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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 잔

한국의 엉터리 영국 홍차 정보들을 보고 개탄 한탄 수류탄

단 단 2014. 10. 22. 00:00

 

 

 

 

 

한국에 홍차 관련 책이 많아졌다. 홍차 강좌를 여는 이도 많아졌고, 잡지사나 신문사에 직접 기고를 하거나 기자의 기사 작성에 감수나 조언을 해주는 이도 많아졌다. 그런데 엉터리 정보가 너무 많다. 한두 개 정도의 오류는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오류가 너무 많은 정보성 글들을 보면 공익을 위해 마냥 입 다물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오늘은 들었다. (어디 홍차뿐이랴, 치즈에 관한 기사도 홍차만큼이나 엉터리가 많더라.)

 

다음Daum에 <에쎈> 잡지의 홍차 특집 기사가 올라왔는데,

(☞ 가을날의 홍차)

 

휴...
길지도 않은 글 한 편에 이토록 많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니...



"전통적으로 홍차에 곁들여 먹는 음식 중 스콘은 옥수숫가루를 반죽해 삼각형 모양으로 구운 것으로 입안에서 부스러지는 부드러운 맛이 독특한데" 

 

영국의 스콘을 옥수숫가루로 만든다니, 대체 어디서 본 정보일까? 영국은 기후가 맞지 않아 옥수수 재배를 거의 하지 않는다. 겨울철 가축 사료용으로나 소량 재배하고 최근에 와서야 잉글랜드 남쪽 한 곳에서 인간이 소비할 목적으로 단맛 나는 스위트콘을 찔끔 재배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옥수숫가루를 쓰는 전통 빵과자도 여간해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영국에 살면서 나는 옥수숫가루로 스콘 굽는 영국인은 아직까지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어딘가에는 있을 수도 있겠지만 스콘은 밀가루를 써서 굽는 스코틀랜드의 전통 속성빵이다. 이건 영국 꼬마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귀리oat와 보리도 종종 쓰였으나 현대에 와서는 거의 밀가루로 굽는다. (맛과 식감을 위해 귀리나 보리가 소량 첨가될 수는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밀, 보리, 귀리를 주곡으로 삼는다. 옥수수가 주곡이 아니기 때문에 죽도 옥수수죽이 아닌 귀리죽을 먹는다.


그리고, 제대로 만든 스콘은 '부드럽'지 않다. 스콘에 왜 딸기잼과 실크처럼 부드러운 클로티드 크림을 곁들여 먹는지 이유를 생각해 보라.

 

게다가, 영국인들은 여간해서는 스콘을 삼각형으로 만들지 않는다. 수퍼마켓이나 티룸들을 한번 가 보라. 영국 베이킹 책도 뒤적여 보라. 동그란 형태가 대부분이고, 네모 형태는 가끔 보이며, 삼각형 형태는 드물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북부에서는 스콘을 피짜처럼 큰 원형으로 구운 뒤 쐐기꼴wedge로 잘라 먹기도 하는데, 이를 '스콘 링스scone rings'라 부르며, 처음부터 삼각형으로 잘라 구운 것과는 수분 함량과 식감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TV 요리 프로그램에서도 스콘을 삼각형으로 만들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한다. 뾰족한 부분들이 먼저 익어 버려 맛이 써지고 좋지 않기 때문이다.

 


"티메이저"


찻잎 계량할 때 쓰는 스푼인 'tea measure'는 '티 메저'로 발음하며 정확히는 '티 메저 스푼' 혹은 '티 메저링 스푼'으로 표기해야 한다. 치즈 관련 글에서도 'mature'를 '메이처'로 표기하는 것을 종종 본다. '머추어'다.

 


"단맛이 강하거나 크림이 많은 케이크보다는 가벼운 식사를 대신할 수 있는 머핀이나 파이가 티타임에는 더 잘 어울린다."

 

이 말도 틀렸다. 영국인들이 티타임에 먹는 클래식 티 케이크가 얼마나 많은데 이런 소릴 하나. 영국에서는 가끔씩 언론사나 단체들이 티타임 비스킷, 티타임 케이크에 대한 선호도 조사도 다 하는데, 거기 꼽히는 케이크들을 보면 1등은 거의 항상 쵸콜렛 크림 덕지덕지 바른 케이크이다. 인기 케이크 상위권에 드는 커피 월넛 케이크나 당근 케이크, 독일의 블랙 포레스트 갸또 등도 크림이 많이 들어가는 케이크이다. 단맛 강하고 크림 많은 케이크가 홍차에 안 어울리면 도대체 무엇이 홍차에 어울린단 말인가.

