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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치즈

치즈 ◆ 프랑스 포르 살뤼, 뽀르 쌀뤼 Port Salut

단 단 2015. 1. 17. 01:00

 

 

 

Pays de la Loire, France.

 

 

 

 

 

 

 

 

 


원래는 뻬이 들랄루와 레지옹Pays de la Loire région의 마옌 데빠르트멍Mayenne Department에 있는 마옌 강변의 엉트램므Entrammes 고장의 뽀르-랭겨르Port-Ringeard 마을에 있는 뽀르-뒤-쌀뤼의 성모Notre Dame du Port-du-Slaut 수도원에서 생산하던 치즈입니다. (헥헥) 지금은 공장제 대량생산 치즈로 '전락'했고, 독일 국경 지역에서 만듭니다. 반연성 저온살균 소젖 치즈입니다. 치즈 껍질이 눈이 부실 만큼 선명한 형광 오렌지빛을 띠고 있고 표면에 독특한 무늬가 나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무게 약 2kg, 지름 23cm 정도 되는 원반형으로 생산하나, 이 치즈는 아예 이렇게 조각으로 잘라 포장을 해서 수퍼마켓에서 파는 게 일반적입니다. 치즈 전문 가게를 가면 옛날 방식 대로 제대로 만드는 포르 살뤼를 살 수 있을 겁니다. 대신 값이 비싸겠지요.

 

 

 

 

 

 

 

 


역사가 좀 복잡합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모든 계급을 타파하겠다며 수도원 재산을 몰수하고 해체를 합니다. 이때 트라피스트 수도승 중 많은 이들이 어쩔 수 없이 스위스로 망명을 하게 되는데, 먹고 살기 위해 그곳에서 치즈 제법을 배우게 되었다죠. 그러다가 1815년 왕정복고 때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스위스에서 습득한 치즈 제조 기술을 가지고 포르 살뤼 치즈를 만들어 팔기 시작합니다. 시토 수도회의 좀 더 엄격한 한 분파였던 이 트라피스트 수도승들은 주민들 삥 뜯지 않고 수익 사업을 벌여 자력으로 수도원을 꾸려 간다는 독특한 철학이 있어, 수도원에서 각종 치즈와 빵, 술, 옷, 심지어 관까지 다 만들어 내다 팔았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들은 달걀과 치즈조차도 먹지 않는 비건vegan에 가까운 엄격한 식단을 고수하던 자들이라 자기들이 실컷 만들어 파는 것들을 먹을 수도 없었다 하니 재미있습니다.

 

1873년에는 수도원이 포르 살뤼의 독점 판매권을 파리의 한 치즈 상인에게 주어 대중화했고, 1874년에는 치즈 이름을 등록, 1959년에는 치즈 이름뿐 아니라 치즈 제조 권리까지 아예 거대 낙농기업 <벨Bel> 사의 자회사 "Société Anonyme des Fermiers Réunis" (SAFR)에 양도를 하게 됩니다. <벨> 사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깍두기 모양의 작은 포장 치즈 '라핑 카우The Laughing Cow'를 만드는 회사죠. 수도승들이 공들여 만들던 아티잔 치즈가 거대 낙농기업의 주력 상품이 되면서 공장제 대량생산품이 된 거죠. 특정 기업이 생산하는 공장제 치즈가 되어서 그런지, 꽤 유명한 치즈인데도 치즈 사전에 등재가 되어 있질 않고, 자국 AOC나 유럽연합 PDO 제도로도 보호를 못 받고 있네요. 그냥 치즈 이름 옆에 등록상표(®) 표시가 붙어 있습니다.

 

 

 

 

 

 

 

 


아아, 치즈 참 정신 버쩍 들 정도로 예쁘지 않습니까. 프렌치들, 하여간 치즈 예쁘게 만드는 거 하나는 알아줘야 합니다. 마카롱처럼 색소를 써서라도 기어이 예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입니다. 영국에도 이 포르 살뤼와 비슷한 치즈가 있는데, 그건 당근 색소를 써서 그런지 이렇게까지 선명한 색이 안 납니다. 포르 살뤼는 아나토annatto를 써서 색을 냅니다.

