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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육면도 사 먹어봤습니다 본문
<샤오바오 우육면> 중국 란저우식 우육면 [8,000원]
길을 걷다가 <샤오바오 우육면>이라는 간판을 보고는 다쓰 부처 둘 다 눈이 번쩍.
"무엇이? 우육면이라고?"
"마침 식사 때가 되었으니 닥치고 들어가보세."
얼마 전 우육면과 단단면을 처음 사 먹은 뒤로 관심이 생겨 이제는 평소에 못 보고 지나쳤던 2층 음식점의 우육면 간판도 다 눈에 들어옵니다.
감동.
8천원짜리 국숫집인데 이도 하나 빠지지 않은 예쁜 회회청回回靑 당초문 자기에 음식을 냅니다. 우육면이 원래 중국 회족Hui의 음식이라면서요. 이 프랜차이즈의 설립자도 우육면 본고장인 중국 서북부 간쑤성 란저우에 가서 수련하고 왔다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란주우육면'이라고 부르죠.
고추기름 넣은 것과 안 넣은 것을 각각 하나씩 주문해보았습니다.
켁, 파가 너무 많아요.
얇게 송송 썬 파도 아닌, 저렇게 길게 썬 파를;;
이에 대해서는 ☞ 국수와 국밥에 파 좀 제발 적당히 글에서 충분히 투덜거렸습니다. ㅋ
란저우 우육면에는 본디 수타면(납면拉麵, lamian)을 쓰게 돼 있어 이 프랜차이즈의 본점인 종로점에서는 실제로 식객이 8단계 굵기 수타면 중에서 선택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제가 갔던 집은 강남의 작은 점포라서 수타면 장인 없이 기계면을 받아 쓴다고 하지만요. 그렇죠, 손으로 뽑는 면이 저렇게 완벽하게 같은 굵기에, 단면이 완벽하게 원형이 되어 나올 수가 없죠. 면 굵기도 세 단계(1mm, 2.5mm, 넓적면)로 한정됩니다. 그런데, 첫 방문이라서 직원이 추천한 2.5mm 굵기를 선택하고는 후회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굵기라는데 저희 취향에는 너무 굵었습니다. 실제로 받아 본 면은 지름이 2.5mm가 아니라 한 4mm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사진의 국숫가락을 유심히 보십시오. 면 표면이 마치 플라스틱 코팅된 듯 매끄럽고 단단해 국물과 어우러지지를 못 하고 따로 놉니다. 이러니 실제 염도와는 상관없이 싱겁고 단조로운 느낌이 나 음식이 금세 물릴 수밖에요. 면 표면이 거칠거칠한 질감이거나 국물이 걸죽한 소스에 가까운 성상일 때는 굵은 면이 어울릴지 몰라도 이런 '플라스티키'한 깍쟁이 면에 맑은 탕일 때는 세면이 훨씬 낫죠.
국물에서는 퐈~'한 아네톨anethole 기운이 물씬 납니다. 아마 회향fennel seeds 때문인 것 같은데, '회回'향을 잔뜩 쓰다니, 역시 회교도 음식이군, 재미있어 했습니다. 그런데 회향에는 나무woody향과 쓴맛이 좀 있잖아요. 첫 방문 때는 생파 아린 맛에 회향 쓴맛까지 겹쳐 끝까지 먹기가 좀 힘들었습니다. 화쟈오도 넉넉히 넣었는지 혀 끝과 입술에 짜르르한 전율이 감돕니다. 국물에 개성이 있어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듭니다.
이건 고추기름을 넣은 우육면입니다. 고추기름은 음식에 매운 맛뿐 아니라 고추 특유의 은은한 단맛과 고소한 맛, 훈향도 함께 입히죠. 그런데 음식 양이 많다 보니 이것도 지속되는 강한 기름맛 탓에 금세 물립니다. 고추기름 안 넣은 것으로 주문해 반 이상 먹고 난 뒤 식탁 위 별도로 놓인 고추기름을 취향껏 추가해 먹는 편이 현명하겠습니다.
사진에 무도 보이죠? 파는 너무 길게 썰어 문제인데 무는 또 너무 얇게 썰어 문제입니다. 무가 지나치게 얇으니 맛도 식감도 당연히 제대로 음미할 수가 없었죠.
이 집에 가실 분들은 파를 사진에 있는 것의 4분의 1만 올려 달라고 하시고, 고수 드실 수 있는 분들은 고수 있냐고 물어 고수도 같이 올리시고, 면은 세면으로 선택하시고, 고추기름 안 넣은 국물로 주문해 3분의 2쯤 드시고 난 뒤 식탁에 있는 고추기름을 넣어 남은 면을 즐기시면 좋을 듯합니다.
