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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치즈 ◆ 레드 레스터 Red Leicester 본문

영국 치즈

영국 치즈 ◆ 레드 레스터 Red Leicester

단 단 2014. 5. 11. 00:00

 

 

 

 레스터셔Leicestershire

 

 

 

 

 

 

 

 

 전통 제법으로 만든 '스파켄호 레드 레스터

Sparkenhoe Red Leicester

 

 


레드 레스터를 드디어 소개합니다. 스틸튼stilton으로 유명한 레스터셔 지역에서 만듭니다. 교통이 발달해 있질 않던 옛 시절, 자기 동네에서 얻을 수 있는 우유의 양은 한정돼 있고 레드 레스터보다는 스틸튼의 인기가 더 높으니 질 좋은 우유는 죄 스틸튼 만드는 데 동원이 되고 레드 레스터는 점차 질이 떨어지는 우유를 가져다 만들게 되었다는 슬픈 역사가 있습니다. 산업혁명의 기운이 절정에 달했던 빅토리아 시대를 거치면서 쇠퇴를 거듭하고, 설상가상, 농가에서 정성껏 손으로 만들던 것을 두 차례의 전쟁 이후 공장에서 대량생산하게 되면서부터 이 레드 레스터의 위상은 한없이 추락하게 되었고요.


지금도 레드 레스터는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것들이 주를 이룹니다. 심지어 레스터셔에서 생산하지 않은 제품들도 수두룩합니다. 숙성도 겨우 2~3개월 정도만 시킵니다. 그래서 대량생산 속성 레드 레스터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요. 오래 숙성시킨 맛있는 정통 체다가 널렸는데 누가 이런 치즈를 먹겠습니까. 그저 요리에 색 내는 용도로나 쓸 뿐이죠. 영국 치즈들 중에서는 가장 진한 주황색을 내거든요.

 

 

 

 

 

 

 

 



치즈의 주황색은 대개 식물성 천연 염료인 아나토annatto를 써서 냅니다. 아나토도 나름 제 맛을 갖고 있어요. 쓴맛을 내고 '퐈~'한 느낌을 줍니다. 이 아나토 색소가 든 치즈에서는 그래서 특유의 쌉쌀한 맛이 납니다. 넣는 양에 따라 희미하게 날 수도 있고 제법 강하게 날 수도 있지요.

 

 

 

 

 

 

 


 수퍼마켓용 대량생산 레드 레스터를 써서 구운 치즈 머핀

 


저도 요리에 치즈를 쓸 때면 맛은 주로 체다를 써서 내고 색은 레드 레스터를 써서 내곤 합니다. 위 머핀 사진에서 하얀 것은 체다이고 빨간 것은 레드 레스터입니다. 요리에 색 낼 때는 이만한 치즈가 또 없지요. 오늘 소개해 드릴 스파켄호Sparkenhoe 레드 레스터를 알기 전까지 단단에게 레드 레스터란 이렇게 음식에 색이나 내주는 평범한 치즈일 뿐이었습니다.

 

 

 

 

 

 

 


 Sparkenhoe Red Leicester

 


2005년, 레스터셔 지역의 한 농부가 한때는 자기 고장의 명물이었으나 지금은 영락한 레드 레스터를 되살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전통 제법을 써서 정통 레드 레스터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스파켄호 레드 레스터는 전통 제법에 따라 살균하지 않은 생유를 쓰고, 동물성 효소를 써서 굳힙니다. 천으로 꽁꽁 감싼 뒤 돼지 지방인 라드lard를 발라 천을 치즈에 밀착시킵니다. 이렇게 하면 숙성 기간 동안 치즈를 마르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천 대신 덜 번거로운 왁스를 입히는 나라들도 있지요. 빨간 왁스 입힌 '미니 베이비 벨', '에담', 노란 왁스 입힌 '하우다', '리어다머' 등, 기억 나시죠?


그리고 나서는 너도밤나무beech 선반 위에 올려 숙성을 시킵니다. 이렇게 하면 생유 치즈 특유의 복잡하면서 풍부한 맛과 탄산처럼 쏘는 맛이 나면서 고소한 라드 향과 나무 향이 치즈 껍질과 껍질 바로 안쪽 속살에도 배게 됩니다. 껍질에는 천 자국이 남게 되고요. 껍질을 유심히 보세요. 미세한 천 자국이 보이죠? 영국인들은 자국의 전통 치즈를 식별하는 방법 중 하나로 외피에 남는 이 천 자국을 꼽습니다. 'Traditional cloth bound'라는 표현을 씁니다.


