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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영국그릇] 영국엔 예쁜 그릇이 왜 이리 많냐

단 단 2013. 5. 13. 07:53

 

 

여자를 정신병에 이르게 하는 두 가지 방법 -


1. 옷을 잔뜩 사준다. 거울 없는 방에 옷과 함께 가둔다.
2. 영국에서 돈도 안 쥐어주고 그릇가게에 들여보낸다.


좌우간 여자들은 돈 없이 영국에 오면 안 된다. 지금부터 영국 그릇 열전.

 

 

 

 

 

 

 



일본풍 이마리 패턴으로 유명한 <로얄 크라운 다비> 사의 '다알리 애비Darley Abbey' 패턴. 영국인들은 'Derby'를 '더비'라 하지 않고 '다비'라 발음한다. 단단은 과감하기 짝이 없는 <로얄 크라운 다비>의 이마리 패턴을 아주 좋아하는데, 내 집에 들이고 싶은 생각은 없어도 남이 열심히 모아 놓은 걸 보면 또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는 거라.


<로얄 크라운 다비>의 ☞ 수많은 패턴들 중에는 위 사진에 있는 것과 같은 덜 화려하고 우아한 패턴도 많다. 전형적인 리젠시 패턴이다. <로얄 크라운 다비>의 패턴은 모두 마음에 든다. 패턴도 근사하지만 특히 저 3단으로 꺾인 독특한 형태의 손잡이가 예술.

 

 

 

 

 

 

 

 

 



아, 포트메리온.
포트메리온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으니 글을 따로 쓰는 게 좋겠다. 오늘은 그저 사진만 두어 장 올려본다.

 

☞ [영국그릇] 포트메리온 보타닉 가든

☞ 포트메리온 보타닉 가든의 매력을 한껏 발산시키는 영국음식

 

 

 

 

 

 

 



불후의 명작 <스포드Spode> '블루 이탈리안'.
한국에서는 한여름 하얀색으로 깔끔하게 꾸민 집에 잘 어울릴 듯. 영국에서는 주로 교외에 있는 부엌이 넓은 집들의 드레서dresser에 진열되곤 하는데 근사하다. 영국 도자기 회사의 그릇이면 영국 풍경을 담는 게 마땅할 텐데 웬 이탈리아 풍경이냐?

 

<스포드> 사가 창업·번성하기 시작했던 때가 바로 영국 조지안 시대인데, 이 시기에는 고전주의의 일환으로 귀족 도련님들의 <그랜드 투어>가 대 유행을 했었다. 주로 이탈리아 고대 유적지 '탐사'가 그 골자를 이뤘으며 이탈리아에서 미술품과 공예품을 여행 기념품으로 잔뜩 지니고 귀국한 도련님들 덕에 영국에 한동안 이탈리아 열풍이 불었던 것. 고로, 이 '블루 이탈리안' 패턴은 당시 영국의 고전 열풍, 이탈리아 열풍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적인 패턴인 것이다. 1816년부터 지금까지 생산되고 있는 베스트 셀러다. 블루 이탈리안으로 차린 티파티에 초대 한 번 받아보았으면.

 

 

 

 

 

 

 

 1900년 경의 <스포드> '블루 이탈리안' 카탈로그.

 

 

 

 

 

 

 

 


미국에서 더 인기 있는 <스포드>의 '우들랜드' 패턴.

특히 추수감사절 식탁에 단골로 오른다는데. 영국인들은 추수감사절을 쇠지 않지만 미국인들에게는 이 추수감사절이 역사적으로도 아주 중요하다. 우들랜드 패턴은 색감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풍성한 가을 식탁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볼수록 멋있는 패턴이다. 우들랜드 접시에 음식 담아 내주는 추수감사절 만찬에 초대 한 번 받아봤으면 좋겠다.


