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영국음식] 크럼펫, 크럼핏 Crumpets 본문
▲ 토스터에 구운 뒤 버터를 바른 크럼핏.
자태도, 맛도, 향도, 식감도 예술.
오늘은 구멍 송송 뚫린 재미있는 모양의 영국 빵 '크럼핏'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티타임 트릿teatime treat'으로도 좋고 간단한 아침 식사로도 좋아요. 만일 상온에 두어 부드러워진 버터의 '소울 메이트'를 꼽으라면? 저는 이 크럼핏을 꼽겠습니다. 사진 좀 보세요. 토스터로 갓 구운 크럼핏에 버터를 바르면 버터가 사르르 녹아 구멍 속으로 쏙쏙 들어가 박히는데, 한 입 깨물 때마다 표면 바삭, 속살 찐득+폭신, 버터 찌익. 크으...
그런데, ☞ 잉글리쉬 머핀과 크럼핏을 헷갈려하는 분들이 많아요. 둘을 나란히 놓고 보신 적이 없어 그런 것 같은데, 같이 놓고 보면 대번 차이를 느끼실 겁니다. 둘은 반죽, 맛, 향, 표면, 질감, 식감 모두 다릅니다. 크럼핏은 흐르는 'pouring batter'를, 머핀은 수분 많은 'soft dough'를 씁니다. 머핀은 글루텐 함량이 더 높은 밀가루를 써야 하죠. 유사점이라고는 비슷한 크기의 두툼한 원반형이라는 것, 둘 다 오븐이 아니라 번철griddle에 굽는다는 것, 먹기 직전에 반드시 토스터에 다시 구워 줘야 한다는 것 정도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영국의 음식사학자들은 크럼핏이 웨일즈 지역의 팬케이크crempog와, 한때 영국 땅이었던 프랑스 브레똥 지역의 메밀 팬케이크krampoch와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출판된 레서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769년의 것이며, 베이킹 소다bicarbonate of soda가 제과제빵에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19세기 초반부터는 반죽에 효모yeast 외에 소다를 추가로 넣어 매력적인 구멍들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반죽이 너무 되면 구멍이 생기질 않는다고 하네요.
잉글랜드 중부The Midlands에서는 오늘날 수퍼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같은 지름이 작으면서 두툼하고 구멍이 많은 것을 선호하고 다른 동네에서는 디너 플레이트만큼 지름이 큰 것을 선호하는 등 지역마다 형태와 레서피에 차이를 보였으나, 오늘날에는 다들 유명 요리사의 레서피를 따라하거나 수퍼마켓에서 사다 먹어 지역 차이가 흐려졌죠. 영국에는 수퍼마켓 체인 수가 많은데다 각 수퍼마켓들이 여러 브랜드의 크럼핏을 선보이기 때문에 골고루 맛보고 취향에 맞는 크럼핏을 고르는 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저는 영국에 있을 때는 버터밀크를 넣거나 사워도우를 써서 만든 크럼핏을 좋아했습니다.
구워서 그 자리에서 바로 먹을 게 아니라면 크럼핏은 항상 살짝 덜 구워 보관해 먹기 직전에 충분히 토스트를 해줍니다. 공장제 크럼핏들도 창백한 색이 도는 상태로 내보내죠. 그러니 수퍼마켓에서 크럼핏을 사 오시면 반드시 토스터로 구운 색이 나도록 충분히 구워 주셔야 합니다. 집에서 반죽부터 만들어 구울 때는 저 자잘한 구멍을 고르게 많이 얻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네요.요리 잘하시면서 도전 정신 있는 분들은 크럼핏 구멍 많이 만들어 내기에 한번 도전해 보세요. 베이킹 소다를 너무 일찍 넣어도 안 되고, 반죽이 너무 되도 안 되고, 구멍 많이 만들어 내겠다고 베이킹 소다를 너무 많이 넣어도 '세제스러운soapy' 맛이 나 망치게 됩니다.
