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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있는 사물

내 마음의 보석상자

단 단 2022. 7. 24. 22:40

 

 

 

 

빠듯하게 생활하던 유학 시절에도 결혼기념일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돈 없는 다쓰베이더가 보석이 잔뜩 든 함을 어느 결혼기념일에 슬며시 찻상 위에 올려 놓았었다. 채리티 숍에서 75펜스, 우리돈 약 1천원 주고 집어 온 눈 결정 사진집이다. 







 

 

미국에 계신 분들은 아마 이 대단한 일을 한 미국인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지도 모르겠다. 윌슨 벤틀리(Wilson Bentley, 1865-1931)는 교사였던 어머니로부터 15세 때 현미경을 선물 받아 주변의 온갖 것들을 들여다보다가 눈 결정에 매료되었다. 처음에는 이를 그림으로 남겨 보려 했으나 금방 녹아 사라지는 특성상 지독한 어려움을 겪었고, 17세 생일에 현미경이 붙은 사진기를 선물 받고는 그림이 아닌 사진으로 남기기로 결심한다. 녹아 사라지는 것을 포착하려니 이 작업도 쉽지는 않았다는데, 시행착오 끝에 결국 만 스무 살이 되기 직전 눈 결정 하나를 단독 촬영하는 데 성공한다. 

 

(1) 먼저 검은 벨벳 천에 눈을 받아 (2) 관찰용 유리판에 눈 결정 하나만을 골라 옮긴 후 (3) 주름상자bellows가 있는 '뷰 카메라view camera'에 부착된 현미경에 놓고 촬영해야 하는데, 녹아 사라지기 전 재빨리 찍어야 하니 영하의 추운 날씨에 야외에서 무수한 시행착오와 인고의 시간을 보내 내놓은 결과물이다. 

 

촬영만 하지 않고 눈이 내릴 당시의 온도와 풍향 등 기상 상태도 함께 꼼꼼히 기록해 기상 조건이 달라지면 눈 결정 모양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냈으며 특정 조건에서는 특정 모양의 결정이 형성된다는 연관성을 주장했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당시 그가 사용했던 용어들은 학계에서 아직까지도 통용되고 있으며, 실험을 통해 주장이 검증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실험실에서 조건을 통제해 원하는 결정 모양을 어느 정도 구현할 수 있는 ☞ 'designer snowflakes'의 단계에까지 와 있긴 하나 눈 결정의 신비는 아직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벤틀리는 눈 결정 사진을 필요로 하는 곳 - 학교, 연구소, 티파니 같은 보석상 - 에 복사본을 만들어 보내곤 했는데, 사진 값으로 받은 돈은 총 7,500달러, 사진을 복사해서 보내는 데 든 실제 비용은 이의 두 배 되는 15,000달러였다 하니 나처럼 열정만 가득하고 이끗을 좇는 일에는 발밭지 못했던 모양이다.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생계를 위해서는 농장일을 해야만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다가 농한기인 겨울이 되면 또 눈 사진.

 

1931년 12월은 유난히 따뜻했기에 눈이 내리지 않아 친구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눈에 흥분해 친구의 만류에도 눈 사진 찍겠다며 추운 날 무리해서 집으로 돌아간 탓에 폐렴에 걸렸고 결국 이로 인해 사망했다.

 

5천 장 넘게 남긴 눈 결정 사진들은 그가 죽기 전 기상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과학적, 미학적으로 특별히 가치 있는 것들 2천여 장으로 엄선돼 출판되었다. 초판은 1931년, 단단이 소장한 것은 1960년판, 지금도 계속해서 출판되고 있다. 옛 시절의 제약 많던 장비로 남긴 기록들이지만 결과물의 품질이 훌륭해 그가 첫 눈 결정 사진을 남긴 지 백년이 지나도록 후속 작업이 시도되지 않았다고 한다.

 

No two are identical. 

단 한 번도 똑같이 재현되지 않는 자연 현상에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느낀다.  

구름도 그래서 좋아한다. 

빠른 속도로 매우 잘 조절되는 고성능 조리개와 자동 초점 기능을 가졌었던 미취학 아동 시절의 나는 내 손등 위에 내려앉은 눈의 결정을 맨눈으로 발견하고 그 정교함에 몹시 놀란 적이 있다.

결혼기념일에 2천 개가 넘는 눈 결정 사진을 본 뒤로는 세상 보석이 시시해졌다. 

이제는 갖고 있는 보석을 착용하지도 않고 새로 사지도 않는다.






 

 

단순한 판plate 형태의 눈 결정서부터,

 

 

 

 

 

 

 

 

꽃모양의 것,






 

 

정교하게 분화된 별모양의 것까지 다양하게 관찰.

이 책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 순으로 정렬.






 


늘 그렇듯 비대칭 비정형의 불규칙한 것들도 존재.







 

 윌슨 벤틀리에게 경의를.