왜 우리 그릇은 서양 그릇에 비해 무늬가 작거나 드물고 색이 온화한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미감 차이도 물론 있겠지만, 한국인들은 그릇마다 처음부터 음식을 담아 내고 코쟁이들은 큰 그릇에서 자기 앞 접시에 덜어 먹기 때문이리라. 음식이 제공되기 전까지 자기 앞에 놓인 빈 그릇을 '멍 때리며' 보고 있어야 하니 접시 가운데에 새도 그려 넣고 테두리에 꽃도 둘러야 하는 것.

 

 

 

 

 

 

 



<스포드> '크리스마스 트리'.
누군가 나에게 크리스마스 디너 세트를 선물로 사주겠다고 한다면 주저없이 이 제품을 고를 것이다. 우리 집에 채리티 숍에서 집어온 스포드 크리스마스 트리 빈티지 접시가 하나 있는데, 물에 젖은 듯한 수채화 느낌의 차분한 색감과 정교한 전나무 바늘잎의 묘사가 특히 매력적이다[아래 사진]. 1938년 디자인이다. 내 어릴 적 크리스마스를 생각 나게 한다.

스포드 영국산과 중국산 비교

 

 

 

 

 

섬세한 붓질.

 

 

 

 

 

 

 

 

 


백화점 갈 때마다 한참 만지작거리게 되는 <버얼리Burleigh>의 '아시아틱 페잔트Asiatic Pheasants'. 어떤 음식을 담아도 어울리는 마법의 그릇이라 푸드 스타일리스트들이 이 제품을 좋아한다. 특히 접시가 아주 예쁘다. 스포드풍의 선명한 '블루 & 화이트'가 부담스러운 분은 한풀 꺾인 차분한 이 버얼리 제품을 써 보는 것도 괜찮겠다. 1827년에 첫 선을 보인 패턴으로, 빅토리아 시대1837-1901에 온화한 색조의 아시아틱 페잔트 부케 패턴이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이 시기의 낭만주의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어느 회사든 기본으로 출시하던 패턴이라 원조를 가리기 힘들 만큼 그 역사가 복잡하다.
얼떨결에 버얼리 티세트

 

 

 

 

 

 

 

 

 차이나 패턴의 드레스를 입은 차이나 여인.

기발하다. 보자마자 버얼리 접시 생각이.

 

 

 

 

 

 

 



이제부터는 바흐Bach의 음악만큼이나 감정 폭이 넓은 웨지우드의 그릇들 소개.

 

 

 

 

 

 

 

 

 


이렇게 요정 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꽃 그림, 나비 그림의 화사한 그릇들이 있는가 하면,

 

 

 

 

 

 

 

 

 

요로코롬 사랑스러운 딸기 패턴도 있고[와일드 스트로베리],

 

 

 

 

 

 

 



참, 이건 <행남자기>에서 내놓았던 '스트로우베리'란다. 잎사귀 한곳 누렇게 뜬 것까지 웨지우드 와일드 스트로베리를 그대로 베꼈다. 일본 과자 베끼는 것만으론 성에 안 차 한국은 이제 그릇 패턴도 베끼기 시작. 우리나라 기업들 정말 너무 게으르지 않나. 가만 보면 품질은 유럽 자기에 결코 뒤지지 않는데 디자인이 문제다. 돈 아끼지 말고 디자이너한테 월급 좀 후히 주라. 디자이너가 사고 제대로 칠 수 있게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생각 말고. 디자이너도 창작자로서의 자존심이 있을 텐데 윗선에 있는 누군가가 잘 나가는 외국 물건 던져주고 "베껴 봐." 종용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과거엔 유럽 도자 산업계에서도 패턴 '공유'가 흔한 일이었다.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 개념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던 때이기도 하지만, 인기 있는 제품의 주문이 폭주할 경우 다른 공장과 계약을 맺어 동시 생산을 해서라도 주문량을 맞출 때가 많았고, 원판 제작자가 하나의 패턴을 여러 회사에 팔기도 하고, 회사가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자사 보유 인기 패턴들을 경쟁 회사에 파는 일 또한 빈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 자기들을 보면 A사의 인기 제품 패턴이 B사 제품에도 보이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행남자기의 경우는 이것과는 다르지 않나. 2000년대 들어와서까지 남의 창작품을 베끼고 있는 건 한심한 일이다.