글쓴이가 권한 머핀은 미국음식이다. (잉글리쉬 머핀은 아침 식사용 짭짤한 빵이니 헷갈려하지 않도록.) 파운드 케이크가 기본 반죽인 영국 전통 케이크들은 자주 올라오지만 미국 머핀은 영국인들의 티 테이블에 여간해서는 올라오지 않는다. 아마도 미국의 머핀이 컵케이크와 비슷하게 생겼고, 이 컵케이크는 또 영국의 페어리fairy 케이크나 버터플라이 케이크와 비슷해 보이니 글쓴이가 혼동하고 있는 것는 것 같은데, 머핀과 컵케이크, 컵케이크와 페어리 케이크 혹은 버터플라이 케이크의 차이도 모르면서 신문이나 잡지에 영국 아프터눈 티에 관한 글 쓸 생각을 다 하나?

 

글쓴이가 권한 파이도 티푸드로 먹어 안 될 것은 없지만 파이는 대개는 식후 디저트로 먹는 것들이다. 디저트와 티푸드를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는 한국인이 많다. "영국의 대표 디저트인 스콘을 소개합니다" 제목을 단 글도 봤다. 파이도 어떤 파이를 염두에 두고 언급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파이의 영역이 훨씬 넓기 때문에 파이 이야기를 할 때는 이름을 밝히거나, 종류나 형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을 해야 한다. 영국의 단맛 나는 파이 중 가장 대중적인 것은 애플 파이와 바노피 파이. 이 둘은 티푸드가 아니라 디저트이다. 민스 파이는 크리스마스 절기 음식으로, 홍차와 먹지 않고 어른들은 술과 함께, 아이들은 우유와 함께 먹는다. 영국에는 사실 단맛 나는 파이보다 고기, 생선, 치즈 등이 든 식사용 짭짤한 파이가 더 많다.

 


"티타임에는 쿠키나 비스킷보다 길쭉하고 달지 않은 비스코티가 주로 사용된다."

 

이 말도 틀렸다. 아프터눈 티라는 게 워낙 글로발한 성격의 것이니 마카롱 같은 프랑스 과자도 올릴 수도 있고 비스코티 같은 이태리 과자도 올릴 수는 있지만 "비스킷보다 비스코티가 주로 사용된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말이다. 영국의 전통 티타임 비스킷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소리를 하나.
☞ 영국의 티타임 클래식 비스킷

 

비스코티도 비스킷의 일종으로 볼 수는 있지만 영국인들은 티타임에 자국의 전통 티 비스킷들을 주로 먹는다. 참고로, 제대로 격식 갖춘 티 테이블에는 3단 트레이에 여간해서 비스킷을 올리지 않는다. 비스킷은 편안한 가정집 일상 티 테이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셜록> 시즌3에서 허드슨 부인이 존한테 과자들을 내주는데, 화면 멈춰 놓고 유심히 보라. 그게 다 영국의 클래식 티타임 비스킷들이다.


음식이란 먹는 사람 마음이니 티 테이블에 무얼 올리든 사실 상관은 없다. 그러나 '영국식 아프터눈 티', '영국식 홍차 문화' 소개가 목적인 글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건 내가 예전에 '정통 영국식 아프터눈 티'를 낸다는 한국의 어느 티룸을 방문하고 이게 어째서 '정통 영국식'이냐며 질타의 글을 남겼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유는 데워서 쓴다."

 

데울 필요 없다. 냉장고에서 꺼낸 찬 우유를 쓰면 끓은 물로 우린 뜨거운 홍차를 마시기 좋은 온도로 식히는 데도 도움이 된다. 홍차에 우유를 도대체 얼마나 많이 넣어 마시길래 우유를 데워서 써야 한다는 소리를 다 하나. 여기 사람들이 다 우린 홍차에 우유를 넣을 때는 'little touch of milk', 15ml에서 많이 넣어 봤자 30ml 정도를 넣는다. 


"한국 물로는 티백을 1~2분만 우리면 된다."

