줄이고 샌드위치에 더 공을 들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저렴한 아프터눈 티일지라도 샌드위치는 최소 두 종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흔해빠진 형광 주황색 흐물거리는 가공치즈와 얇디얆은 가공 슬라이스 햄을 써서 진부한 샌드위치로 만들어 버린 것은 둘째 치고, 채식주의자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어 보입니다.

 

앗, 가만, 여긴 고기왕국 한국인가요? 한국에선 고기 안 먹는 별종 인간들 따위를 배려해야 할 이유가 없지요. 그런데 또 한편 생각하면, 내 돈 내고 음식 사 먹으면서 내가 먹지도 않는 걸 억지로 받아볼 이유도 없는 거죠. 메뉴에 명기를 해 놓거나 주문 받을 때 물어 보는 것이 맞습니다. 영국에서는 아무리 허름한 티룸이라도 샌드위치가 최소 2종은 나옵니다. 그런데, 한국도 요즘은 웬만한 제과점 샌드위치들에 저런 가공치즈는 쓰지 않는 걸로 알고 있어요. 식빵도 토스트마냥 바삭하게 구워져 있었는데, 다소 마른 빵을 바삭하게 구워 내는 것과 신선한 빵을 계속 촉촉하게 유지해서 내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어려운지는 다들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여간 페코 티룸의 샌드위치는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스콘은 맛있었습니다. (왼쪽 것은 스콘이 아니라 프랑스 과자인 '다쿠아즈'입니다.) 홍차에 홍차 스콘이라 맛이 중복되는 측면이 있지만 얼그레이 스콘 자체는 향긋하고 맛있었습니다. 잼과 크림은 수다 떠느라 맛을 보지 못 해 할 말이 없네요. 잼으로 티룸을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또 이 잼으로 손님 만족시키가 여간 어려운 게 아녜요. 클로티드 크림 대신 생크림이 나왔는데, 클로티드 크림을 구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생크림보다 차라리 버터를 내는 게 낫습니다. 홍차 인구가 많은 일본에는 클로티드 크림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여간 한국도 홍차 인구가 어서 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영국의 아프터눈 티룸들이 스콘을 낼 때는 플레인 스콘과 과일 스콘, 이렇게 두 종류를 내는 게 보통인데, 깐깐한 영국인들 중에는 잼이 있으므로 과일 스콘을 내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스콘 속에 든 과일 때문에 잼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없고 거추장스러운 질감 때문에 부드러운 크림을 느끼는 데 방해가 된다는 거죠. 저도 그렇게 느끼는 사람 중 하나인데, 다쓰베이더 같은 사람은 또 과일 스콘이 없으면 섭섭해합니다. 이건 순전히 취향의 문제이니 집에서 즐길 때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됩니다. 엉뚱해 보이는 조합으로 시너지를 창출해 낼 자신만 있다면 변주를 줘 보는 것도 좋지요. 지난 번 둘째 오라버니 집에서 먹었던 계피호두 스콘과 사과잼의 조화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거든요.

 

 

 

 

 

 

 


 
무거운 파운드 케이크와 비스킷, 쵸콜렛이 올라와 있습니다. 너무 작은 것들이 많이 올라 오니 잡다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이 집 광고 문구에 들어 있던 '정통'이라는 단어에 맞지 않습니다. 너무 묵직한 것, 쵸콜렛, 비스킷, 생과일 등은 '정통' 아프터눈 티 3단 트레이에는 여간해선 올라오지 않거든요. 스콘이 있기 때문에 3단 트레이의 맨 꼭대기에는 가벼운 식감의 '팬시fancy'한 것들이 주로 올라오게 됩니다. 생과일이 올라오는 것은 금물이지만 과일 타트는 괜찮습니다. 만드는 이의 정성이 한 번이라도 더 들어갔기 때문인데, 같은 이유로 쵸콜렛을 그냥 내는 것보다는 쵸콜렛을 재료로 써서 만든 쵸콜렛 갸또를 내는 것이 권장됩니다. 제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아프터눈 티 3단 트레이에는 아무리 맛이 있어도 투박한 드롭 쿠키나 냉동 쿠키 역시 올리지 않더군요. 아프터눈 티는 좌우간 '럭셔리'가 생명입니다.

 

얻어 먹는 주제에 음식 타박을 하고 자빠졌느냐. 운영자분들께서 이 티룸 광고에 '정통'이라는 단어를 쓰셨기 때문입니다. 단단은 이제 한국 요식업계에 난무하는 '유럽 본고장 맛' 따위의 말은 믿지 않습니다. 그냥 '영국식 아프터눈 티'라고만 했으면 맛있게 냠냠 먹고 끝냈을 텐데 고놈의 '정통'이라는 말 하나 때문에 예민해졌다 이 말씀이지요.


저처럼 집에서 아프터눈 티를 즐길 때는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먹고 싶은 것 죄다 꺼내 놓고 자유롭게 즐기세요. 언젠가 랍상 수숑 한 잔 우려 놓고 양념 닭다리 뜯는 분도 보았는데, 속으로 '이 분 참 재미있는 분일세.' 생각을 한 적 있습니다. 하여간 '정통'이라는 말만 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다 이 말씀입니다.

 

 

 

 

 

 

 



아프터눈 티 2인분을 시켰으므로 쇼케이스에서 케이크 두 개를 고를 수 있었습니다. 밤 케이크과 당근 케이크를 골랐는데 둘 다 지나치게 달지 않고 맛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베이킹 솜씨가 좋으신 것 같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의 유명 패이스트리 체인점 제품처럼 입에 착착 감기는 화려한 단맛은 없지만 엄마가 집에서 만들어 주신 것 같은 소박한 손맛이 나서 저는 더 좋았습니다.

 

 

 

 

 

 

 



캬, 나긋나긋 여성스럽기 짝이 없는 노리다께 다구들이군요. 차는 중국 홍차인 기문, 스리랑카 홍차 우바, 그리고 살구맛 가향차를 주문했습니다. 티포트 안을 들여다보니 찻잎이 보이질 않습니다. 다른 곳에서 미리 우려 찻잎을 다 거른 뒤에 예쁜 노리다께 티포트에 옮겨 담아 내주신 건지, 속 편하게 티포트 속 거름망에 우렸다가 거름망만 빼고 주신 건지, 티백으로 우려 주신 건지, 하여간 점점 써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 흔적이 보입니다. 차맛은 좋았습니다.

 

가장 좋았던 점 하나를 꼽자면,

마냥 앉아 있어도 쫓겨나지 않는다는 점.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영국의 호텔 티룸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었지요. 값이 두어 배 정도 비싸다면 차음식과 분위기는 너덧 배 이상 훌륭합니다. 생음악 연주자와 은제 다구, 하얀 식탁보, 즉석에서 준비해 촉촉한 상태로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손 많이 가는 다양한 샌드위치, 꽃병에 꽂힌 예쁜 꽃 한 송이를 생각하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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