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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한테는 그저 남이 해주는 밥이 최고다 본문

영국음식

주부한테는 그저 남이 해주는 밥이 최고다

단 단 2016. 1. 7. 00:00

 

 

 

 

오늘 아침에 사 먹은 학생식당의 4파운드짜리 특대 풀 잉글리쉬 브렉퍼스트입니다. 구성 요소가 뷔페식으로 되어 있어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담을 수가 있는데, 저흰 늘 이렇게 담아 둘이 나눠 먹습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것들은 양을 두 배로 담아 달라 하고 돈을 더 내면 됩니다. 홍차는 무료입니다. 양이 많아 달걀 프라이와 베이컨이 묻혔는데, 이 정도 양과 구성에 이 값이면 자선사업과 다름없는 겁니다. 여기 사람들 체감 물가로 치면 우리돈 약 4천원꼴.

 

 

 

 

 

 

 

 


이건 최고급 재료들 사다 집에서 준비한 저희 집 풀 브렉퍼스트입니다. 고기와 달걀 모두 밖에 풀어 놓아 건강하게 키운 것들로부터 얻은 것이고, 나머지 재료들도 최대한 좋은 걸로 구입했습니다. 재료비가 많이 들었어요. 예산이 초과돼 향긋하고 맛있는 블랙 푸딩은 사지도 못 했습니다.

 

그래, 둘 중에 어떤 게 더 맛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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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식당에서 사 먹은 싸구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상식적으로는 최고급 재료 사다 정성껏 준비한 우리 집 풀 브렉퍼스트가 훨씬 맛있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거.


세 끼 꼬박꼬박 집에서 다 해먹는 주부들은 이거 뭔 소린지 아실 겁니다. 준비하고 뒤처리 하는 게 하도 번거로워 집에서는 먹으면서도 맛있는 줄을 몰라요. 풀 브렉퍼스트는 역시 밖에서 사 먹는 게 진리입니다. 밤낮 외식만 하던 분들은 집밥이 최고라 하시겠지만 주부들은 또 다르죠. 저한테 가장 맛있는 밥은 우리 시어머니가 해주시던 밥. 그 다음은 우리 엄마가 해주시던 밥. 그 다음은 우리 집 영감이 해주는 밥. 그 다음은 나가서 사 먹는 밥.

 

 

 

 

 

 

 

 

 

영국 와서 사 먹어본 풀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중에서는 패딩턴 역사 안의 ☞ The Mad Bishop & Bear 것이 가장 맛있었습니다. 사진상으로는 다 그게 그거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풀 브렉퍼스트도 식당마다 맛 차이가 많이 납니다. 신기하죠. 이 집은 익힌 음식들에서 '불맛'과 고소한 소기름 비슷한 맛이 나서 아주 맛있습니다. 다녀온 지 오래돼서 지금도 그 맛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요즘은 식당들이 심지어 채식주의자를 위한 풀 브렉퍼스트도 냅니다. 재밌죠. 작정하고 고기 먹기 위해 주문하는 음식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채식주의자용이 있다뇨. 이것도 잘하는 집 것은 아주 맛있습니다. 저 뒤에 보이는 채식 소세지가 일품이었죠. 지금까지 먹어 본 채식 소세지 중에서 가장 맛있었어요. 빵도 갓 구운 사워도우 식빵인지 꽤 맛있었고요.

 

저는 풀 브렉퍼스트 먹을 때 토스트는 빼고 먹는데 이 집 빵은 맛있어서 다 먹었습니다. 영국에 계신 유학생 여러분, 풀 브렉퍼스트 맛있게 내는 집 혹시 알고 계시면 귀띔 좀 해 주세요. 미국에 인스탄트 라면만 평가하는 전문 블로거가 있는 것처럼 영국에는 풀 브렉퍼스트만 돌아다니며 사 먹고 평가하는 블로거가 있습니다. 온 국민이 편집증 환자인 나라인데 왜 없겠어요. 아, '덕 중의 덕은 양덕'이란 말도 있잖아요. 그 양덕의 상당수가 영국인일걸요. 참고로, 영국에는 소세지만 평가하는 블로거도 있습니다. 그런데 블로그 이름이.


☞ The Ramen Rater

The Fry Up Inspector

Rate My Sausage

 


참, 풀 잉글리쉬 브렉퍼스트는 별칭이 여러 개 있습니다. 'Full Monty', 'fry-up' 등으로 불릴 때도 있지요.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fry-up'이 가장 많이 쓰이는 것 같은데, 외국인들한테 말할 때는 꼬박꼬박 'full English breakfast'라고 합니다. 게다가, 풀 브렉퍼스트에는 풀 잉글리쉬 브렉퍼스트만 있는 게 아니라 '풀 스코티쉬 브렉퍼스트', '풀 웰쉬 브렉퍼스트', '풀 아이리쉬 브렉퍼스트', '얼스터 프라이Ulster fry'도 있다는 사실. 구성은 거의 비슷하고 한두 가지 요소만 달라집니다. 풀 잉글리쉬 브렉퍼스트의 토스트가 지역에 따라 감자빵이나 소다빵, 김빵, 감자전 등으로 대체가 됩니다. (영국에도 김을 먹는 지역이 있습니다.) 집에서 준비해 드시고 싶은 분들은 다음의 글을 참고하십시오. 각 구성 요소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글입니다. 칼로리 계산도 해 놓았습니다.

풀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집에서 즐기기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 좁은 부엌에서 요리하느라 심신이 다 지쳤으니 요 며칠간은 학생식당 가서 풀 브렉퍼스트를 사 먹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걸로 아침 먹고 나면 기운이 막 나면서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제 '컴포트 푸드'입니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요즘 더 맛있어요. 한 접시 위에 푸짐하게 늘어놓고 이것저것 먹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유학생들에게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유학생의 설움' 같은 게 있는데요, 이거 먹고 있는 순간에는 깡그리 잊게 됩니다. 학생식당에 앉아 '놈놈놈' 먹으면서 주변을 살피니 같은 걸 먹고 있는 중국 학생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공부 마치고 고국에 돌아가서도 찾게 되겠지요. 안 그래도 요즘 영국 식재료들을 중국에 많이 수출한다고 합니다.

 

 

 

 

 

 

 


 2016년 2월 런던 고어 호텔The Gore Hotel의 
풀 브렉퍼스트.

베이컨이 미국식이라서 아쉬웠으나

질 좋은 블랙 푸딩이 들어갔으므로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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