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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 잔

코피 루왁 시음기 + 비알레띠 브리카 사용기

단 단 2011. 3. 15. 23:46

 

 

 

 

 

커피의 'ㅋ'자도 모르는 단단에게 얼마 전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다는 이상하게 생긴 고양이의 똥을 사람들이 요즘 더욱 열심히 채집하기 시작했다는데, 그렇게 모은 똥을 죄다 파헤쳐 커피 콩만 골라낸다는군요. 그렇게 골라낸 커피 콩을 들들 볶고 봉지에 담아 고가에 판매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단단에게 저 유명한 '루왁 커피'가 생긴 거죠. '코피 루왁'이라고 부릅니다. 영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들은 '시빗 커피'라고 부릅니다. 그림에 있는 긴 꼬리의 인도네시아 고양이를 우리말로는 '사향고양이', 현지어로는 '루왁Luwak', 영어권에서는 '시빗Civet'이라 부르거든요. 이 녀석들이 질 좋은 커피 열매들만 골라 따먹고는 소화시키지 못한 커피 콩들을 배설해 댄다고 하는데, 소화기관을 거치면서 독특한 향미가 더해지게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 비싼 커피가 단단의 손에 들어왔느냐? 사연인즉슨 이렇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단단을 포함하여 다섯 명이 저녁 찻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지요. 여느 때와 같이 단단이 중국의 다예사 언니들 흉내를 내며 오만 잘난 척을 다 하면서 차를 우리고 있었는데, 일행의 대장 격인 어르신께서 집에 "이상한 커피"가 선물로 들어왔다고 하시는 겁니다. 커피를 차만큼 즐기지는 않지만 단단은 직감으로 그것이 화제의 그 루왁 커피인 줄을 알았지요. 다들 호기심에 눈을 빛내며 한 잔에 오만원은 족히 넘는다는 그 귀한 커피, 어디 맛이나 좀 봅시다, 청했었지요.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이 옆에 있었지만 평범한 드립식 커피 메이커로 우려 다같이 나누어 마셨었습니다.

 

그런데 오 이럴 수가. 저는 이 커피가 너무 맛있는 거예요. 커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지만 그래도 취향이란 건 있어 단단은 부드러운 신맛이 나는 커피를 특히 좋아하는데 이게 딱 그런 맛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나머지 네 분은 좀 뜨악한 표정으로 "글쎄, 우린 맛있는 줄 잘 모르겠네." 하시는 거예요. 그렇다면 맛있어 하는 사람한테 넘기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이 커피가 단단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거죠. 쾌척해 주신 분께는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비싼 값에 비해 포장은 현지스럽습니다. 귀한 걸 덥석 받아들고 와서는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차 마니아랍시고 차 도구는 이것저것 다양하게 갖추고 있어도 커피 도구는 별것 없으니 말입니다. 커피에는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에 집에 갖고 있는 커피 도구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겨우 있을 뿐입니다.

 

 

 

 

 

 

 

 

 

어느 집에나 하나쯤은 있을 '캬페티에cafetiere'. 한국에서는 이를 프랑스 사람들이 많이 쓴다고 하여 '프렌치 프레스French press'라 부르지요. 영어 표현인데 정작 영국에서는 '카페티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발명은 이태리 사람이 했다고 하니 재미있습니다. 차 우릴 때 더 유용합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우유 거품기로 전락하기도 한다지요.

 

 

 

 

 

 

 

 


백화점에서 한때 사은품으로 남발하여 집집마다 하나씩은 다 갖고 있었던 자동 드립 방식 커피 메이커..를 수동으로 재현할 수 있는 제품. 잘 활용하면 요즘 유행한다는 '핸드 드립'을 어설프게나마 흉내내 연출할 수도 있습니다. 아주 저렴하지요.

 

 

 

 

 

 

 

 


마지막으로, 진한 에스프레소나 라떼가 먹고 싶을 때 집에서 비슷하게 연출할 수 있는 '스토브 톱 에스프레소 포트stove top espresso pot'. 비알레띠 사의 '브리카Brikka'입니다.

