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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디그리 노스 (One Degree North) ① 싱가포르 치킨 라이스 (Hainanese Chicken Rice, Singapore) 본문

한식과 세계 음식

원 디그리 노스 (One Degree North) ① 싱가포르 치킨 라이스 (Hainanese Chicken Rice, Singapore)

단 단 2023. 4. 21. 00:00

 

 

 

 

20대 청춘 시절에 클럽 한 번 가 보지 못한, 의외로 순진한 단단.

그럼 젊은 처자가 여가 시간에 대체 무얼 하고 놀았느냐?

 

서점 가서 신간 뒤적이고 음반점 가서 신보 뒤적이며 놀았어요. (꽈당)

취미: 자동차 정비, 지도 들여다보기 (한 번 더 꽈당)

 

저는 여태껏 제가 날라리인 줄 알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이 나이가 돼서 과거를 곰곰 돌아보니

숙맥도 그런 숙맥이 없고 너무 건전했던 거예요. (술도 안 마심.)

 

젊어서 놀아 본 사람이 늙어서도 잘 논다는데 잘 좀 놀아볼걸. 흑흑...

 

그래도 술 안 마신 건 잘한 결정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알콜이 강력한 에스트로겐 역할을 해 유방암과 난소암 위험을 매우 높이므로 여성들에게는 단 한 잔의 술도 좋지 않다잖아요. 생리를 한 번도 쉬지 않고 꼬박꼬박 해온 미출산 여성들은 장기간의 에스트로겐 노출로 이 두 여성암의 고위험군에 자동으로 속하게 되는데, 여기다 술까지 마시면 위험이 훨씬 커집니다. 저는 한국 드라마에 유독 술 마시는 장면들이 많이 보이는 것을 우려합니다. 시도 때도 없이 술 권하는 사회. 것두 잘 만든 술을 세련되게 소량 마시는 게 아니라 싼 술 잔뜩 마시고 취해 취중진담으로 손쉽게 남녀관계 진전시키려고. 츳. 게으른 작가들.

 

[BBC] 전세계 연구 - 한 잔 술도 암 위험 높인다

[국립암센터] 술은 1군 발암물질 - 소량 음주도 구강·후두암 등 일으켜

 

술맛 떨어지게 왜 이래요?

어, 술맛 떨어지라고.

 

각설,

대문에서 위 사진 보고 단단이 다 늙어 클럽 놀러 간 줄 아신 분 손? 

 

 

 

 

 

 

 

 

 

'북위 1도'라니, 식당 이름 특이하죠.

알아보니 이게 싱가포르의 위도라는군요.

네에, 싱가포르 음식과 광동식 바베큐를 내는 집입니다.

 

한국인이 싱가포르에 가서 배워 온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싱가포르의 30대 젊은 셰프가 한국에 와서 차린 집입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국인이 한국에서 해도 힘든 게 식당 일인데 멀리 싱가포르에서 이국 땅에 와서. 여행하기 힘든 때에 이 지역 음식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그 존재만으로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블친 중 요즘 고급 식당 다닌 사진들을 자꾸만 올려 대는 이가 있어 단단은 질투 나 못살겠습니다. 저는 가진 돈이 많지 않으니 '미쉐린 빕 구르망' 식당들이라도 열심히 다녀 맞불 작전을 펴야겠습니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돼 '2023 미쉐린 서울 빕 구르망'에 오른 집인데, 저희 집에서 가까워 한번 가 보았습니다. 식당 외벽이 세련됐죠?

 

☞ [지도] 〈원 디그리 노스〉 위치

 

 

 

 

 

 

 

 

 

1층은 손님이 아직 있어서 못 찍었고 손님이 한 차례 몰렸다 빠져 나간 2층만 찍습니다.

 

와아, 식당 안에 제가 좋아하는 아니씨드aniseed 계열 향신료 향이 가득 차 있어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기분이 화악 좋아졌습니다. 고기 양념에 쓴 오향 분말 속 팔각과 회향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싱가포르 음식은 동남아, 인도, 중국, 서양 식문화가 어우러져서 그런지 향이 좋고 지방도 거리낌없이 사용해 제 입맛엔 정말 맛있어요. 일식에도 맛있는 게 많지만 일식 맛은 이제 너무 익숙해 아무리 잘 조리된 걸 먹어도 감흥과 자극이 적더라고요. 

