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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에서 즐기는 아프터눈 티] 권여사님 댁 ⑥ 2017년 크리스마스 본문
햐, 거참 비교되네...
딸은 다쓰베이더 삘 나는 검은색의 투박하기 짝이 없는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데 일흔 넘으신 모친은 저런 샬랄라한 운동화를 신으시고.
올해도 어김없이 세워진 산만하기 짝이 없는, 그러나 추억으로 가득한 권여사님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이 왜 저렇게 일관성 없이 제각각이냐면요, 애들 네 명과 손주들이 매년 한 개씩, 두 개씩 선물 드린 걸로 꾸미셔서 그래요. ㅋ 심지어 생신 때 받으신 카드도 올라가 있고, 잘 보면 과자도 올라가 있고 그래요. 클릭하면 큰 사진이 뜨니 찬찬히 한번 들여다보세요.
이 사진에서는 빨간 벨벳 별, 파란 티포트 종이 카드, 오른쪽 아래의 도자기 병정 딸랑이가 단단이 기여한 것들입니다. 전부 영국에서 사서 보내드린 것들인데, 제 눈에는 제가 드린 장식품들이 가장 예뻐 보입니다. 둘째 오라버니 눈에는 또 자기가 인도 갔다가 사다 드린 반짝이는 금장 유리 장식품들이 가장 예뻐 보이겠죠.
헤헤, 여기 티포트 카드 또 있네.
생신 때마다 티포트 모양의 카드에 축하 문구를 써서 보내드렸거든요. 오른쪽 아래 벨벳 별도 제가 드린 거예요.
도자기 병정 딸랑이도 단단이 드린 것.
크리스마스가 우리 명절이 아니다 보니 확실히 집에서 크리스마스 음식을 해먹는 집은 드문 듯합니다. 대개는 분위기 좋은 양식집에서 외식을 하죠. 저희는 다같이 중국음식을 사 먹은 뒤 집에서 '고슴도치 많이 쌓기' 놀이를 했습니다. 세 마리를 기본으로 깐 뒤 시작합니다. '얼마나 높이'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쌓느냐로 시합을 했죠.
어이구내새끼5 도전.
어이쿠, 맨 꼭대기에 올린 거, 아슬아슬해 보인다야.
어이구내새끼4 도전.
조마조마.
쓰러지면 끝, 기회는 다음 사람에게 넘어갑니다.
우리 집 영감 도전.
옳지, 피라미드 형으로 급격히 좁아지면 많이 못 쌓아요.
두 번째 단부터는 빨리 네 개로 넓혀야 유리하죠.
오라버니3 도전.
아니아니, '높이 쌓기'가 아니라 '많이 쌓기'라니까?
ㅋㅋㅋㅋㅋㅋ
지나가는 사람 붙들어다 시켰는데, '높이 쌓기'로 착각했대요.
사진 찍자마자 우르르;;
카메라 의식했구먼.
대망의 티타임.
제가 가만히 관찰을 해보니, 한국인 가정에 진정한 '영국식 아프터눈 티'를 구현시키기는 많이 어려울 듯합니다. 일단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이면 '간식 나부랭이'가 아니라 꼭 밥을 먹어야 해서 식사 시간 사이에 간식 모임만 갖기가 대단히 어려워요. 밥 때 만나 밥을 먹어야 해 단것들은 식후 간단한 '디저트' 개념으로나 즐겨야 하죠. 다들 배가 부른 상태여서 샌드위치와 스콘 세트(스콘 + 딸기잼 + 클로티드 크림)는 빼야 하고, 한국인은 식후에 과자보다는 생과일을 먹는 게 인이 박여 저렇게 과일도 꼭 올려야 하고요.
영국인들은 티타임에 생과일을 내지 않습니다. 그건 너무 손쉽거든요. 과일은 돈만 주면 누구나 사 먹을 수 있잖아요. 공들여 만든 것들로 손님을 대접하는 게 접대의 정석이라고 여깁니다. 맛내서 조린 과일을 케이크나 푸딩 위에 얹는 것은 권장합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 와서 시판 케이크들을 두루 살펴보니 탐탁지가 않아요. 맹탕 스폰지 위에 그냥 (식물성 저질) 생크림 바르고 글레이즈 두껍게 도포한 생과일 몇 쪽 올린 게 케이크의 기본이 된 듯한데, 문제는, 딸기 같은 과일은 물 닿으면 금방 무른다고 씻지도 않고 그냥들 올린다는 거죠. 권여사님은 성분도, 맛도, 위생도 별로인 데다 비싸기만 한 시답잖은 생크림 딸기 케이크 살 바에야 실하고 맛있는 딸기를 잘 골라 사서 올리는 게 낫다고 여기시는 것 같아요. 실제로 티파티를 여러 번 치러보셨는데, 한국인은 식후에 생과일을 선호해 항상 과일이 먼저 떨어지고 단 과자들이 많이 남는다고 하십니다. 이 날도 역시 그랬고요. 으음... '홈 베이킹'과 '아프터눈 티'가 우리 문화가 아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죠. 게다가 한국은 과일이 비싼 나라라서 기회가 되면 다들 '몸에 좋은' 과일을 먼저 먹고 싶어한다는 것, 이해는 갑니다.
그래도 우리 권여사님, 크리스마스 삘 나는 아이싱 비스킷도 다 사다 놓으시고. <파리 크라상>에서 사 오셨다는데, 어째 제가 만든 것보다 맛이 없어요. ㅋ 한국 제과점들은 향신료 쓸 줄을 모릅니다. 식감도 그렇고요.
홍차는 크리스마스답게 향홍차로 준비하셨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언제 보내드린 차인데 여태 드시고 계세요?
또 사 드릴 테니 아끼지 마시고 팍팍 드세요.
서양인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가장 중요한 명절이어서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전후로 쉬는 날을 많이 주죠. 우리나라는 입시, 채용, 그리고 각종 업무 마감이 연말에 몰려 있어 이때가 가장 정신 없고 바쁩니다. 한국에 살면서 영국 살 때처럼 크리스마스를 잘 준비하는 건 어림도 없겠습니다. 단단도 12월 한 달 동안 요리는커녕 정말 밥 먹을 시간 내기도 힘들 정도로 바빴는데 그래도 권여사님 덕분에 크리스마스 트리도 보고 티파티도 즐겨봅니다.
여러분, 올 한 해 잘 마무리 하시고 새해 건강하시길 빕니다.
내년에도 최선을 다해 사진 찍고 글 써보겠습니다.
Happy New Ye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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