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집에 꼭 있어야 하는 차茶 - 2015년판 본문

차나 한 잔

집에 꼭 있어야 하는 차茶 - 2015년판

단 단 2015. 3. 16. 00:00

 

 

제가 요 며칠간 옛날 글들을 죽 살피며 다시 점검을 하다가 2010년도에 작성한 차 관련 글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집에 꼭 있어야 하는 차

 

이 글을 보자 차 목록을 매년 작성하기로 다짐했던 생각이 나 올해 판을 한번 작성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차 취향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재미있는 기록이 될 것 같아 시작한 일인데, 첫 작성 이후 벌써 5년이 훌쩍 지났네요. 이제는 집에 들인 차호들 때문에 차가 필요한,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 대홍포(大紅袍)도 꼭 있어야지.'가 아니라, '아, 대홍포 우리면 딱 알맞을 자사호가 있으니 대홍포가 꼭 있어야지.' 하는 식입니다. 찻주전자에 맞춰 차를 고르고 있는 형국이지요. 물론 차가 맛있으니까 전용 차호를 마련한 것이지만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가지 꼭지 모양의 자사호 가단이에는 잘 만든 랍상 수숑
lapsang souchong을 우립니다. 랍상 수숑은 찻잎에 훈향을 씌운 독특한 홍차입니다. 훈제한 음식들을 먹을 때 꼭 같이 마셔줍니다. 체다 같은 영국 경성 치즈 요리에도, 또, 스틸튼 같은 블루 치즈와 버섯 요리에도 잘 어울립니다. 의외로 일본 맛동산 '가린토'에도 기차게 잘 어울립니다. 맛동산에 씌운 설탕 시럽이 훈향과 만나 그리운 뽑기 맛을 선사하거든요.

 

 

 

 

 

 

 



여인의 젖가슴 모양을 한 부드럽고 찰진 부들이에는 안계철관음(安溪鐵觀音)이나 안계황금계(安溪黄金桂)를 우립니다. 세련된 계화 꽃향이 나는 차들입니다. 향이 비슷해 같은 자사호에 우립니다. 다쓰베이더 생일에 사 주었던 자사호입니다. [Jing, 250ml, 4g, 100˚C, 4min., 3 times]

 

 

 

 

 

 

 



씩씩한 일출이에는 코코 닙스cacao nibs가 든 홍차를 우립니다. (처음엔 일몰인 줄 알고 '노을이'라고 이름 붙였다가 바꿨음.) 다른 자사호들에 비해 조직이 치밀하므로 홍차를 우리기에 좋아요. 홍차용 자사호는 숨을 잘 쉴 필요가 없다고 하죠. 여기 사람들도 홍차를 주로 도기나 자기에 우리니까요. 코코 닙스가 든 홍차는 홍차와 커피와 홋 쵸콜렛과 보리차 맛이 동시에 나서 홍차 애호가, 커피 애호가, 홋 쵸콜렛 애호가, 보리차 애호가(응?)도 모두 좋아할 만한 맛이 납니다. 자사호가 어째 쵸콜렛 '삘'이 좀 나죠? 채리티 숍에서 보고 '아니? 이게 왜 여기 있어?' 하도 신기해서 데리고 온 녀석입니다.

 

 

 

 

 

 

 



권여사님이 세뱃돈 주신 걸로 마련한 지조 높은 누렁이 석표 자사호에는 대홍포를 우려 마십니다. 입구가 넓어 길죽한 대홍포 찻잎을 넣기에 편합니다. 대홍포는 묵직함과 깊음과 기품이 느껴지는 멋진 차입니다.

 

 

 

 

 

 

 

 



대홍포 찻잎과 찻물색은 이렇습니다.

 

 

 

 

 

 

 



자스민 차도 꼭 있어야지요. 일반 녹찻잎도 괜찮고, 정성 들여 구슬처럼 만 말리용주 녹찻잎도 괜찮고, 백호은침 백차로도 괜찮습니다. 중국음식이나 딤섬 먹을 때 꼭 곁들입니다. 새우깡에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자사호가 아니라 손그림 청화백자 찻주전자에 우립니다. 녹차나 백차는 여간해서는 자사호에 우리질 않습니다. 찻주전자에 그려진 풍광이 평화로워 고즈넉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자스민 차 소개할 때 정식으로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돌아가신 우리 영감님이 쓰시던 찻주전자입니다. 한국 고유 기법인 분청 중 박지 기법으로 장식했습니다. '박지'란 문양 외의 배경 부분을 긁어내는 기법을 말합니다. 15세기 때 절정을 이루었던 우리 기법이라고 합니다. 물고기와 연꽃 문양이라고 해서 유식한 말로 '분청박지연어문'이라고 합니다. 우리 집에 있는 유일한 횡파형 손잡이 찻주전자입니다. 한국 찻주전자의 특징이지요. 한국 녹차 우리는 데 씁니다. 긁긁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이천 가천요의 송기영 선생께서 만드셨습니다.

