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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영국 디저트의 끝판왕, 트라이플 Trifle 본문
▲ <웨이트로즈> 수퍼마켓의 트라이플 레서피.
야, 이거 근사하다.
▲ 당장 만들어 봄.
영국인들의 명절상, 잔칫상에 단골로 오르는 트라이플을 이제야 소개합니다. 1500년대에 이미 그 기록이 있는 오래된 디저트입니다. 조린 과일compote과 크림으로 만드는 풀fool에서 진화한 것으로 영국의 음식사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풀은 그간 두 번에 걸쳐 소개해 드렸지요. 풀과 비슷하지만 조린 과일 대신 절인 생과일을 쓰는 이튼 메스Eton mess도 소개해 드렸고요.
트라이플은 풀보다 공정이 훨씬 복잡하고 보기에도 더 화려합니다.
위에 올린 사진들은 일인용으로 담은 거라서 다소 자유분방해 보이는데, 원래는 굽 높은 거대한 유리 그릇 안에 여러 재료들을 차곡차곡 층 내서 담아야 합니다. 호스트가 식탁 가운데 트라이플을 놓으면 다같이 환호를 한 뒤 각자의 그릇에 덜어 먹습니다. 덜다가 식탁보에 '철퍼덕' 흘리기 일쑤죠. 호스트는 속으로 피눈물 흘리는 겁니다. 윽, 아끼는 내 식탁보.
저는 아예 먹기 편하도록 1인용 트라이플 그릇에 만들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원하시면 큰 트라이플 그릇에 8인분을 한꺼번에 만드셔도 됩니다. 취향껏 하세요.
이게 가정요리인데요, 크아악, 공정이 무슨 미슐랑 스타 레스토랑 디저트 뺨치게 복잡합니다. 분석을 해보면 파인 다이닝 디저트에 쓰이는 기술적 요소 중 쵸콜렛과 설탕 분야 빼고 다 들어가 있습니다. 오븐에 굽기, 과일 조리기, 시럽 만들기, 젤리 만들기, 달걀을 기초로 한 소스(커스타드) 만들기, 크림 다루기, 소스에 향 입히기infusion, 바삭한 질감의 토핑 준비해 얹기 등.
좋아하는 과일을 써서 맛을 얼마든지 다르게 낼 수 있으므로 변주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요즘은 제철 최상의 상태일 때 수확해 급속 냉동해 둔 과일을 언제든 쉽게 구할 수 있어 계절 따지지 않고 자유롭게 만들 수 있지요. 다만, 층을 내는 데는 순서가 대략 정해져 있으니 지켜 주셔야 합니다.
트라이플 층 내는 순서
1. 맨 밑에 스폰지 또는 비스킷을 깔아 과일 즙이나 술로 흠뻑 적시고
2. 그 위에 젤라틴 녹인 과일 즙을 부어 냉장고에서 굳혀 젤리 층을 만들고
3. 그 위에 조린 과일compote을 얹고
4. 그 위에 커스타드를 만들어 식혀서 얹고 [취향껏 향을 입힐 수 있음]
5. 그 위에 크림을 거품 내서 얹은 뒤 [이것도 취향껏 향을 입힐 수 있음]
6. 먹기 직전에 시각적 효과와 식감을 고려해 이런저런 토핑을 얹어서 상에 냅니다. 층을 낸 내용물이 모두 부드러운 것들이므로 토핑은 대개 식감 대비를 위해 바삭한 것들로 얹어 냅니다.
영국 <웨이트로즈> 수퍼마켓의 레서피입니다. 과자와 마지판을 사다 써서 공정이 그나마 많이 줄었는데, 이것들까지 직접 만들어 쓰면 트라이플 만드는 데만 꼬박 하루를 다 써야 할지 모릅니다. 시간이 없거나 기운이 없는 분들은 트라이플 대신 풀fool로 내 보세요. 자두 조린 것, 자두 조릴 때 생긴 시럽, 거품 낸 크림만 써서 만들 수 있습니다. 공정은 단순하지만 이것도 아주 맛있습니다.
[8인분]
재료
자두 콤포트와 젤리
• 체리 리큐어인 키르쉬Kirsch나 석류 주스pomegranate juice 100ml
• 팔각 2개
• 잘 익은 자두 1.2kg, 반 가르고 씨 빼기
• 설탕 160g [영국에 계신 분들은 골든 카스터 슈가를 쓰시면 됩니다.]
• 판 젤라틴 4장
마지판 커스타드
• 화이트 마지판 120g
• 전지유whole milk 480ml
• 옥수수 전분 30g
• 설탕 30g
• 중간 크기 달걀 노른자만 5개
• 바닐라 익스트랙트 1작은술 [1작은술=5ml]
• 더블 크림 300ml
키르쉬 크림
• 더블 크림 300ml
• 키르쉬 소량, 약 30ml 정도
토핑
• 겉이 단단한 아몬드 비스킷 혹은 라타피아스Ratafias 비스킷 150g [2/3는 그릇 바닥에 깔고 나머지는 부수어 토핑으로 뿌립니다.]
• 아몬드 플레이크 30g, 마른 팬에 살짝 구워 놓을 것
• 석류 씨앗 3큰술 [1큰술=15ml]
만들기
자두 콤포트와 젤리
1. 오븐을 190˚C로 예열한다. 팬 오븐은 170˚C.
2. 자두 반 가른 것들이 한 겹으로 고르게 깔릴 만한 오븐용 그릇을 준비한다. 키르쉬나 석류 주스 100ml를 물 150ml와 함께 붓는다. 팔각을 넣는다. 손질한 자두들을 자른 단면이 위를 향하게 한 겹으로 깐다. 설탕 160g을 골고루 뿌린 뒤 오븐에 넣고 20~25분간 굽는다. 자두가 부드러워지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3. 판 젤라틴을 찬물에 넣고 5분간 불린다.
