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음식] 영국 크리스마스 음식 ◆ 크리스마스 케이크 Christmas Cake

 

 

 

 

 

영국의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소개합니다. 이름이 '크리스마스 케이크'입니다. 파네토네(이태리), 슈톨렌(독일), 뷔쉬 드 노엘(프랑스)처럼 별도의 이름이 있는 게 아니라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자기 이름입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수퍼마켓들이 일제히 크리스마스 식품 떨이에 들어가는데, 반값 이하로 떨어져 있길래 하나 사 왔습니다. 영국에는 수퍼마켓 체인 수가 많고 경쟁이 치열해 다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잘 냅니다. 저는 올해는 <세인즈버리즈> 수퍼마켓 것으로 샀습니다. 진짜 금을 입힌 설탕 공예 리본이 근사해서 안 살 수가 없었어요. 얼마나 무겁냐면요, 저 작은 케이크 하나가 자그마치 2kg가 넘습니다. 조각을 잘라 보겠습니다.

 

 

 

 

 

 

 

 

어째 밀가루보다 과일이 더 많이 든 것 같죠? 프룻 케이크라서 비싼 건과일과 향신료가 여러 종류 들어가고 술도 잔뜩 넣어 맛이 강렬합니다. 밀도까지 높아 가볍고 폭신한 케이크 좋아하는 현대인들 입맛에는 여간해서 맞기가 쉽지 않죠. 요즘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약밥이나 떡은 무겁다고 잘 안 먹잖아요? 여기 영국 젊은이들도 무거운 자국 전통 프룻 케이크를 잘 안 먹으려 듭니다. 다른 나라들은 반죽에 건과일을 듬성듬성 섞는데 영국인들은 이 비싼 건과일을 종류별로 잔뜩 넣습니다. 향신료, 설탕, 건과일 모두 옛 시절엔 귀하고 비쌌기 때문에 프룻 케이크는 호화로운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니 명절과 결혼식 때나 먹을 수 있었고요.

 

케이크 단면을 눈여겨보세요. 만드는 방법을 간략히 설명 드리자면, 먼저, 프룻 케이크를 만든 뒤 여러 차례에 걸쳐 브랜디나 셰리, 또는 각자 좋아하는 술을 뿌려 줍니다. 케이크가 술을 잔뜩 머금게 되죠. 정말로 케이크한테 '밥 준다feeding'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이 술 덕분에 방부 효과가 나 오래 저장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저장하는 동안 맛이 잘 어우러지고 숙성됩니다.

 

프룻 케이크에 여러 차례 술을 먹인 뒤에는 마지판을 만들어 꼼꼼히 덮어 줍니다. 2-3일간 잘 말린 다음 마지판 위에 로얄 아이싱을 한겹 또 씌워 눈 내린 세상 같은 뽀얀 표면을 만들어 줍니다. 여기까지가 기본이고, 그 다음부터는 장식을 하면 됩니다. 물기 많은 아이싱을 도포해 스패출라spatula로 살짝살짝 붙였다 떼어 거친 표면을 연출하든, 마지판처럼 된 반죽을 씌워 벨벳 같은 고운 표면을 연출하든, 취향껏 선택할 수 있습니다.

 

프룻 케이크 만들기 → 술 먹이기 → 마지판 씌우기 → 로얄 아이싱 씌우기 → 장식하기

 

이렇게 구성되는 거지요. 사진상으로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장식은 그야말로 취향껏 합니다.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순간이라 손이 야무진 사람들은 솜씨 뽐내고 싶어서라도 직접 만들어 먹습니다. 아이들하고 같이 장식해도 재미있다 하고요. 그래서 수퍼마켓들이 장식하기 직전 상태까지 완성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따로 내기도 합니다. 직접 만들어 먹고는 싶으나 재료 준비하기 귀찮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케이크 키트kit도 따로 팝니다.

 

구운 날 바로 먹을 수 없다는 것이 영국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장점이자 단점인데요, 장점은, 오래 묵히기 때문에 깊은 맛이 난다는 것. 단점은, 계획 잘 짜서 미리 만들어 두지 않으면 크리스마스 임박해서는 만들 수가 없으므로 하는 수 없이 시판 제품을 사다 먹어야 한다는 겁니다.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 웨이트로즈 레서피에서 재료만 옮겨 보자면요,

 

• 750g Waitrose Wholesome Vine Fruit Mix 건포도와 커런트 3종 모둠
• 250g soft apricots, quartered 반건조 살구
• 200g tub cut mixed peel 당절임 오렌지 껍질, 당절임 레몬 껍질
• 200g tub glacé cherries, halved 당절임 체리
• 100g pitted soft prunes, quartered 반건조 자두
• Grated zest and juice of 1 orange 오렌지 한 개 분량의 껍질 간 것과 즙
• 100ml Drambuie 스코치 위스키로 만든 리큐어
• 250g unsalted butter, softened 무염 버터
• 200g dark muscovado sugar 머스코바도 설탕
• 5 medium eggs, beaten 달걀
• 300g plain flour, sieved 밀가루 중력분
• 200g walnut pieces 잘게 부순 호두

 

밀가루는 300g을 쓰는데 과일은 1500g을 씁니다. 꽈당 과일이 무려 다섯 배! 말린 과일이니 생과일로 환산하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과일이 들어간다는 소립니까? 그야말로 '프룻' 케이크죠.

 

30인분 정도가 나오는 레서피입니다. 오래 저장할 수 있고 만들기 번거롭기 때문에 한 번 만들 때 양을 많이 해서 만듭니다. 마지판과 로얄 아이싱 재료는 뺀 케이크 재료만인데도 재료비가 어마어마합니다. 돈 없는 사람은 명절에 못 만들어 먹어요.

영국인들은 명절 케이크뿐 아니라 웨딩 케이크에도 이 프룻 케이크를 씁니다. 케이트와 윌리엄도 ☞ 자기들 웨딩 케이크 속을 현대식인 가벼운 바닐라나 쵸콜렛 스폰지 대신 전통식인 이 프룻 케이크로 선택했지요. 위에 걸어 드린 <웨이트로즈> 수퍼마켓의 레서피는 향신료가 빠진 거라 설탕양만 좀 줄이면 한국인들 입맛에도 잘 맞을 듯합니다. 무겁다고는 해도 그래도 떡보다는 가볍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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