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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 스머프

한식의 처지

단 단 2019. 10. 20. 02:16

 

 

 

 

선릉역 1번과 2번 출구 뒤에 테헤란로 직장인들을 위한 <먹자거리>가 조성돼 있지요. 길 입구에 "먹자거리"라고 새겨진 조형물이 서 있습니다. 세련돼 보이는 집은 거의 없지만 어쨌든 세계 각국의 음식이 고루 들어와 있는 듯합니다. 한식 고기구이집이 가장 많은 것 같고, 그 다음이 일식, 여중·여고가 근처에 있어 거리 초입에는 분식집과 단음료집도 있습니다. 

직장인들이 점심 시간에 어떤 음식을 먹나 관찰해 보니, 고기구이를 소량 곁들인 한식 백반상을 특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집들에 손님이 항상 많거든요. 대로에 면해 있는 큰 빌딩 지하에는 아예 점심 한정 7,8천원 받는 한식 뷔페들도 제법 있고요. 아침밥 굶고 출근하는 사람이 많은지 오전 11시 30분부터 점심 손님이 차기 시작합니다. 집에서 못 먹은 집밥을 밖에 나와 찾는 거죠. 

사진은 올 봄에 사 먹었던 선릉역 먹자거리 어느 한식 고기구이집의 7천원짜리 가정식 백반상입니다. 서울의 점심 가정식 백반은 이제 밥, 국, 고기구이, 반찬 여섯 가지가 기본 차림이 된 듯한데, 이 집은 경쟁 때문에 쌈채와 쌈장을 더 내기로 한 모양입니다. 바로 옆에 같은 음식을 내는 집이 또 있거든요. 강남에서 이렇게 내고 대체 어떻게 가게를 유지할 수 있는 걸까요? 

근처의 다른 식당도 가 보겠습니다.  

 

 

 

 

 

 

 

 

위의 한식당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던 태국음식점입니다. 메뉴를 보고 단품요리 중 먹고 싶은 걸 골라 주문하면 되는데, 저 한식 백반과 가장 비슷해 보이는 음식을 시키니 이런 음식이 나옵니다. 온전한 살코기도 아닌 갈린 돼지고기에 타이바질잎 몇 장 채썰어 넣고 향신료 넣어 매콤하게 볶았습니다. 무친 오이도 아닌 생오이 두 쪽에 밥은 그냥 맨밥입니다. 자스민 라이스를 쓰거나 코코넛유, 판단잎 등으로 밥에 향이라도 내줄 줄 알았는데 형편없는 그릇에 맨밥입니다. (맛은 좋았습니다. 또 먹고 싶어요.)

그런데, 
이런 한그릇밥에 초절임한 무 소량과 국물 찔끔 내주고는 11,000원을 받습니다. 앞의 7천원짜리 한식 백반상과 비교해 보세요. 한식의 가련한 처지에 눈물이 날 지경이죠. 시공간 차이가 한참 나는 것도 아니고, 같은 먹자거리에 있고 비슷한 시기에 사 먹은 건데 이런 불평등이 존재합니다. 

그러면 이런 박한 식당에는 손님이 없어야 할 것 같은데 이 집도 손님이 버글버글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한식을 사랑한다 목청껏 부르짖지만 실상은 한식만 후려치고들 있었던 거죠. 


다채로운 반찬은 한식의 큰 자랑거리, 

가짓수는 많을수록 좋지, 
양도 넉넉해야 해, 
고기와 쌈도 당연히 있어야 해, 
그러면서도
늘 보는 정겨운 우리 음식이니 값은 싸야 해.

"태어나 보니 어쩌다 한국"이어서 저는 한식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애착을 보이거나 애국심을 투영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이건 좀 마음 아픈걸요. 한식당들 처지가 어째 다른 아시아 식당들보다 한참 못합니까. 한식 백반집들이 지금보다 현명하게 영업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와야겠습니다. 아니, 왜 우리 음식을 우리가 후려치고 있어. 

제 바람으로는,
반찬 염도를 지금보다 줄이고 맛과 품질을 높여 저 남유럽의 따빠스, 삔쵸스, 치케티, 메쩨처럼 제값 치르고 골라 주문할 수 있게 하면 좋겠습니다. 맛있는 반찬을 눈치 안 보고 얼마든지 추가 주문할 수 있어 저는 이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서양의 미슐랑 스타 한식집이나 유명 한식집들 중에 이렇게 하는 집들이 꽤 있지요.

 

 

 

 

 

 

이게 다 포탈과 방송사들 탓일지도.

며칠 전 다음 대문에 뜬 '무한리필'집 광고.

낼모레면 2020년인데 아직도 이 짓을 하고 있다.

 

 


[2016년 글] 방송사들 행태 보고 개탄한탄한 단단
☞ [2015년 글] 식당 반찬도 주문제로 바뀌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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