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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녹차] 오설록 세작 2020년 햇차 [불발효] 본문

차나 한 잔

[한국 녹차] 오설록 세작 2020년 햇차 [불발효]

단 단 2020. 7. 27. 02:02

 

 

 

 

우리 녹차를 맛본 소감을 적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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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설록>의 2020년 햇녹차 '세작'입니다. 비싼 차 덜컥 사 놓고 맛없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저 같은 기우를 위해 오설록이 피라미드형 고급 실크 티백을 딱 세 개만 담아서 팔기도 합니다. 생각 잘했습니다.


현재 한국의 녹차 등급은 '우전', '세작', '중작', '대작' 등으로 매겨지고 있다는데, 뒤로 갈수록 채엽한 잎 크기가 커지면서 급이 낮아집니다. 즉, 차나무 위쪽에 있는 작은 잎을 일찍 따서 쓸수록 고급으로 쳐 줍니다. 사진의 녹차 포장에서 'golden pick'이라고 써 있는 부분의 찻잎 그림을 보세요. 가장 윗잎들인 '1심 2엽', '1아 2엽', '1창 2기'를 표현했습니다. 다 같은 말입니다.

 

 

 

 

 

 

 

 6대 차류의 제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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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녹차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① 채엽 採葉 plucking
잎 따기. 차나무 맨 위쪽에 있는 어린 잎을 이른 봄에 딸수록 고급.


② 살청 殺靑 fixing
채엽한 잎에 열을 가해 찻잎이 가지고 있는 산화효소의 활성을 억제. 채엽 뒤 바로 살청해 주지 않고 시간 끌면서 찻잎을 못살게 굴면 산화효소의 작용으로 청차, 홍차 같은 발효차가 됨. 중국은 마른 솥에 덖어 살청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부초차), 일본은 고온의 증기로 쪄서 살청하는 방식을 선호(☞ 증제차), 한국은 중국처럼 덖은 차를 선호하는데, 오늘 소개해 드릴 오설록 세작은 증기로 찐 차와 덖은 차를 혼합.


③ 유념 揉捻 rolling
열로 인해 찻잎의 수분이 날아가 부드러워졌을 때 손이나 기계로 비벼 찻잎 내의 세포벽을 파괴해 풍부한 방향유를 배어 나오도록 하는 작업. 동시에 원하는 모양으로 성형. 즉, 녹차의 향미와 외관을 결정하는 과정. 동글동글 말린 것, 구불구불 비틀린 것, 바늘처럼 가늘고 뾰족한 것, 납작하게 눌린 것 등 다양.


④ 건조 乾燥 drying
향미와 품질을 고정시키는 작업으로 '살청'과는 다름.

 


차 포장 좀 보세요. 제가 한국 녹차 포장 촌스럽다고 투덜거린 적이 있었잖아요? (☞ 한국인이 한국 녹차를 찾지 않는 이유) 오설록 개발팀에서 제 글을 보았을 리는 만무하고, 젊은 소비자 층을 염두에 두었는지 요 몇 년 새 차 포장이 많이 세련돼졌습니다. 전에는 녹차는 무조건 촌스러운 녹색 지통 아니면 녹색 플라스틱 통에 담아서 냈었는데요.

 

세련돼진 포장보다 더 칭찬해 주고 싶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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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개 포장된 티백 하나하나마다 이렇게 차의 성격과 출처, 우리는 법을 자세하면서도 깔끔하게 인쇄해 놓았다는 겁니다. 이러면 우릴 때마다 지시가 쓰여 있는 차통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니 편하죠. 밖에 티백 하나만 덜렁 갖고 나가기도 좋고, 차동무한테 같이 맛보자며 나누어 주기도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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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잎이 궁금해서 티백에서 꺼내 보았습니다. 티백 하나의 양입니다. 찐 차와 덖은 차를 합쳤다 하니 두 가지 다른 색의 찻잎이 보여야 합니다. 찐 차는 대개 밝은 녹색을, 덖은 차는 암녹색을 띱니다. 건잎 향을 맡아 보니 갓 구운 카스테라의 고소한 달걀향과 단향, 그리고 김향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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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차밭, 돌송이차밭, 한남차밭, 이 세 다원에서 각각 다른 특성을 보이는 품종의 차나무를 육성해 그 잎들을 찌거나 덖는 등 제다법까지 달리해 합쳤으니 이론상으로는 색, 향, 미 모두 우수하면서 꽉 찬 맛을 내주는 차가 나와 줘야겠습니다.


어떤 식품을 처음 사서 맛볼 때는 일단 생산자가 추천하는 방식대로 준비를 해서 맛을 파악한 뒤 그 다음부터 자기 취향에 맞춰 조건을 조절해 즐기면 좋습니다.


이 차를 우리기 위한 물로는 어떤 물이 좋을까요?

