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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넷'(TENET) (2020), 존 타브너 '어린 양' (John Tavener 'The Lamb') (1982) 본문

음악

영화 '테넷'(TENET) (2020), 존 타브너 '어린 양' (John Tavener 'The Lamb') (1982)

단 단 2023. 2. 10. 08:35

 

 

 

 

오늘은 잘 알려진 영시英詩 한 수를 음미하면서 음악을 듣겠습니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의 시에, 영국 현대 작곡가 존 타브너(John Tavener, 1944-2013)가 곡을 붙였습니다. 

 

  

 

 

 

 

 

 

 

The Lamb

어린 양 (1789/1982)

 

William Blake

윌리엄 블레이크

 

 

Little Lamb, who made thee? 
어린 양아, 누가 너를 만들었니? 

 

Dost thou know, who made thee?

너는 알고 있니, 누가 너를 만들었는지?


Gave thee life, and bid thee feed
네게 생명을 주시고 먹게 해주시고,

By the stream and o'er the mead;
강가와 풀밭 위에서

Gave thee clothing of delight,
네게 기쁨의 옷을 주시고,

Softest clothing, wooly, bright;
양털의, 빛나는, 가장 부드러운 옷을

Gave thee such a tender voice,
네게 몹시 부드러운 목소리를 주시고,

Making all the vales rejoice?
온 골짜기를 기쁨에 넘치게 만들었는지 알고 있니?

Little Lamb, who made thee? 
어린 양아, 누가 너를 만들었니? 

 

Dost thou know who made thee?

너는 알고 있니, 누가 너를 만들었는지?

 

-


Little Lamb, I'll tell thee, 
어린 양아, 내가 말해 줄게, 

 

Little Lamb, I'll tell thee;

어린 양아, 내가 말해 줄게


He is called by thy name,
그분은 너의 이름으로 불린단다,

For he calls himself a Lamb
그분은 자기를 어린 양이라 부르셨거든.

He is meek, and he is mild;
그분은 온순하시고 온화하셔.

He became a little child.
그분은 어린 아이가 되셨어.

I a child, and thou a lamb,
나는 어린 아이, 너는 어린 양,

We are called by his name.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불린단다.

Little Lamb, God bless thee! 
어린 양아, 하나님이 네게 복 주시기를! 

Little Lamb, God bless thee!

어린 양아, 하나님이 네게 복 주시기를!

 

 

 

동시 같은 순백한 느낌의 시로, 많은 작곡가들이 이 시에 곡을 붙여 왔다는 것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지요. 음악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니 각 연의 첫 줄과 마지막 줄 끝에 붙은 2인칭 단수 목적격 'thee'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이것들을 전부 오늘날의 'you'로 발음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신비롭고 허무한 느낌의 마침은 나올 수 없었겠지요. (소곤소곤 부르게끔 작곡한 것이 잘 어울립니다.) 영시를 볼 때마다 섬세하게 맞춘 꼬리운脚韻이 저는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미국식 발음과는 다르지요?

Lamb (람) / thou (도우) / softest (소프테스트) / and (안드) / God (곧) 


이 곡의 매력은, 동시풍에 걸맞는 동요풍의 단순한 한 마디짜리 선율과 이의 반복에 있고, 반복 시 템포를 달리하는 데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반복하는 와중에 숨통이 트이고 기계적으로 들리지 않게 됩니다. 또, 미니멀리즘 음악에서 반복 개념을 말할 때는 대개 점진적인 변화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 곡은 짜임새texture에 대비의 개념을 접목하고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그런가 하면, 앞부분에서는 꽤 재미있는 '거울놀이' 혹은 '데칼코마니 장난질'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1. 맨 먼저, 주제가 되는 한 마디짜리 선율을 제시합니다. 잘 보면 빨간 점선을 기준으로 상하 좌우 불완전한 대칭을 하고 있습니다.  

 

 

 

 

 

 

 

2. 그 다음 마디에서는 두 성부 사이에 완전한 상하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를 음악에서는 '전위inversion'라고 부릅니다. 대칭 모양을 살리느라 "who-"에서 아주 잠깐 불협화음이 되며 성부 교차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3. 그 다음 두 마디에서는 빨간 점선을 중심으로 선율이 좌우 대칭을 보여 줍니다. 이런 기법을 두고 "뒤의 마디는 앞 마디의 '역행retrograde'이다."라고 말합니다. 

 

평범한 선율에 올림표와 내림표를 붙여 살짝 기묘하게weird 들리도록 했습니다.

