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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키퍼 Kipper · 훈제 청어 Smoked Herring 본문
▲ 웨이트로즈 수퍼마켓의 훈제 생선 진열대.
왼쪽부터 훈제 청어,
훈제 해덕(haddock, 노란색 흰색 두 가지),
훈제 대구cod, 훈제 연어.
청어를 먹는 나라는 지구상에 참으로 많지요. 오늘은 영국인들의 청어 취식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네덜란드나 독일 등 과거 ☞ 한자 동맹이었던 지역에서는 청어를 초절임해서 많이들 먹는다죠. 우리는 해풍에 꾸덕꾸덕 말려서 과메기로 먹고요. 영국인들은 청어를 훈제해서 먹습니다.
<영국 훈제 청어의 이모저모>
헤링herrings
훈제하지 않은 청어의 영어 이름. 옛 독일어에서 온 단어임. 독일어로는 'Hering'.
실버 다알링silver darlings
바닷물 속에서 은빛으로 아름답게 반짝인다고 해서 어부들이 붙인 별명.
키퍼keepers
머리와 꼬리는 두고 내장만 제거한 뒤 반 갈라 나비처럼 펼쳐 염장brining하고 냉훈cold-smoking한 청어. 오늘 소개할 생선임. 먹기 전에 조리를 해야 함.
블로터bloaters
통째로 염장·냉훈한 청어. 내장이 든 채 가공하기 때문에 한국의 통과메기와 마찬가지로 풍미가 짙음. 사냥 고기game 같은 진한 맛이 난다고 함.
버클링bucklings
머리, 꼬리, 내장은 제거하되 이리milt나 알roe은 그대로 두고 가공한 훈제 청어. 낮은 농도로 염장한 뒤 높은 온도에서 짧게 열훈hot-smoking함. 열훈 생선이라 조리하지 않고 그냥 먹을 수 있음.
레드 헤링red herrings
한 달간 염수에 담갔다 일주일간 열훈해 살이 빨갛고 풍미가 매우 강한 청어. 오랜 염장과 열훈으로 매우 짠데다 바싹 말라 있기까지 해 먹기 전 48시간 물에 담가 소금기를 빼고 불려서 써야 함. 사냥개 후각을 단련시킬 때 일부러 향이 강한 레드 헤링을 여우 사냥터 주변에 둔다고 해서 '훈제한 청어'라는 본뜻 외에 '사람의 주의를 딴 곳으로 쏠리게 하는 것'이라는 새로운 뜻이 붙게 됨.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에서도 이 표현이 중요하게 쓰임. 사실, 어떤 추리소설이든 독자의 주의를 흩뜨리기 위해 작가는 '레드 헤링'을 심어 놓기 마련.
영국인들이 훈제 청어를 이렇게 세분해서 먹고 있었다니 놀랍죠. 그렇긴 해도 향이 특별히 강한 것들은 즐겨 먹는 이가 드물어 수퍼마켓들도 대개 키퍼만 갖다 놓습니다. 이외의 것들은 생선 가게를 가야만 볼 수 있고, 생산자 누리집을 통해 직배송을 시킬 수도 있습니다. 훈제 생선을 좋아해 저희도 가끔 사 먹는데, 고맙게도 값이 참 쌉니다.
▲ 키퍼 - 머리와 꼬리는 살리고 내장은 제거한 뒤
반 갈라 펼쳐서 염장하고 냉훈한 청어
전통식으로 훈제한 키퍼를 한 마리 사 왔습니다. 영국에서는 잉글랜드 동쪽의 노썸벌런드Northumberland 어촌에서 생산하는 키퍼와, 영국 서쪽 바다의 만 섬Isle of Man에서 생산하는 키퍼가 가장 유명합니다. 각각 '크라스터 키퍼Craster Kipper', '망스 키퍼Manx Kipper'라고 합니다. 키퍼는 동사로도 쓰이는데, '(생선, 특히 청어 등을) 소금 뿌려 훈제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어떻게 먹냐면요,
키퍼 위에 버터 한 조각을 올려 오븐의 그릴 열선 아래 넣고 4분 정도 열을 가합니다. 생선이 갖고 있던 자체 기름과 버터가 자글자글 끓으면서 생선이 익습니다. 접시에 옮겨 담고 레몬 조각, 잘게 다진 파슬리, 스크램블드 에그, 토스트, 영국식 밀크티 한 잔을 곁들여 드시면 됩니다. 한 사람이 한 마리를 다 먹는 겁니다. 나비 모양으로 펼쳐서 커 보일 뿐 실제 양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영국에서 훈제 청어는 아침 식사로 통합니다. 아침부터 생선을 먹는다니 신기하죠. 영국인들은 아침에 단백질을 충분히 먹어야 한다는 강박증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 스크램블드 에그와 영국인의 아침 식사
☞ 브렉퍼스트 홍차와 영국인의 아침 식사
크라스터 키퍼에 관한 짧은 소개 영상입니다. 이제는 맞벌이 가정이 많아져 아침을 잘 챙겨 먹을 수 있는 집이 많지 않은데다, 요즘 젊은이들은 생선 가시 발라먹기를 귀찮아해 키퍼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고 하네요. 어떻게든 살아 남으려고 업계에서는 값싸면서도 오메가-3 지방산이 많은 몸에 좋은 생선, 어획고가 다른 생선들에 비해 비교적 넉넉한데다 잡을 때 다른 엉뚱한 생선들을 희생시키지bycatch 않는 지속성 높은sustainable 생선으로 열심히 홍보를 해댑니다. 말하자면 '효능 드립'과 '환경 드립'을 하는 거죠. 그런데, 오메가-3 지방산은 청어말고도 정어리, 고등어, 연어 등에도 많아 젊은이들에게 호소하기가 쉽지 않아요. 이것들은 가시가 적어 먹기도 편하죠. 수퍼마켓 매대에서도 훨씬 많이 보이고요. 특히 접근성, 편이성 등에서 훈제 고등어에 많이 밀립니다. 저희도 훈제 고등어 다섯 번 사 먹을 때 키퍼는 겨우 한 번 사 먹는 것 같아요.