 

 

 

 

 

 

 

 


영감님 기일을 맞아 생전에 쓰시던 찻주전자에 차 우리고, 즐기시던 프링글스를 곁들여보았습니다.

 

 

 

 

 

 

 

 


불량소녀 님이 선물해 주신 꽃무늬 찻주전자입니다. '티포원tea for one'이라고 부르죠. 찻주전자와 컵이 합체됐다가 분리됐다가 하는 재미있는 녀석입니다. 이 티포원만 보면 마음이 들뜹니다. 동네 길에서 지난 주에 벚꽃 핀 걸 보고 집에 돌아와 꽁꽁 싸 두었던 이 티포원을 꺼냈습니다. 그 해의 첫 벚꽃을 보면 집에 돌아와 이 티포원을 꺼내는 게 저의 봄 '리추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마침 경이로움 님이 보내주신 일본 벚꽃차가 있어 우렸는데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립니다. 자기 재질의 찻주전자는 고온에 구워 소결화가 되었기 때문에 차 종류에 상관없이 아무거나 우릴 수 있습니다. 찻주전자에 향이 배질 않거든요. 여기에는 주로 '샬랄라'한 차들을 우립니다. 이런 벚꽃차나 딸기 홍차, 루바브 홍차, 체리 홍차 등 무언가 분홍빛이 연상되는 차들을 우립니다. 이층 석탑 분홍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불량소녀 님이 선물해주신 꽃무늬 티포원 2입니다. (컵은 안 찍혔음. 옆에 있음.) 벚꽃 보고 나면 부부가 위의 티포원과 이 티포원을 각자 하나씩 붙잡고 마십니다. 투닥투닥 쌈박질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아요. 아, 사려 깊으신 불량소녀 님.

이름은 아직 못 지었습니다. 좋은 이름을 찾고 있어요. 이것도 이층 석탑 ○○이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시클라멘 꽃이 담겼습니다.

 

 

 

 

 

 

 

 

 

이것도 불량소녀 님이 주신 티포원입니다.

(어흑, 이 은혜를.)

크리스마스 홍차를 우리거나 크리스마스 즈음에 기분 내느라 잠깐 동안 집중적으로 이런저런 차를 우리는 데 사용을 합니다. 차 회사마다 크리스마스 홍차를 다 다르게 배합해 내기 때문에 매년 다른 차로 골라 마시는 즐거움이 있지요. 크리스마스 홍차들에는 다양한 향신료가 들어가기 때문에 차 향이 배지 않는 자기 재질의 찻주전자를 쓰는 게 좋아요. 달걀 형상을 하고 있어 알꽁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한편, 유리 차호는 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유리 차호 중에서도 키가 큰 건 이렇게 꼿꼿이 서는 찻잎들을 우리면 좋습니다. 백호은침silver needle white tea이나 용정차dragon well green tea가 적합합니다. 꼭 물고기들이 표면에 뜬 먹이 먹기 위해 모인 것 같죠? 볼 때마다 재미있어서 웃습니다. 유리 차호의 또 다른 장점은 기공이 없이 표면이 매끈해 차향을 차호에 빼앗기지 않고 고스란히 찻물에 담을 수 있다는 거지요. 섬세한 향의 차일수록 고온에 구운 자기나 이런 유리 재질 차호에 우리셔야 합니다. 저는 매우 섬세한 향을 가진 봉황단총도 유리 차호에 우립니다. 총총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유리 차호 중에서도 자사호를 흉내 내 만든 1인용 작고 납작한 것들이 있습니다. 아무 차나 우리면 되는데, 투명한 유리 재질에는 찻물색이 특별히 예쁜 차들을 우리면 좋아요. 빠알간 루이보스도 여기에 우립니다. 눌린 물방울 모양을 하고 있어서 방울이라고 부릅니다.

