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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소기름 (beef dripping 비프 드리핑)

단 단 2024. 3. 9. 03:16

 

 

 

 

고기를 잘 안 먹고 내 손으로 생고기를 사는 일은 더더욱 없는 단단에게 지난 명절, 5kg짜리 호주산 냉동 소갈비가 선물로 들어왔습니다. (꽈당)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그런데 남한테 주려고 보니,

헉, 값이 무려 154,000원이나 하는 겁니다. (→ 고기를 안 사봐서 고깃값 잘 모름.)

 

내 돈으로는 사기 힘든 비싼 식재료를 앞에 놓고 전전긍긍,

'내공 증진'을 위해 이참에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는 갈비찜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신혼 때 "우리 엄마표 맛있는 소고기 장조림 해줄게~" 큰소리쳤다가 끝없이 빠지는 핏물 보고 꼬르륵, 식음 전폐하고 드러눕고는 6년 넘게 채식주의자로 살았던 전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고기 전처리를 다쓰베이더가 하기로 했습니다.

 

고기 준비하는 김에, 기왕 하는 거 채소 준비도 마저 하시오, 격려해 전 과정을 다쓰베이더가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장시간 걸려 완성.

불 끈 뒤 백종원 님의 권유대로 꽈리고추를 넣었더니 갈비찜 향이 아주 좋아지더군요.

 

그런데요,

 

표면에 뜬 말간 액체를 보세요.

처음에는 양념이 무거워 밑에 가라앉고 맑은 물이 위로 떴나보다 했는데 자세히 보니 저게 다 소기름인 겁니다.

 

와...

호주산도 기름이 이렇게 많구나, 놀랐었죠. 

 

지구촌 사람들 모두 소기름을 섭취해서는 안 될 독약쯤으로 여긴 때가 있지 않았습니까?

혈관이 어쩌고, 하면서요.

 

최근에는 동물성 지방에 대한 누명이 벗겨졌습니다만, 습관에 의해 여전히 열심히들 걷어내곤 하죠. 

[명의 칼럼] 동물성 지방이 심장에 독이라는 미신

 

몸에 나쁘지는 않다지만 유제품만으로도 동물성 지방 섭취는 충분하니 걷기로 결심하고 버리기 전에 맛이나 보자 싶어 숟가락으로 떠서 맛을 보았습니다.

 

와... 

소기름이 이렇게 맛있는 거였구나, 또 한 번 놀랐었습니다.

익힌 채소 향과 어우러져 고소한 <해태> '야채크래커' 맛이 납니다. 

 

'로스트 비프'의 나라 영국에서는 이 소기름을 아주 중요한 식재료로 여깁니다.

여러 브랜드에서 소기름을 내고 있죠.

고기나 채소 로스트에, 요크셔 푸딩이나 미트 파이 같은 베이킹에, 튀김이나 볶음에 씁니다.

 

영국에서도 포화지방산 운운하며 이 맛있고 귀한 전통 식재료를 한때 멀리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맛잘알' 소비자들이 다시 찾기 시작해 이제는 수퍼마켓들마다 팝니다.

 

영국 정부NHS는 동물성 지방이든 식물성 지방이든 관계없이 총 지방 섭취가 하루 필요 열량의 35%를 넘지 않도록 하고, 포화지방은 11%를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지침을 내놓고 있습니다. 즉, 너무 많이 먹지만 않으면 된다는 입장입니다. 

 

 

 

 

 

 

 

 

버터처럼 종이에 싸서 벽돌 형태로도 팔고,

 

 

 

 

 

 

 

 

 

플라스틱 통이나,

 

 

 

 

 

 

 

 

 

 

 

 

 

 

유리병에 담아서도 팝니다.

 

 

 

수퍼마켓 측의 재료 설명을 볼까요?

 

Beef dripping


Dripping is the fat that drips from a joint during roasting, it is clarified and forms a solid fat that is sold in blocks.

'드리핑'은 소고기를 로스트 할 때 녹아 방울방울 떨어지는drip 유지를 말하며, 모아서 정제해 벽돌 형태의 고체로 굳혀 판매합니다.  


Uses: In the past, dripping was served as a spread and 'bread and dripping' was considered to be a real treat after the traditional Sunday roast. Nowadays it is used mainly as a cooking fat - either for shallow frying meat, as a roasting fat for potatoes or to dot over a joint to keep it moist during cooking.

 

사용처: 과거에는 스프레드로 쓰여서 전통음식인 선데이 로스트의 끝에 냈던 별미 '빵과 드리핑'에서 볼 수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주로 조리용 유지로 씁니다. 넉넉한 지방에 고기를 튀기듯 익힐 때, 영국식 감자구이를 할 때, 고기 익힐 때 위에 소량 얹어 마르지 않고 촉촉하게 유지하는 데 쓰면 좋습니다.


To store: Keep in the fridge and use by the best before date. 냉장보관하고 상미기한 내에 섭취하십시오.

 

 

 

 

 

 

 

 

 

 

저는 영국에 있을 때 영국인들의 '군만두'인 파이를 자주 시식해봐서 영국 파이 껍질의 그 고소한 소기름과 돼지기름lard 맛을 압니다. 얼마나 맛있는데요. 우마미와 깊은 맛이 있어 버터를 쓴 것보다 훨씬 맛있습니다.

 

 

 

 

 

 

 

 

 

완성된 갈비찜을 1회 섭취 분량씩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었더니 소기름이 버터처럼 뽀얗게 굳었습니다. 살살 들어냈더니 두께가 5mm쯤 되더군요. 몸에 큰 해가 되지 않는 데다 맛도 좋으니 눈 질끈 감고 먹을까 고민하다가, 습관이 무서운지라 결국에는 걷어서 버렸습니다. (흑흑, 미식가가 되기에는 심약하고 소심한 자여...) 걷어내고 먹어도 근육 속에 여분의 지방이 숨어 있었는지 기름이 자꾸만 생깁니다. 그런데 요즘에나 소에 이렇게 지방이 많지, 옛시절에는 이렇지 않았을 겁니다. 

 

 

 

 

 

 

 

 

 

비록 소기름을 다 먹지는 못했지만 다쓰베이더가 잘 만들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조림은 바로 먹는 것보다 식혔다 다시 데워 먹는 게 더 맛있습니다. 갈비'찜'이란 이름은 잘못됐습니다. 조림이지요.) 

 

참고로,

저는 갈비찜 부재료로 무, 밤, 표고, 새송이, 꽈리고추를 선호하고, 군내 나는 말린 대추와 엉뚱한 맛 내기 일쑤인 당근은 고사합니다. 양념장에 마늘, 생강, 파, 양파 외에 설탕이 별도로 들어가는 데다가 다디단 무가 있으므로 단맛 재료는 이것들로 충분하다고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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