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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 그리스 케팔로티리 Kefalotyri • 치즈 사가나키 만들기 Saganaki 본문
여름이 슬슬 다가오고 있으니 영국인들이 여름에 즐겨 먹는 지중해 치즈들을 소개해드려야겠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여름 휴가철에는 이국 휴가지 음식을 해먹는 아주 바람직한 습관들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영국에 와 있는 저 같은 외국인들도 덩달아 타국 음식 즐기기가 좋습니다. 날이 더워지면 수퍼마켓 선반에 지중해나 동남아시아 식재료들이 부쩍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일년 내내 볼 수 있긴 하나 여름철에는 들여놓는 양이 더 많아져요. 모짜렐라, 페타, 할루미, 케팔로티리 등 지중해 치즈들도 매대를 평소보다 더 많이 차지합니다. 그리스 치즈는 전에 ☞페타를 소개해드린 적 있었죠? 그릭 샐러드도 같이 소개해드렸고요. 오늘은 기름 두른 번철에 뜨겁게 부쳐 먹는 그리스 치즈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케팔로티리입니다.
이름이 하도 안 외워져서 골백번 되뇌었습니다. 케팔로티리, 케팔로티리, 케팔로티리... 아, 이게 자꾸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와 헷갈리는 거예요. 케팔로티리는 페타와 마찬가지로 양젖만으로, 혹은 양젖과 염소젖을 섞어 만듭니다. 비잔틴 시대(c. 330-1453)부터 전해져온 오래된 전통 경성 치즈로, 대개는 3~4개월 정도 숙성을 시킵니다. 그리스는 지형이 험해 소를 키우기에 그리 적합하지가 않다고 하죠. 그래서 그리스 치즈들에 양젖이나 염소젖 치즈, 혹은 양젖과 염소젖을 혼합해 만든 치즈가 많은 겁니다. 케팔로티리는 그냥 먹기에는 인도 파니르처럼 좀 뻣뻣하긴 한데 작게 깍둑 썰면 샐러드에 넣어 먹을 만하고, 좀 더 숙성한 것들은 강판에 갈아서도 씁니다. 녹는 점이 높아 그리스 밖에서는 기름 두른 번철에 지져먹는 것으로 더 잘 알려진 치즈입니다.
케팔로티리를 지질 때 쓰는 그리스 번철을 사가나키saganaki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뚝배기나 스페인의 까수엘라처럼 조리 그릇 이름이기도 하고 조리 방식에 따른 음식 이름이 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사가나키에 지져 먹을 수 있는 치즈가 그리스에는 이 케팔로티리말고도 여럿이 있는데, 그라비에라graviera, 케팔로·그라비에라kefalograviera, 할루미halloumi, 카쎄리kasseri, 심지어 페타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영국 수퍼마켓들은 대개 페타, 할루미, 케팔로티리를 갖다 놓습니다. 한국에서 파는 외국산 짝퉁 페타들은 소젖으로 만든 것들이 많을 겁니다. 소젖이 양젖보다 값이 싼데다 계절을 타지 않아 일년 내내 얻을 수 있어 그리스 밖에서는 소젖으로 만든 가짜 그리스 치즈들이 많이 돌아다닙니다. 그리스, 요즘 경제도 어렵다는데 가능하면 그리스 치즈는 그리스산으로 사 먹어주자고요.
사가나키도 나가사키와 헷갈려 한참을 되뇌었습니다. 사가나키 케팔로티리, 사가나키 케팔로티리, 사가나키 케팔로티리... 휴, 어렵네. 돌아서면 까먹어요. 아래에 조리법 동영상을 걸어드리겠습니다. 너무 쉬워서 요리라고 할 것도 없어요. 가만 보면 더운 지역에서는 복잡한 요리를 잘 안 해먹는 것 같아요. 더운데 불 앞에 오래 서서 꼼지락거리며 조리하고 있다간 쓰러지죠. 현명합니다. 간단하면서도 지중해 음식들은 하나같이 다 맛있으니 그것 참 신기합니다.
영상에서는 치즈를 따뜻한 물을 담갔다 꺼내야 밀가루가 잘 붙어 있게 된다고 하는데, 제가 산 치즈 포장에는 얼음물을 쓰라고 합니다. 어떤 게 맞는 걸까요? 저는 귀찮아서 그냥 실온의 찬물로 썼는데 문제없이 잘 지져졌습니다. 물에 담갔다 꺼내 밀가루 입히는 작업을 두 번 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세워서 바닥에 대고 탁탁 쳐 여분의 밀가루를 살짝 떨어냅니다. 기름 두른 번철에 앞뒤로 노릇노릇 지지면 됩니다. 저는 그리스산 올리브 오일에 지졌습니다. 자주 뒤집지 말고 한 번만 뒤집어야 합니다. 잘못하면 밀가루 옷이 벗겨집니다. 치즈가 짭짤해서 소금은 따로 뿌리지 않아도 됩니다. 미국에서는 이 치즈 사가나키를 낼 때 브랜디를 부어 손님 상에서 불쇼flambé를 벌이기도 하는 모양인데, 본고장인 그리스에서는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냥 영상에서 소개하는 대로 만드시면 됩니다. 치즈를 지지기 전에 담아 먹을 그릇과 커틀러리, 레몬 조각 등을 미리 준비해 놓아야 합니다. 완성되자마자 바로 먹어야 하거든요.