 

단단이 가진 건 이 세 가지가 전부입니다. 고가의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이나 기술을 요하는 핸드 드립 도구 같은 건 없는 거죠. 한국에서는 '스토브 톱 에스프레소 포트'를 간편하게 '모카 포트moka pot'라고들 부르시는 것 같더군요. 아마 이태리 비알레띠 사의 초기 제품명을 따서 그렇게들 부르시나 본데, 영국에서는 대개 '스토브 톱 에스프레소 포트'라 부릅니다. 각자가 편한 대로 부르면 되는 거죠.

 

이 세 가지 중에서 오늘은 그 사용법을 궁금해하실 권여사님을 위해 모카 포트로 에스프레소를 뽑아 보겠습니다. 얼리 어답터 권여사님은 집에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을 근 20년째 갖고 계시지만 돈 없는 단단은 모카 포트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며 삽니다. 커피는 루왁 커피로 우려 보겠습니다. 단일 품종 커피나 배전도가 약한 커피는 에스프레소로 뽑지 않는다지만, 커피가 생기면 모든 도구로 다 우려 보는 습관이 있으니 오늘은 모카 포트를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커피 마니아들께서는 지금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일세.' 배 아파 하실 줄 다 압니다.

 

 

 

 

 

 

 

 


사용을 하려면 일단 모카 포트를 분해해야 합니다. 쓸 때는 번호 순서대로 사용하거나 조립해야 합니다. 브리카 사용자라면 위의 사진에서 단단이 재미로 심어 놓은 '옥에 티'를 금방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답은 안 가르쳐 드립니다. 단단의 것은 2인용 포트입니다. 평소에는 잘 안 쓰고 있다가 커피 선물이 들어오면 열심히 씁니다. 이런저런 커피가 많이 들어왔으니 당분간 열심히 쓰게 생겼습니다.

 

 

 

 

 

 

 

 


포트를 살 때 함께 따라온 계량컵을 이용해 신선한 찬물을 받습니다.

 

 

 

 

 

 

 

 

 

물통에 붓습니다. 가스불이나 전기 홉hob에 직접 닿는 부분입니다. 이곳에서 물이 끓어 생긴 압력 때문에 위의 포트로 커피 액이 보내지게 됩니다. 물 양은 임의로 조절해서는 안 되고 2인용이면 2인용에 맞는 양을 정확하게 재서 담아야 합니다. 대략 75ml 쯤 됩니다. (두툼한 손은 제 손 아닙니다. 영감 손입니다.)

 

 

 

 

 

 

 

 


원두의 양을 잽니다. 집에 갖고 있는 다른 원두로는 1인당 8g이 적당했으니 이것도 1인당 8g으로 잡아 봅니다.

 

 

 

 

 

 

 

 

 

2인이니 모두 16g을 갈아 보기로 합니다. 굵기는 에스프레소용으로 곱게 갈되 압력이 에스프레소 머신(9기압)보다는 약하니(4기압) 그보다 약간 굵게 갈아야 합니다. 에스프레소 머신용으로는 밀가루와 설탕의 중간쯤 되는 굵기로 간다고들 하지요. 모카 포트용으로는 설탕 굵기로 갈면 됩니다.

 

 

 

 

 

 

 

 

 

담고 보니 약간 모자라네요. 조금 더 갈아야겠습니다. 커피의 양도 가급적 바스켓 끝까지 평평하게 담길 수 있도록 맞춰 주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커피 양이 모자라도 문제, 꾹꾹 눌러 너무 많이 담아도 문제가 됩니다. 에스프레소 머신용으로는 커피를 다지는 '탬핑'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지만 이런 소박한 가정용 포트에서는 탬핑이 필요 없다지요. 분쇄된 커피를 바스켓에 담을 때는 손에 쥐고 하셔도 되지만 사진에서처럼 계량컵에 올려 놓고 하면 좀 더 편합니다.