 

그런데, 굳이 쓰지 않아도 될 색소까지 써 가며 치즈를 만드는 데는 심미적인 이유 외에 또다른 '음험한' 이유가 있습니다. 본래 수도승이 만들던 정통 포르 살뤼는 숙성 기간 동안 치즈 표면을 반복해서 소금물로 닦아 만들던 'washed rind' 치즈, 그렇게 해서 표면의 이로운 박테리아가 치즈 속으로 스며들어 좋은 풍미를 내며 숙성돼 가는 'smear-ripened' 치즈로 분류가 되던 치즈입니다. 공장제 대량생산 치즈로 바뀐 뒤로는 이 작업을 하는 게 불가능해졌죠. 빨리 많은 양을 생산해야 하는데 언제 치즈를 일일이 선반에서 꺼내서 뒤집고 닦아 주고 제자리 돌려 놓는 짓을 반복하고 있겠습니까. 전통 제법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주황색 껍질을 노력 않고 흉내 내려니 표면을 색소로 억지로 물들일 수밖에요. 게다가, 공장제 대량생산 포르 살뤼는 치즈가 숙성에 들어가기 전에 플라스틱으로 싸 버리기 때문에 매력적인 겉껍질조차 형성되질 않지요. 그래서 치즈 표면이 촉촉하면서 부드러운 겁니다.

 

치즈 표면에 덮인 저 색소와 왁스로 만든 주황색 얇은 그물막은 먹어도 죽지는 않으나 까실거리면서 치즈 자체의 풍미를 해치기 때문에 걷어내고 먹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것도 모르고 저는 껍질이 하도 얇길래 먹는 건 줄 알고 껍질째 그냥 다 먹었습니다. 다 먹고 포장에 써 있는 깨알 같은 글씨를 들여다보니 구석에 쬐끄맣게 "Inedible rind - 껍질 먹지 마시오."가 써 있네요. 칼로 썰 때 주황색 얇은 그물막이 치즈와 분리되면서 떨어지는 걸 보고 진작에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말이죠. 젠장.

 

포르 살뤼는 그럼 이제 공장제 제품만 존재하느냐? 다행히도 아직 수도원에서 수제 아티잔 치즈를 내고 있다고 합니다. 치즈 전문 가게를 가야 볼 수 있겠지요.

 

 

 

 

 

 

 



자, 타락한 공장제 대량생산 포르 살뤼를 한번 맛봅시다.

 

맛은 놀라울 정도로 순합니다. 오리지날 전통 포르 살뤼에 비해 턱없이 싱겁고 매가리 없는,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치즈라고 포르 살뤼 애호가들은 한탄을 하죠. 저는 오리지날 포르 살뤼를 모르니 그냥 수퍼마켓에서 살 수 있는 저렴한 공장제 대량생산 치즈로 취급을 해 객관적으로 평가를 하자면요, 맛 나쁘지 않아요. 꽤 즐길 만합니다. 바로 전에 소개해 드렸던 브랭 드 빠이유Brin de Paille처럼 순하면서 풍미가 약해 싱거운 치즈가 있는가 하면, 순하면서도 맛이 꽉 차고 고소한 치즈들이 있는데, 이 포르 살뤼는 다행히도 후자에 속합니다.

 

역시나 같은 계열의 치즈인 영국의 ☞ 세인트 자일스와 외모, 질감, 맛등 모든 면에서 비슷합니다. 이 공장제 포르 살뤼가 약간 더 단단한 것 같기는 합니다. 유기농 치즈인 세인트 자일스와는 달리 포르 살뤼에는 나타마이신이라는 첨가물이 들었는데, 방부제인 모양입니다. 자연치즈에 방부제라니, 좀 의아하긴 하지만 이걸 넣어야 표면에 잡균이 번식하지 못한다는군요.

 

질감도 매우 좋습니다. 입에 쫀득쫀득 달라붙으면서 부드럽게 녹아요. 버터 풍미가 물씬 나고 씁쓸한 누룩 풍미도 약간 납니다. 간도 적당합니다. 기분 좋을 정도의 약한 산미도 느껴집니다. 맛있는 가염 버터를 먹는 것 같아요. 영국의 세인트 자일스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느끼해서 맨입에 많이 먹지는 못하겠습니다. 세 쪽 먹고 나니 물리네요. 신 과일이나 쨍한 처트니, 영국 ☞ 호두 피클, ☞ 고추잼 등을 곁들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얇게 저며 빵 위에 올려 먹으면 마치 고급 버터를 발라 먹는 것처럼 맛있습니다. 술술 먹힙니다.

 

가격 대비 성능 우수한 치즈라고 생각합니다. 맛있는 버터라 생각하고 먹거나, 맥도날드 햄버거에 들어가는 미국식 주황색 가공치즈 대신 먹는 자연치즈라 생각하면 좋을 듯합니다. 미국식 가공치즈보다는 뒷맛이 훨씬 산뜻하고 덜 짜고 신선한 버터 풍미가 나서 좀 더 개운합니다. 마침 조각 치즈말고도 샌드위치나 버거용 슬라이스 제품도 내기 시작했으니 이걸 활용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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