 

 

 

 

 

칼텍(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물리학 교수가 만든 눈 결정 누리집 

최근 기술로 찍은 눈 결정 사진들 - Snowflake Structure Still Mystifies Physicists

눈송이 연구의 역사 - Timeline of Snowflake Research

아이슬란드 해변의 다이아몬드

보석의 의미

구름감상협회

30일 동안 찍어 이어 붙인 8만 장의 구름 사진

눈 결정 모양의 크리스마스 진저브레드 비스킷 만들기 (1) 

눈 결정 모양의 크리스마스 진저브레드 비스킷 만들기 (2)

 

 

 

댓글 10
  • 프로필사진 더가까이 2022.07.27 15:28 신고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생각나게 하는 너무 좋은 선물이네요. 역시 스카이워커님은 멋져요!!!

    귀중한 자료를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윌슨 벤틀리라는 이름 처음 들어봐요. 참 대단한 열정으로 귀중한 자료들을 남겨주셨군요. pp. 198-199 비대칭/비정형 결정 사진들은 처음 보네요. 꼭 식물 이파리 같아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은 참 신비롭죠? 작게 molecular world에도 크게 celestial world에도 비슷한 우주가 펼쳐져요. 레이스 수예로 눈 결정 많이 만들던데 pp. 194-195 같은 것 만들려면 어려워서 머리 쥐어 뜯겠네요 ㅋㅋㅋ

    (눈 결정이 육안으로 보이다니.... 띠용~~ 😵)
  • 프로필사진 단 단 2022.07.28 09:20 신고 잠깐. 더가까이 님은 스카이워커의 블친이 아니라 단단의 블친인데 "역시 스카이워커 님은 멋져요!"라니요, "역시 단단 님은 멋져요!" 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1천원짜리 선물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보석처럼 소중히 여기는 이 마눌님의 순수하고 고귀한 정신이야말로 칭송 받아 마땅하지 말입니다. 흥.

    네, 저도 198-201쪽에 있는 것들 보고 나뭇잎 같다는 생각 했어요. 저는 인체의 혈관, 강줄기, 산맥, 나뭇가지의 분화 양상에 유사점이 보이는 게 늘 신기하고, 프랙탈도, 대칭도 신비로워요. 대상포진 앓았을 때 인체가 대칭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몸소' 깨달을 수 있었는데, 몸의 딱 절반에만 수포가 올라오면서 통증이 발생합니다. 추운 날 창에 서리가 끼어 발달해 가는 모습은 꼭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의 성장을 보는 것 같아요. 조물주의 솜씨는 정말 놀라워요.

    레이스 뜨개 언급하셔서 궁금해 "lace snowflake"로 이미지 검색해 보니, 우와아아~ @.@ 눈 결정 응용 미술 중 이 레이스 뜨개와 페이퍼 컷이 으뜸이네요. 어휴, 이런 세계가 있다는 건 또 어뜨케 아셨어요. >_< 식욕 왕성한 저는 그저 눈꽃, 눈별 모양 과자나 만들어 즐기고 있었는데요;;

    (아이 때는 시력에 큰 문제 없으면 현미경만큼은 아니지만 눈 결정이 어느 정도 보일 텐데요? 눈앞에 바싹 붙여서 보았더니 가시가 삐죽삐죽, 하도 신기해 눈 오는 추운 날 밖에 한참 서서 눈 들여다본 적 있어요.)
  • 프로필사진 익명 2022.07.28 09:30 비밀댓글입니다
  • 프로필사진 더가까이 2022.07.28 10:27 신고 아 단단님 멋지신 것은 다들 익히 아는 사실이고, 스카이워커님의 매력은 조금씩 알아가는거잖아요~ <크리스마스 선물>에 비유했을때는 당연히 짐/델라의 알콩달콩이죠. (해명하느라 진땀 삐질 삐질) 두분의 멋진 사랑과 낭만의 모습을 요즘 젊은이들도 좀 보고 배워야할텐데 말이죠.

    눈 엄청 좋아하는데 어릴때는 눈 오면 뭉쳐서 눈사람 만들고 눈싸움 할 생각만 하느라 자세히 볼 정도의 정서가 없었나봐요. 사내놈들이란 그저... ㅋㅋ
  • 프로필사진 익명 2022.07.28 10:33 비밀댓글입니다
  • 프로필사진 익명 2022.07.30 01:20 비밀댓글입니다
  • 프로필사진 익명 2022.07.30 01:44 비밀댓글입니다
  • 프로필사진 희건 2022.07.28 13:14 역시 단단님은 멋져요 (제가 대신 ㅎㅎ)
    실험실에서 조건 통제해 만들어낸 디자이너 눈 결정 사진들은 신기하면서도 너무 깔끔해 마치 그린것 같아요
    책에 담긴건 반을 추린 2천여개라는데 다 다른 모양이라니 조물주는 참 부지런하기도 합니다
    여성분들은 보석 다 좋아하실것 같은데 눈 결정이 더 예쁘다는 분 뵈니 참신(?)합니다
    한여름에 시원한 보석 사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프로필사진 더가까이 2022.07.29 23:17 신고 😄 👍
  • 프로필사진 단 단 2022.07.30 01:11 신고 감사합니다. 으쓱으쓱.
    "조물주는 부지런하다" - 네, 매일 반복해서 일어나지만 한 번도 같지 않은 자연 현상, 참 많지요.
    저는 보석이나 화장품 살 돈 있으면 그 돈으로 맛있는 음식이나. ㅋ 아무래도 여자가 아닌가 봅니다.
    오늘도 참 더웠죠? 무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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