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모로칸 민트티 우리는 법 본문

차나 한 잔

모로칸 민트티 우리는 법

단 단 2014. 8. 25. 00:00

 

 

 

 


구석에 처박혀 혼자 놀고 있는 우리 집 모로칸 티포트breds한테 오늘은 일을 좀 시켜봐야겠습니다. 롬지Romsey 방문 때 채리티 숍에서 발견한 녀석이었죠. 영국 남부 백인 마을 채리티 숍에서 모로칸 티포트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모로칸 티포트도 질 떨어지는 제품이 많으니 살 때 주의를 하셔야 합니다. 당연한 소리가 되겠지만, 세공이 정교할수록, 무게가 무거울수록, 재질이 고급일수록 비싸집니다. 들었을 때 너무 가볍거나 얇은 것은 피하는 것이 좋은데, 어디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푹푹 찌그러져요.

 

오늘은 큰맘 먹고 모로칸 민트티를 집에서 직접 우려 보기로 하고 누리터를 돌며 공부를 좀 해보았는데요, 놀랍게도 모로코에서는 이 민트티 만드는 일이 남자의 일이라고 하네요. 집안의 가장이 민트티를 우려 손님 접대를 한다는데, 사양하면 무례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합니다. 모로코에서는 누가 차 건네 주면 무조건 마셔야 하나 봅니다. 집 주인이 우려 주는 차는 적어도 두 잔까지는 마셔 줘야 예의라고 합니다. 남자가 우리는 거라고 하니 다쓰베이더가 눈을 빛내며 자기가 우려 보겠다고 합니다. 우선 아래의 영상을 먼저 보세요.

 

 

 

 

 

 

 

 

 

영상 보고 놀란 점 몇 가지 -

 

1. 첫 번째 헹군 물은 다시 사용하고 두 번째 헹군 물은 버린다는 점. 중국차 우릴 때는 첫 번째 헹군 찻물을 버리잖아요? 신기하죠.


2. 어마어마한 설탕양. 모로코에서는 영상에 있는 것보다 설탕을 훨씬 더 많이 넣습니다.


3. 저 정교한 세공의 반짝이는 티포트breds를 직불에 올려 쓰기도 한다는 것. 저희 집 모로칸 티포트에는 다리가 달렸고 편평한 전열판이라 불에 올려 쓸 수가 없으니 직불에 끓이는 방법 대신 티포트에 그냥 우리는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모로칸 민트티를 우리려면 우선 녹차가 필요합니다. 민트만 우리는 게 아녜요. 찻잎도 들어갑니다. 돌돌 말린 중국의 '건파우더' 녹차를 쓰는데, 모로코 국민 음료에 중국차가 들어간다는 사실이 신기하죠. 그것도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잘 찾지도 않는 건파우더 녹차를요. 돌돌 말린 모양이 꼭 옛날 화약 같다고 해서 건파우더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모로칸들이 마치 우리가 보리차 마시듯 민트티를 마셔 대니 포장이 이렇게 클 수밖에요.

 

 

 

 

 

 

 



무려 500g이나 든 포장입니다. 영국인들이 이용하는 일반 수퍼마켓에선 볼 수 없고 아시안 마트에 가야 이 대용량 건파우더 녹차를 살 수 있어요. 저는 아마드 제품으로 샀습니다. 아마드 티 본사는 런던에 있지만 차를 가공하고 포장하는 공장은 제가 살고 있는 주에 있어 늘 포장한 지 얼마 안 된 신선한 차를 사는 것이 가능합니다. 작은 복이랄까요.

 

 

 

 

 

 

 



저는 화약이란 걸 본 적이 없어 모르겠는데 다쓰베이더가 보더니 "정말 옛날 화약처럼 생겼네?" 합니다.

 

 

 

 

 

 

 



그 다음, 민트가 필요합니다. 모로코에서는 '나나'라는 품종의 민트를 쓴다는데, 나나 민트를 구하기 힘든 모로코 밖에서는 페퍼민트를 쓸 것이냐, 스피아민트를 쓸 것이냐를 놓고 의견이 갈리는 모양입니다. 저는 무얼 선호하냐고요? 수퍼마켓 떨이 민트를 선호합니다. 품종 안 따집니다. 한 다발을 오백원에 사 오기도 합니다. 페퍼민트보다는 스피아민트가 모로칸 나나 민트에 좀 더 가깝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페퍼민트를 선호하는 사람도 많으니 취향껏 선택해 쓰시면 되겠습니다. 잎만 똑똑 따서 쓰는 게 아니라 줄기도 같이 넣습니다. 굵고 목질화한 줄기는 버려야 하지만 가늘고 여린 줄기는 써도 됩니다. 줄기 버리지 마세요.

