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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면서 앉아 있기 편한 식당 본문
"대치동 학원가"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이 지역 상권의 특징이랄까요, 온갖 학원이 모여 있는 곳이어서 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을 위한 식당과, 그 아이들을 학원에 데려다 주려고 대기중인 엄마들을 위한 카페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 뭐가 떠오르십니까.
제가 이 동네를 몇 년 지나다니면서 관찰해 보니 돈카츠, 버거, 피짜, 파스타 집이 단연 많습니다. 먹기 편하고, 잘만 만들면 맛있는 음식들이기는 하죠. 오랜만에 돈카츠가 먹고 싶어 대치동 학원가를 돌아다니다가 깔끔해 보이면서 잘할 것 같은 집에 들어가보았습니다.
☞ 남자 음식, 여자 음식, 아저씨 음식, 아가씨 음식
오, 기대가 됩니다.
돈카츠 집 인테리어 좀 보세요. 전부 커다란 4인 식탁에 의자도 푹신해 보이고, 조명도 근사하고, 아주 세련됐어요.
식당에 들어서니, 와아, 실내에 가득 찬 향긋한 빵가루 효모yeast 향과 고소한 버터 향이 식욕을 돋웁니다. 돈카츠 집을 자주 가는 편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맛있는 냄새가 나는 돈카츠 집은 처음입니다.
저는 이제 식당을 고르는 첫 번째 조건이 '맛있는 집'이 아니라 '깔끔한 집'이 되었습니다. 가장 꺼리는 유형의 식당을 꼽으라면, 한식 백반집. 그 다음은 지하에 있는 식당.
혼자 사시는 (중년) 남성 분들은 집밥이 그리워 한식 백반집을 많이들 찾으시지만 저는 평소 제 손으로 집에서 밥을 해먹는 주부이므로 칙칙한 형광등 불빛의 어수선한 한식 백반집은 여간해서 가지 않습니다. 한식 백반집은 반찬 재활용하는 게 만성이 돼 있는 집이 많아 꺼립니다. 아니, 어떻게 생판 모르는 남이 먹다 남긴 음식을 모아 다음 손님한테 낼 수가 있습니까? 저희 집은 부부끼리도 반찬을 따로 담아 먹는데요. (고깃집 쌈장도 재활용한다는 알바 경험자들 말 듣고 경악.)
그래서 일품식 내는 집을 선호하는데, 이런 집들은 반찬을 작은 종지에 찔끔 담아 주니 아무래도 재활용할 여지가 적습니다.
분위기 좋습니다. 직원들도 친절하고요. 음식만 맛있으면 금상첨화이겠습니다.
돈카츠 집의 장점을 꼽아봅시다.
1인 손님이 고기 1인분을 눈치 안 보고 쉽게 먹을 수 있다는 점, 저는 이걸 으뜸으로 꼽고 싶습니다. 고깃집들은 1인 손님 꺼릴 때가 많잖아요. 자기 식탁 위에서 지글지글 연기 내며 구워야 해 성가시고요. 옷에 냄새도 배고, 호흡기에도 좋지 않고, 눈도 맵죠. 몸에 좋지는 않지만 집에서 준비하기 번거로운 튀김을 편하게 앉아서 받아 먹을 수 있다는 것과, 맛있는 생양배추를 듬뿍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겠습니다.
차림표 오른쪽 맨 위에서 네 번째, '제주흑돼지 안심가츠/새우가츠 세트 17,000원'을 주문해 보겠습니다. 콤보이므로 돼지고기 양이 180g에서 절반인 90g으로 줄어듭니다. 잘됐네요. 한 번에 고기를 많이 먹지 못 하는 저는 돈카츠도 평소 두 쪽 이상은 물려서 먹기 힘들어하거든요.
네네, 명심하고 시키는 대로 맛있게 잘 먹어보겠습니다.
일본식 돈카츠는 영국식, 한국식 돈까스는 프랑스식 소스를 고수하죠?
나왔습니다.
흰쌀밥을 잘 먹지 않으므로 다음부터 밥은 고사해야겠습니다. 양배추와 카츠들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따로 덜어 먹게 돼 있는 돈카츠용 브라운 소스와 양배추용 드레싱은 사진에 미처 담지 못 했는데, 전부 집에서 만든 것 같은 신선하면서 약간은 거친, 순진한 맛이 났습니다. 브라운 소스에서 정향clove의 개성 있는 맛이 물씬 나 '이 집 뚝심 있네.' 하고 웃었습니다.
돼지안심은 하도 연해 고기가 맞나 신기해하며 먹었고, 새우도 보들보들 촉촉, 버터와 효모 풍미 강한 빵가루 덕에 두 카츠 모두 고소하고 향기롭고 맛있었습니다.
식탁과 의자 재질이 제법 고급스러우면서 크고 편한 데다 식탁간 간격도 넓어 식사하는 동안 쾌적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저한테는 이제 몸 편하고 마음 편한 식당이 최곱니다. 학원가에서 돈카츠나 사 먹는 '초딩 입맛'이라고 흉보셔도 됩니다. 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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