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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치즈

치즈 ◆ 스페인 라 레또르따 Spain La Retorta 양젖 치즈

단 단 2016. 6. 3. 00:00

 

 

 

스페인 에스트레마두라Extremadura, Spain.

 

 

 

 

 

 

 

 



스페인의 독특한 양젖 치즈입니다. 포장이 소박하고 자연스럽고 시골스럽죠? 누런 골판지를 덧댄 뒤 라피아야자raffia 섬유 끈으로 가볍게 묶고 주문자인 <웨이트로즈> 수퍼마켓의 프리미엄 제품군 딱지를 붙였습니다. 2015년 세계치즈대회World Cheese Awards에서 2,727개의 출품작 중 62개의 'super gold' 수상작에 들었습니다. 250명의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하는 큰 대회입니다.

 

포장의 문구를 우리말로 옮겨 보면요,

 

"단일 농장의 단일 품종 메리노 양에서만 얻은 젖을 글로브 아티쵸크 꽃을 말려서 빻은 응고제로 굳힌 진하고 강한 풍미의 스페인 치즈입니다. 칼로 치즈 윗면을 뚜껑처럼 딴 뒤 숟가락으로 떠서 드세요."


퐁뒤fondue처럼 즐기라는 소리죠.

 

동물의 젖을 굳히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가장 흔한 방법은 응고제를 쓰는 것인데, 전통적으로는 젖을 아직 안 뗀 어린 수송아지, 어린 양, 어린 염소의 네 번째 위장을 잘게 썬 뒤 치대어 짜낸 효소rennet를 썼고(꽥!), 엉겅퀴류 식물에서 추출한 효소도 많이들 씁니다. 식물성 효소를 쓰면 쓴맛이 약간 난다고 하는데, 이 쓴맛은 치즈에 따라 거의 안 느껴질 때도 있고, 느껴지더라도 치즈의 농후한 맛을 끊어주고cut 맛의 균형을 맞춰 주는 역할을 해 치즈에 따라서는 장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습니다. 이 치즈는 제가 즐겨 먹는 ☞ 글로브 아티쵸크의 꽃을 말려 빻은 가루로 응고시킨다고 합니다. 이런 동물성, 식물성 응고효소들 대신 레몬즙이나 식초 같은 산을 써서 굳히기도 합니다.

 

140g짜리 작고 두툼한 원반truckle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살균하지 않은 생유raw milk로 만듭니다.

 

남유럽의 치즈라고 하니 오래된 전통 치즈인 것 같으나 실은 1949년에 탄생한 신생 치즈입니다. 치즈를 만든 이들의 이력이 흥미롭습니다. 2차대전 때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 스페인에 파견된 미국 여성이 스페인의 어느 백작과 결혼해 졸지에 백작부인이 되었고, 800년이 다 돼 가는 가문의 영지를 관리하면서 양을 쳐 치즈를 만들게 되었다고 하네요. 치즈의 탄생 뒤에는 이렇게 재미있는 비화들이 많습니다.

 

 

 

 

 

 

 


 
윗면의 비닐만 뜯었습니다.
주황색이 돌면서 표면이 살짝 젖어 있죠.
이런 치즈들을 보시면 뭔가 심상치 않은 향과 맛이 날 것으로 기대하셔도 됩니다.

 

어디, 먼저 냄새부터.


크으...
역시...


북어 잔뜩 쌓은 창고와 나프탈렌 잔뜩 넣은 옷장 냄새를 합친 듯합니다. 어떤 향인지 감이 잡히십니까.


그런데 이런 냄새 고약한 치즈들이 의외로 맛은 참 좋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상태로 실온이 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냉장고에서 막 꺼내 차가운 상태일 때 윗부분을 칼로 썰어서 따려면 뻣뻣해서 잘 안 따집니다. 치즈 속살이 흐르기 시작해야 뚜껑이 얇고 깔끔하게 잘 떨어지죠. 생산자는 먹기 무려 4시간에서 10시간 전에 냉장고에서 미리 꺼내 놓아 풍미, 색, 질감을 회복시킨 뒤 먹으라고 조언을 하는데요, 실온에 이 영양 풍부한 식품을 그렇게 오래 방치한다는 것은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30분 정도 둔 뒤 먹었습니다.

 

 

 

 

 

 

 

 


먹는 법

 

사진에 있는 것처럼 뚜껑을 따서 빵을 찍어 먹습니다. 퐁뒤 식으로 먹는 치즈들은 그간 몇 번 소개해 드린 적이 있지요.

꺄몽베흐

바슈랭 몽 도

 


 

위에서 북어와 나프탈렌을 합친 향이 난다고 했었는데, 여기에 농축된 비스크bisque 맛이 더해져 맛은 복잡하고 강렬합니다. 우마미 가득한 해산물 수프를 한참 졸여 농축해 먹는 듯한 진한 맛이 나죠. 해산물 중에서도 특히 가재류의 고소한 갑각류 우마미가 많이 납니다. 그리고 매우 씁니다. 엉겅퀴 꽃을 말려서 갈아 응고제로 쓰기 때문에 특유의 쓴맛이 있으나 치즈맛이 워낙 진하고 풍부해서 이 쓴맛이 단점이 아니라 균형을 맞춰 주는 장점으로 작용을 합니다. 저는 혀가 예민해서 남들보다 쓴맛을 많이 느끼는 편인데, 이 치즈의 쓴맛은 강한 향과 강한 우마미와 결합돼 상승 작용을 일으키는 듯합니다. 개성이 강하면서 맛있습니다.

 

프랑스나 스위스의 알파인 치즈들을 퐁뒤로 만들 때는 치즈에 와인을 붓고 마늘이나 향초를 곁들여 오븐에 굽거나 냄비에 담아 직불에 가열해 녹여서 먹죠. 이 라 레또르따 치즈는 이 자체로 완성도가 있어 부재료가 필요치 않고, 열을 가해 녹일 필요도 없이 실온에 그냥 두면 저절로 소스가 됩니다.

 

라 레또르따와 비슷한 풍미의 치즈들로는 향긋한 꽃향과 꿀향이 나는 프랑스의 ☞ 이푸아스와, 흙내음과 해산물 풍미의 영국 ☞ 스팅킹 비숍을 소개해 드린 적 있죠. 이 치즈는 이푸아스보다는 스팅킹 비숍에 좀 더 가까우나 '숭악함'에 있어서는 스팅킹 비숍보다 한 수 위입니다. 거친 대자연의 느낌이 물씬 나면서 개성이 넘칩니다. 스페인 치즈 먹어 본 것들 중에서 저는 이 치즈가 가장 맛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녹여서 딥dip처럼 활용하는 치즈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고요. 이태리 음식은 활기차고 선명한 풍미를 지녔어도 세련된 느낌이 있는 반면, 스페인 음식은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매력과 기개가 있죠. (심지어 양국의 조제 고기에서도 이같은 점을 느낌.) 이 치즈에서도 스페인 음식의 그런 매력이 한껏 드러납니다. 이런 개성 넘치는 덜 대중적인 치즈를 들여 놓은 <웨이트로즈> 수퍼마켓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영국에 계신 분들은 한번 '도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한국인이 이 치즈를 먹는 것은 아마 서양인이 우리 청국장을 처음 먹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 치즈 대회에서 상 받은 이야기

☞ 생산자 누리집

 

 

 

 

 

 

 

 

 

 

 

 

 

 

 

런던 버러 마켓 스페인 델리 가게에서 본 라 레또르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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