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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에그 커스타드 타르트, 메이즈 오브 오너 타르트, 그리고 포르투갈의 빠스뗄 드 나따

단 단 2014. 10. 5. 00:00

 

 

 

포르투갈의 에그 타르트 '빠스떼이즈 드 나따Pasteis de Nata'.

 



많은 분들이 포르투갈의 에그 타르트와 영국의 에그 커스타드 타르트를 헷갈려 하시는 것 같아서 오늘은 이에 대해 글을 좀 써보려 합니다. 포르투갈 여행을 하셨던 블로그 이웃님께서 현지에서 에그 타르트를 사 드시고 소회를 적은 글입니다. ☞ 포르투갈의 커피와 빠스뗄 드 나따

 

포르투갈 사람들은 관광객들이 "에그 타르트 주세요." 하면 "우리 것은 타르트 아닌데..." 한답니다. 영국 것은 타르트가 맞지만 포르투갈 것은 타르트라 부르면 별로 안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포르투갈의 에그 타르트는 18세기에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기록이 돼 있죠. 영국의 에그 커스타드 타트는 그보다 훨씬 오래 전에 기록이 있습니다. 영국인들은 모음과 자음 사이의 'R'을 발음하지 않기 때문에 'tart'를 '타르트'라 발음하지 않고 모음을 길게 빼서 '타아트'라고 발음합니다. 영국 것은 이하 '타트'라고 쓰겠습니다.

 

영국의 에그 커스타드 타트는 1300년대 중세 때 이미 그 조리법이 완성된 아주 오래된 음식입니다. 지금도 조리법이 많이 다르지 않아요. 클래식 중의 클래식이라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80세 생일 만찬에도 이 에그 커스타드 타트가 디저트로 제공이 됐었지요. 미슐랑 스타 셰프Marcus Wareing가 공들여 만들었으니 수퍼마켓에서 보는 제품과는 물론 차원이 달랐겠지만요.

 

 

 

 

 

 

 


영국의 에그 커스타드 타트.

비교 시식을 위해 여러 수퍼마켓에서 사 온 제품들.

 


포르투갈의 에그 타르트와 영국의 에그 커스타드 타트가 완전히 다르게 생겼죠? 외형을 놓고 구별하는 데는 전혀 문제 없으리라 봅니다. 영어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리는 거지요.



포르투갈의 에그 '타르트'


공식 이름: Pastel de Nata. 복수형은 Pasteis de Nata.

 

탄생 시기: 18세기 리스본의 수도원 Jerónimos Monastery. 당시 수녀복 풀 먹이는 데 달걀 흰자를 많이 썼기 때문에 노른자 처치 차원에서 개발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음식사학자들 중에는 다른 의견을 내는 이들도 있음. 아래의 '전파 경로' 참고.

 

재료: 퍼프 페이스트리puff pastry, 달걀, 우유, 설탕, 전분, 바닐라, 시나몬 파우더 등.

 

크기: 1인용으로 작게 만듦.

 

먹는 법: 따끈할 때 먹음.

 


영국의 에그 커스타드 타트


공식 이름: Egg Custard Tart. 줄여서 Egg Custard, 혹은 Custard Tart라고도 하지만 제대로 된 이름은 아님.


탄생 시기: 14세기   

재료: 쇼트 크러스트 페이스트리short crust pastry, 달걀, 우유 또는 크림, 설탕, 바닐라, 넛멕nutmeg 등. 넛멕 대신 시나몬 파우더를 뿌리는 경우도 있는데 정통은 아님.

 

크기: 지름 약 8 cm 정도의 1인용으로 굽거나 지름을 크게 만들어 웨지로 잘라 먹음.


먹는 법: 실온 상태로 즐김.

 

 

 

 

 

 

 


<세인즈버리즈> 수퍼마켓의 에그 커스타드 타트.

 

 

 

 

 

 

 


<웨이트로즈> 수퍼마켓의 에그 커스타드 타트.

 

 

 

 

 

 

 


<막스 앤드 스펜서>의 에그 커스타드 타트.

 

 

 

 

 

 

 


하나씩 꺼내 늘어놓기.

위에서부터 <세인즈버리즈>, <웨이트로즈>, <막스 앤드 스펜서>

 

 

 

 

 

 

 


<세인즈버리즈>와 <웨이트로즈> 것은 
같은 곳에서 납품하는 듯.

똑같은 맛에, 똑같이 맛없음.

 

 

 

 

 

 

 


<막스 앤드 스펜서> 것이 제대로 맛남.

반을 갈라 속을 보기로.

 

 

 

 

 

 

 


꿈같은 단맛에 보들보들 촉촉, 
위에 뿌린 넛멕도 향이 제대로임.

 

 

 

 

 

 

 


영국의 메이즈 오브 오너 타트Maids of Honour Tart.