▲ 청어의 가시. '폭풍 같은 가시의 향연이 가히 압박적'.
정교한 가시 좀 보세요. 생선 꽤 잘 발라먹는 다쓰베이더도 어휴어휴 하면서 먹습니다. ㅋ 그냥 씹어 먹을 수 있는 가늘고 여린 가시조차도 반드시 제거하고 먹어야만 하는 단단은 살 발라먹는 데 30분은 족히 걸립니다. 하도 꼼지락거리면서 먹으니 먹으면서 소화가 다 돼 먹고 나면 또 배고픕니다. ㅋ
청어의 가시 패턴을 한 '헤링herring본bone' 옷감.
제가 청어 이야기할 때마다 꼭 언급하는 버버리 헤링본 남성 코트입니다. 청어 좋아하는 사람들은 헤링본 옷감으로 된 옷이나 헤링본 패턴으로 쌓은 벽돌, 바닥만 봐도 군침 돌겠습니다. 가시 바르기가 귀찮아서 그렇지 맛은 참 좋죠.
영국의 어느 영감님이 젊은이들 키퍼 먹이려고 친절하게도 동영상을 손수 제작해 올리셨습니다. 이보게 젊은이들, 가시는 이렇게 제거해 보오. 오븐도 필요없고 전자 레인지에 45초만 돌려 주면 된다오.
저도 다음 번에는 이 방법을 써 봐야겠습니다.
요즘 사람들을 위해 머리와 꼬리를 떼어내고 큰 가시들을 어느 정도 제거한 키퍼 살토막fillet도 따로 나오기는 합니다. 조리법은 일반 키퍼와 같습니다.
그래도 가시들이 제법 남아 있어 먹을 때 조심해야 하죠. 이것도 전통식으로 훈제한 거라 맛이 아주 좋습니다. <웨이트로즈> 수퍼마켓에 가셔서 'Craster Kipper fillet'이라고 써 있는 것을 사시면 됩니다. 과메기를 먹어 본 적이 없어 가공한 청어가 어느 정도 비린지 잘 모르겠는데, 전통식으로 훈제한 키퍼는 훈향 덕분인지 전혀 비리지가 않네요. 훈제 고등어보다 덜 비리고 고소하기만 합니다.
전통식으로 훈제한 키퍼는 아무 수퍼마켓에서나 취급하지 않고 <웨이트로즈>같은 곳에 가야만 살 수 있습니다. 다른 수퍼마켓들은 현대식 전기 설비로 속성 생산한 키퍼를 팝니다. 장시간 훈제한 전통식 키퍼의 색을 흉내 내느라 파프리카나 아나토annatto 색소로 물들이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을 보면 픽 웃음이 나오기는 해도 색이 진하니 먹음직스러워 보이기는 합니다. 전통식은 아니지만 이것들도 나름 맛있습니다. 진공 포장이라 좀 더 촉촉하고요. 전통식 키퍼보다 훈향은 약해 카리스마가 부족하긴 합니다.
청어 기름, 버터, 레몬 즙, 파슬리가 어우러진 즙은 그냥 버리지 않고 통밀빵 토스트로 삭삭 닦아 먹습니다. 얼마나 맛있는데요. 영국에 계신 분들은 꼭 한 번 드셔 보세요. 참, 여기 사람들도 청어 알roe과 이리milt를 먹습니다. 여기서도 별미delicacy로 칩니다. 토스트에 스윽 펴 발라 먹죠.
영국 여행 오셔서 아침 식사로 이 키퍼나 ☞ 아놀드 베넷 오믈렛 같은 영국식 훈제 생선을 드시고 싶은 분들은 아침에 런던의 고급 호텔들을 찾아가세요. 영국에서는 아침에 훈제 생선 먹는 것을 뭔가 예스럽고 우아한 것으로 여깁니다.
▲ 런던 <클래리지스Claridges> 호텔 요리책 '아침식사편'의 훈제 청어.
각 나라의 취식법을 비교하는 것도 꽤 재미있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의 취식법.
☞ 현지에서 사 먹는 통과메기
☞ 가정집에서 먹는 과메기 (어휴, 협찬 안 받고 쓴 글 찾기가 왜 이리 힘든지.)
독일식입니다.
☞ 비스마르크헤링 (색다른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네요.)
☞ 롤몹스 (돌돌 말린 모습이 귀엽고 예쁩니다.)
이건 네덜란드식이랍니다.
☞ 하링 (먹는 모습이 재밌습니다.)
이건 스웨덴식.
☞ 쑤스트러밍 (청어 취식의 끝판왕, 삭힌 청어)
외국 사시는 분들은 그 나라 청어 먹는 법 좀 소개해 주세요~ ■
▲ 영국 작가가 쓴 청어에 얽힌 북유럽 국가들 이야기.
▲ 작가의 책 소개.
미식가들은 이 책 끼고 '북유럽 청어 여행' 하는 것도 괜찮을 듯.
▲ 키퍼로 차린 영국의 전통 아침상.
☞ 영국음식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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