재방문.
위에서 언급한 대로 주문해 먹으니 한결 낫네요.
한국에는 본고장 란저우식 우육면을 내는 집이 드물기 때문에 저는 이 집이 흥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호기심 많은 싱가포르 소녀의 란저우 우육면 소개 영상입니다. 먼저 싱가포르의 란저우식 수타면 맛집을 소개한 뒤 중국 란저우로 날아가 그곳의 영업집과 가정집 조리법을 차례로 소개하는데, 가정에서도 간단하게나마 수타면을 만들어 쓰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고추기름 만드는 법도 보여 주고요.
란저우식 우육면은 재료에 있어 이제 어느 정도 통일을 본 모양입니다. 아래의 다섯 가지 요소들을 꼭 포함해야 한다고 문헌이 못을 박고 있습니다. 회교도들의 음식이라 돼지고기를 쓰지 않고 쇠고기를 씁니다.
• 청淸 - 맑은 탕
• 백白 - 얇게 썬 무
• 홍紅 - 고추기름
• 녹綠 - 고수와 풋마늘
• 황黃 - 약간의 노란 빛을 띠는 수타 밀면lamian
(닥터 드레 님 말씀에 의하면, 영상에서 파처럼 보이는 것은 파가 아니라 ☞ 풋마늘. 잘 보면 녹색 부분 단면이 부추처럼 좀 더 납작합니다. 풋마늘을 구하기 힘든 영국과 영연방에서는 스프링 어니언spring onion을 대체재로 많이 씁니다.)
이건 대만식 홍소우육면입니다. 국물에 간장을 추가하고, 표면을 센 불에 지진 뒤 맛난 양념과 함께 푹 고은braised 실한 고깃덩이를 듬뿍 올립니다. 사진을 크게 띄워서 보세요. 두툼하니 고기가 참 잘생겼죠. 대만 <딘타이펑>의 광고 사진인데, 대만에서는 주문 시 살코기뿐 아니라 힘줄도 선택해 함께 즐길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딘타이펑> 영등포 타임스퀘어점의 대만식 우육면 [11,000원]
한국에서 내는 실제 모습은 이렇습니다. 면만 좀 더 굵을 뿐 구성요소에 큰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육개장과 쇠고기뭇국을 합친 맛인데, 향신료는 거의 쓰지 않는 모양인지 이국적인 느낌은 전혀 없고 지극히 익숙한 맛이라서 김이 좀 샜습니다. 고기가 큼직한 덩어리로 올라와 있으니 매력적으로 보이죠. 그런데 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고기가 질기고 뻣뻣해서 먹기는 좀 힘들었습니다. 젓가락으로는 찢기지 않아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양손을 써서 찢었는데, 찢고 나니 물기 없는 뻑뻑한 장조림 고기처럼 됩니다. 지금처럼 계속 큰 덩이로 올리려면 부드러워질 때까지 충분히 삶든지, 주방에서 미리 찢어 양념을 더 해서 내든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크리스탈 제이드> 잠실점의 (자기들 말로는) 사천식 우육면 [15,000원]
와아, 만오천원;;
돌아다니면서 사 먹어본 우육면 중 맛은 가장 떨어지는데 값은 최고입니다. 우육면이면 일단 국물에서 쇠고기 맛이 나야 할 텐데 쯔란cumin과 후추 맛밖에 안 납니다. 처음에는 인도식 커리탕면(?)으로 주방에 주문이 잘못 들어간 줄 알았습니다. 다쓰 부처 둘 다 향신료를 몹시 즐기는 사람들이고, 향신료 향미를 그 음식이 가진 개성으로 여겨 후히 평가하는 편입니다만, 이 집 우육면 국물은 균형이 한참 깨져 있어 장점으로 봐주기가 힘듭니다.
고명으로 올린 맛없는 유부는 앞의 단단면 글에서 이미 실컷 흉을 봤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고, 저 고기 말입니다, 저는 암만 봐도 저게 진짜 고기 같지가 않고 글루텐으로 만든 가짜 고기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6년간 채식한 경험이 있어 콩고기와 글루텐 고기의 맛과 식감을 잘 알거든요. 이 집에 또 갈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럴 일이 생기면 그때는 밀폐용기를 가져가 저 '고기'라고 올린 걸 먹지 말고 그대로 담아 와야겠습니다. 식품성분 분석·평가하는 기관에 DNA 감정을 의뢰해보고 싶어요. 고기 대용품들은 양념 입힌 볶음에나 쓰지, 국물에 넣었다가는 삽시간에 맛 다 빠져 흐물흐물 이상한 질감만 남게 되죠. 이게 딱 그 꼴입니다.
