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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크리스마스 푸딩 Christmas Pudding 본문
이 고양이 갈란드garland 기억 나십니까. 여러 분들께서 열화와 같은 반응을 보이셨죠. 고양이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는 소립니다. 그런데, 이 고양이 녀석이 들고 있는 게 뭐냐면요,
민스 파이와 함께 영국의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크리스마스 푸딩입니다. 크리스마스에 먹는 푸딩이라는 소리가 아니라 음식 이름이 '크리스마스 푸딩'이에요. 크리스마스에 먹습니다. 으응? 헷갈려 ㅋㅋ
크리스마스 만찬 끝에 즐기는 전통 후식이죠.
그런데,
요리사 표정이;;
남의집살이하면서 명절 음식 장만하느라 아주 피곤에 절었네그려;;
그림에서 크리스마스 푸딩을 잘 보세요. 대포알처럼 동그란데다 불꽃에 휩싸여 있죠. 면보로 꽁꽁 싸서 삶거나 찌면 저런 모양이 나옵니다.
요즘은 대포알 모양보다 이렇게 위·아래가 평평한 모양이 더 흔하지만요. 이제는 더이상 면보에 싸지 않고 도자기로 된 푸딩 용기를 써서 익히기 때문에 양쪽 바닥 모두 평평하게 나옵니다.
옛 시절에는 정교한 틀을 써서 모양을 내기도 했습니다. 멋낸답시고 탑 모양의 깊은 틀을 썼다가 푸딩이 미처 다 빠져 나오지 못 하고 허리가 뚝 부러져 나오는 일도 다반사. 아아, 만찬 참석자들의 실망에 찬 탄식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크리스마스 푸딩은 플럼 푸딩에서 유래
그림에서 'plum'이라는 단어가 보이죠? 1723년의 요리책 《The Cooks and Confectioners Dictionary》에 'Plum Pudding'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음식사학자들은 현재로서는 이를 크리스마스 푸딩의 전신으로 보고 있습니다. 레서피는 다음과 같습니다:
"쑤잇suet, 건포도, 밀가루, 설탕, 달걀 노른자, 달걀 흰자를 섞어서 면보에 잘 싼 뒤 4~5시간 삶는다."
어떤 음식이 요리책이나 사전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그 이전부터 이미 그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었다는 소리죠.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레서피라는 뜻이지, 플럼 푸딩이라는 이름은 훨씬 전부터 여러 문헌들에 언급이 되고 있었습니다. 빅토리안 시대에 와서야 크리스마스 음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20세기 들어와서는 이름에서 아예 '플럼'이라는 단어가 완전히 빠져 '크리스마스 푸딩'으로 고착이 되었죠.
옛 문헌에서 플럼은 자두가 아니라 건포도와 커런트를 뜻한다
과거 영국에서는 건과일을 플럼으로 총칭했습니다. 그래서 영국 문학이나 문헌을 번역할 때 '플럼 푸딩'이나 '플럼 케이크'라는 단어가 보이면 이걸 문자 그대로 '자두 푸딩'이나 '자두 케이크'로 옮겨야 할지, 아니면 (건)과일 푸딩이나 (건)과일 케이크로 옮겨야 할지, 시대와 문맥을 잘 살펴야 합니다. 영국 영어에서는 단어가 사전에 있는 뜻을 그대로 의미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어 우리말로 옮길 때 주의해야 하죠. 일례로, '민스 파이'를 '다진 고기 파이'로 번역하면 옛날식이 됩니다. 요즘은 민스 파이에 고기를 넣지 않거든요. 또, 영국인들이 "치즈 앤 피클"이라고 말할 때는 조각 치즈와 오이 피클이 아니라 얇게 저민 체다와 갈색의 깍둑 썬 혼합 채소 처트니를 넣은 샌드위치를 가리킬 때가 더 많고요. 위의 그림에서 '플럼 푸딩'은 건과일을 듬뿍 넣어 만든 '프룻 푸딩'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건과일도 아무 과일이나 뜻하는 게 아니라 원래는 'vine fruit'인 건포도raisins, sultanas와 커런트currant를 뜻했습니다. 영국의 전통 단것들에 단골로 쓰이던 재료들입니다. 크리스마스 푸딩, 크리스마스 케이크, 크리스마스 민스 파이, 웨딩 케이크 모두 비슷한 재료를 써서 만들었죠. 차이가 있다면, 케이크와 민스 파이는 오븐에 굽고, 크리스마스 푸딩은 찌기 때문에 식감이 많이 다르다는 것.
브랜디 끼얹고 불 붙이기
이 크리스마스 푸딩의 백미는 바로 불을 붙여서 낸다는 데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만찬 상에 둘러앉은 이들이 다같이 환호하는 순간이죠. 너무 오래 묵은 브랜디를 쓰면 불이 잘 붙지 않는다고 하니 염두에 두셔야겠습니다.