 

 

 

 

 

 

 

 

 

여긴 식탁 위에 주문 기기가 놓여 있습니다.

뒤에 줄 선 사람 없이 자기 식탁에 앉아 주문할 수 있으니 노인들도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는 찰나,

 

 

 

 

 

 

 

 

 

저기 저 'Add-ons'라는 게 뭔지 권여사님이나 노인들이 과연 알 수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왼쪽의 차림표도 전부 영어로 되어 있고요. 외국인 손님이 많아 이렇게 설정해 놓은 것 같은데, 저는 이제 모친 생각에 어느 식당을 가든 노인들이 주문 잘할 수 있을까부터 생각하게 됩니다.

 

음식명이 다른데 사진은 같은 걸 반복해 쓰고 있고 음식에 대한 간단한 설명 한 줄도 써 있질 않으니 궁금했습니다. 결국 직원을 부르는 수밖에요. 그런데 '알바생'들이라 질문을 해도 음식에 대해 너무 모릅니다.   

 

싱가포르의 국민음식인 '치킨 라이스'를 드디어 먹어 봅니다. 저 이 음식이 하도 궁금해 싱가포르에 여행 갈 생각도 다 해봤습니다. 음식우표를 통해 유래와 조리법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음식우표] 싱가포르의 일상 음식 - 해남식 치킨 라이스

 

이 집에서는 특별하게 조리한 치킨에 (1) 밥, (2) 꼬들꼬들 가는 면발의 에그 누들, (3) 라유를 뿌린 넙적한 면 중 하나를 선택해 곁들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렇게 고기를 얹은 1인분 식사류는 점심 때만 제공합니다. 저녁 때는 고기 접시platter 따로[大/中/小], 밥과 면 따로 주문해야 해서 비용이 조금 더 듭니다. 저녁 때는 술 손님이 많아서 그런 것 같네요.

 

 

 

 

 

 

 

 

 

나왔습니다. 음식명이 '치킨 라이스'라서 저는 밥을 곁들였습니다. 

닭고기를 찍어 먹기 위한 칠리 소스와 닭육수로 만든 국, 그리고 간단한 절임 반찬이 하나 딸려 왔습니다. [9,800원] 

 

사진에 보이는 구성이 본고장 치킨 라이스에 얼마나 가까우냐 물으신다면 - 

 

• 일단, 닭고기는 켜가 제대로 보이는 것이 정통에 상당히 가깝고,

• 닭고기 위에는 파가 아닌 고수가 올라왔어야 하고,

• 데친 청경채 대신 납작납작 썬 생오이가 올라와야 하고,

• 쌀은 단립종이 아닌 길쭉한 자스민 라이스여야 하고, 

• 소스 그릇에서는 오른쪽의 고추기름 '라장'(辣酱 라지앙) 대신 생강 소스가 담겨야 합니다. 

(현지에 사시는 블친 뿌까 님께서 도움말씀 주셨습니다.)

 

왜 이런 변화를 주었는지는 이해가 가고도 남지요. 한국인은 고수와 생강과 장립종 쌀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니까요. 흔한 생오이보다는 데친 청경채가 저는 더 좋긴 합니다.

 

 

 

 

 

 

 

 

 

접사. 더 가까이.

 

윽, 닭고기가..

너무..

 

야하게 생겼.. (싱숭생숭) (→ 일상생활 불가능)

 

닭껍질이 미끄러져 살짝 비껴 있고 분홍 속살이 드러나 있으니 여간 야해 보이는 게 아닌데,

질감이 어떨지 상상되시나요? 

 

미끌미끌 쫀득쫀득 보들보들 촉촉,

'센슈얼'하기 이를 데 없어요.

살면서 먹어 본 닭고기 중 가장 독특한 질감이었죠. 

