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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 프랑스 브랭 드 빠이유 Brin de Paille 본문

세계 치즈

치즈 ◆ 프랑스 브랭 드 빠이유 Brin de Paille

단 단 2015. 1. 17. 00:30

 

 

 

 

 

 

 

 

불어의 한글 표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프랑스 치즈를 사면 치즈 이름을 한글로 옮길 일부터 걱정을 하게 됩니다. 이 치즈도 신생 치즈입니다. 랑크또 사의 낱개 포장 흰곰팡이 연성 치즈입니다.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아래 쪽에서 저온살균한 소젖으로 만듭니다. 노르망디는 꺄몽베흐 생산지이기도 하지요. 브랭 드 빠이유는 열흘간 숙성을 시킵니다. 뭣? 열흘? 열흘 숙성도 숙성이라 부르냐? 꺄몽베흐는 약 4주, 브리는 8주째가 가장 맛있다는데, 너는 고작 10일이냐?

 

프랑스 흰곰팡이 연성 치즈를 사는 게 두려운 이유
다쓰 부처는 사실 프랑스 치즈의 대표 주자격인 흰곰팡이 연성 치즈들을 살 때마다 약간의 두려움을 느낍니다. 복불복이거든요. 제대로 숙성돼서 풍미가 최고조에 달한 맛있는 흰곰팡이 연성 치즈를 만날 확률이 너무나 적습니다. 프렌치들이 치즈를 못 만들어서가 아니라(못 만드는 생산자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이런 초단기 숙성 치즈들은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빈티지'이므로 단 며칠 차이로도 맛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입니다. 어제 사 먹었던 더럽게 맛없었던 치즈가 낼 모레 다시 사 먹었을 땐 아주 맛있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많아요. 최적의 풍미를 단 며칠간만 유지하므로 풍미가 최고조에 이른 치즈가 국경 넘어 수입국 허브에 모였다가 수퍼마켓 각 지점들에 일일이 전달되고 있으면 벌써 맛이 한참 가버리게 되니 맛있게 익기도 전에 미리 납품을 받아 공급하는 수밖에요. 포장에 꽁꽁 싸여 있기 때문에 소비자는 이게 제대로 익은 건지 알 길이 없어요. 그러니 맛없는 흰곰팡이 연성 치즈를 먹을 확률이 그토록 높은 거지요.

 

프랑스 흰곰팡이 연성 치즈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제 생각엔, 산지나 산지 가까운 동네에 살면서 생산자가 맛이 최고조에 달할 때까지 잘 숙성시킨 것을 그날그날 사다 먹는 걸 겁니다. 몇 년간 장기 숙성시키는 경성 치즈들은 아무래도 이런 부담이 적지요. 그래서 연성 치즈로 유명한 프랑스이지만 오히려 경성 치즈를 사 먹는 쪽이 맛없는 치즈 만날 확률이 적더라고요.


브랭 드 빠이유는 치즈를 숙성시킬 때 깔았던 밀짚 깔판을 뜻한다고 합니다. 치즈 포장 전면에도, 속에도 밀짚 깔판 사진이 보이죠?

 

 

 

 

 

 

 



지름 11cm, 두께 2cm, 무게 150g의 작고 납작하고 가벼운 치즈입니다. 두세 명이 앉은자리에서 깔끔히 다 먹을 수 있겠습니다. 이런 치즈를 보면 손가락으로 꾹 눌러 보고 싶지 않으세요? 푹신푹신, 기분 좋은 탄력이 느껴집니다. 껍질에 코를 가까이 대고 향을 맡는데 향이 거의 안 느껴지네요. 흰곰팡이 연성 치즈에서 으레 나기 마련인 버섯향이라든가, 곰팡내라든가, 희미한 누룩향이라든가, 이런 게 안 납니다. 이렇게 껍질에서 향 안 나는 치즈는 처음입니다.

 

 

 

 

 

 

 

 


캬, 치즈 속살 흘러내리는 것 좀 보세요. 뭔가 야하지 않습니까? 냉장고에서 꺼내자마자 자른 건데도 막 흐릅니다. 한 조각 입에 넣어 보니 살짝 쓴맛이 먼저 느껴지면서 짭짤하네요. 버터 풍미가 희미하게 느껴집니다. 껍질은 손으로 만졌을 때 느낀 그대로 폭신하면서 쫄깃합니다. 딱딱하거나 단단하거나 질기지 않고 부드럽고 기분 좋게 씹힙니다. 속살은 마치 매끄러운 치즈 소스 같아요. 사진에서도 속살에 광이 나는 게 보이죠. 전반적으로 식감은 참 좋습니다. 질감이 주는 관능미는 프랑스 연성 치즈들의 특징이자 장점이죠.

 

허나, 애석하게도 풍미는 매우 약합니다. 매력적인 풍미가 난다거나 개성이 있다거나 하지 않고 많이 싱겁습니다. 간이 싱겁다는 게 아니라 풍미가 약해서 싱거워요. 심지어 흰곰팡이 연성 치즈 껍질에서 흔히 기대되는 버섯 풍미조차도 안 납니다. 속살이 소스처럼 흐르니 빵에 바르면 잘 발릴 듯하나, 빵과 함께 먹으면 빵의 누룩 풍미에 치즈가 묻히겠어요. 그 정도로 풍미가 약합니다. 고소하지도 않고, 달지도 않고, 우마미도 전혀 안 나는데다, 숙성 브리나 꺄몽베흐 같은 톡 쏘는 김치 느낌도 없고, 이푸아스 같은 매력적인 누룩 풍미도 안 나는, 그냥 순둥이 치즈입니다. 관능적인 질감과 짭짤한 맛 하나로 먹는 치즈인 것 같아요.

 

고로, 이 치즈는 이번 한 번 경험으로 족할 듯합니다. 내 돈 내고 다시 사 먹을 것 같지는 않고, 누가 사 주면 두 번 사양했다가 세 번 권하면 겨우 받아서 먹을 그런 치즈입니다. 이 치즈를 살 돈이 있으면 저 같으면 숙성 브리나 꺄몽베흐를 사 먹겠습니다. 그간 프랑스 흰곰팡이 연성 치즈들은 이것저것 많이 먹어 봤는데, 맛있는 치즈 만나기가 참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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