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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 이태리 페코리노 사르도 Fiore Sardo, Pecorino Sardo 본문
▲ 싸르데냐Sardegna
아, 이런,
사 먹은 지가 하도 오래돼서 맛을 까먹었습니다.;;
사진만 찍고 맛 기록은 해 놓질 않았네요;;
다시 사 먹어봅니다.
시식기나 시음기는 이래서 제때 써야 한다니까요.
얼마 전에 고소한 밤맛이 나는 ☞ 뻬꼬리노 토스카노를 소개해드렸었죠? 오늘은 싸르데냐 섬에서 생산되는 뻬꼬리노 싸르도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토스카나의 뻬꼬리노보다는 맛이 더 진하고 제법 성깔이 있습니다. 이태리의 이 뻬꼬리노 싸르도를 아르헨티나산 소젖 치즈인 '싸르도Sardo'와 헷갈려하시면 안 됩니다. 저도 아르헨티나 싸르도는 아직 맛을 못 봤습니다.
"뻬꼬리노 싸르도"라고도 불리고 "피오레 싸르도"라고도 불리니 푸디 여러분들께서는 두 가지 이름을 모두 기억해 두십시오. 이름까지 기억해야 해? 네, 이 치즈가 바로 바질 페스토에 들어가는 치즈이거든요. 한국에도 이제 집에서 바질 페스토 만들어 파스타 해 드시는 분들 많아졌죠? 오늘 소개해드리는 치즈를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뻬꼬리노 싸르도 역시 다른 뻬꼬리노들과 마찬가지로 이태리 정부에 의해서 DOP로, 유럽연합에 의해서는 PDO 제도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응유를 가열하지 않는uncooked 경성 치즈입니다. 싸르데냐 섬에 살고 있는 고유 품종 양의 젖으로 만듭니다. 가둬 놓고 키우지 않고 자유롭게 방목을 합니다.
이 뻬꼬리노 싸르도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돌체dolce와 마뚜로maturo.
돌체는 송아지 위장에서 추출한 효소로, 마뚜로는 어린 양 위장에서 추출한 효소로 굳혀 만듭니다. 돌체는 응유curd를 헤이즐넛 크기로 잘라 유장whey을 분리한 뒤 압착해 20일에서 60일 정도 짧게 숙성시키므로 이름대로 좀 더 수분이 많고 부드럽고 탄력이 있으며 맛도 신선한 버터맛에 꽃향이 은은히 풍깁니다. 마뚜로는 응유를 옥수수 알갱이 크기로 좀 더 잘게 잘라 유장을 분리하고 압착해 60일 이상 숙성시키기 때문에 돌체보다는 건조하면서 까실거리고 맛도 당연히 더 짙습니다. 톡 쏘는 매운맛piquant이 있고 농축된 탓에 꽤 짭짤하면서 육수 같은 짙은 우마미를 냅니다. 제가 사 온 것은 마뚜로입니다.
▲ 뻬꼬리노 싸르도 돌체Pecorino Sardo Dolce.
▲ 뻬꼬리노 싸르도 마뚜로Pecorino Sardo Maturo.
어? 그런데, 제가 직접 찍어 올린 뻬꼬리노 싸르도 마뚜로와 이 광고 사진에 있는 뻬꼬리노 싸르도 마뚜로가 다르게 생겼잖아요? 특히 껍질 부분이요. 생산자별로 치즈 외모가 조금씩 차이 날 수는 있지만, 겉이 완전히 다른 색이 나는걸요? 제가 사 온 치즈는 겉에 짙은 밤색이 나는데 말이죠.
향
알아봤더니 이 치즈는 훈제를 살짝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껍질에 저런 밤색이 나는 모양입니다. 독일 가공치즈 중에 바바리아 스모크 치즈도 저런 밤색 외투를 입고 있고, 영국의 훈제 치즈들도 겉에 저런 밤색을 띱니다. 그렇다고 이 뻬꼬리노 싸르도를 '스모크트 치즈'로 분류를 하지는 않는다고 하니 헷갈리기 좋겠습니다.
맛을 보니 확실히 훈제 치즈라고 불러주기에는 훈향이 특징적으로 많이 나지는 않습니다. 껍질 가까운 쪽에서나 희미하게 나지 속살에서는 훈향이 거의 안 납니다. 이 치즈를 처음 먹었을 때는 훈제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그저 맛있게 먹었습니다.
껍질과 껍질 바로 안쪽에서는 훈향 외에 천으로 감싸 숙성시킨 영국 전통 제법의 경성 치즈 껍질 향과 유사한 향도 납니다. 천에 핀 곰팡내와 흙내와 나무 냄새가 어우러져 홍삼 비슷한 냄새가 나는 데다 훈향까지 섞여 향이 상당히 복잡합니다.
질감은 역시나 건조하면서 꼬득꼬득 씹힙니다. 치즈 포장 문구에는 "honeycomb" 질감이 난다고 묘사가 돼 있는데, 진짜 벌집을 말하는 건지, 설탕 녹인 것에 소다 넣어 부풀려 만든 그 허니콤을 말하는 건지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두 가지 질감 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껍질 쪽으로 가면 더 건조하고 단단해집니다. 스페인의 만체고 씹을 때와 유사합니다. 뻬꼬리노 토스카노는 이보다 수분이 많아 칼로 썰어도 쫀득한 느낌을 내며 부드럽게 썰리는데, 뻬꼬리노 싸르도는 더 건조해서 잘 부서집니다.
맛
한 조각 입에 넣었을 때의 첫 인상은 마치 네덜란드의 국민 치즈인 하우다Gouda를 염소젖으로 만든 것과 흡사했습니다. 단맛이 물씬 풍기면서 아주 고소하죠. 그건 염소젖이고 이건 양젖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둘 다 소젖보다 고소합니다.
껍질과 껍질 안쪽 부분의 향은 상당히 복잡하나 의외로 맛은 수분이 날아가 많이 건조해진 탓에 속살 부분에 비해서는 싱겁습니다. 고체 기름 씹는 것 같아요.
속살은 풍미가 짙습니다. 단맛 짠맛이 물씬 나고 고소하면서 깊은 우마미까지 나서 아주 맛있습니다. 이보다 더 숙성시켜 맛이 농축되고 질감이 단단해지면 맨입에 먹기에는 좀 힘들어지겠습니다. 지금 이 상태가 맨입에 먹기에는 딱 좋습니다. 치즈 포장에는 구운 견과류 맛과 매운 후추 맛이 난다고도 써 있는데, 과연 치즈에서 그런 느낌이 납니다. 질감이 다소 건조하긴 하나 테이블 치즈로 손색이 없고 요리에 써도 좋겠습니다.
뻬꼬리노 싸르도는 페스토에는 물론이요, 어니언 수프나 양고기 요리에도 잘 어울린다고 하며, 현지에서는 라비올리 비슷한 쿨린지오니스culingionis 만들 때도 넣는다고 합니다. 이 치즈에 잘 어울리는 와인으로는 돌체토 디 돌리아니Dolcetto di Dogliani, 누라구스 디 칼리아리Nuragus di Cagliari를 꼽고 있습니다.
이태리 밖에서 뻬꼬리노 싸르도가 가장 많이 쓰이는 음식은 뭐니뭐니해도 페스토. 다음 편과 그 다음 편에서는 ☞ 페스토 절구와 ☞ 페스토에 관해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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