4. 오븐에서 꺼내 자두는 다른 그릇에 옮기고 팔각은 버린다. 액체는 계량컵에 따로 받아 둔다. 계량컵의 눈금이 500ml가 되도록 끓는 물을 보충한다.
5. 젤라틴을 꼭 짜서 4에 넣고 녹인 뒤 완전히 식힌다.
마지판 커스타드
6. 마지판을 적당한 크기로 뜯어 베이킹 트레이에 올린 뒤 오븐에서 4~6분간 구워 준다. 살짝 녹으면서 연한 색이 나야 한다. 태우지 않도록 주의한다.
7. 구운 마지판과 우유를 냄비에 한데 넣고 데운다. 끓기 직전에 불에서 내린 뒤 마지판 향이 우러나도록 20분간 둔다.
8. 블렌더에 곱게 간 뒤 고운 체로 한 번 걸러 냄비에 도로 담는다. 끓기 직전까지 다시 데운다.
9. 데워질 동안 옥수수 전분, 설탕, 달걀 노른자를 별도의 우묵한 그릇에 담고 잘 섞는다.
10. 9에 데워진 8을 천천히 부어가며 거품기로 잘 섞는다. 다시 불에 올려 이번에는 2분간, 혹은 적당히 걸죽해질 때까지 약불에서 끓인다simmer.
11. 적당히 걸죽해지면 불에서 내려 바닐라 익스트랙트를 넣고 잘 저은 뒤 조리용 내열 랩으로 표면을 덮어 막이 생성되지 않도록 한다. 그대로 식힌다.
12. 더블 크림 300ml를 11에 넣고 잘 섞는다. 마르지 않도록 밀폐용기에 넣어 냉장시킨다. (최대 3일간 보관 가능)
조립
13. 1인용 트라이플 그릇 여덟 개를 준비해 라타피아스 비스킷 2/3를 골고루 분배해 깐다. 식힌 자두 시럽을 붓고 냉장고에서 1시간 가량 굳힌다. 젤리층이 형성될 것이다.
14. 젤리 층 위에 자두 조린 것을 얹고, 마지판 커스타드를 얹고, 더블 크림 300ml를 키르쉬 30ml와 섞어 거품을 내서 얹는다.
15. 상에 내기 바로 직전에 아몬드 플레이크, 잘게 부순 라타피아스, 석류 씨를 토핑으로 얹어 낸다. 미리 얹으면 눅눅해진다. 끝. ■
▲ 즉, 1인용 트라이플 그릇을 준비해서
▲ 비스킷이나 스폰지를 구워 바닥에 먼저 깔고
(저는 게을러서 그냥 시판 제품 사다가;;)
▲ 과일 조릴 때 생긴 시럽에 젤라틴을 넣고 녹여 -
트라이플 잔에 붓고 - 냉장고에서 굳혀 젤리 층을 만든 뒤
▲ 과일 조린 것을 얹고
▲ 마지판으로 향 낸 커스타드를 끼얹고
▲ 키르쉬로 향 낸 크림을 얹고 - 각종 토핑을 흩뿌려 완성.
▲ 만들기는 다소 번거롭지만 수고한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맛있는 디저트.
평가 및 교정
맛있어요, 맛있어. 뿌듯해 죽습니다. 껄껄.
그런데, 사진에 있는 것처럼 조립을 하니 저한테는 양이 많네요. 식후에 먹는 것이므로 과자양과 과일양은 대폭 줄이는 게 좋겠습니다. 과자는 사실 안 깔아도 될 것 같아요. 같은 과자를 어차피 토핑으로 위에 보슬보슬 또 뿌려 주니 이중으로 넣을 필요가 없어요. 그냥 젤리 층 - 과일 층 - 커스타드 층 - 크림 층 - 토핑으로만 구성해도 되겠습니다. 유럽 아몬드 과자들이 설탕을 좀 많이 쓰는 경향이 있어 과자 층을 생략하면 칼로리도 줄이고 설탕 섭취도 많이 줄일 수 있겠습니다.
구워서 향을 돋운 마지판으로 커스타드에 향을 입힌다는 게 특이한데, 커스타드가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어지니 마지판 향 입히는 단계는 생략하지 마시고 꼭 해보세요. (커스타드를 얼리면 아이스크림이 됩니다. '투게더' 아이스크림 비슷한 맛이 납니다. 시판 아이스크림의 첨가물과 촌스러운 인공향이 싫은 분들은 집에서 직접 커스타드를 준비해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드셔도 됩니다. 커스타드 만들기 무척 쉽습니다.)
자두를 반만 갈라 넣었더니 좀 컸어요. 잘 조리고 난 다음 한 번 더 잘라 주는 게 좋겠습니다. 4등분이 되는 거죠. 그런데 과일 크기가 너무 작으면 또 '찌질'해서 먹는 기분이 안 납니다. 잘게 썰거나 깍둑 썰지는 마시고 한입 가득 씹는 맛을 만끽할 수 있을 크기로 썰어 보세요.
한국에서도 트라이플 그릇을 파는지 모르겠는데, 벽이 곧게 올라가는 유리잔이면 어떤 것이든 괜찮습니다. 기둥stem이 있는 잔이면 보기가 좀 더 좋고, 손으로 잡고 먹기에도 편합니다. ■
▲ 트라이플 분석 - 해체된 트라이플deconstructed trifle.
이 요소들 가지고 파인 다이닝 디저트 만드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듯.
▲ 영국인들에게 트라이플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것만 논하는 책이 다 나와 있을 정도.
트라이플의 유래와 전파, 수세기에 걸쳐 변천해 온 레서피들이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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