오설록 누리집에서는 오설록 차나무를 키워 낸 제주 물인 삼다수를 추천합니다. 그래서 저도 삼다수를 써 보았습니다. (칼슘, 마그네슘 등이 좌우하는 물의 경도는 차맛에 영향을 많이 미칩니다. 귀국해서 늘 마시던 똑같은 차의 맛이 달라진 걸 느끼고는 한참 신기해했습니다.)


1탕: 티백 하나 1.5g, 150ml, 삼다수, 70˚C, 1분 30초
2탕: 2분 (첫 탕보다 30초 늘려서)
3탕: 2분 30초 (전 탕보다 30초 늘려서)

4탕: 실온의 물로 냉침 

 

 

 

 

 

 

 

 

 

구운 밤이나 찐 밤이 아닌 물에 삶은 고소한 밤맛이 나고(덖은 차의 특징) 김맛도 납니다(찐 차의 특징). 맛은 좋아요. 그런데,


증제차(증기에 쪄서 살청한 녹차)는 역시 제 취향이 아닌 듯합니다. 아미노산이 과해서 느끼하고 비려요. 찻물도 탁하고요.
제가 그래서 일본 과자는 사 먹어도 ☞ 일본 녹차는 안 삽니다. 중국인과 한국인은 덖은 차의 개운한 맛을 선호한다는데 저도 그렇습니다. 이 차는 찐 차와 덖은 차를 혼합해 만들었다는데 증제차 비율이 높은지 덖은 차의 장점보다는 위에 열거한 찐 차의 단점들이 두드러집니다.

 

게다가 2탕까지만 마실 만하고 3탕부터는 향만 남고 맛은 급격히 싱거워지면서 목넘김이 거칠어집니다. 소위 '내포성'이 좋지 않다는 거죠. 위의 건잎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찻잎이 너무 잘려 있고 티끌이 지나치게 많으니 그럴 수밖에요. 티백에서 찻잎을 빼낼 때 티끌을 많이 털어 냈는데도 저렇습니다. 누렇게 뜬 잎도 보입니다. 

 

그리고 이건 찐 차, 덖은 차의 문제가 아닌 티백 자체의 문제인 것 같은데, 찻잎을 티백에 가두었는데도 차 티끌이 잔뜩 빠져 나와 찻물 표면에 먼지처럼 뜨고, 청소 안 된 어항 밑바닥처럼 바닥에도 가라앉아 뭉칩니다. 우린 찻물이 단정해 보이지가 않아요.


중국은 표준다탕을 찻잎 3g에 물 150ml로 잡는데 오설록은 녹차나 몇몇 가향차를 1.5g에 150ml로 잡습니다. 중국 녹차에 비해 맛이 여린데 양마저 반으로 줄였으니 제 입에는 다소 싱겁게 느껴집니다. 양념 강한 한식 먹은 후의 식후 음료로는 어림도 없겠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차 기업이 차를 이렇게 싱겁게 내서 보급하고 있으니 녹차가 밤낮 커피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는 거지요. 백차보다도 맛이 싱겁고 여립니다. 내년 오설록 햇녹차는 티백 차로 사지 말고 산차loose leaf로 사서 맛봐야겠습니다. 찻잎 양을 두 배쯤 늘려서 우려야 맛이 제대로 날 것 같습니다.

 

 

 

 

 

 

 

 


한국인 차 블로거가 한국 녹차를 아끼고 사랑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저는 사실 한국 녹차든, 중국 녹차든, 일본 녹차든, 녹차는 체질에 맞지 않아 즐기고 싶어도 못 즐깁니다. 녹차는 장점이 많은 차이긴 하나 구강건조증을 야기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죠. 삼탕까지 마시고 나니 역시나 입 안과 식도가 바싹 건조해져 잔기침이 나기 시작하고 목소리가 갈라져서 납니다. 이러고 나면 하루종일 호흡기 문제로 고생합니다. 저는 피부 점막이 약해 이 증상을 남들보다 훨씬 심하게 겪습니다.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강연자나 목을 많이 쓰는 가수, 성악가들은 그래서 녹차를 마시지 않는다고 하죠. 6대 차류[녹차, 황차, 백차, 청차, 홍차, 흑차] 중 꼭 녹차만 이럽니다. 희한하죠.

 

오설록에서 자사의 세작 녹차에 어울리는 음식으로 해산물과 건과일을 추천해 놓았습니다. 마지막 남은 티백은 고등어구이와 김구이 백반에 곁들여 마셔 보았는데, 과연 잘 어울리면서 차맛이 훨씬 좋게 느껴집니다. 녹차 자체에 해조류와 비슷한 맛이 담겨 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집에 있는 다른 녹차들도 생선구이 백반이나 중식 먹을 때, 만두 먹을 때, 새우깡 먹을 때 소진해야겠습니다. 학습된 탓일까요? 녹차는 단 차음식보다는 짭짤한 음식과 먹을 때가 항상 더 맛있게 느껴집니다. 식사 때 마시면 구강건조증도 겪지 않아 좋고요. 그래서 일본인들이 오챠즈케를 해먹고 중식당들이 자스민 녹차를 함께 내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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