 

 

 

 

 

 

 



모로칸 민트티용 건파우더gun powder 녹차도 있어야 합니다. 향신료가 많이 들고 기름지면서 짭짤한 중동·북아프리카 음식 등에 곁들이면 아주 좋습니다.

민트잎 사다가 모로칸 민트티를 한번 우려봅시다

 

 

 

 

 

 

 



까도남 님께서 터키 여행 가셨다가 사다 주신 터키 티 글라스에는 새콤달콤한 터키쉬 애플 티 분말을 타서 마십니다. 설탕이 많이 들어 칼로리가 높기 때문에 아주 적은 양을 만들어 애주가들 코냑 마시듯 마십니다. 하도 시어서 작은 잔으로 한 잔만 마셔도 정신이 버쩍 납니다. 금속 차호는 폼입니다. 잘못 만들어서 출수구가 막혀 있어요. 어차피 금속 차호에는 차를 우리지 않는 게 좋습니다. 차 맛을 망치거든요. 저 잔들은 쏙 들어간 허리가 뇌살적이라 잘록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집에 터키쉬 티 세트가 들어온 날

 

 

 

 

 

 

 



참, 꺄페티에를 차 우리는 데 써도 괜찮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일본인 친구가 여기에 '겐마이차(현미녹차) 우려주는 걸 대접 받고는 그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음'에 감탄한 적이 있었습니다.

 

 

 

 

 

 

 

 


만사가 귀찮을 땐 이렇게도 우립니다. 으흐흐

하루에 두 번 갖는 찻자리 중 한 번은 설거지가 귀찮아 이렇게 우려 마십니다. 차 맛에는 전혀 문제 없어요. 오히려 공간이 넓어 찻잎이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으니 더 좋지요. 산차loose leaf를 우려도 좋고, 이렇게 티백을 하나 이상 우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아주 편하고 좋습니다. 그래도 예열은 잊지 마시고요. 뜨거운 물을 소량 먼저 부어 휘휘 돌려 데워준 뒤 버리고 다시 뜨거운 물 붓고 찻잎 넣어 제대로 우리면 됩니다.

 

 

 

 

단단 집에 늘 있어야 하는 차를 다시 정리해봅니다. 2015년판이 되겠습니다.



아쌈
골든 팁이 많고 풋사과향과 장미향이 나는 질 좋은 아쌈,
인도 밀크티인 짜이chai용 잘게 부순 중급 아쌈,
둘 다 있어야 함.

 

다질링
첫물차, 두물차, 가을차 다 있어야 함. 
크림 티 먹을 때 곁들이는 차라서 꼭 있어야 함.


랍상 수숑
수퍼마켓이나 일반 차 브랜드들이 내는 바싹 태운 '험한' 것 말고
잘 만들어 여러 번 우려 마실 수 있는 달고 우아한 것으로.

 

쵸콜렛 홍차
<칸톤 티Canton Tea Co> 제품으로. 찐득하고 기름지게 녹는 쵸콜렛이 아니라 원료인 코코 닙이 첨가되어야 함.

 

밀크티용 티백
<링톤스Ringtons>의 'Kenya Gold'로.

 

대홍포


안계철관음/황금계

 

봉황단총

어떤 향이든 상관없고 잘 만든 것이기만 하면 됨.

 

건파우더 녹차
모로칸 민트티용.


자스민
녹차 산차, 구슬처럼 말린 말리용주, 백호은침 중 어떤 것이든 상관없고 향을 정석대로 잘 씌운 것이기만 하면 됨.


백차
순한 백호은침으로. 말린 라벤다 넣어 라벤다 차로 마시기에도 아주 좋음.


루이보스
<로네펠트>의 '크림 오렌지'나 <트와이닝>의 '크리스마스 블렌드'로. 달거리 중에는 카페인 섭취를 안 하므로 이런 무카페인 차들도 집에 있어야 함.


생강차
<뿌까Pukka>의 'Three Ginger Tea' 티백으로. 감기 기운 있을 때 생강 과자와 함께 꼭 마셔줘야 함.

 

터키쉬 애플 티
분말 형태로. 터키 본고장 것보다 <위타드Whittard> 것이 오히려 설탕을 더 질 좋은 것으로 쓰므로 애용함.

 

계절 차
발렌타인 홍차, 루바브 차, 크리스마스 홍차 등 절기나 계절에 맞춰 잠깐 나왔다 사라지는 차들. 기분 전환 삼아 꼭 찾아 마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