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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 스머프

햄버거만 보면 한숨이 나

단 단 2018. 1. 13. 22:40

 

 

 


기웃이: 아니? 왜 한숨이 나요? 햄버거 맛있지 않나요?

: 맛있어요. 햄버거 좋아합니다. 재료 품질만 좋다면 영양학적으로도 문제없고요.

기웃이: 그런데 왜요?

 

일단, 

음식 꼴이 말이 아녜요. 저것 보세요, 무려 6,200원 주고 산 버거킹 치즈 와퍼 단품인데 매장에서 먹겠다는 사람한테도 저렇게 뻣뻣하고 거추장스러운 종이에 싸서 줍니다. 저 뻣뻣하고 거추장스러운 종이 때문에 먹을 때 종이에 묻어 있던 소스가 막 코에도 묻고 소매에도 묻고 그래요. 재료들 기껏 차곡차곡 잘 쌓아 '조립'해 놓고는 왜 종이에 둘둘 말아 모양을 망가뜨립니까? 저는 이 관행이 정말 이해가 안 갑니다. 저 봐요, 번 표면에 케첩과 마요네즈 덕지덕지 묻고 양상추 끝 부러진 거. 푸드 스타일링 중시하는 저로서는 애써 만든 음식을 일부러 망가뜨려 내라는 영업 지침을 이해할 수 없어요. 분식집 김밥을 생각해 보세요. 포장 손님한테는 알루미늄 포일에 싸 줘도 매장에서 먹겠다는 손님한테는 그릇에 담아 내주잖아요. 국물도 주고, 단무지나 김치도 주고요. 값은 저 와퍼의 반도 안 하는데요. 

 

 

 

 

 

 

 

 

광고 사진과의 이 크나큰 괴리 어쩔.

종이에만 안 싸도 한결 낫겠구만.

 

 

두 번째, 

먹기가 너무 힘들어요. '품위' 있게 먹겠다는 게 아니라, 아무리 봐도 한입에 먹을 높이가 아닌데 다들 한입에 먹는 음식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는 점이 늘 의아하다는 겁니다. 덩치 큰 다쓰베이더한테 "햄버거 먹을 때 안 불편하오?" 물었더니 자기도 불편하답니다. 제가 혼밥으로 햄버거 먹고 있는 다른 식탁의 성인 남성들을 유심히 관찰해 봤는데, 와아, 햄버거 깨물 때 표정, 어마무시하게 험악합디다. 다들 눈썹과 양 미간이 알파벳 'W'자를 그리더군요. 먹기가 힘드니 한입 가득 깨물어 볼도 그냥 개구리 왕눈이처럼 볼록. "입 안 벌어지면 햄버거를 호떡처럼 꽉 눌러 압착해 먹으면 되지." 아, 이런 끔찍한 소리는 마시고. 앞니와 어금니가 누려야 할 'crushing'의 즐거움을 손이 앗아가면 안 되죠.

 

 

 

 

 

 

 

 

 

휴... 

보세요. 최선을 다해 깨물었는데 번 뚜껑과 양상추 조금밖에 안 씹혔어요. 기껏 'W'자 인상까지 써 가며 입 벌렸는데 이거밖에 입에 안 들어 오니 뭔 보람이 있어야죠. 이러면 다음엔 어떤 순서로 먹게 될지 짐작 가시죠.

위 뚜껑과 양상추 먹고, 아래 번과 패티와 토마토 먹고, 

위 뚜껑과 양상추 먹고, 아래 번과 패티와 토마토 먹고,

위 뚜껑과 양상추 먹고, 아래 번과 패티와 토마토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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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 가장자리 둘러 가며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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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추임새처럼 내용물과 소스 뚝뚝 흘려 주고.

잘못하면 번만 남기고 내용물이 뒤로 밀리기까지.

이러면 또 번 뚜껑 떼어 내용물을 안으로 밀어 줘야 하죠.

 

 

 

 

 

 

 

 

 

그러니까,

먹다 말고 찍은 이 햄버거 사진을 보시면 눈썰미 있는 분들은 단단이 어떻게 고군분투하며 먹었는지 추리가 가능하실 겁니다.  

 

 

 

 

 

 

 

 

 

윗부분 먹고 (1번)

아랫부분 먹고 (2번)

윗부분 먹고 (3번)

아랫부분 먹고 (4번)

먹다 보니 뒤에 있던 토마토가 앞으로 밀려 뒤가 좀 얇아졌길래 '오, 나도 드디어 한입에 모든 요소를!' 희망을 품고 용기 내어 힘껏 입 벌려 깨물었으나 (5번) 

코 끝에 마요네즈나 묻..

세 번째, 가격.

영국에서 <맥도날즈>나 <버거킹> 햄버거는 저렴한 한 끼 식사로 통하는데, 한국에서 저는 햄버거가 싸다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저 단품 치즈 와퍼 하나가 무려 6,200원이었는데, 800원 더 보태면 도자기 그릇에 제대로 담겨 나오는 잘 만든 일본 라멘을 사 먹을 수 있죠. 제게는 항상 품질과 서비스에 비해 비싼 음식이었습니다. 주문도 기계에 대고 하게 하고, 서서 기다렸다 받아 오게 하고, 남이 먹다 흘린 음식물 흔적이 남은 지저분한 식탁에 플라스틱 쟁반째 음식 놓게 하고, 접시는커녕 커틀러리도 주지 않으면서 매장 안에 물티슈도, 손 씻는 시설도 갖춰 놓지 않아 균 잔뜩 묻은 손으로 음식 집어 먹게 하고, 먹고 나서 분리 배출까지 하게 하면서 햄버거 하나가 6,200원. 홀대도 이런 홀대가 없어요.

게다가, 근 20년 만에 먹은 저 치즈 와퍼가 이제는 옛날만큼 맛있지가 않더라고요. 다쓰 부처 둘 다 버거킹 치즈 와퍼 애호가였는데요. 흡사 전자 레인지에 데운 것 같은 질긴 번에 즙 없이 뻑뻑하기만 한 패티. 그걸 만회하려는 듯 소스는 떡칠. 한국 햄버거들 질이 하락한 걸까요, 제 입맛이 변한 걸까요. 저녁 식사 시간이었는데도 매장에 손님이 너무 없어 한국에서 햄버거 인기가 이제 예전 같지 않나 보다 궁금했습니다. 'Gourmet' 버거 집들은 어떤지 한번 가 봐야겠습니다. 거긴 좀 나으려나요. 

 

 

 

 

 

 

 

 

수퍼마켓에서 사다 오븐에 구워 먹었던 스페인풍

미니 버거. 초릿쏘 소세지 고기와 만체고 치즈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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