 

 

 

 

 

 

 

4. 그 다음 두 마디에서는 상하 반전inversion과 좌우 반전retrograde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이렇게 하면 (1) 윗성부에 나타나는 순행prime과 (2) 이의 역행retrograde, 그리고 (3) 아랫성부에 나타나는 순행의 전위inversion와 (4) 이 전위의 역행retrograde-inversion까지, 한 개의 선율에서 세 개의 새로운 선율이 파생됩니다. 존 타브너의 특허 기술이 아니라 중세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쓰이는 기초 작곡 기법입니다.

 

작곡가들은 곡을 쓸 때 위의 기법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지적 유희를 심어 놓기도 하는데, 감상자나 독보자가 이를 알아채면 마치 보물 찾기 놀이에서 흰 쪽지를 찾아 낸 아이들에게 상품 주는 선생인 양 잘했다 칭찬하며 즐거워합니다. 작곡가의 의도 따위는 모르고 음악을 들을 때가 더 신비롭고 좋다는 분들이 계시는가 하면, 자고로 음악이란 알고 들으면 더 재미있는 법이라며 이것저것 열심히 찾아 공부하는 분들도 계시죠. 어느 쪽이든 상관없습니다. 즐기는 게 중요하죠. 

          

5. 거울놀이를 마치고 나서는 드디어 4성부가 합심해 근사한 화음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는,

느려지고, 두  배 로  느 려 지 고, 점....점.....더......느.......려........집..........니...............다.

 

 

 

 

 

 

 

 

 

이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테넷》(2020) 이야기를 해 볼까요?

이 영화 재미있게 보신 분, 손?

 

저요. 하도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여러 번 봤습니다.

 

뭐가 그리 신기하고 재미있었나 -

놀란 감독은 물리학 용어들을 빌려와 이 영화를 설명하던데, 영화를 보니 제가 위에서 설명한 기초 작곡 기법인 순행prime과 이의 역행retrograde 개념이 나옵니다. 저는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영화 보는 걸 즐기는데 (어떤 땐 장르도 모르고 봅니다.) 이 영화 보면서 깜짝 놀랐었습니다.

 

놀란 감독이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음악에서 하던 작업이 영상으로 구현되고 있으니 그 도전 정신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죠. 사람도, 차도, 막 거꾸로 다닙니다. 순방향 사건과 역방향 사건이 동시에 진행된다는 개념. 허허, 이거 음악에서는 아주 흔한 건데요. (사소한 '삐끗함'으로 인해 무질서도가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는 음악도 같이 소개하고 싶었으나 하나의 글에 너무 많은 주제가 담기면 독자분들 힘들므로 그건 다음에.)

 

그래서 저, 물리학 하나도 모르는데도 이 영화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작중 인물이 제가 위에서 악보 놓고 했던 설명과 똑같은 설명을 물리학 개념과 용어를 써서 하는 대목이 있죠. 그 대목 보면서 "다 필요 없어, 다 필요 없어, 저거 작곡가들이 쓰는 기법이야." 손사랫짓했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음악의 'retrograde' 개념을 'inversion'이라고 칭하더군요.) 물리학자들이 볼 때는 허점도 있을 듯합니다만, 뭐,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이런 거 몰라도 첩보물, 액션물, sci-fi 영화로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을 작품입니다. 영화 속 과학자도 그러잖아요,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Don't try to understand it. Feel it." 음악 감상할 때도 모든 순간의 음들이 다 이해돼서 즐거운 건 아니니까요. 저걸 영화화하겠다는 발상 자체만으로도 짜릿한 데다 실행 결과물execution도 훌륭해 제 최애 영화 목록에 들게 되었습니다. 

 

놀란 감독 영화에는 '휴머니즘'이 꼭 담겨 있죠. 이 영화에서는 닐이 제 눈시울을 적셨고, 생색 하나 안 내고 묵묵히 여인을 지켜내는 남주 보면서 '이거야말로 나이 든 자의 찐사랑, 성숙한 사랑이로구나' 감동했더랬습니다. 음악인이라서 그런지 단단은 시간 가지고 장난 치는 영화들을 특히 재미있게 보곤 합니다.

 

 

 

 

 

 

 

 

 

 

 

 

 

 

 

 

 

 

 

 

 

 

 

 

 

주인공 관점에서 본 영화 전체의 시간 흐름과 사건들.

 

 

 

 

 

 

자동차 추격 장면의 시간 흐름과 사건들.

 

 

 

 

 

 

닐의 마지막 장면 시간 흐름과 사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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