대량생산 속성 제품들이 대개 2~3개월 만에 출하를 시키는 반면 이 전통 제법의 스파켄호 레드 레스터는 최소 6~7개월 가량 숙성을 시킵니다.

 

 

 

 

 

 

 



식감
단단하면서도 촉촉합니다. 천과 라드를 써서 치즈가 마르는 것을 최소화했기 때문입니다. 가운데 속살은 쫄깃하게 씹힌 뒤 부드럽게 녹아 목구멍으로 넘어갑니다. 껍질 쪽으로 갈수록 점차 까끌까끌한 입자가 느껴지며 단단해집니다.


맛과 향
껍질과 껍질 바로 안쪽에서는 라드의 고소한 향, 곰팡내, 나무향, 태국음식 향이 납니다. 피쉬 소스, 타마린드, 땅콩이 어우러진 향이 나죠. 한국의 홍삼 절편 향도 좀 납니다. 복잡하기 짝이 없어요.

 

속살의 맛은 글로 표현하기가 힘듭니다. 신맛, 짠맛, 고소한 맛, 쌉쌀한 맛 외에는 뭐라 표현을 할 수가 없네요. 체다는 단맛, 짠맛, 삶은 밤 같은 고소한 맛, 생양파의 쨍한 신맛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매우 복잡한 맛을 내긴 해도 맛 요소들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감지되는 반면, 레드 레스터는 복잡하긴 하나 어떤 맛이 난다고 딱 잘라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맛의 요소들이 밀착되고 융화되어 있습니다. 사 온 치즈를 다 먹을 때까지도 치즈 맛을 똑부러지게 표현할 말을 찾을 수가 없어서 난감했습니다. 이렇게 시식기 쓰는 데 애먹이는 치즈는 처음입니다. 레드 레스터는 그냥 레드 레스터 맛이 난다고 표현을 할 수밖에요. 체다와는 맛이 다릅니다. 레드 레스터를 "붉은 색 나는 체다", "레드 레스터 체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둘은 엄연히 다른 치즈입니다.


요리에 색 내는 용도로 쓰실 분들은 비싼 정통 제품을 사실 필요 없이 수퍼마켓에 있는 여느 대량생산 레드 레스터를 사서 쓰시면 되고, 치즈보드에 올려 치즈 자체를 즐기실 분들은 전통 제법으로 수작업해 만든 이 스파켄호 레드 레스터를 사시면 되겠습니다. 영국의 치즈 애호가들과 치즈 전문점 사람들은 영국에서 제대로 된 레드 레스터는 이 스파켄호 레드 레스터 하나밖에 없다고 공공연히 말을 하곤 합니다. 수퍼마켓 중에서는 <웨이트로즈>만 이를 취급하고 있습니다. 생유로 만들었기 때문에 한국에는 정통 레드 레스터가 수입돼 들어갈 수가 없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생산자 누리집을 걸어 드리겠습니다. ☞ Sparkenhoe Red Leicester


스파켄호 레드 레스터 외에 아래 생산자들의 레드 레스터도 맛이 괜찮습니다. 레드 레스터는 이제 레스터셔가 아닌 지역에서도 만드는 일이 많아 잉글랜드 남서부의 정통 체다 생산자들이 체다 만들 때 같이 생산하기도 합니다. 체다 제법과 유사하거든요. 레스터셔 지역의 스틸튼 생산자들 중에도 레드 레스터를 만드는 곳이 있습니다. 레드 레스터의 본고장이니 아무래도 마케팅상 유리한 점이 좀 있겠지요. 브랜드가 너무 많아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헷갈린다면 포장에 'traditional', 'farmhouse', 'handmade', 'hand-crafted' 등의 문구가 있는지 살펴보세요. 이런 문구가 있는 것들은 그래도 기본은 합니다.


 Lond Clawson Dairy
Quenby Hall
Belton Farm
그 외 치즈 포장에 'traditional', 'farmhouse', 'handmade', 'hand-crafted' 등의 문구가 있는 것들 중 숙성 기간이 3개월 이상인 것

 

 

 

 

 

 

 


찻잔 뒤로 영국의 클래식 티 샌드위치 중 하나인

'cheese & onion sandwich'가 보인다.

☞ 치즈 앤 어니언 샌드위치 집에서 만들기

 

 

 

 

 

 

 

 

레드 레스터와 체다를 섞어 만든 날개 달린 치즈 토스티.

매콤달콤한 칠리 잼을 곁들이면 맛있다.
☞ 날개 달린 치즈 토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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