크리스마스 푸딩 접시
어디에 담아서 내면 좋을까요? 끼얹은 브랜디를 잘 담고 있어야 하므로 크리스마스 푸딩 접시로는 이렇게 살짝 패인 형태의 것을 쓰시면 좋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일자 접시'라고 하기에는 깊으나 또 너무 깊게 패이지는 않았죠. 크리스마스 푸딩 자체가 짙고 단조로운 갈색이 나므로 접시 테두리는 원색의 화려한 문양이면 좀 더 잘 어울립니다.
다양한 제품 시식
그런데, 이방인인 다쓰 부처가 크리스마스 푸딩이란 걸 먹어 본 적이 있어야지요. 이것저것 다양하게 맛을 보고 감을 잡아야 훗날 집에서 직접 만들든 말든 할 텐데요. 그래서 귀국하기 전까지는 한 해도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잘 만든 것들로 사다 먹었습니다. 이건 속에 비싼 당절임 오렌지 하나가 통째로 박혀 있던 헤스톤의 크리스마스 푸딩이었고요,
이건 퐁당 쇼콜라처럼 가운데에 쵸콜렛 연못이 있던 제품이었고,
둘이 먹기에는 양이 많아 가끔은 미니 푸딩을 사 먹기도 했고,
올해는 헤스톤이 이란풍도 아닌 옛 페르시아풍으로 맛을 냈다길래 보자마자 냉큼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일찍 품절되기 일쑤라서 재빨리 행동해야 합니다. 꿀, 오렌지, 로즈 워터로 맛냈다고 포장 그림이 저렇습니다. 기괴하면서 재미있죠.
간단한 작품 설명이 써 있습니다. 요리도 예술이므로 작가의 짤막한 변을 들을 수 있으면 좋지요. 그래, 페르시아풍으로 맛내려면 어떤 재료들을 넣으면 되는 걸까요?
반건조 살구, 석류주, 피스타치오, 설탕에 지져서 단맛을 농축시킨 오렌지, 중동풍 향신료, 향 좋은 꿀과 로즈 워터로 맛낸 버터 등등.
맛내느라 공부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재료가 다 들어가 있네요.
푸딩은 이렇게 생긴 일회용 그릇에 담겨 있었습니다. 이대로 끓는 물에 반쯤 잠기게 넣고 두 시간을 찌면 됩니다. 이미 한 번 익혀서 낸 제품이라서 두 시간만 찌면 되는데,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사람들은 막 여덟 시간 넘게도 찌고 그럽니다. 오래 찌고 나면 푸딩 속에 있던 설탕 성분이 캬라멜화해서 한국에서 먹던 갈색 엿과 비슷한 맛이 나죠.
수퍼마켓들은 크리스마스 푸딩을 대개 검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종이 상자에 포장해 내놓지만 동네 제과점들은 이렇게 전통식으로 도자기 푸딩 그릇에 담아 면보에 싸서 팝니다. 좀 더 시詩적이죠. 소량 생산품인데다 그릇 값이 포함돼 있어 대신 돈을 더 줘야 합니다. '수제'와 '소량 생산품'이 반드시 재료와 맛이 더 나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요.
빈 그릇은 다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릇 가게, 백화점, 수퍼마켓 등에서 아예 그릇만 따로 살 수도 있고요. 써머 푸딩summer pudding이나 다른 전통 푸딩을 만들 때도 이런 그릇이 필요하므로 영국에서는 그릇 가게라면 어떤 집이든 이를 취급합니다. 저도 크기별로 몇 개 사 두었습니다. 채리티 숍에서도 자주 눈에 띕니다.
두 시간을 찐 뒤 접시에 옮겨 담았습니다. 크리스마스라고 표면에 식용 반짝이를 도포했네요. 역시 헤스톤.
▲ 크리스마스 푸딩 단면.
장시간 숙성시킬수록 재료가 잘 어우러진다.
오래 찌면 푸딩 속 당 성분이 캬라멜화한다.
(사진을 클릭하면 크고 생생한 푸딩 사진이 뜹니다.)
영국 크리스마스 푸딩은 그야말로 '맛 폭탄'입니다. 달기도 엄청 달고, 맛도 엄청나게 농축돼 있어 한입 먹고 나면 정신이 버쩍 들죠. 과일을 생과일이나 조린 과일이 아닌 건과일과 당절임 과일로 듬뿍 넣고 향신료도 다양하게 넣는데다, 알코올 도수 높은 독주까지 넣어 오래 숙성시키니 맛의 강도가 대단히 셉니다. 그래서 중화시켜 줄 버터나 크림 같은 유제품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 크리스마스 푸딩에 곁들이는 브랜디 버터, 브랜디 크림, 브랜디 소스
유제품을 곁들이면 미각 체험이 완전히 달라지니 꼭 곁들이세요. 크리스마스 푸딩은 맛이 강한데다 밀도가 높아 적은 양으로도 만족감을 충분히 얻을 수 있어 푸딩 크기가 작아도 여러 사람이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만들기 힘드니 한 번 만들어 여럿이 먹을 수 있으면 좋지요.
