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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세 본문
▲ 단단의 시모께서 먼먼 옛날 혼수로 장만하셨던 접시들.
두 장 남은 것을 기념품으로 달라고 졸라 물려받았다.
표면에 흠집이 잔뜩 생기고 전사가 많이 벗겨졌다.
'허니문 베이비'인 다쓰베이더도 이만큼 낡았다는 소리.
우리 영감님은 56세에 돌아가셨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심장이 멈추는 바람에 "얘들아, 나 간다, 안녕." 소리도 못 하고 그냥 가 버리셨다. 이십대였던 단단은 장례를 치르며 '남들보다 조금 일찍 가셨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나이가 든 지금에 와서야 그게 얼마나 이른 죽음이었는지 깨닫고 탄식에 탄식을 거듭한다. 56세라니.
이제 내 큰오라버니가 이 나이에 가까워지는 중이다. 형제나 사촌, 친지, 블친 중에서 56세가 되었거나 56세가 돼 가는 분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근심을 하게 되고 조바심을 내게 된다. 소매 붙들고 제발 건강하세요 잔소리 하고 싶어진다.
혼수로 산 전자 레인지가 과열도 되지 않았는데 작동중에 가끔씩 뚝 멈춰 선다. 시작 단추를 재차 누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이어서 잘 돌아가지만 이 별것 아닌 사소한 오작동이 내게는 심장 멈춘 이를 연상시켜 트라우마를 일으킨다. 잠자리에 옆에 누운 다쓰베이더가 쌔근쌔근 소리도 없이 너무 조용하면 코에 손등을 갖다 대 날숨을 확인해 본다. 밤사이 두세 번을 이렇게 하고 나면 숙면을 취하기 힘들다. 차라리 코를 살짝 곯아 주는 게 안심되겠다는 생각도 한다.
얼마 전 생일을 맞은 다쓰베이더가 "나이도 있으니 대장 내시경 좀 받아 볼까?" 하고 병원에 가서는 그냥 두면 암이 될 확률이 높은 용종을 발견해 2박 3일 입원으로 수술을 받고 나왔다. 이제 우리도 '털면 먼지 나는' 나이가 된 것이다.
단단은 운동 잘했던 어린 시절을 믿고 또 주제 파악 못한 채 과격한 운동 하다 두부에 충격이 와 이석증이 재발, 눕고 일어날 때마다, 샤워할 때마다 행여 쓰러질까 다쓰베이더의 부축을 받는 생활을 하고 있다. 멀미가 지속되는 데다 몸도 목도 마음껏 움직일 수 없으니 기껏 뺀 살 도로 다 찌게 생겼다. 당분간 끼니는 하루 두 번에서 한 번으로 줄여야 한다. 혼자 사는 분들께 이석증이 오면 어쩌나 염려된다.
문득 내 주변의 살아 계신 모든 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제발 건강하시기를.
아프셔서 단단 슬프게 하지 마시기를. ■
☞ 심폐소생술
☞ 죽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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