<크리스탈 제이드> 잠실점 솜씨 참 개탄할 수준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취급하는 음식 가짓수가 너무 많아요. 다들 메뉴판 찍다가 지쳐서 중도 포기할 정도죠. 전력이 분산돼 제대로 하는 게 별로 없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해집니다.
<제레미20> 잠실점의 홍콩식 우육면 [7,500원]
국물이 많이 달긴 하나 오향의 이국적인 향미가 좋고, 고기 질감과 맛도, 면발도, 심지어 가격도 좋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맛본 우육면이라 각별합니다.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쮸즈>의 싱가포르식 우육면 [8,000원]
우아하게 순화시킨 육개장 맛에 은은한 이국 향신료 맛이 더해져 납니다. 단맛도 조금 있고요. 보기에도 육개장과 많이 닮았죠? 육개장에 칼국수 면을 넣으면 한국식 '화끈한' 우육면으로 세계에 내놓을 수 있겠다 싶어 무릎을 탁 쳤습니다.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아니나다를까, 이미 그렇게 내는 집이 강남에만도 수두룩하더군요. ㅋ 저만 모르고 있었나 봅니다. '우육면 투어' 끝나면 육개장 칼국수 맛보러 돌아다녀야겠는걸요.
고명이 다채로워 먹으면서 지겹지가 않았습니다. 무를 두툼하게 썰어 맛있는 국물이 푸욱 배어 들게 했는데, 이렇게 처리한 무가 정통 방식인 란저우식 뽀얗고 얇은 무보다 더 맛있기는 합니다. 면 전문점이 아니라 딤섬집이므로 면은 자가제면 하지 않고 외부에서 구해다 쓴다는데, 면 고르는 안목이 있는지 씹히는 감촉이 온화해서 참 좋았습니다.
여의도 <백리향 싱타이>의 '가을 특선' 우육탕면 [14,000원]
연중 내지 않고 무더위가 꺾인 가을부터 선보인다고 합니다. 아롱사태 편육이 어찌나 부드럽던지, 젓가락으로 살짝만 힘줘도 부스러질 정도입니다. 냉면 위에 올린 것 같은 맛 다 빠진 뻣뻣하고 냄새 나는 고기가 아니라 양념을 따로 한 향기롭고 맛있는 고기입니다. 마치 오향우육을 따뜻하게 데워 올린 듯한 느낌이랄까요. 양도 꽤 많이 올렸고요.
채소 고명으로는 숙주와 파를 올리고, 청경채 대신 얼갈이배춧잎을 올렸는데, 중화면에서 늘 보던 청경채보다 이 얼갈이배추가 국물에 더 잘 어우러져 맛이 더 낫네요. 파는 'chefy'하게도 연하고 맛있는 흰 부분만 다져 올렸습니다. 격도 있어 보이고 맛에 대한 생각도 깊어 보입니다.
국물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아니씨드aniseed 계열 향신료 향미가 희미하게 납니다. 향을 좀 더 과감하게 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권여사님은 이것도 과하다고 입맛에 안 맞아 하십니다. 여의도가 원래 노인들 많이 사는 보수적인 동네이고 이 집 단골들 중에는 이 동네 토박이 노인들이 많으니 향신료를 과감하게 쓰고 싶어도 제약이 많을 겁니다. ㅋ
국물이 좀 달다는 것도 다쓰 부처한테는 흠이었는데, 뭐, 여긴 한국이니까요. 그럼에도 전체적으로는 완성도 높고 맛있었습니다. 면도 식감이 아주 좋고 굵기도 적당합니다. 아롱사태 꾸미가 특히 인상적이면서 면발도 좋아 다쓰 부처는 이 집 우육면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계절 특선이라 하니 맛볼 수 있을 때 부지런히 챙겨 먹어야겠습니다. (이 집 마라탕면은 더 끝내줍니다.)
<팀호완> 삼성점의 홍콩식 우육면 [9,500원] [2020년 7월]
이 집 우육면도 제 입맛에 잘 맞습니다. 새우를 쓰는 딤섬 요리가 많아 새우 대가리와 껍질이 많이 생기는데, 그걸로 진한 기본 국물을 낸 뒤 쇠고기 육수와 향신료를 넣어 맛과 향을 보강하는 듯합니다. 면도 완탕면에 쓰는 꼬들꼬들한 세면을 쓰고, 쇠고기도 부드럽게 잘 익혀 얹습니다. 국물 맛도 고기 맛도 훌륭하고, 면 식감도 좋습니다. 집에서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 자주 가서 사 먹습니다.
☞ 손국수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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