 

 

 

 

 

 

 



다시 웨지우드로 돌아와서 - '이퀘스트리아Equestria' 패턴.
애마愛馬부인의 나라 영국에는 이렇게 승마를 주제로 한 패턴도 다 있으니. 나는 이 작품을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꽃과 나비, 새, 동물, 풍경 등은 그릇에 단골로 담기는 소재들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말도 아닌 마구의 일부분을 가져다 다구 디자인에 쓸 생각을 했을까? 설탕기와 찻주전자의 뚜껑 손잡이가 압권이다. 금장 버클을 형상화한 모양이다. 나름 여백의 미도 살렸다. 색상도 차분하니 세련되다.

 

 

 

 

 

 

 



'이퀘스트리아' 제품군의 또다른 찻잔들.

영국의 말 전문 화가 조지 스텁스George Stubbs가 그린 그림에서 따와 네 개의 찻잔에 나눠 담았다. 창업자 조사이어 웨지우드와도 친분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젠틀맨스 클럽이나 서재, 가죽 소파가 근사한 집 거실 등에 놓이면 훌륭한 그림이 연출될 듯.

 

 

 

 

 

 

 



이것도 역시 웨지우드.
모던하기도 하고 고대를 연상케 하기도 하고, 금칠이 많아 중동 부호들도 좋아할 듯.

 

 

 

 

 

 

 

 

 

 

웨지우드의 그릇 중 가장 유명한 건 뭐니뭐니해도 이 '자스퍼웨어Jasperware'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누리터에 판매와 구매에 관한 이야기는 무성한데 실생활에서 열심히 쓰고 있는 사람 찾기는 왜 그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이 자스퍼웨어 티 세트 사다가 실제로 자알 쓰고 있는 블로거를 아시면 제보 좀 부탁 드린다. 유약칠이 매끈하게 잘 된 퀸즈웨어Queensware 분홍색 쓰고 있는 ☞ 은 발견했다. 냄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므로 내 집에 자스퍼웨어나 퀸즈웨어를 들일 생각은 없다만 열심히 모은 분들 상차림을 보면서 사연을 듣고 있노라면 덩달아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소장하신 분들은 모쪼록 아껴가며 오래오래 잘 쓰셨으면 좋겠다.

 

 

 

 

 

 

 

 



이렇게 여왕 할머니도 경의를 표하는 웨지우드의 자스퍼웨어. 

 

 

 

 

 

 

 



1809년 경의 웨지우드 숍을 그린 것이다. 혁신적 기술과 디자인 감각으로도 명성을 얻었지만 마케팅 능력은 더 뛰어났다던 조사이어 웨지우드. '조시아', '조쉬아'가 아닌 '조사이어'가 맞는 발음이다.

 

 

 

 

 

 

 




이건 웨딩 플래너가 웨지우드 그릇들을 가지고 꾸민 피로연 상인 모양이다. 가끔 한국의 그릇 수집가 마나님들 블로그를 들여다보곤 한다. 그릇 모으고 관리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찬찬히 구경하다 나온다. 그런데 늘 아쉬운 점이 하나 있으니, 고가의 그릇과 커틀러리에 아름다운 식탁보까지 다 좋았는데, 기껏 근사하게 상 차려 놓고는 어김없이 조화를 올려 놓는다는 것. 거기서 흥이 다 깨진다. 비싼 그릇이 무슨 소용 있으랴. 영국인들은 소박한 그릇에 근사한 생화로 꾸민 상을 더 럭셔리로 칠 텐데.

 

 

 

 

 

 

 

 

 

 



창업 이후 지금까지 생산된 웨지우드의 제품은 너무 많아 그 패턴을 이곳에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으니 현재 생산되고 있는 패턴을 보시려면 ☞ 이곳을, 단종된 패턴들을 보시려면 ☞ 이곳을 방문하시라.