 

영국에서는 요즘 티백도 최소 3분, 최장 5분까지 우리라고 과학자들과 업계가 권장하고 있다. 짧게 우리면 초기에 우러나는 카페인만 잔뜩 섭취하게 되고 몸에 좋은 폴리페놀 성분은 놓치기 때문이다. 유용한 성분을 얻으려면 티백이라도 다들 지금보다는 좀 더 오래 우려야 한다. 한국 물은 경수인 영국 물과 달라서 1~2분이면 족하다고들 하는데, 연수인 점을 감안해도 우리는 시간이 너무 짧다. 한국 물에서도 최소한 3분은 우려 주어야 한다.
 

사실, '티백이니 짧게 우려야 한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티백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찻잎의 크기나 분쇄도가 중요한 것이다. 티백 안의 찻잎 크기를 살펴 우리는 시간을 결정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영국에서는 시음 평가를 할 때 종이 티백은 대개 3분, 고급 메쉬mesh 티백은 5분을 우려 평가한다. 티백의 재질에 따른 것이 아니라 찻잎의 크기에 따른 것이다. 고급 메쉬 티백 안에는 실한 잎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 참고로, 어린 잎은 쇤 잎보다 침출이 빠르다. 이 점도 고려를 해야 한다. 복잡한가?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그냥 차 회사가 포장에 써 놓은 지침을 따르면 된다.

 


"떫은 성분이 우러날 수 있으므로 티백은 절대 꾹 누르거나 흔들어 짜내지 말라."

 

영국식 밀크티용 홍차에는 해당되지 않는 소리다. 과학자들과 차 회사들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알뜰하게 짜서 쓸 것을 권하고 있다. 우유와 설탕을 타기 때문에 밀크티용 홍차는 진국일수록 좋다. '티백 스퀴저'라는 것이 왜 팔리고 있으며, '스퀴즈'가 무얼 뜻하는지 영어 사전을 한 번만이라도 들춰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우유 안 넣고 마시는 차들, 예를 들어, 다질링, 얼 그레이, 질 좋은 아쌈 등은 티백을 건진 후 짜지 않고 그냥 버리는 것이 맞다. 그런데 사실 누가 다질링, 얼그레이, 질 좋은 아쌈 등을 티백으로 먹나. 종이맛이 잔뜩 나서 향이고 뭐고 당최 음미할 수가 없을 텐데. 고급 메쉬 티백이라면 몰라도.

 



기웃이: 흥, 그렇게 잘났으면 댁이 한국 와서 홍차 전문가 하시구려.


잘나지 않았으니 전문가 행세 않고 구석에 콕 처박혀 이렇게 소심하게 글질하고 있잖나. 파워 블로거 될까봐 양질의 글 쓰는 것도 극도로 자제하고 있고.


한국에는 설익은 지식을 팔면서 전문가 행세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런 과대포장된 사람들도 문제지만, 검증도 안 하고 내보내는 언론은 더 문제다. 전문가 이름표 단 사람이 나와 자신에 찬 표정으로 이야기하면 의심 한 번 않고 '그렇구나아.' 끄덕끄덕하는 독자나 청중도 문제다. 독창적으로 글 쓸 생각 않고 어쩌면 그렇게들 열심히 '전문가'의 틀린 정보들을 퍼다 나르는지. 레서피를 올리거나 사 먹은 음식 자랑을 하면서도 엉터리 효능 정보로 도배해 놓는 블로그 천지에.


책만 읽고 전문가 행세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책은 느리다. 책도 읽으려면 여러 권을 읽어야 한다. "책 한 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도 있잖나. 활자를 맹신하는 것도 경계할 일이다. 백과사전도 믿으면 안 된다. 한국의 권위 있다는 백과사전에 등재된 영국 관련 항목, 식품 관련 항목들에 엉터리 정보가 많다. 그런데도 "백과사전에서 봤다"며 박박 우기는 사람이 많다. 위키피디아 보고 글 쓰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어제 본 정보와 오늘 본 정보가 다른데, 오류가 정정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장난질로 정보가 바뀌는 일이 허다하다. 아무나 손댈 수 있다는 점이 위키피디아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전문가 행세하려면 책뿐 아니라 신문, TV, 라디오, 업계 소식지, 각종 통계 자료, 설문조사 결과, 일상에서 내 이웃이나 길거리의 보통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까지도 두루 관찰해 최신 정보를 끊임없이 습득하고 종합하고 틀린 정보를 갱신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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