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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이닝 다이아몬드 쥬벌리 블렌드 Twinings Diamond Jubilee Blend 본문

차나 한 잔

트와이닝 다이아몬드 쥬벌리 블렌드 Twinings Diamond Jubilee Blend

단 단 2012. 4. 29. 10:18

 

 

 

올해는 여왕 할머니의 즉위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여왕님의 '포스'는 실로 대단해 손자인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여기저기서 봇물처럼 기념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상술에 절대 놀아나는 법이 없는 꼿꼿한 단단, '우리가 이런 기념품 따위 살 돈이 어딨간. 밖에 나다닐 차비도 없구만.' 심드렁해하고 있는데, 얼마 전 식품 관련 소식지에서 다음과 같은 광고를 보게 되었지요.

 

 

 

 

 

 

 

 

 

으응? 또 솔깃


그런데 이번에는 똑같은 차를 무려 세 가지 색 깡통으로 냈어요. 점잖던 트와이닝도 장사 수완이 점점 느는 모양입니다. 깡통 디자인도 다른 홍차 브랜드 것들에 비하면 좀 덜 근엄하고요. 상큼·발랄한 십대·이십대 아가씨들 취향입니다. 저 깡통에 있는 마차가 바로 여왕이 스물 여섯 살에 대관식 할 때 쓰던 그 'Coronation Coach'입니다. 아래 사진을 보세요.

 

 

 

 

 

 

 

 



광고에 실린 찻상을 간략히 분석한 뒤 넘어가기로 하죠. 격식을 갖추지 않은 편안한 찻상이 광고의 주제인 모양입니다. 찻주전자, 찻잔, 접시 모두 제각각. 세트가 아니라 여기저기서 그러모아 '믹스 & 매치'를 했습니다. 무난히 잘 어울리죠? 영국인들은 이런 식으로 찻상 꾸미는 걸 좋아합니다.


홍차 광고라 홍차 깡통이 돋보여야 하므로 거창한 3단 트레이로 시선을 분산시키는 대신 접시 하나에 다 담았습니다. 차음식을 잘 보면 나름 간략판 아프터눈 티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비록 한 개씩만 담았지만 샌드위치, 스콘, 단과자, 이 세 가지 구성 요소가 다 올라와 있지요.


얼마 전에 다루었던 오이 샌드위치가 보입니다. 보세요, 샌드위치 대표로 오이 샌드위치가 올라온 것만 봐도 영국인들이 오이 샌드위치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 수 있죠. 지난 번 게시물에서는 향초로 딜dill, 무순, 민트를 언급했었는데, 오늘은 오이 위에 물냉이watercress가 보입니다. 물냉이는 무순처럼 알싸한 맛을 내는 개성 있는 향초입니다.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샐러드 채소라 수퍼마켓에서도 일년 내내 떨어뜨리지 않고 내놓고 있습니다. 식빵 두 장으로 샌드위치 두 쪽 뚝딱 만들어 올리고, 클로티드 크림과 잼 바른 스콘 하나 올리고, 좋아하는 단과자 하나 올려 주기만 하면 순식간에 훌륭한 1인용 아프터눈 티 테이블 완성. 어렵지 않아요. 귀찮으시면 죄 밖에서 사 오셔도 되고요.

 

 

 

 

 

 

 

 

 

아, 정말 살 생각 없었는데, 집 근처 수퍼마켓에 감자 사러 갔더니 하필 이 트와이닝 쥬벌리 티를 독점으로 갖다 놓고 팔고 있더란 말이죠. 게다가, 불티나게 팔리고 이거 하나 달랑 남아 있더란 말이죠. 수북이 쌓여 있었으면 정말이지 살 생각 전혀 안 들었을 텐데 하필 딱 하나 남아 있더란 말이죠.;;