영국인들이 크리스마스 푸딩에서 기대하는 식감은 이렇다고 합니다: '무겁지만 떡져서는 안 되며 가볍게 흩어져야 한다.' 이게 좀 어렵죠. 이 푸딩은 이 요건을 충족합니다. 다양한 종류의 건과일과 당절임 과일, 견과류가 들어 있어 씹는 곳마다 맛과 질감이 다 달라 재미있고요.
▲ 접시에 옮겨 담은 1인분.
왼쪽은 브랜디 버터. 뒤에는 액상 크림.
헤스톤이 올해에도 역시 맛을 잘 냈네요. 매년 다른 맛을 선보이고 있는데, 다쓰 부처 입맛에는 매년 만족스러웠고, 올해의 푸딩은 제가 지금까지 사 먹은 것들 중 가장 맛있었습니다. 페르시아풍으로 맛냈다고는 하지만 사실 영국 전통 단것들에도 이국 향신료가 원래 다양하게 쓰이고 있어서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헤스톤의 크럼블 민스 파이도 역대 최고로 맛있었으니 2016년은 여러모로 헤스톤에게 고마운 한 해였네요. 브랜디 버터도 곁들여 먹어 보고, 크림을 부어서 먹어 보기도 하고, 남은 것으로는 이런저런 응용 요리도 해 보고, 최대한 다양하게 즐겼습니다.
기웃이: 어라? 단단 님, 레서피는요?
단 단: 한국에서는 재료 구하기도 쉽지 않고 만들기도 번거로울 테니 레서피는 소개하지 않으렵니다. 영국에 계신 분들은 그냥 잘 만든 걸 사 드세요. 끝.
▲ ☞ 요리책 <Pride and Pudding>에 담긴
크리스마스 푸딩 찌는 법
섭섭하시다고요? 레서피 대신 크리스마스 푸딩의 얼개를 대략 설명하자면요,
• 빵가루와 쑤잇suet 혹은 버터를 바탕 삼아,
• 여기에 설탕, 건포도raisin, sultana, 커런트currant, 당절임 감귤류 껍질candied peel을 섞고,
• 시나몬, 넛멕, 올스파이스 등으로 구성된 영국식 '믹스트 스파이스'로 향을 낸 뒤,
• 우유, 달걀, 맥주 같은 액체를 접착제 삼아 뭉치되,
• 소금을 소량 푼 브랜디나 위스키를 푸딩에 섞어 단맛에 강세를 더해 준다.
• 밀가루, 견과류, 말린 자두나 당절임 체리, 당근을 갈아 넣는 것은 현대에 와서 추가된 변주.
• 재료들 간에 맛이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몇 시간에서 최대 일주일까지 휴지시킨다.
• 그 뒤 500g짜리 푸딩은 최소 5시간, 보통 크기의 것은 8시간 이상 초벌 찌기를 한다.
• 완전히 식힌 다음 새 종이로 덮어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까지 최소 한 달을 또 묵힌다.
• 크리스마스에 낼 때는 재벌 찌기를 해줘야 한다. 이때는 2~3시간 정도만 쪄도 된다.
▲ 영국 전통 단것들 먹다가
당절임 레몬 껍질candied lemon peel 씹히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
제가 왜 사 드시라고 하는지 이유를 아시겠지요. 재료도 많이 들지만 공정도 복잡하고 완성하기까지 시간도 보통 많이 걸리는 게 아녜요. 숙성 과정을 두 번이나 거쳐야 하고, 찌는 것도 장시간의 초벌 찌기와 재벌 찌기, 두 번을 해야 하죠. 그래서 'Stir-up Sunday'라는 용어가 다 있는 거지요. '게으른 자여, 오늘도 안 만들면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마스 푸딩 못 낼 줄 알라.'는 엄중한 경고가 담겨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푸딩을 만들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는 뜻입니다. 이 날이 지나서 만들면 숙성 기간이 충분하지 않아 푸딩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술을 넣고 숙성시키는데다 밀봉해서 오래 찌기 때문에 제대로 만든 것은 대신 2년까지도 저장이 가능합니다. 저도 실제로 2년 묵은 크리스마스 푸딩을 데워 먹어 본 적 있어요.
기웃이: 남은 푸딩은 어떻게 하죠?
단 단: 남은 크리스마스 푸딩 처치법은 다음 글에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 크리스마스 푸딩이 담긴 옛날 크리스마스 카드들.
▲ 전시 배급제를 행하던 시절
정부에서 간소화해 배포한 크리스마스 푸딩 레서피.
전시라도 명절에는 어쨌거나 국민들을
디저트까지 제대로 챙겨 먹일 수 있어야 한다.
수입품이었던 밀가루와 설탕이 부족해
감자와 당근을 보조로 갈아 넣게 한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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