 

 

 

 

 

 

 

 


원두를 조금 더 갈아 마저 담고 손잡이가 달린 상단 포트를 위에 올려 조립합니다. 아랫부분은 마치 영국의 국민 sci-fi 드라마 <독터 후Dr Who>에 나오는 '달렉Dalek' 같고 윗부분은 이탈리아 미래파Futurism 조각품 같다며 영국인들이 좋아합니다. 20세기 디자인 아이콘이라 칭하기에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햇빛이 갑자기 좋아져 사진이 따뜻해졌습니다. 영국 날씨는 정말 변화무쌍합니다. 바람이 세서 구름이 '쌩' 하고 달려간다는 말이 영국에서는 정말 실감난다고 말씀 드린 적 있어요. 구름이 빠르니 햇빛이 수시로 들락날락합니다. 일교차도 커 하루에 사계절을 겪기도 하고요. 영국인들이 낯선 이들과 처음 만날 때면 날씨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고 하지요. 아는 사람하고 만나도 날씨 이야기를 합니다. 

 

 

 

 

 

 

 

 

 

포트를 가스불이나 전기 홉에 올릴 때는 손잡이를 반드시 사진에서와 같이 바깥으로 빼 내셔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거의 대부분 가정이 가스불을 쓰지요. 전기 홉보다 불이 훨씬 세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손잡이 태워 먹은 분 수두룩 보았습니다. 이런 분들이 워낙 많아 아예 제조사에서 손잡이만 스페어 파트로 따로 팔긴 하지만요. 알루미늄 재질이라 열 전도율이 높기 때문에 꼭 불 가운데에 두지 않으셔도 됩니다.

 

 

 

 

 

 

 

 

 

중불에 올려 놓고 기다리면 커피 액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치이이익!" 굉음을 내면서 크림 같은 거품이 생성되기 시작합니다. 이를 ☞ '크레마crema'라고 부르지요. 에스프레소 뽑는 분들은 이 크레마에 목숨을 걸지요? 모카 포트 중에서는 이 브리카 모델이 크레마가 가장 잘 생긴다고 해서 인기가 좋습니다. "치이이익" 하는 소리의 마지막엔 "꾸오오오!" 하는 괴물 외마디 비명 소리가 한 번 더 납니다. 이때 불을 끄거나 불에서 내리셔야 모카 포트가 타지 않습니다.

 

 

 

 

 

 

 

 

 

엥? 크레마가 제법 있었는데 잔에 붓고 식탁 위로 옮겨 사진기 초점을 맞추는 사이 다 사라졌습니다. 어즈버, 구래마여, 일장춘몽과도 같구나. 똑같은 방식으로 우려도 원두의 종류와 상태에 따라 크레마 양이 많이 차이 난다고 하네요. 집에 갖고 있는 또다른 원두는 이 루왁 커피보다 더 많이 볶여 흑갈색이 나면서 표면에 기름기가 도는 'French Roasting'으로 된 유럽식 진한 블렌드 커피인데 크레마가 훨씬 단단하게 많이 생깁니다. 이 루왁 커피는 원두 색이 연한 것으로 보아 좀 덜 볶은 원두라는 걸 커피 문외한인 단단도 알 수 있어요. 아마도 루왁 커피만의 독특한 향미를 살리기 위해서겠지요.
☞ 커피의 로스팅에 대하여

 

이 커피는 에스프레소로 뽑는 것보다는 드립식이 더 맛있었던 것 같습니다. 드립식으로 우리면 쓴맛 거의 없이 새콤 달콤 고소하고 부드러우면서 커피 액에서 쫀득쫀득한 점성이 다 느껴지는데, 뭐랄까요, 아주 잘 구워진 군고구마의 눌은 껍질 안쪽에서 나는 것과 같은 신맛이 난다고 할까요. 에스프레소로 뽑으면 단단이 좋아하는 그 신맛이 더욱 강해지고 또 그 나름의 맛이 있긴 하지만요.

 

 

 

 

 

 

 

 


마지막으로, 루왁 커피 이야기를 전해 들은 권여사님의 걱정 섞인 반응을 고대루 옮겨 보겠습니다.


"얘, 고양이 똥에서 꺼내 잘 씻었다고는 하지만 정말 인간이 먹어도 괜찮은 걸까? 원두 홈에 꽉 낀 건 어쩌니?"


어?
그,그러게요;;
그건 미처 생각해 보지 못 했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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