크럼핏은 머핀과 마찬가지로 달거나 짜지 않은 중립적인 맛이라서 부재료를 곁들여 취향껏 즐길 수 있습니다. 상온에 두어 마요네즈처럼 부드러워진 버터만 발라 먹는 사람도 많고요. 저도 영국에 있을 때는 첫 사진에 있는 것 같은 버터만 바른 상태로 자주 먹었죠. 크럼핏 자체의 간이 세지 않으므로 가염 발효 버터나 치즈 풍미가 살짝 도는 가염 유청 버터가 특히 잘 어울립니다. 버터 위에 잼을 덧발라 티타임 트릿으로도 즐길 수 있고, 달걀 프라이, 훈제 생선, 베이컨, 조제 생햄 같은 것을 올려 간단한 아침 식사로도 즐길 수 있습니다.
구멍 송송 크럼핏
[8개]
재료
• 강력분 115g
• 중력분plain flour 115g
• 타르타르 크림 분말cream of tartar 1/2 작은술 [1작은술 = 5ml]
• 퀵 드라이 이스트 4g [생효모를 구할 수 있으면 그걸로 써도 됨]
• 미지근한 물 250ml
• 소금 한 꼬집pinch [약 1/16 작은술~1/8 작은술]
• 베이킹 소다bicarbonate of soda 1/2 작은술
• 미지근한 우유 75ml
• 버터
만들기 과정은 동영상 참고.
표면에 생긴 공깃방울의 상태를 잘 관찰해서 뒤집는 시간을 결정해야 합니다.
크럼핏은 흐르는 반죽을 쓰기 때문에 구울 때 반죽을 가둘 도구가 필요합니다. 영국에서는 어느 수퍼마켓이든 크럼핏을 취급하지만 한국에는 아직 크럼핏이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먹고 싶을 때는 손수 구워야만 하죠. 귀국할 때 그래서 크럼핏 원형틀ring을 한 세트 사 왔습니다. 이 글 보시는 영국 유학생 여러분들도 귀국할 때 ☞ 납작한 전통 요크셔 푸딩 팬과 크럼핏 틀 꼭 사 오세요. 값은 싼데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드니 영국에서 사 오시는 게 돈도 덜 들고 여러모로 편합니다.
▲ 크럼핏에 세상 맛있는 포티드 쉬림프potted shrimp 듬뿍.
잼과 버터뿐 아니라 짭짤한 재료들이 올라와도 기가 막히다.
참, 영국에서는 성적 매력이 있는 여성을 속되게 부를 때도 '크럼핏'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우리말로 치면, (여자를 보고) "츄릅, 맛있겠네" 뉘앙스? (켁) 잘 만들어진 크럼핏에서는 실제로 관능적인 식감이 납니다.
'Thinking man's crumpet' 혹은 'thinking woman's crumpet'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육체적인 매력과 더불어 지적 매력이 느껴지는 이성을 가리킬 때 씁니다. 영국 배우들 중에서는 헬렌 미렌 할머니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이런 사람들에 꼽힙니다. 똑똑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성적 매력이란 게 또 있지요.
▲ 제이미 올리버의 아침 식사 세팅. 좋아하는 부재료와 잼, 스프레드를 죄 꺼내 놓고 여럿이 즐겨도 좋을 듯.
속 편히 오븐에 구워 '크럼피crumpies'라고 명명. ㅋ
▲ 갈릭 크림 소스에 버무린 밤양송이 버섯과 훈제 베이컨.
구멍들 속으로 맛있는 소스가 쏘옥.
☞ 크럼핏의 구멍은 왜 생기는 걸까?
☞ [Guardian] How To Eat Crumpets
☞ 잉글리쉬 머핀
☞ 치즈 풍미가 살짝 도는 맛있는 유청 버터
☞ 포티드 쉬림프
☞ 영국음식 열전
'영국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곡 SSG 푸드 마켓 (8) | 2019.03.11 |
---|---|
[영국음식] 스위트콘 수프, 콘 수프 Sweetcorn, Leek and Potato Soup 리크 포테이토 수프 (8) | 2019.03.03 |
[영국그릇] 포트메리온 보타닉 가든 Portmeirion Botanic Garden (4) | 2019.01.16 |
[영국음식] 잼 잘 만들기 Jam Session (8) | 2018.08.08 |
[영국음식] 브레드 푸딩, 브레드 앤드 버터 푸딩 Bread and Butter Pudding (3) | 2018.02.23 |
[영국음식] 스티키 토피 푸딩 Sticky Toffee Pudding (0) | 2018.02.18 |
[영국음식] 블랙 푸딩 Black Pudding (6) | 2018.02.01 |
[영국음식] 브라운 소스 Brown Sauce (4) | 2018.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