자, 이건 또 뭐냐면요,
영국의 '메이즈 오브 오너'라는 이름의 타트입니다. 이거야말로 생김새가 포르투갈의 빠스뗄 드 나따와 닮았죠. 즉, 포르투갈 에그 타르트는 이름은 영국의 에그 커스타드 타트와 비슷하고 생긴 건 메이즈 오브 오너 타트와 비슷한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헷갈려하는 것 같아요. 포르투갈의 에그 타르트는 영국의 메이즈 오브 오너보다 달걀맛이 더 납니다. '에기eggy'하죠. 메이즈 오브 오너에는 달걀 외에 치즈와 레몬이 더 들어가기 때문에 풍미가 진하고 복잡하면서도 동시에 상큼한 느낌이 납니다. 이 세 가지 중에서는 메이즈 오브 오너 타트가 가장 맛있는데, 영국 밖에 많이 안 알려진 게 다만 아쉬울 따름입니다. 메이즈 오브 오너 타트에 들어가는 치즈가 영국에서만 볼 수 있는 신선 치즈인데 금방 상해서 영국 밖에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영국에 있을 때나 많이 먹어 둬야지요.



영국의 메이즈 오브 오너 타트


공식 이름: Maids of Honour. 'Richmond tart'로 불리기도 하나 공식 이름은 아님.


탄생 시기: 튜더 시대. 즉, 15세기.


재료: 초기에는 러프 퍼프 페이스트리였다가 후에 퍼프 페이스트리로 바뀜. 달걀, 설탕, 커드 치즈, 아몬드 가루, 레몬 등. (시나몬 가루나 넛멕 가루는 쓰지 않음.)


크기: 1인용으로 작게 만드나 크기는 만드는 이마다 다양할 수 있음.


먹는 법: 따끈할 때 먹음.

 

타트 이름이 재미있죠? '메이즈 오브 오너'가 미국에서는 신부의 들러리를 뜻하지만 원래는 영국에서 여왕의 수발을 들던 귀족 부인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왕비로서의 여왕은 4명, 군주로서의 여왕은 8명까지 곁에 두고 부릴 수 있었습니다. 이 타트는 헨리 8세가 리치몬드 궁에서 즐겨 먹었다고 해서 '리치몬드 타트'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헨리 8세가 즐겼다니 이것도 꽤 오래된 음식이죠. 리치몬드는 예로부터 제과로 유명하던 동네입니다.

 

 

 

 

 

 

 



리치몬드의 한 오래된 티룸에서 사 먹고 찍어 둔 사진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단맛 나는 타트 중 저는 영국의 이 메이즈 오브 오너 타트와 스트로베리 타트를 가장 좋아합니다. 둘 다 튜더 시대를 대표하는 음식입니다. 예로부터 딸기가 많이 나던 영국이라 딸기 타트의 내공도 상당합니다. 생딸기를 그냥 얹지 않고 딸기에 무슨 짓을 한 것 같은데 비법을 도통 알 수 있어야죠. 딸기 타트가 차갑지 않고 메이즈 오브 오너 타트처럼 따끈했습니다.

 

 

 

 

 

 

 

 


집에서 메이즈 오브 오너 만들기 - 4차 실험.



리치몬드의 티룸에서 먹었던 메이즈 오브 오너가 하도 맛있어서 집에서 그간 여러 차례 시도를 해봤는데요, 똑같은 맛 내기가 쉽지 않네요. 재료와 공정을 이렇게저렇게 바꿔 가며 구워 보는데, 이것도 나름 맛있긴 하나 그 때 그 맛은 안 납니다. 아직도 레서피를 못 정하고 계속 실험해 보는 중입니다. 페이스트리도 바꿔 보고, 치즈도 여러 가지로 바꿔 써 보고, 레몬 커드curd도 넣어 보고, 사진에 있는 당절임 레몬 껍질도 넣어 보고 별짓을 다 해보는 중입니다. 사진에 있는 것은 4차 실험해서 나온 결과물인데, 사실 이것도 맛은 아주 좋아요. 그래도 외모까지 똑같아 보이도록 계속 도전해 보렵니다. 5차 실험에서는 오븐 온도에 변화를 주고, 페이스트리 두께를 늘리고, 소 양을 줄이고, 레몬 커드 적용 순서를 바꿔 보려고 합니다. 응원해 주세요.

 

 

 

 

 

 

 


5차 실험. 맛은 이제 파는 것보다 더 좋아졌으나 모양은 아직.

 

 

 

 

 

 

 


에그 타르트가 담긴 마카오 우표 [2010년 발행]

 

 

 

 

 

 

 


에그 타르트와 홍콩식 밀크티가 담긴 
홍콩 우표 [2012년 발행]

 



포르투갈, 홍콩, 마카오로의 에그 타르트 전파 경로


① 영국 → 포르투갈 (찰스 2세 사후 포르투갈 출신 왕비가 본국으로 귀국하면서)
② 영국인 앤드류 스토우Andrew Stow의 에그 타트 → 마카오 (1989년)
③ 영국인 앤드류 스토우Andrew Stow의 에그 타트 → 홍콩 (1997년)
④ 영국 → 홍콩

 