싱가포르 사람들 기술 좋네요.

닭 비린내도 하나도 안 나고요.

 

음식과 관능미

 

참, 이 치킨 라이스는 뜨겁게 먹는 음식이 아니니 음식이 왜 미지근하냐며 주방에 따지면 안 됩니다. 

 

 

 

 

 

 

 

 

 

곁들여 나온 밥도 제 입맛에 잘 맞습니다.

레몬그라스lemongrass 향이 물씬 나는 기름진 밥이었는데 고소하고 향기로워 참 맛있었어요. 

 

생쌀을 먼저 닭기름과 식용유에 볶은 뒤 육수를 부어 밥을 짓는 집도 있고,

닭기름과 식용유에 마늘·생강을 볶은 뒤 육수와 판단pandan잎, 레몬그라스, 쌀을 투입하는 집도 있고,

 

집집마다 다르긴 하나 어쨌든

(1) 닭기름과 식용유 + (2) 향신채소 + (3) 닭 육수 + (4) 자스민 라이스를 쓰는 건 기본인 듯합니다. 

 

음식우표 글에도 조리법 영상을 걸긴 했지만 추가로 하나 더 걸어 봅니다.

 

 

 

 

 

 

 

 

 

닭 전처리와 후처리를 눈여겨보십시오.

저는 생닭 만지는 걸 꺼려하니 집에서는 향기로운 밥만이라도 실습해 봐야겠습니다. 

한국에서도 이제 판단잎과 레몬그라스를 팔지요.

다른 요리를 시켰어도 'sides' 탭을 클릭해 밥만 한 공기 추가할 수 있습니다.

 

 

 

 

 

 

 

 

 

중국식 양념 바베큐인 '차슈'[차사오叉燒/叉烧]를 얹은 에그 누들입니다. 

이것도 어찌나 맛있었던지요. 

 

보세요, 이런 게 바로 차슈입니다.

일본 라멘집에서 내는 허여멀겋고 싱겁기 짝이 없는 수비드 괴물질은 '차슈'라고 부르면 안 되는 겁니다.

한국에서 그간 사 먹어 본 차슈들 중에서는 이 집 것이 가장 향기롭고 맛있었는데, 이것도 질감이 독특했어요.

근육과 지방에 적당히 힘이 있으면서도 질기지 않고 경쾌하게 씹힙니다. 향신료 향 물씬, 고기 잡내도 없고요. 

(동파육과는 다른 겁니다. 동파육 생각하고 드셨다가 충분히 촉촉하고 부드럽지 않다며 불평하는 분들이 계시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고기는 이렇게 주방에서 전문가가 '정성껏' '제대로' 준비해 내주는 게 맞습니다.

저는 식탁에서 손님이 알아서 구워 먹게 하는 한국식 화로구이가 아직도 탐탁지 않아요.

맛없으면 '그건 손님이 잘못 구워서 그런 거예요.' 빠져나갈 구실 만드는 것밖에 더 되나요.

구멍 뚫어 화로를 삽입해야 하니 고깃집 식탁은 재질도 형편없죠. 

 

음식과 식재료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

 

 

 

 

 

 

 

 

 

아, 들어오면서 보았던 저 고기들이 바로 제가 맛있게 먹었던 차슈인가 봅니다.

다음 방문기들에서는 차슈 포크와 오른쪽에 놓여 있는 로스트 포크를 차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단단의 '다 먹어 보았습니다' 또 시작했습니다.  

 

 원 디그리 노스 ② 광동식 차슈 포크

 원 디그리 노스 ③ 광동식 로스트 포크

 원 디그리 노스 ④ 광동식 로스트 덕

 

 

 

 

 

 

 

 

 

지금까지 싱가포르 요리사가 만든 음식은 이 집 것을 포함해 네 번 경험해 보았고 네 번 다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어 저는 이 나라 출신 요리사들에게 편견을 갖게 되었습니다. 서른 네 살밖에 되지 않은 젊은 분인데, 실력은 이제 인정 받았으니 건강 관리, 멘탈 관리 잘 하셔서 오래오래 유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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