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죽음의 문턱에서 든 생각 본문

잡생각

죽음의 문턱에서 든 생각

단 단 2014. 3. 8. 00:00

 

 

 Salisbury Cathedral, cloister, April 2010.




한국에서는 정말 하루에 한 번 꼴로 생활고로 인한 자살 소식과 안타까운 죽음 소식이 들리는 것 같다. 며칠 전엔 송파동 사는 세 모녀가 번개탄 피워 놓고 한 방에 누워 자살. (키우던 고양이는 왜. 고양이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텐데 문 열어 내보내 주지 않고서...) 

그리고 나서는 막노동 하던 67세 노인이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아 보지 못 하고 간암으로 고독사 했다는 소식. 
☞ 화장 비용 100만원 남기고... 막노동 67세 고독사

유럽 각지에 흩어져 사는 한인 블로거들 입을 통해 유럽의 복지에 대해서는 신물 나도록 들었을 테니 나는 오늘은 영국의 무상 의료나 복지 이야기 따위는 하지 않으련다. 안그래도 이런 가슴 아픈 소식 매일 들어 한국인들 신경이 예민해져 있을 텐데, 이런 때는 유럽 거주 한인들은 말을 좀 아껴야 한다. 지금은 그저 함께 슬퍼하는 것이 우선이고 예의인 것 같다. "여기 유럽에 살았더라면..." 소리도 상황을 봐 가면서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신문 기사들을 읽어 보니 이 67세 노인의 경우는 좀 특이하다. 자살이 아니다. 얼굴이 노래지고 복수가 가득 찰 때까지 병원 갈 생각도 않고 버티다가 어느 순간 죽음을 예감했는지 은행 가서 그간 막노동으로 모아 둔 돈을 빳빳한 새돈으로 바꿔 와 흰 봉투 두 장에 나눠 담았다. 주인집 사례비와 자기 화장비를 마련해 둔 것이다. 그리고는 이불 덮고 누워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다 숨을 거둔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방안에 홀로 이불 덮고 누워 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기다린다...  
가난에 지쳐, 신병을 비관해, 감당할 수 없는 억울함과 분노에 스스로 목숨 끊는 이가 허다한데, 이 67세 노인은 신변 정리를 마친 후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다. 집주인 말에 따르면 "몸이 너무 아파서 살아 있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는데, 그런데도 끝까지 살아 내다 숨을 거두었다. 나로서는 그가 겪었을 고통과 외로움의 크기를 가늠조차 할 수 없지만, 뭐랄까, 슬프다, 안타깝다, 이 사회에 화가 난다, 이런 생각이 들기 전 "피투성이가 돼도 끝까지 살라"는 절절한 외침이 먼저 떠올라 인간의 존엄과 그 의지에 가슴이 다 먹먹해지는 것이다.  

죽어가면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진통 주사고 뭐고 없었을 테니 너무 아파 무슨 생각이라도 할 정신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만.  

*   *   *

아침에 본 이 기사에 마음이 쓰였는지, 그날 밤 꿈에 나는 방에 홀로 이불 덮고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죽은 그 67세 노인이 된 것이다. 부모님은 일찌감치 세상을 떠나 안 계시고, 사랑하는 남편도 먼저 죽었는지 보이질 않고, 해질녘의 어둑한 방에서 나 혼자 죽음의 문턱에 가만히 다가서고 있었다. 다행히 몸에 고통은 없었으나 살면서 남에게 잘못했던 일들이 자꾸만 떠올라 마음이 괴로웠다. 입이 연신 미안하다 미안하다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 몸이 암세포로 다 문드러졌을 텐데 내게 이런 병을 준 신이 원망스러운 것도 아니고, 남에게 당한 부당한 일이 떠올라 화가 나는 것도 아니고, 중학교 때 미처 들어주지 못 했던 친구의 부탁 하나, 그야말로 사소한 일까지 낱낱이 떠오르면서 그저 미안하다, 미안하다, 라는 말만 뇌까리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자살하기 전 사람들이 왜 "미안하다"라는 말을 남기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