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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본문

영국음식

단 단 2017. 1. 16. 00:00

 


 

부엌에 있는 칼 모두 소집.

 

 

 

단단은...

 


칼질을...

 

 

 

 

드랍게 못 합니다. 꽈당

칼을 무서워하거든요. 아직도 사과 껍질을 잘 못 까요. 손 다치면 악기 못 다루게 될까봐 어릴 때부터 손에 해로운 것들을 멀리하던 습관이 있어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중·예고에서는 체육 시간에 음악과 아이들 손 다칠 만한 운동을 일절 안 시킵니다. 콩쿠르나 입시 앞두고 손 다치면 큰일 나죠. 


허나.

칼질 못 해도 맛있는 건 잘만 해먹습니다. 요즘은 미리 손질돼 나오는 재료들도 많고 편리한 도구들도 많아 요리할 때 우리 엄마들처럼 칼질을 많이 할 일이 없더라고요. 채소 몇 가지 잠깐 썰고 나면 끝. 채칼과 Y-필러도 많이 쓰고요. 생선도 포fillet가 미리 잘 떠져 포장돼 나옵니다. 맞벌이 가정이 많은 나라라서 그런지 다양한 요리들을 위한 식재료들이 참 놀라울 정도로 잘 손질돼서 깔끔하게 포장돼 나옵니다. 좋은 걸까요, 나쁜 걸까요? 샐러드 재료들이 먹기 좋게 미리 준비돼 소포장으로 나와 주니 바쁜 현대인들이 그나마 채소를 쉽게, 자주,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식탁에 신문지 펼쳐 놓고 채소 다듬고 껍질 까시던 우리 엄마들 모습이 떠오릅니다. 

 

사실 '칼질을 잘한다'는 개념도 저는 좀 헷갈리는 게, 꼼지락거리면서 썰어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그 음식에 필요한 형태로는 반듯하게 잘 썰어서 쓰고 있거든요? 가정집에서 그럼 된 것 아닌가요?  

 

맨 위에 있는 끝이 뾰족한 야채칼은 다쓰베이더 것, 그 밑에 있는 사각 야채칼은 단단 것, 나머지는 공유합니다. 칼질도 못 하면서 부부가 각자 자기 칼을 갖고 있어요. 웃기는 짬뽕들이죠. 그래도 영감 칼질은 제 칼질보다는 쬐끔 낫습니다.

 

 

 

 

 

 

 

 

 영국의 유서 깊은 철강 도시인 셰필드산 저가 칼들이

고가의 일제 칼보다 더 잘 들다니, 이게 웬 조화냐.

 

 

첫 사진에 있는 칼들은 실제로 집에서 다 쓰는 것들입니다. 맨 위의 두 개만 비싼 칼이고 나머지는 백화점이나 수퍼마켓에서 산 저렴한 것들인데, 젠장, 백화점에서 산 저렴한 영국 셰필드산 칼들이 비싼 63겹 다마스커스강 일제 토지로Tojiro 칼보다 훨씬 잘 들어요. 숫돌로 한 번 갈아 놓으면 날도 금방 무뎌지지 않고 더 오래 가고요. 그래도 단단은 묵직한 사각 야채칼을 좋아해 저 토지로 칼을 아낍니다.

 

 

 

 

 

 

 

 

 수퍼마켓들이 신학기를 맞아 내놓은 자취생용 초저가 칼.

싸구려 칼들도 다 쓸 데가 있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중국 도끼칼은 재료 써는 데 쓰지 않고 하가우 피 미는 데 씁니다. 중국칼 바로 옆에 있는 것도 수퍼마켓들이 새 학기에 자취생용으로 내는 초저가 칼인데, 이런 싼 칼들은 고기나 생선 뼈 '쾅쾅' 자를 때 쓰면 좋아요. 이 빠진 칼이 생기면 버리지 마시고 잘 갖고 계세요. 험한 작업 할 때 쓰면 되거든요.



 

 

 

 

 

칼이 아무리 좋아도 벼리지 않으면 말짱 꽝.

 


저는 토마토를 상식하기 때문에 칼이 조금이라도 무뎌지면 대번 불편함을 느낍니다. 칼날 상태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식재료 중 하나가 이 토마토 아닐까 싶어요. 토마토나 김밥 썰기 좋은 톱날칼이 나와 있기는 한데, 푸드 스타일링 중시하시는 예민한 분들은 다들 잘 아시죠? 톱날칼로 채소나 음식 썰면 미묘하게 미워지는 거. 

 

맨 왼쪽의 집게 클립처럼 생긴 것은 숫돌에 칼 갈 때 각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는 도구인데, 저거 끼었다 뺐다 하면서 비싼 토지로 칼 옆면과 로고 다 긁었어요. 크흡. 

 

광속으로 칼질하고 있는 요리사보다 관리 잘 된 칼 갖고 있는 요리사가 저는 훨씬 '프로페셔날'하고 멋있어 보입니다. 아, 광속 칼질도 날 관리를 잘 해야만 가능한 건가요? 칼 지갑 갖고 다니는 요리사, 남들 쉬는 시간에 구석에서 조용히 칼 갈고 있는 요리사, 검객 같기도 하고 도 닦는 수도승 같기도 하고, 뭔가 멋있죠. 제 블로그 이웃 중에 이런 멋있는 분이 계십니다. 한식 요리사이신 누룽지 님이라고. 가만, 찌르는 칼이 아니고 베는 칼이니 도객이라고 해야 합니까? 

 

궁금한 점 하나 -  

서양 요리사들은 칼을 용도별로 주루룩 갖춰 놓고 쓰고, 중국 요리사들은 둔중한 도끼칼cleaver 하나로도 오만 작업을 척척 해내잖아요? 다양한 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요리사와, 칼 하나로 다양한 작업을 거뜬히 해내는 요리사, 어느 쪽이 더 고수일까요?  
 

 

 

 

 

 

 연어 산지라서 영국에서는 백화점들이

가정용 새먼 나이프도 다 판다.

 

 

 

 

 

 

 

새먼 나이프는 이렇게 쓴다. 훈제 연어뿐 아니라

그라바들락스gravadlax 같은 조제 연어 썰 때도 쓴다.



 

 

 

 

좋아하는 영화 <음식남녀>의 시작 부분.

완성된 음식뿐 아니라 준비하는 과정도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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