이 차는 티백 차가 아니라 제대로 된 실한 이파리 차입니다. 인도 아쌈 홍차에 중국 운남 홍차를 섞어 만들었으니 어떤 맛과 향이 날지 홍차 고수분들은 충분히 짐작하시겠지요. 깡통과는 전혀 다른 중후한 맛이 납니다. 깡통만 봐서는 화려한 가향차일 듯싶지만 운남 홍차 특유의 '가구 우린 물' 같은 묵직한 나무 느낌woody이 근본을 이룹니다. 2002년에 있었던 즉위 50주년 기념 블렌딩을 이번에도 그대로 갖다 썼다고 하네요. 찻잎은 100g만 들었습니다. 홍차 회사들이 값 올린다는 티를 내기 싫어 용량을 점점 줄이고 있습니다. 125g에서 100g로 줄여 담는 게 점차 관행처럼 돼 가고 있어요. 티백도 영국에서는 기본이 50티백이었는데 요즘은 40티백짜리 팩도 심심찮게 보이곤 합니다. 트와이닝이 이제 패킹을 담당하던 공장마저 영국 땅에서 인건비 저렴한 폴란드로 옮기려 하고 있어 영국인들이 단단히 삐쳤습니다. 우리 같은 외국인으로서도 참 안타까운 일이죠. 폴란드에서 패킹한 트와이닝 홍차라니, 인도네시아산 로얄 알버트 찻잔 만큼이나 김새는 일입니다.

 

 

 

 

 

 

 

 


광고 흉내 내 저도 조촐한 찻상 한번 차려보았습니다. (스콘을 저렇게 뚜껑 덮어 버거처럼 내면 안 됩니다. 접시가 작아 펼쳐놓을 자리가 없어 저렇게 냈어요.) 여왕 할머닌 좋으시겠어요. 이런 기념 홍차도 다 나오고. 참, 이 할머니가 의외로 얼마나 '컬러-컨셔스'한 멋쟁이인지 <보그Vogue> 지에서 분석한 지난 일년간의 나들이 옷 사진을 한번 보시죠.

 

 

 

 

 

 

 

 


선호하는 외출복 색상들이 어째 트와이닝의 저 세 가지 색 쥬벌리 홍차 깡통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옷에 맞춰 쓴 모자가 근사하죠. 영국은 왕실과 사교 시즌, 경마가 있어 아직까지는 모자쟁이들milliners이 먹고 살 만한 나라입니다. 영국 와서 생긴 버릇인데요, 남자든 여자든 옷을 말쑥하게 잘 차려입고 모자를 쓰지 않은 사람을 보면 어쩐지 덜 갖춰 입었다는 허전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윌리엄 왕자 결혼식 때 하객으로 초대 받은 사람 중 하나가 모자를 쓰지 않고 나타나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요. 아래의 사진을 보세요. 예술 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모자가 근사합니다.

 

 

 

 

 

 

 


필립 트레이시의 2008년 로얄 아스콧 위촉작.
이것두 '가드닝'내지는 '꽃꽂이'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아니, 그런데,
트와이닝 홍차 이야기로 시작해 모자 이야기로 끝나는 건 뭐요?

지난 번엔 동전 이야기 실컷 하다 아랍 커피 포트로 끝내더니.

 

단단이 원래 좀 산만합니다. 제가 이래서 블로그에 폴더 만들어 주제별로 글을 쓸 수가 없어요. 글 쓰면서 제 글이 어떻게 끝날지 저도 궁금합니다. 다시 홍차 이야기로 돌아오지요. 그간 '꼿꼿'하다는 단단이 상술에 놀아난 수많은 예 중 몇 개를 열거하고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 엄마 없이 잘 자라준 윌리엄만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 로얄 웨딩 티
☞ 분홍 하트 설탕이 들어있다 하니 몹시 궁금하다 - 발렌타인스 티
☞ 크리스마스 티를 마셔 주지 않으면 어쩐지 한 해를 잘 마무리하는 것 같지가 않다
☞ 그 유명한 '배틀 오브 브리튼'이 70주년이 되었다고?

 


쯧쯧,
휘둘리는 꼴이 흡사 강풍에 비닐봉지 날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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