홍콩·마카오 등지에서 보이는 에그 타르트의 시조를 저 포르투갈의 빠스뗄 드 나따pastel de nata로 보고들 있지요. 그러나 오늘날 마카오에서 여행객들이 열심히 사 먹는 에그 타르트와 홍콩에서 볼 수 있는 두 가지 형태의 에그 타르트는 모두 포르투갈식 타르트가 아니라 영국식 타트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한국에는 많지 않은데, 에그 타르트가 마카오의 명물이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마카오에 정착한 한 영국인Andrew Stow이 포르투갈의 빠스뗄 드 나따 대신 영국의 에그 커스타드 타트와 메이즈 오브 오너 타트를 결합해 만든 영국식 타트를 만들어 팔기 시작합니다. 1989년의 일입니다. 입소문이 나 1997년에는 홍콩에도 분점을 냈고, 오늘날 마카오와 홍콩의 국가 대표 간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공은 포르투갈이 다 가로채고 있네요. 원조는 이 영국인의 가게입니다. ☞ Lord Stow's Bakery in Macau

 

홍콩은 마카오의 저 영국인 베이커리를 통해 1997년에 들여 온 퍼프 페이스트리 타트와, 영국 통치 기간에 영국에서 직접 전해진 단단한 쇼트 페이스트리의 에그 커스타드 타트, 두 가지를 모두 선보이고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심지어 포르투갈에서 먹는 빠스뗄 드 나따도 저 옛날 영국에서 전해진 거라고 보는 음식사학자들이 있습니다. 앞서 설명 드렸듯 영국의 두 타트들은 포르투갈 타르트보다 훨씬 오래됐죠. 영국의 두 에그 타트들을 다시 상기시켜 드리자면,


영국의 에그 타트들
• 에그 커스타드 타트custard tart [1390년대] [쇼트 페이스트리]
• 메이즈 오브 오너 타트maids of honour [헨리 8세 시대][초기에는 '러프 퍼프 페이스트리'였다가 '퍼프 페이스트리'로 바뀜]

 

음식사학자들은 영국의 이 두 타트가 포르투갈에 전해져 포르투갈의 에그 타르트 탄생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보는데, 다음의 전파 경로를 그 근거로 듭니다.


찰스 2세[재위기간 1660-1685]의 부인이 포르투갈에서 시집 온 공주였죠.[Catherine of Braganza]. 찰스 2세가 먼저 죽어 미망인이 되자 조국인 포르투갈로 다시 돌아가 그곳에서 일찍 모후를 여읜 어린 왕자(조카)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장기 출타한 왕의 대리 역할을 하기도 하다가 생을 마감합니다. 궁정에서 꽤 중요한 인물이었죠. 이때 이 미망인 왕비를 통해 영국의 문화와 음식 등이 포르투갈에 전해졌을 게 분명합니다. 그 중에는 커스타드 타트와 메이즈 오브 오너 타트도 끼여 있었을 테고요. 영국의 이 두 타트들이 포르투갈에 전해지면서 이후의 빠스뗄 드 나따의 탄생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보는 거지요. 포르투갈 사람들은 아니라고 펄쩍 뛰겠지만요.

 

영국인들은 영국음식들 중 일부가 남의 나라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음식이라는 사실에 불쾌해 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피쉬 앤 칩스의 생선 튀김도 저 옛날 유태인 이민자들이 영국으로 가지고 들어온 거지요. 영국인들은 피쉬 앤 칩스를 먹을 때 유태인 이민의 역사 및 특정한 요일에는 고기를 먹지 못 하게 해 대신 생선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가톨릭 시절 전 유럽의 관행을 떠올리며 그냥 맛있게 먹을 뿐입니다. 음식이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 으레 다른 고장 사람들이나 이민자들에 의해 영향을 받기 마련이라는 생각들을 하기 때문이죠. 반대로 영국음식들도 다른 나라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고요. 우리 한국인들도 샌드위치 즐기고, 딸기와 크림 먹고, 감자칩 사 먹고, 결혼식 피로연 때 하객들 앞에서 여러 단으로 된 웨딩 케이크 놓고 자르잖아요? 그게 다 영국의 영향인걸요.

 

인문학적 소양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자국의 무언가가 타국의 영향을 받아 생겼다는 사실을 불쾌한 일로 여기지 않지요. 그런데 어떤 이들은 자기들 전통음식인 줄 알고 열심히 먹어 왔던 음식, 혹은 우리 선조들만의 독특한 유산인 줄 알고 자랑스러워 하며 누려 왔던 것들에 대해 누군가가 외국에 이미 비슷한 음식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말하거나 외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적시하면 마치 자기 자존심에 손상을 입은 양 매우 흥분을 하거나 화를 내면서 인정하지 않으려 듭니다. 음식의 원조를 논할 때 기록을 살펴 가며 객관적으로 따져 보지 못하고 쉽게 흥분하는 사람들 많이 보셨죠.


어쨌거나 기록상으로는 영국의 에그 타트들이 포르투갈 것보다 수 백년을 앞서 있고, 이건 포르투갈 사람들이 인정하고 싶든 말든 '팩트'입니다. 마카오와 홍콩의 명물 에그 타르트가 실은 마카오에 있던 영국인 가게에서 퍼져 나간 영국식 타트였다는 것도 엄연히 기록에 남아 있는 사실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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