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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 스머프

인스탄트 라면과 스팸

단 단 2014. 10. 18. 02:28

 

 


다음Daum 미즈넷의 요리방 이름이 '미즈쿡'에서 '요리'로 바뀌었다. 얼마 전 미즈쿡이라는 방 이름을 놓고 시대착오적이라고 불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집에서 요리는 여자들만 하는 게 아니므로.) 그리고 나서 5년 넘도록 쓰이던 방 이름이 갑자기 바뀌었다. 우연일까?

 

나는 여전히 미즈넷에 올라오는 집밥들을 열심히 관찰하고 있다. 오늘은 미즈넷 요리방의 단골 소재인 인스탄트 라면과 스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인스탄트 라면과 스팸은 한때 나도 몹시 즐긴 적이 있으나 이제는 잘 안 먹는 식품들이다. 라면을 마지막으로 먹은 지는 3년 되었고, 스팸 안 먹은 지는 15년 정도 되었다. 지금은 안 먹지만 인스탄트 라면과 스팸이 왜 그토록 우리를 사로잡는지 그 이유는 충분히 알고 있다. (맛있잖아.)


다음이 스팸의 한국 대리 생산자인 CJ로부터 뒷돈을 받기라도 하는 건지, 잊을 만하면 대문에 스팸 레서피를 광고처럼 띄운다. 명절이 가까워질수록 노골적이다. 아예 미즈넷 요리방 안에 스팸 고정 코너도 다 마련해 놓았다. 라면이나 어묵처럼 생산자가 여럿인 식재료도 아니고, CJ라는 특정 기업이 미국 회사로부터 라이센스를 얻어 독점 생산 판매하는 특정 상품인데, 이토록 특혜를 베풀며 열심히 광고해 주는 포탈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런데 이걸 트집 잡으려는 게 이 글의 목적은 아니고, 오늘은 스팸을 대하는 한국 주부들의 특이한 태도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스팸은 꼬마들 도시락에서부터 여염집 저녁 식탁의 김치찌개, 아빠의 술안주와 야식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안 들어가는 곳이 없을 정도로 흔해졌다. 미즈넷에 올라 오는 수많은 스팸 레서피들을 보면 한 가지 특이한 점이 눈에 띄는데, 다들 열심히 물에 데쳐서 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말들을 한다. "염분과 몸에 나쁜 성분들을 다소 제거하기 위해 반드시 물에 한 번 데쳐서 써 주세요."


?

스팸 먹으면서 건강을 생각해?

 

스팸은 건강이 아니라 맛 때문에 먹는 식품이다. 그런데 왜 다들 물에 데쳐 맛을 빼내는 걸까? 좀 짜면 어떤가? 장조림도 먹는데. 아질산염 같은 방부제나 발색제 따위가 걱정되면 가공육을 먹지 않으면 될 텐데, 굳이 가공육을 선택해 사 와서는 먹으면서 염분과 첨가물 걱정을 한다. 심지어 소세지에 칼집까지 넣어 물에 데치는 사람도 봤다. 첨가물이 그렇게 염려되면 발품 팔아 좋은 걸 구해 먹든지 직접 만들어 먹든지 하면 될 텐데. 한국에도 이제 수제 소세지 많이 팔지 않나. 취미로 돼지고기 사다 집에서 양념 연구해 가며 직접 만드는 젊은 아빠들도 수두룩하더만.

 

스팸이 짜다는 것, 갈아 만든 공장제 가공육이니 최상급의 고기를 쓰지는 않았을 거라는 것, 살코기기뿐 아니라 비계도 많이 넣었다는 것, 발색제를 넣었기 때문에 그토록 어여쁜 색이 난다는 것, 다들 알면서 먹는 건데 어차피 몸에 좋을 거 하나 없는 식품, 기왕이면 맛있게 먹는 게 좋지 않나?


스팸은 깡통에서 꺼내 두툼하게 썰어 물에 데치지 않고 곧바로 지짐판에 약간의 크러스트가 형성될 정도로 지져 먹는 게 가장 맛있지 않나? 갓 지은 흰 쌀밥 위에 잘 지진 스팸 한 조각. 겉은 노릇노릇 바삭바삭, 속은 촉촉. 발그레한 빛깔뿐 아니라 부드럽게 둥굴린 모서리조차도 아름답지 않았나.
(아, 고온에 지져질 때 나는 그 환상적인 누린내.)


즉, 
스팸은 건강 생각해서 아예 안 먹든지, 먹을 땐 최대한 맛있게 먹든지, 둘 중 하나를 하라는 것이다. 애들한테 건강한 음식만 해먹이는 줄 착각하는 '깨인' 엄마들의 질타성 댓글이 두려워 미즈넷에 스팸 요리 올리는 소심한 엄마들은 오늘도 열심히 스팸을 물에 데친다. 김치 한 조각, 젓갈 한 젓가락 덜 먹으면 될 일을.


라면도 그렇다. 언론에서 라면 공격용으로 쓰는 세 가지 무기 - 나트륨, 포화지방, 고열량. 이 때문에 분말 수프 양을 줄여 넣고 면을 물에 헹구는 주부들이 수두룩하다. 냄비 두 개 쓰는 집도 많고.


허나,
라면의 더 큰 문제는 이런 데 있지 않고 탄수화물을 고온의 기름에 튀기는 데서 오는 발암물질 생성에 있다. 기름도 팜유를 쓰니 엎친 데 덮친 격이지만 설사 좋은 기름을 쓴다 해도 그놈의 아크릴아마이드라는 발암물질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데스티니'인 것이다. 아크릴아마이드는 물에 헹군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는데. 이건 코쟁이들 먹는 감자튀김도 마찬가지, 고온에 굽는 빵과자들도 다 마찬가지. 그러니 인스탄트 라면을 기껏 끓여 스팸처럼 물에 열심히 헹구는 것도 다 부질없는 짓이다. 팜유를 조금 덜 먹게 되니 칼로리나 좀 줄일 수 있을까. 그럴 거면 뭐하러 튀긴 면을 먹나? 우리 주변엔 안 튀긴 면도 널렸는데. 소면도 있고, 우동면도 있고, 메밀면도 있고, 중국인들 즐기는 노오랗고 고소한 에그 누들도 있고, 코쟁이들 먹는 스파게티 면도 있는데, 인스탄트 라면만이 갖는 특장점인 튀긴 면을 사 놓고는 왜 안 튀긴 면 흉내들을 내고 있나. 스팸처럼 인스탄트 라면도 건강을 생각해 아예 안 먹든지, 먹으려면 튀긴 면 특유의 질감과 느끼함을 만끽하든지, 둘 중 하나를 하란 말이다. 차라리 먹는 횟수를 줄이고, 먹을 때는 물에 헹구지 말고 수프 다 넣고, 짜고 기름지게, 맛있게 드시라. 인스탄트 라면 먹으면서 '건강하게 먹는 법'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보라, 스팸의 고향 미국에서는 이렇게 튀겨서도 먹는다잖나.
노출이 심한 옷을 기왕 입었으면 
쭈뼛대지 말고 당당하게 행동하고,
스팸을 사 왔으면 눈치 보지 말고 
최대한 사악하고 맛있게 해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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