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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사님 키오스크 정복기 본문
▲ 햄버거 단품 가격들이 너무 올라 단단은 당분간 버거 대신 고기김밥을 사 먹기로.
김밥은 비싸봤자 6천원. 게다가 제대로 그릇에 담아 내주고 국물과 찬도 주는걸?
댁 근처에 깔끔한 김밥집이 생겨 권여사님이 흥분하셨습니다. 식사량 적고 기운 없는 노인 1인 가구에는 단비 같은 음식점이지요. 쌀 소비가 하도 줄어 쌀집이 고육책으로 '감성 쌀집', '감성 김밥집'을 열었어요.
역시나 주문은 전부 키오스크(무인단말기)로 하게 돼 있는데, 권여사님 왈, 노인들 사이에서는 요즘 자식들이 곁에 없는 상황에서도 밥 굶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키오스크로 음식 주문하는 법을 반드시 익혀 둬야 한다며 위기의식이 대단하다는군요.
이에 이틀이 멀다 하고 김밥집에 가서 키오스크와 씨름해 보기로 결심한 우리 마나님.
김밥은 다른 음식에 비해 값이 싸고, 양식이 아니라서 재료 이름도 익숙하니 연습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품목입니다.
첫 도전에서는 잘못 주문해 김밥이 아닌, 비슷한 재료로 된 비빔밥 같은 것이 나왔다고 합니다. (꽈당)
"어어? 이거 아닌데?;;"
"네? 주문서에 찍힌 대로 내 드린 건데..."
김밥 전문점이니 김밥만 있는 줄 알고 음식명에서 앞머리의 재료만 확인한 뒤 화면을 누르신 게 분명합니다.
두 번째 도전 때는 김밥 말던 청년 직원이 권여사님을 알아보고는 다가와서 음식 선택하는 걸 도와 주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 도전 때는
"아녜요, 제가 혼자 해볼게요, 고마워요."
하며 도움을 고사하셨다는데,
청년이 불안했는지 김밥을 말면서도 흘끔흘끔 계속 곁눈질을 하더랍니다.;;
지금은 사이드 메뉴까지 척척 주문하시는 단계에 이르셨습니다. (대견)
단단의 '될 때까지 한다' 근성이 부친에게서 온 줄 알았더니 모친에게서 온 거였어요.;;
그리하여 이 집 김밥과 기타 메뉴는 거의 다 맛보신 권여사님,
"당분간 김밥은 물려서 못 먹것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런데 말입니다,
어떤 때는 젊은 우리들도 (젊긴 뭐가 젊어, 낼 모레면 오십인 거 다 아는데 뻥 치시구 앉았네.)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거 환장할 때 있지 않습니까?
제가 이 집 키오스크로 주문을 해보니 헷갈릴 만한 지점이 두어 곳 있네요.
일단 김밥이 '김밥B', '김밥M', '김밥S'로 그룹이 나뉘어 있습니다.
처음 온 사람이 '김밥' 옆에 붙은 알파벳 'B', 'M', 'S'가 뭔지 알게 뭡니까?
'S'가 양이 적다는 'small (portion)'인지 고급 재료들을 넣었다는 'special'인지는 일일이 카테고리 속으로 들어가 확인을 해야만 알 수 있지요. (고급 김밥을 뜻하는 'signature'였습니다. 세련된 노인이 아니면 '시그너처'라는 요식업 용어를 알 턱이 없을 텐데요.)
그리 많지 않은 김밥 메뉴, 세 개의 탭으로 조각조각 분리해 놓을 게 아니라 노인들과 처음 온 사람들을 위해 첫 화면에 다 띄웠어야 합니다. 이게 고급인지 아닌지는 자기들만 뜻을 아는 알파벳이 아니라 값을 보면 되지요.
또,
멸치가 들어간 김밥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어 주문하려고 보니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가 않는 겁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아, 이거예요." 하고 뭘 누르면 되는지 알려줍니다.
멋 부리느라 김밥 이름을 "크랜베리고추잔멸치"로 길게 지으면서 "멸치"를 뒤에 갖다 붙이니 화면에서 잘려 보이지가 않았던 겁니다. 하... 여보세요.
어쨌거나,
요즘은 김밥집조차도 이렇게 세련되게 꾸며 놓지 않으면 손님을 끌 수가 없나 봅니다.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앉아 먹기에도 쾌적했습니다.
주방 살림살이가 다이닝 홀에 죄 나와 널브러져 있는 어수선한 식당, 칙칙한 형광등 식당, 벽에 꼬질꼬질한 차림표와 유명인 싸인 덕지덕지 붙어 있는 식당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어 눈이 아주 살 것 같아요.
일단 환경부터. 맛은 그 다음에 논합시다. 그동안 기본이 안 돼 있는 식당이 너무 많았어요.
(수저는 개별 포장해 놓거나 주방에서 따로 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서랍 진열 방식이라 여러 사람이 막 만지게 되어 있어 쓰기가 매우 꺼려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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