 

 

 

 

 

 

 



설탕도 넣습니다. 사진에 있는 중간 크기 티포트 하나에 저 많은 설탕이 다 들어갑니다. 저는 망설이다 두 조각을 빼고 넣었습니다. 모로코에서는 더 많이 넣어요. 가루 설탕이 아닌 덩어리 흰설탕을 날카로운 송곳이나 도구로 부숴서 쓰더라고요. 콜라 한 잔 마신다 생각하고 눈 딱 감고 한번 시키는 대로 만들어 보세요. 일단 모로칸들이 시키는 대로 한번 만들어보고 기준과 감을 잡은 뒤 그 다음부터 자기 입맛에 맞게 양을 조절하면 됩니다.

 

우리 한국인은 모로코에 가서 본고장 민트티를 직접 마셔 보지 않아도 이미 모로칸 민트티의 맛을 잘 알고 있습니다. 롯데제과의 스피아민트 검을 통해서죠. 어릴 때 이 검을 씹어 본 적 있는 사람은 무의식중에 이 검의 민트향과 설탕의 비율이 기준처럼 몸에 단단히 박혔기 때문에 모로칸 민트티를 마실 때 스피아민트 검의 당도와 민트 맛이 안 나 주면 맛이 어딘가 모자란 것처럼 느낍니다. 그래서 설탕양을 무조건 줄일 수가 없어요. 제가 설탕 섭취를 줄여 보려고 이렇게저렇게 양을 조절해 가며 여러 차례 마셔 보았는데, 민트와 설탕이 동량에 가까워야 제대로 맛이 납니다. 특히, 기름지고 짭짤한 중동식, 북아프리카식 식사에 곁들일 때는 이 정도 단맛이 나 줘야 음식과 음료 둘 다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우리기 실전 들어갑니다. 물은 옆에서 계속 끓게 놔 두시고 티포트에 2티스푼 정도의 찻잎을 넣습니다. 그런 다음 티포트에 모로칸 티컵 하나 분량의 끓는 물을 넣고 10초간 가만히 둡니다. 10초가 지나면 티포트를 5초 동안 휘휘 돌려 찻잎을 깨워 줍니다. 그런 다음 찻물을 다시 컵에 따라 냅니다. 따라 낸 첫 물은 나중에 다시 티포트 안에 넣을 거니 버리면 안 됩니다. 모로칸들은 이 첫 번째 헹군 찻물을 '영혼'이라고 부르며 귀히 여긴다고 합니다. 신기하죠. 중국식 제다법에서는 첫 번째 물은 찻잎의 먼지를 씻어 낸 물이라 해서 가차없이 버리는데요.

 

 

 

 

 

 

 

 두 번째 헹구고 난 탁한 찻물은 가차없이 버린다.

 


그런 다음, 다시 한 번 끓는 물 1컵을 티포트에 붓고 10초간 훨훨 돌려 찻잎을 또 헹궈 줍니다. 이 두 번째 헹군 물은 버립니다. 즉, 첫 번째 헹군 물은 소중히 여기며 다시 쓰고, 두 번째 물은 가차없이 버리는 겁니다. 중국차 우릴 때는 이 두 번째 물을 귀히 여기는데 모로코 사람들은 그냥 버립니다.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 헹군 물을 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두 번째 헹군 물은 위의 사진에서처럼 매우 탁하고 진합니다. 미분도 많고요. 첫 번째 헹굼물로는 돌돌 말렸던 찻잎의 잠을 깨우고, 두 번째 헹굼물로 펴지기 시작한 찻잎 표면의 먼지를 씻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본고장 사람들의 지혜란, 하고 감탄했죠.

 

 

 

 

 

 

 

 첫 번째 헹군 물[왼쪽]과 두 번째 헹군 물[오른쪽]의 탁도 비교.

