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고기는 무슨 맛?

 

앞으로는 생일에 모험을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모험이란 무엇인고 하니, 

 

1. 돈을 모아 솜씨 좋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예약한다. 

2. 가서 지금까지 꺼려해 먹지 않았던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주문한다. 가령, 토끼고기라든가, 닭발이라든가. 

 

기웃이: 왜 꼭 "솜씨 좋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어야 하죠?

단□단: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를 경험, 잘하는 집을 가야 재료의 질과 위생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고 맛에 대한 편견도 덜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 Saddle of rabbit, pancetta, salt baked turnips and

tarragon. <Pollen Street Social>, London, Sep 2016.

 

 

 

올해 다쓰베이더 생일에는 양고기와 토끼고기를 먹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둘 다 고기를 썩 즐기지 않아 쇠고기나 닭고기도 잘 안 먹는 마당에 양고기, 토끼고기를 먹어 봤을 리가 없지요. 영국에서 토끼고기, 사슴고기 같은 사냥고기game와 양고기는 고급 고기로 통합니다. 값도 비싸죠. 마침 본식으로 양고기와 토끼고기를 둘 다 내는 집이 있어 예약을 하고 다녀왔습니다. 미슐랑 1-스타 집입니다. ☞ Pollen Street Social

 

참고로, 영국에서는 토끼고기를 다음과 같이 구별해서 씁니다. 어린 고기는 고급 요리에, 성체는 오래 익히는 스튜나 파이에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 young rabbit (오늘 소개할 토끼고기)

• adult rabbit

• young wild rabbit

• adult wild rabbit

• leveret (한 살 미만의 어린 해어hare)

• hare (래빗보다 몸집이 크면서 고기 색도 더 짙고 맛도 더 강함)

 

영국의 유명한 사냥고기 취급점을 걸어 드릴 테니 영국인들은 (혹은 유럽인들은) 어떤 사냥고기들을 먹는지 한번 구경해 보세요. 정리를 잘 해놓았습니다.

☞ The Wild Meat Company

저희는 아직 육식 내공이 달리니 이번에는 래빗을 먹고, 해어는 다음 기회에 맛보도록 하겠습니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라서 본식에 어린 토끼young rabbit 고기를 쓰나 봅니다. 살이 적색육이 아니라 백색육에 가깝죠. 성체가 될수록, 야생일수록 고기 색이 짙어지며, 또 다른 종인 몸집 큰 산토끼hare는 훨씬 더 짙습니다. 고기 색이 짙어질수록 맛도 진해진다고 보시면 되고요. 지방이 거의 없어서 저렇게 조제 삼겹살bacon, pancetta로 겉을 싸 주기도 합니다. 

어린 토끼 고기의 맛은, 참 놀라울 정도로 아무 맛이 안 납니다. 신기해요. 고기란 아무리 어려도 대개 그 동물 특유의 향을 희미하게나마 지니기 마련이고 부위에 따라 맛과 향과 고깃결이 또 달라지기 마련인데, 아무 향도 안 나고 아무 맛도 안 납니다. 굳이 가장 비슷한 고기를 억지로 대 보라면 닭고기 정도? 그보다도 향미가 약하지만요. 사람들이 왜 비싼 값 치르며 어린 토끼를 먹는지 저로서는 이해가 잘 안 갔는데, 딱 한 가지 장점을 꼽자면, 육질이 치밀하면서 벨벳처럼 매우 곱다는 것. 그러니까, 이 어린 토끼 고기는 고운 결, 소스, 곁들이는 음식 맛으로 먹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좋게 말하면 '담백'하고, 솔직한 평을 하자면 고기 맛 자체의 개성은 좀 떨어지는, 그런 고기입니다. 기름기 없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여간 어린 토끼 고기는 꺼릴 만한 냄새가 전혀 없으니 안 드셔 보신 분들은 안심하고 시도해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영국 전통음식 중에 성체의 고기로 만드는 '래빗 파이'가 있는데 추운 계절에 인기라고 하네요. 잘하는 집 찾아가서 그것도 한번 맛봐야겠습니다. 거기까지만 맛보고 토끼고기는 더 안 먹으렵니다. 사람들이 자꾸 찾으면 또 닭처럼 배터리 케이지에 갇혀 살게 될 게 분명합니다. 한국 전통음식에도 토끼고기 요리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 
 

 

 

 

▲ 원, 싱거운 녀석들.

 

 

 

 

 

 

 

 

▲ 꽥! 단단님, 이러시기예요, 정말?!?! 내 동심~ ㅠㅠ

 

 

 

 

 

 

 

 

▲ 원망의 눈동자. 마커스 웨어링Marcus Wareing의 <길버트 스콧 레스토랑The Gilbert Scott>에서 내는 래빗 파이. 영국 전통음식. 심심한 어린 고기로 만드는 파인 다이닝식 세련된 요리보다는 성체 고기를 맛있는 소스와 함께 익히는 이런 전통 파이가 더 맛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