다 되었습니다. 접시에 담자마자 바로 먹어야 하는데 그릇에 옮겨 담고 사진 몇 장 찍고 나니, 이런, 치즈가 벌써 뻣뻣해집니다. 피짜가 식을수록 치즈가 뻣뻣해지는 현상, 경험해보셔서 다들 잘 아실 거예요. 이 사가나키 케팔로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욱 늘어나는 시각적 재미와 부드럽게 씹히는 질감을 만끽하려면 지지자마자 최대한 빨리 먹어야 합니다.
치즈가 상당히 짭짤합니다. 사가나키용 케팔로티리는 대개 1인분을 100g으로 잡고, 포장도 아예 100g짜리 두 장을 담는데, 저는 짜서 100g을 다 먹기가 좀 힘들었습니다. 100g당 소금이 무려 3.19g이나 들었으니 영국 치즈들에 비하면 많이 짠 거죠. 지중해 사람들은 더워서 땀을 많이 흘리니 이런 짠 치즈를 먹어도 그리 문제가 안 될 겁니다. 페타도, 할루미도 다 짜잖아요. (그래도 한국 라면들보다는 덜 짭니다. 신라면 한 봉지 소금 4.73g. 거기다 김치까지 먹으면!)
좀 짜다는 것 빼고는 맛은 뭐 아주 훌륭합니다. 술안주로도 좋겠어요. 다음 번엔 1인분 양을 반으로 줄여 50g으로 잡아야겠습니다. 사진에 있는 완성된 사가나키가 100g인데, 반으로 잘라 부쳐 둘이 나눠 먹는 게 좋겠습니다. 크게 부친 건 부치자마자 바로 먹어도 반도 채 먹기 전에 나머지가 뻣뻣해져버립니다. 좀 작게 부쳐 적은 양을 뜨거울 때 최대한 빨리, 맛있게 먹는 편이 낫겠습니다. 열을 가해 치즈 속 수분이 이미 날아가버린 상태이므로 한 번 녹였던 치즈는 다시 가열하면 돌덩이가 되니 주의해야 합니다.
수분을 많이 뺀 단단한 모짜렐라로도 치즈 사가나키가 가능할까요? 안 될 것 없지요. 그런데 그리스 음식 먹겠다고 사가나키를 하는 건데, 만날 보는 모짜렐라를 쓰면 김이 좀 새지 않겠습니까. 한국에서 살 수 있는 모짜렐라는 소젖 비숙성 치즈이지요. 케팔로티리는 양젖(+염소젖) 치즈인데다 3~4개월이나 숙성시킨 치즈라서 모짜렐라보다 풍미가 훨씬 짙고 익혔을 때의 질감도 좀 다릅니다. 모짜렐라는 녹는 점이 낮아 저렇게 부쳤다간 물처럼 퍼집니다. 모짜렐라는 요즘 떡볶이, 등갈비 등 여기저기 많이들 올려 드시니 기왕이면 양젖이나 양젖·염소젖을 섞어 만든 그리스 치즈들을 써보세요. 자꾸 새로운 경험을 해보시면 좋지요.
한 가지 더 주의하실 점 - 한국에서 "그리스 그릴 치즈"나 "사가나키 치즈"로 팔리는 것들 중에는 케팔로티리와 비슷하게는 생겼으나 자연치즈가 아니라 크림과 이런저런 첨가물을 넣어 만든 가공치즈들이 많습니다. 성분표를 잘 보셔야 합니다. 가공치즈를 기름에 부쳐 먹을 거면 안 먹는 게 낫지요. 가공치즈이면서 값은 물가 비싼 이 영국에서 파는 케팔로티리 자연치즈보다도 비쌉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사가나키 케팔로티리를 여름에 먹을 땐 수박, 멜론, 무화과 등을 곁들여 먹는다고 합니다. 저는 집에 있는 자두를 먹었습니다. 짭짤해서 즙 많은 단 과일들이 잘 어울립니다. 그리스에서는 작은 접시에 소량 담긴 스페인의 타파스tapas 같은 짭짤한 음식들을 메제meze라고 부르는데, 치즈 사가나키도 인기 있는 메제 중 하나입니다. 메제를 즐길 때는 대개 아니스anise 향이 나는 식전주aperitif인 우조ouzo를 곁들인다고 합니다. 애주가들께서는 치즈 사가나키 해드실 때 한번 시도해보세요. 아니스 향은 회향이나 팔각 향과 비슷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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