 

 

 

 

 

 

 

 

 

영국인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에마 브리지워터>.
영국인들이 애지중지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기라성 같은 영국 도자기 회사들이 너도나도 인건비 싼 동남아시아 중국 등으로 생산지를 옮길 때 도리어 영국 땅에서 결연히 사업을 새로 시작한 회사이기 때문이다[1985년]. 어느 나라 국민이든 마찬가지이겠지만 영국인들도 'Made in England' 도장이 있는 자국 그릇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이 때문에 지극히 '컨츄리'스럽고 캐주얼한 형태와 문양에도 <포트넘 & 메이슨>, <해로즈> 같은 런던의 고급 백화점들에 떡 하니 입점돼 있는 것이다. 사진에 있는 건 <에마 브리지워터>의 베스트 셀러이자 스테디 셀러인 '폴카 도트Polka Dot'.

 

 

 

 

 

 

 



야외에서 본 '폴카 도트'.
전사가 아니라 스폰지로 하나하나 꼭꼭 찍어 무늬를 내므로 그릇마다 조금씩 다 다르다.

 

 

 

 

 

 

 

 

 

아침 식사용으로 낸 '블랙 토스트' 라인.

 

 

 

 

 

 

 

 

 

색상과 도안이 과감하기 짝이 없는 유니온 잭 패턴.
처음 봤을 땐 '윽, 너무 노골적이고 대담무쌍하잖나' 손사랫짓했는데, 보면 볼수록 매력 있는 것이 이 <에마 브리지워터>의 그릇들이니 신기하다. 특히 오른쪽에 있는 저 머그는 실물로 보면 아주 예쁘다. <에마 브리지워터>의 머그들은 옛 시절 영국의 맥주ale를 담았던 '탱카드tankard' 모양을 하고 있어 남자들도 좋아한다. 밑이 무거워 안정적이다.

 

 

 

 

 

 

 

 

 

여왕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작년에만 잠깐 선보였던 티포트.
75파운드에 팔던 걸 단종시키기 위해 25파운드 떨이로 내놓았길래 냉큼 사 두었다. 실물을 보면 정말 정신이 버쩍 날 정도로 멋있다. 쓰기에도 편하지만 실내 장식용 오브제로 더없이 훌륭하다. 아시다시피 작년이 여왕의 다이아몬드 주벌리 해였으므로 영국 그릇 회사들이 앞다투어 기념 그릇들을 냈었다. 그중 최고봉은 이 <에마 브리지워터>의 티포트. 컵은 안 샀다.

 

 

 

 

 

 

 



작년까지만 나오고 단종된 크리스마스 패턴.
옛 시절 여인들이 취미 삼아 바느질해 만들던 삼플러sampler를 소재로 삼았다. 사진에 있는 머그와 케이크 접시를 단종 떨이할 때 사두었다.

 

 

 

 

 

 

 



<에마 브리지워터> 제품군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다양한 문양의 머그들. 수집가도 많다. 새로운 그림의 머그가 나올 때마다 수집가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낚아채곤 한다. 몇몇 스테디 셀러 제품들을 제외하고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철저하게 단종시켜 버리므로 수집가들이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두툼해서 뜨거운 홍차를 담으면 열 보존이 잘 되고, 유악 처리가 잘 되어 있어 촉감이 부드럽기 때문에 쌀쌀한 날 두 손으로 머그를 감싸안고 있으면 그렇게 따뜻하고 좋을 수가 없다. 설거지 하면서도 감탄한다. 홍차를 가득 담으면 좀 무겁긴 하다. 이 머그에 홍차를 마시고 나면 한동안 손가락 관절이 시큰시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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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야심 차게 영국 도자기 이야기를 꺼내놓고 보니 이거 끝이 없네요. 로얄 알버트, 로얄 우스터, 덴비, 민튼, 앤슬리, 캐주얼한 코니쉬 웨어... 못다한 이야기가 수두룩하나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고 시간 나는 대로 계속 추가를 하든 새 글을 쓰든 하겠습니다. 그릇은 깨끗한 백자가 최고야 하는 분들 많죠. 백자가 최고죠. 그런데 과감한 패턴이 있는 그릇을 잘 쓰면 더 고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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