 


그 다음엔 설탕을 넣고 민트를 욱여 넣습니다. 민트를 약간 뭉개면서 넣어 주면 맛과 향이 더 잘 우러난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 아까 보관해 두었던 첫 번째 헹굼물을 붓고 새 끓는 물을 티포트에 가득 채운 뒤 2분간 가만히 둡니다. 모로코에서는 불에 올려 팔팔 끓이기도 하는데, 번거로워서 그냥 보통 차 우리듯 우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컵 하나에 찻물을 따랐다가 다시 티포트에 부어주는 과정을 두세 차례 반복해 줍니다. 이 과정을 반복해야 티포트 속 찻물이 골고루 섞입니다. 티포트 안에 민트가 가득 차 있어 걸리적거리기 때문에 숟가락을 넣어 휘젓는 게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잔에 따랐다가 도로 부었다가 하는 작업을 반복해 섞어 주는 거죠. 과정 하나하나마다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다 우렸습니다. 아, 민트향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설탕을 넣은 차라서 단 과자를 곁들일 필요가 없겠어요. 차가 향기롭고 달아 단 과자보다는 오히려 향신료 많이 든 매콤하고 기름지고 짭짤한 튀김류가 먹고 싶어집니다. 한 잔 마시고 나니 식욕이 불일듯 입니다. 기름진 음식을 먹고 나서 재탕, 삼탕까지 우려 마셔 보았는데, 맛과 향이 다소 희석되긴 했어도 식후 차로는 더없이 훌륭했습니다. 진한 첫 탕은 식전 차로 마셔서 식욕을 일으키고, 재탕 삼탕은 식후 차로 즐겨 입가심을 하면 좋겠네요. 입가심할 목적으로 재탕과 삼탕을 할 때는 설탕을 또 넣지 않아도 됩니다. 은은한 단맛이 계속 나거든요. 우릴 때마다 찻물이 점점 맑아집니다. 한 번만 우리고 끝내지 마시고 알뜰히 여러 번 우려 드시길 권합니다.

 

 

 

 

 

 

 

 

 

 

 

차 회사들 중에는 아예 '모로칸 민트티'라는 이름을 붙여 상품을 내는 곳들이 있죠. 녹차와 건조 민트 잎을 혼합한 제품들인데, 이것들도 맛이 나쁘지 않아요. 무엇보다, 간편해서 좋지요. 생민트를 써서 집에서 직접 우려 보기 전에는 저도 이런 제품들을 사서 썼습니다. 생민트를 우린 것과 이런 건조 혼합 제품을 우린 것에 과연 차이가 있느냐? 그럼요, 당연히 있지요. 생민트 우린 것에서는 일단 건조 향초에서 나는 특유의 쓴맛이 나질 않습니다. 향도 훨씬 생생하고요. 재탕 삼탕을 해도 여전히 향이 살아 있죠. 게다가 생민트 기운 탓인지는 몰라도 펄펄 끓는 물을 부었는데도 희한하게 녹차에서 떫은 맛이 안 납니다. 건파우더 녹차만 단독으로 우려 마실 때는 대개 80˚C 정도의 한김 식힌 물로 우려야 하거든요. 쓴맛이 안 난다는 것과 여러 번 우려도 여전히 좋은 맛을 낸다는 것이 생민트 티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아래에 레서피를 다시 정리해 드릴게요.

 

 

 

 

 

 

 

 

 


모로칸 민트티 

[2인분]

 

 물끓이개

찻주전자

찻잔 2개 [모로칸 민트티용 유리 찻잔 하나의 용량은 약 120ml]

 

신선하고 깨끗한 물 800ml

건파우더 녹차 9g

민트 30g 

설탕 20g [모로코 사람들처럼 즐기려면 더 넣어야 함]

 

 

1. 티포트에 녹차를 넣고 민트티용 유리컵 1컵 분량의 끓는 물을 붓는다.

 

2. 10초 동안은 가만히 두었다가 5초간 티포트를 휘휘 돌려 찻잎을 깨운다.

 

3. 헹군 물을 컵에 따른 뒤 버리지 말고 보관해 둔다.

 

4. 새 물을 다시 한 컵 붓고 10초간 티포트를 돌려 헹군 뒤 이번에는 물을 버린다.

 

5. 티포트에 설탕을 넣고 민트를 살짝 구겨서 넣는다.

 

6. 첫 번째 헹군 물과 새로 끓인 물을 티포트에 붓는다.

 

7. 뚜껑 덮고 2분간 가만히 우러나도록 둔다.

 

8. 찻물을 컵 하나에 따랐다가 다시 티포트에 붓는 작업을 두세 번 반복해 티포트 안의 찻물이 잘 섞이도록 한다.

 

9. 잔에 따라 대접한다. 따를 때는 티포트를 최대한 높이 올려 거품이 나도록 따른다.

 

 

 

 

 

 

 


keesan은 이걸로 샀는데,

흐미, 뜨거운 것 잘 못 만지는 단단은

손잡이 없는 컵 드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냐.

 



☞ 런던의 모로코 찻집, 모모 티룸

☞ 그랜드 바자르에서 온 터키 찻잔들도 이 참에 자랑

☞ 보스니아 바슈카르지아에서 온 터키 커피잔도 자랑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